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블링? 엉망진창?

어제 이야기 했던 티비드라마 ‘결혼계약’에서 주인공 혜수씨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직전에 묻는 말이 있어요. (나의 병으로) 앞으로 나는 ‘엉망진창’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묻습니다.

엉망의 ‘엉’은 큰 숫자를 의미하는 ‘억’이 변화된 것이에요. 그리고 ‘망’은 그물이라는 뜻인데요,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그물처럼’ 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물이 엄청나게 많이 얽히고 섥히면 그 겉으로 드러난 (표면의) 모습은 어떨까요? 몹시 우둘투둘하고 보기에 징그럽겠지요. 진창은 천연두나 종기의 자국 혹은 흉터를 의미합니다. 네 글자를 합친 의미는, 천연두나 종기의 흉터가 마치 수없이 많은 그물 모양처럼 피부를 징그럽게 뒤덮은 꼴 이런 정도입니다. 징그럽고 보기싫고 무섭고 괴롭고 가까이 하기싫고 아무도 원치않는 그런 꼴이 바로 ‘엉망진창’입니다.

오래 떠나 살면서 한국어가 변화하고 변천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의미도 알수 없는 단어들을 사람들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새롭게 듣게된 단어는 ‘블링블링’ 입니다. 물론 한국어는 아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인 듯 합니다. 알아보니 자마이카 출신의 어떤 래퍼가 (가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퍼져,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슬랭처럼 사용되는 듯 합니다. 한국어 ‘반짝반짝’과 대응하는 자마이카 말인듯 하네요.

그대에게 삶은 ‘블링블링’ 인가요 ‘엉망진창’ 인가요? 아니면 지금은 엉망진창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블링블링을 꿈꾸며 살고 있나요?

붓다께서는 삶은 ‘두카’라고 하셨어요. 짱께들이 ‘고’ 즉 괴로움이라 번역하였고, 코쟁이들도 ‘suffering’ 역시 ‘괴로움 혹은 고통’이라고 번역하였는데요, 사실은 둘 다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두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다시말해 ‘항상 불만족스럽고 늘 불완전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셨습니다. 목이 정말 마를때 시원한 물을 들이키면 행복해지나요? 갈증이라는 일종의 괴로움이 사라짐은 분명하고 잠시 어떤 기분 좋음이 (행복이라고 굳이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금새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다음번 목마름’ 뿐이 아니겠어요? 마시고 돌아서면 또 마셔야 하고, 잠시 기분이 좋더만 돌아서고 나면 잘 해야 본전 아니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바로 이러한 우리 인생의 ‘멈추지 않는 갈증과 그것이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윤회’를 표현하신 말이 ‘두카’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런 두카에서 해방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예를 들자면) 목이 마를때 마신 물이 주는 그 쾌감 혹은 일종의 행복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아니면 한번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는 목마름이 애초에 생기지 조차 않는 상태? 하지만 이런 상태들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함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혹은 제정신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겠어요? 목마름이라는 예를 떠나서 다른 어떤 것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도 ‘한번 얻어진 어떤 것이 (행복처럼 추상적인 대상이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건)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혹은 ‘한번만 얻고 나면 다시는 더 얻을 필요가 없이 만족한 상태가 지속 되는 상황’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도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도 하고 또 일종의 희망을 (?) 가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예요. 나는 좀 비범한 (?)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런 신데렐라 이야기의 뒷조사를 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가 알아본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속 결말은 ‘두카’입니다. 종종 상황이 정반대로 뒤집어져 처음의 행복을 나중에 모조리 토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길게보면 이 세상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란 없어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참 모습은 ‘블링블링’ 보다는 ‘엉망진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물론 괜찮은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도 모를 삶을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각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목마름은 (비유적으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며, 오로지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두카’가 동전의 뒷면처럼 우리의 삶에 찰싹 들어 붙어있다는 것뿐 아닌가 하는데서, ‘삶은 엉망진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이 ‘두카’이며 ‘엉망진창’에 가까울진데,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인간의 노력들도 (해탈의 과정도) 엉망진창의 과정일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랬다 저랬다, 됐다가 안됐다가, 저녁에 왔다가 아침이면 가버리는, 그야말로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불안정함, 불만족함, 불완전함. 이런 고약한 up & down의 반복이 해탈의 과정이 아니겠어요? 붓다께서는 80세가 넘어 돌아가셨어요. 현대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아마 120세쯤 장수하셨지 싶네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알려진 이분의 또 다른 위대함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다른 사람들 그리고 수행자들과 더불어 매일 매주 매달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똑같이 함께 (정해진) 수행에 정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만 먹고나면 영원히 배부른 밥이 없듯이, 한번만 성취하고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해탈 열반도 세상에 없다는 진실을, 몸소 웅변으로 똑똑히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분만은 예외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내게는 많은 것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어요.

잘 먹고 입고 편해서 얼굴에 기름이 졸졸 흐르는 모양새로 (그렇게 먹고 입고 자도록 땀흘려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 고마운 줄은 모르고)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입을 놀리는 성직자나 도사같은 가짜들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또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

어쩌다 한번씩 청소를 하면서, 예를들면 밀대로 부엌바닥을 닦으면서, 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청소란 사실은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희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줄이는 행위가 청소’ 입니다. 희석시켜 줄이는 것이지 결코 전부 없앨 수도 없고 또 설령 어떻게 한번 거의 없앤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 오지 않겠어요? 인생도,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탈이니 사랑도 결국은 이와 같지 않을까요? 더러움을, 어두움을, 어리석음을 좀 닦아내서 줄이고 또 뒤돌아서 다시 좀 닦아내고 줄이면서 세월이 흐르고 장차 종착역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 명백하고 확실한 그래서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도,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땀 흘리는 과정만 존재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실체이며 또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선 한동안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이것 가르쳐서 뭐하나? 누가 알아 듣겠나? 이런 마음이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붓다께서는 마음을 바꿔 잡수셨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우리도 두카니 해탈이니 배워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왜 마음을 바꾸셧을까요? 무었이 그분의 마음을 돌렸을까요? 내가 듣기로는, 그분이 보시기에 ‘인간들이 불쌍해서’ ‘사람들이 사는게 슬퍼서’ 그러셨다고 해요. 측은한 마음.

계절 탓인지, 돌아가신 사랑하던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아도, 내가 사는 꼴을 보아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아도 인생은 참 애잔하다는 마음입니다. 애처롭고 애틋한 마음. 일종의 슬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전철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회사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알게뭐야 불친절, 그리고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야비한 언행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그럼 그때 또 만나요 🙂

다마네기

사실은 ‘양파처럼 진실이 겹겹인 세상’이라는 글 제목 대신에 그냥 양파만 좀 ‘선정적인’ 언어로 써 보았어요.

이곳에서 꽤 오래 살면서, 나도 이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하거나 당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이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하고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들어, 슈퍼에 과자나 사탕을 사러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데요, 역사가 오십년 백년 이렇게 된 회사들이 그냥 할아버지대에서 잡숫던 과자와 사탕을 손주대에도 그대로 만들어서 같은 상품을 아직도 파는 것을 흔히 볼수 있어요. 파는 사탕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마 1/10 혹은 1/100도 안될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잠시 입에 달콤하자고 먹는 사탕이 뭐 그렇게 다를 수가 있고 또 지난 백년간 뭐 그렇게 달라졌거나 향상이 되었을까요. 얼핏보면 ‘좀 모자라나’ ‘바보들인가’ 싶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좋은 것 알고 고급 다 알아요 🙂

요샌 세상이 좋아서, 유튜브로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한국 티비 선전들을 최근에 보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과 이나라의 경제 수준이 거의 동등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이나라와 한국의 경제 수준은 현재 한국과 말레이지아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래된 한국의 티비 선전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이나라와 비교해도 너무 종류가 많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이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후지다’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때 그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이 전부냐? 뭐가 빠졌거나 혹시 속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단순함에 길이 들어서 (다른 세상에서의) 복잡한 절차나 과정이 더더욱 복잡해 보이는 쪽으로 나도 변했어요. 돈을 주면 물건을 주고, 댓가를 지불하면 약속한 것을 이행함에 별로 복잡함도 없고 또 사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으며 아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살까요? 아니지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많이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마음과 에너지를 쏟을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국에는 ‘사기’ ‘횡령’ ‘가짜 고소 고발 (그리고 가짜 역고소)’ 같은 ‘거짓’을 동기로 하는 범죄 발생율이 인구비례로 따지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수십배 수백배에 달한다는 많은 증거들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있는데요, 이런말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겠지만, 구한말 어떤 선교사가 남긴 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상속에서 밥먹는듯이 하는데, 자신의 거짓말을 (사기나 속임수) 어떤 특별한 능력처럼 자부심을 가진듯이 말하더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충격적이지요 쏘리 🙂

자살한 전 서울 시장에 대한 진실이, 마치 다마네기처럼 까면 깔수록 다른 색깔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남을 보면서, 섣불리 함부로 단정짓고 입을 놀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잡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며, 세상을 이렇게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며 제 이익 챙기는 뇬넘들은 (그 바쁜 와중에) 제 정신이 잠시 들때 거울에 비친 제 상판때기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미운 마음과, 또 그들처럼 날래고 잘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뇬넘들이 만든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난번 ‘엄마’글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사는 복잡하며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존재들이라고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까지고 또 까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가짜 진실들’에도 (?) ‘진짜 진실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 농도와 빈도를 가지고서 장난을 치면서 세상을 속이고 또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혼란과 혼돈속에서 똑똑한 뇬넘들은 제 몫보다 훨씬 많이 챙기며 웃고 사는 세상이 혹시 내가 떠나온 나라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아닌가 싶어요. 나와 그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헷갈리고 망설일때 멀찌감치 챙겨 달아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소달구지를 몰던 할아버지 세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대로 발전했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옛노래처럼 보리밥 김치를 쌀밥과 삼겹살로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곳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감자처럼 한겹만 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 사는 단순한 넘이, 다마네기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는 한탄이에요.

아까 위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운 인간의 진면목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데 ‘피부 관리’ 같은 생각이외에는 ‘어떤 철학적이거나 삶에 본질에 관련된 사색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작년에 ‘설탕의 역사와 그것에 관련된 비극적인 인간의 이야기’에 관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간략히 말해 설탕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요 식민지의 역사며 노예의 역사입니다. 주제를 벗어난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한가지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프리카 몇곳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자마이카나 그런 멀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만들었던 전초기치 / 항구시설’ 들이 있어요. 그중에 규모가 컷던 항구에는 한꺼번에 수백 혹은 수천명의 잡아온 원주민들을 (실어나를 배가 들어올 때까지 감금해 두었던) 지하 토굴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지금 기르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지옥에서 그들을 임시로 보관 (?) 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요 이 이야기의 압권은 그 토굴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백인 선원들, 가족들 그리고 노예관련 무역을 하던 백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던 곳이지요. 지금도 있는데요 멀쩡히 지어진 좋은 교회입니다. 그 백인들이 자신들의 무사 항해를 (노예장사) 그들의 신에게 빌며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새로 장만할 가족들의 ‘사랑의 보금자리’ 새 집에 대한 상상등을 그곳에서 할때,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강제로 잡아온) 수백 수천명의 원주민들이 바로 교회 아래 토굴에서 짐승보다도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대소변과 뒤섞여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뭐가 빠졌을까요? 그 백인들의 머리에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100%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사기꾼은 자신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속이는 뇬넘들이며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인간 말종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 보아도 (걱정스러운 기미나 주름 이상의) 어떤 가책이나 마음의 동요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불과 200년 전에 거룩하신 백인들께서 얼마나 머리를 써서 흑인 노예들을 배로 잘 운반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한 1/3이 죽어도 크게 남는 장사였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습하고 더운 배 밑창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로잡힌 흑인 원주민들은 한달 두달을 꼼짝 달싹 못하게 묶인채 누워서 대소변을 아래로 줄줄 싸면서 그리고 죽어가면서 운반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또 있는데요, 현재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들이 바로 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라고 해요. 과도한 설탕 소비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노예로 붙들려 가서 재배한 사탕수수가 되돌아와 손주를 죽이는 그야말로 ‘설탕의 저주’입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무지한채 오래 살아왔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백인들이 건설한 선진국 그리고 그들이 이룬 멋있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인정하고 또 동경하며 살았었어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능력이 생겼기를 바래요. (개인의) 아름다움에 섞여 있고 공존하는 추함과, (집단의) 축척된 부와 세련된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된 이면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대들이 사는 그 세상, 오늘 내가 좀 화가 나서 퍼부었던 고국에 대한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싶네요. 애증의 마음…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

가야금과 고토 – Win Win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

코라

코라(Kora)는 아프리카 전통 현악기예요. 감비아(Gambia)라는 아프리카대륙 북서쪽에 위치한 작은 나라의 전통악기로 알려져 있어요.

한 십여년 전인데요, 그때 코라와 연주자를 주제로 만든 도큐멘터리를 보기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닥불 주변에서 북이나 치면서 엉덩이나 흔드는 줄 상상했었어요.

그 도큐멘터리에 나왔던 연주자가 Toumani Diabaté라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었는데요, 무려 70대째 그 집안에서 코라만을 연주하면서 사는, 선택된 사람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오십대 중반이 되서 좀 늙어 보이지만, 그때 도큐멘터리에 나왔을때는 얼마나 젊고 총명하게 생겼던지, 그리고 무었보다 그의 코라 연주를 듣고서는 정말 놀라고 또 충격을 받았었어요. 아! 사람은 다 똑 같구나, 지금 좀 가난하게 산다고 무슨 원시인 수준으로 착각했던 내가 무지하고 무식했구나 깨닫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 코라연주들을 녹음해서 가끔 듣게 되었는데요, 심금을 울리는 그런 소리가 아닌가 싶네요. 멋진 코라연주 한번 들어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