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는, 전봇대에 ‘아무개야 원하던 청바지 사놨다 집으로 돌아와라’ (그넘 자식이 청바지 안사준다고 가출했다는 말) 이런 손글씨 벽보가 가끔씩 붙고는 했었다. 나도 고교시절 ‘작심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릇도 안되고 용기도 없어서 비록 하루만에 집으로 되돌아 왔긴 했었지만. 웃기는 것이, 가출 직후 밥벌이 하려고 찾아간 중국집에서 (배달부 구한다고 붙어 있었음) 마침 그 집 아들이 가출중이라, 주인장께서 나를 주방 뒷방에 데려다 앉혀 놓으시고는, 아무 일도 안시킴은 물론이려니와 점심까지 거나하게 짜장면 곱배기로 먹여주신 다음 (주방구경 시켜주고 설명을 해주셨던지 지금도 큰 테이블 아래에 있던 양은용기에 가득한 짜장소스가 기억남), 해질무렵에 나를 타일러 ‘집으로 되돌아가서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빌어라’고 하시는 바람에, 시킨대로 했었다는 것 아니냐 🙂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부모님께 전화도 대신 해주셨지 싶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그 분은 어쩌면 고인이 되셨겠지만 감사드리고 (나와 우연히 동반 가출했었던 그 분의 아들도 나중에는 효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좋은 아빠를 두었으니), 속썩여 드렸던 부모님께는 죄송 헤헤헤.
그 시절에는, 아들딸들이 십대후반 혹은 이십대가 되고 나면 (지금보다 먹는 것도 훨씬 시원찮았는데도) 넘치는 호르몬으로 말미암아, 머리가 좀 획가닥 돌아서 이성을 찾아 밤늦게까지 몰래 돌아다니다가, 아빠에게 붙잡혀 집으로 끌려와 머리를 바리깡으로 빡빡 밀리고 (딸이 아빠에게 이런 꼴 당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음. 갑자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조용히 나타남) 혹은 임신을 시키고 와서 얻어 터지고, 부모가 죽니사니 생쑈를 하는 것이, ‘아무개야 청바지 사놨다 집으로 돌아와라’ 하고 비슷한 자연스러운 일들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살았던 곳이 너무 후졌나 🙂
요샌 지나치게 세련(?) 되져서 그런지 아니면 중성화가 심해져서 그런지, 아무도 이런 짓을 하거나 또 이런 것들을 보지는 못하지 싶다. 대신 요새는 나이가 들어도 집에서 부모와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주욱 같이 ‘생활 (‘주옥 같은’ 생활과 혼돈 주의) 하는 것이 더 흔해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십대 이십대 시절, 바리깡으로 머리도 밀리고, 가출도 하고, 죽니사니 부모님 속썩이던 그 자식들이 지금은 더 잘 사는 경우도 많지 싶은데, 아닌가? 학교에서는 정석이 있었고 모범이 있었지만, 인생에 어디 정석과 모범이 있는가? 그걸 누가 어떻게 알고 또 무었으로 평가해? 차 배기량? 아파트 평수?
문제가 안생기는 삶이, 문제를 해결하는 삶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사랑의 반대는 다툼이 아니지 않나? 다툼이 없는 자리를 사랑과 평화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포기와 무관심이 차지 하고 있는 경우도 있던데? 사랑과 평화는 (한 배를 탄 부부가)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노력으로 벌어야 (earn) 하는 것’이지 돈으로 사거나 머리로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거든.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 더 있는데? 엄마가 아기를 업고서, 힘든 장사 같은 일을 하면서 어렵게 키우면, 그 젖먹이도 엄마가 힘들고 고생하는 것을 알고 또 장차 기억 한다더만.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어도, 사랑과 애정이 있던 가정에서 자라난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데로, 장차 사랑과 애정이 있는 가정을 이룬다. 큰 선물, 훌륭한 유산 아닌가? 뭐? 다 필요없고 돈을 달라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