‘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
시간에 대한 단상
이곳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얻었던 직장의 상사가, 권고사직후 이삼년 지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도시니 그 사람이 생전에 몰고 다니던 차가 (가족들이 계속 몰았으니)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쇼핑센터나 시내길에 주차된 것을 몇차례 내가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보통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차나 물건들이 왔다가 가는데, 그 경우에는 반대였던 좀 특이한 경우라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사람 생전에 그 차 몰고 다닐때, 자기가 죽고나서 그가 몰던 차는 여전히 거리를 오가는 상상을 해보았을까…
미국에는 플린스톤스라는 우리에게도 알려졌던 만화때문에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물어보면 긴가민가 할것이다. 공룡은 실존했었기에 당연히 화석은 물론 잘 보존된 뼈도 발굴이 되어 왔다. 현재까지 발굴된 공룡의 뼈로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것은 1990년 미국에서 발굴된 ‘수(Sue)’라고 이름지어진 공룡이라고 한다. 90% 정도 완전한 골격이 그대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 공룡이 생존했던 시기를 포함한 많은 자료들이 연구발표 되었다.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자 – 위 링크에 가서 우측상단의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다.
방금 그대와 내가 인터넷으로 본, 실제로 지구상에 6,700만년 전에 돌아다녔던 이 공룡 수(Sue)의 유골은,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전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6,000만년 이상의 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왔으며, 현대문명을 이룬 인간에 의해서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인간이 현대 문명을 이루고 산 기간을 200년이라고 가정하여 이것을 24시간 시계로 비유하자면, 이 공룡이 죽어서 묻혀있던 시간은 23시간59분59초 이상이고, 그 실체를 밝혀낸 현대문명은 약 0.3초 정도의 시간이라 할수 있다. 예수의 탄생부터를 현대문명으로 쳐준다고 해도 약3초 정도의 시간이 되겠다.
이글을 시작할때 죽은 매니져가 몰던 차가 돌아다니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실존했던 공룡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할 꿈도 꾸지 못했던 까마득한 먼 옛날에 살아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사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관련된 시간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 – 20만년 전에 현인류가 (지금인류의 직계조상) 지구상에 탄생했는데,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100번 반복한 시간이 되겠다.
- – 500만년 전에 인류가 침팬지등으로 부터 분리되었다고 하는데 (인류와 유사한 조상의 시초),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2,500번 반복한 시간이다.
- – 6,700만년 전에 이 공룡 ‘수(Sue)’가 살았었는데, 이 공룡이 죽은 이후,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30,000번 이상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위에서 언급한) 침팬지와 인류가 분리되고 인류와 유사한 조상이 지구상에 등장했었던 것이다.
- – 그리고 현재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이때로부터 또 다시 3,000번 이상을 더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나? 인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나? 나도 그런 기분이 좀 든다. 또 어떤 생각이 드나? 인간의 역사도 또 한 인간의 삶도 참으로 어처구니 없이 짧고 허무하다는 기분도 들지 않나? 어떤 과학서적에서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천체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평생을 보내고 나서 깨달은 (인간과 과학의 한계에 대한) 내생각을 비유로 표현하자면, 100층짜리 마천루 빌딩의 지하층에 우연히 들어간 바퀴벌레가 지하실 천정을 보면서 벌레의 능력으로 마천루의 구조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려는것 같다는 것이다.”
건방떨며 정신없이 살기보다는, 겸손히 한계를 받아들여 조용히 살아야 할 이유들이 내 생각에는 훨씬 더 많지 싶다. 종교니 과학이니 이념이니 투쟁이니 역사니 발전이니 하는, 우리 인간 삶의 실체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방금 위에서 말했던 그 바퀴벌레 운운하던 과학자, 내 생각에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직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바퀴벌레이면서도 또한 결코 바퀴벌레로 남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학자도 자신의 글을 아마 그런 말로 끝맺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무심코 베켜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대 그리고 나. 정신 차리고 살자.
하하하
[‘하늘색 꿈’ 로커스트 1980, 리더싱어 김태민]
베트남전쟁 – 인간과 폭력 1
베트남에서 수입되는(?) 수많은 신부들, 천문학적인 규모의 한국-베트남간의 경제협력 그리고 우리세대만 하여도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직접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한 상당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베트남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했던 형님뻘 되는 베트남 친구도 있었고 또 직장에서는 매주 탁구를 치는, 보트피플로 이곳에 정착한 베트남인 동료도 있다.
이 훌륭한 도큐멘터리를 보기전까지 나는 내 자신이 베트남전쟁에 대한 상당한 그리고 정확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을 하였었다. Ken Burns라는 그야말로 ‘위대한 감독’이 연출한 이 탁월한 베트남전쟁 도큐멘트리를 나는 2년전에 처음 보았었다. 10부작인데 약 15시간에 걸친 대작이다. 이번 여름 좀 한가한 시기에 10부작 전체를 다시 시청하였다. 2주에 결쳐서 보았는데 오늘 오전에야 끝이 났다.
언젠가 베트남을 한번 방문하고 또 기회가 된다면 무언가 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그런데 한국측에서 베트남정부에 어떤식으로건 사과의사를 (전쟁범죄와 관련하여) 표명 하려고 하면, 베트남정부는 ‘경제협력을 강화하면 좋겠다’면서 늘 직접적인 응대를 피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는 것을 듣고서 의아해 했었다. 지금도 베트남에 수없이 남아있는 ‘우리 부모형제를 학살한 한국군을 대대손손 결코 잊지 않겠다’는 원한 맺힌 비석들과는 대조적인 반응이 아닌가?
얼마전 한 베트남 민간인 희생자의 유족이 한국정부를 (국방부) 상대로, 자신의 부모도 희생된 구체적인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일이 있었다. 그 수많은 증거들과 확인된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그 유족에게 보였던 반응은, 일본 전범들과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의 영령을 분리해 달라는 소송에서 최근 일본정부가 보였던 반응과 매우 유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송결과를 발표한 일본인 판사는 딱 한마디 ‘기각한다’고 했다던가. 한국정부는 그 베트남 유족에게 ‘증거 불충분’ 이라고 말했다더만.
어쨋던 나중에 듣게 된 이야기인데, 승전국인 베트남은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하였기 때문에 패배한 나라, 특히 전쟁의 주체도 아니며 용병을 파견했었던 한국측으로 부터의 사과 따위는 좀 웃기는 이야기로 치부한다는 말을 들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승리한 이 전쟁에 관한한, 한국은 왈가왈부할 대상조차 못된다는 태도다. 듣고보면 일리가 있기도 하고 더 쪽팔리는 기분도 든다.
그 도큐멘터리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것을 보기 전에는 나는 나름대로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국민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존중 혹은 존경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었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 2 나라를 상대로 이십년 전쟁을 치루어, 프랑스군대도 또 미국군대도 힘으로 박살내고 자기들의 영토에서 쫓아낸 자존심의 나라요 국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두번째로 도큐멘터리를 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고 또 느끼게 된 것은, 미국과의 십년전쟁은 사실상 ‘미국이 개입했던 베트남 내전’이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사람들끼리 공산주의니 자유민주주의니 하면서 편을 갈라, 백만 이백만 서로를 죽이는 그 미친 내전에, 미국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참전했었고 그들 자신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으로 패전하고 쫒겨났던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도큐멘트리 마지막에, 물론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지났기에 할수 있는 말이겠지만, 그 당시 참전했었고 또 승리했던 북베트남 군인들과 베트콩들 중에서 이런말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였다. ‘지금 돌이켜 보건데, 그런 엄청난 희생을 치룰만큼 그 전쟁이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도 무척 공감이 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배우고 또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되어 되돌아 보는 지난 역사, 특히 이렇게 인간들의 의지가 충돌했던 큰 갈등과 폭력의 기록들은, 내게 와닿는 바가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단지 살생이나 폭력을 하지말라는 도덕책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다음편에…
카르마는 당사자가 죽어도 소멸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행했던 것들의 결과물인 카르마는 (업 혹은 업식은) 설령 그 당사자가 죽고난 후에도 쉽게 그리고 즉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 산 사람들이 휘둘리고 그들의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제 자신과 또한 주변에서 쉽게 그리고 자주 볼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성인만 되고 나면 혹은 결혼만 하고나면, 그 부모인 내가 여태껏 만들어 놓은 카르마에서 벗어나 그들이 자유롭게 살게 될것으로 생각하세요? 그 아이들 나이의 두배가 훨씬 넘도록 세상을 산 당신이 바로 어제, 지난달 혹은 작년에, 의식과 의도를 가지고 했던 (그리고 또한 하지 않았던) 바로 그 언행들이, 이미 돌아가신지가 오래되었거나 혹은 멀리 사시는 연로한 당신 부모님이 만들었던 어떤 카르마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오늘 당신 생각의 버릇, 반응의 방식 그리고 어떤 결정들 속에 그분들의 그림자와 영향이 들어있지 않습니까?
부모자식관계나 부부관계등 밀접한 인간관계는 카르마가 씨줄날줄로 복잡하게 얼키고 설켜 있습니다. 이것을 마치 날카로운 칼로 단칼에 잘라버린다고, 그 많던 카르마가 동시에 단번에 떨어져 나가고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있던 카르마 위에, 더 풀기 어렵고 복잡한 새로운 카르마를 덧붙이는것 뿐입니다. 결코 당신 곁에서 저절로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그 아이들에게서도, 설령 당신이 죽은후에라도, 저절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씨줄날줄을 한올두올 풀어내야 합니다, 그래도 꼭 해야만 한다면 말이예요. 그래야 당신도 상대방도 또한 당신들이 사랑하는 아이들도 자유롭고 장차 행복하게 살수 있을꺼예요. 아니 최소한 당신이 그들의 삶에, 아무도 원치않고 또 아무런 필요도 없는 부당한 카르마를 평생 짐지우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쉽고 빠른 길은 두고두고 부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당신 자신만 감당하게 된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지금 본인도 깨닫듯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의 부모님들께서 당신께 했던 것들 그리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기억해 보세요. 감사하고 좋았던 것들은 반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인간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좋지 않았던 것들은 당신 자녀들에게 어떤 형태로건 물려주지 않으려고, 당신이 죽는날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좋은 부모는 이렇게 힘들고 소리없는 과정을 거쳐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뛰어 올라간 산위에서 나는, 나의 부모들이 내게 남긴 카르마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은혜를 감사함과 동시에, 내가 내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어떤 카르마를 남기며 살다가 떠나게 될 것인지 생각하며 나 자신의 건투를 빌어 봅니다.
당신도 나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며 또한 동시에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지당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들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때와 장소 그리고 방법을 선택하시길 새해 인사를 갈음하여 기원드립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