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최근 한국을 방문했을때 뜬금없이 밀양을 찾았다. 영화 ‘밀양’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중 하나인, 밀양역전에서 교회사람들과 어색하게 어울려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 남자주인공 생각이 나서였다. 가는 길에, 밀양역전에 가면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그 찬송가를 부르겠노라 공언하였지만, 정작 찬송가를 기억해 내지 못하여 노래는 못불렀다. 하지만 밀양역과 그 주변을 한동안 함께 걸으며, 이 뛰어난 영화가 내게 던졌던 매시지가 지난 십수년 동안 내 삶에서 과연 어떤 식으로 반영이 되고 또 의미가 되어왔던지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훌륭한 영화를 만든 감독과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 덕분에 ‘밀양’이 나와 인연이 되어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찾게되니, 이것도 일종의 코미디랄까 웃기는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다. 다음번 방문때는 그 중국집 ‘다래현’을 찾아볼 생각이다 🙂

이창동 감독의 수작들인 ‘박하사탕’이나 ‘오아시스’등은, 1994년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수작 ‘포레스트 검프’처럼, 어른이 되고나서 누구나 그리워는 하지만 이제는 없는 동심, innocence, 좋았던 그때를 주제로 하고 있다. 옛 친구들을 만나며 새삼 깨닫게 되었지만, 나도 그들도 모두 많이 변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때마다, 막연히 그 좋았던 시절을 그리는 마음과 더불어 이제는 없는 동심, innocence를 아쉬워 하는 마음도 든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은 내게 그런 그리움과 아쉬움도 떠올리게 하지만 더불어 인간의 구원 이라는 주제를 함께 다룬 영화다. 인간의 구원. 절망에 처한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무었을 통하여 어떻게 몸부림치며 그 절망을 벗어나는가를 (어떻게 dealing하는가를) 잘 그리고 있다.

좋은 영화를 발견하면, 오랜 세월 두고두고 (몇년마다) 다시 보는데 그때마다 나의 해석과 반응 그리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며 새삼 놀라게 된다. 이 영화를 여태까지 봤을 때는, 인간의 본질적인 고통(슬픔) 앞에 종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근본적인) 구원을 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어젯밤에는 이런 내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30년 서로를 잘 알게 되었고 또 드물게 내가 존경하게 된 성직자 친구분께서는, 모친 생전에 ‘그리스도교 밖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어머니께 말씀해 주셨는데, 매우 건방지고 웃기는 이야기지만, 어제 나는 그리스도교를 통해서도 (그리고 다른 세간의 종교를 통해서도) 인간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 또 표나게 믿는다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거룩한 사람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은 그야말로 (선악의) 짬뽕이며 약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잠시 반짝? 가능하다. 주변에 있다. 늘 번쩍?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 없다. 잠시 반짝 했던 것으로 마치 늘 번쩍인 것처럼 ‘척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들 인생 아닌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오만가지 더럽고 추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종교에서 구원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제 밤 혼자 영화에 몰입하여, 주인공 여자가  절망속에서 하나님을 찾아 울부짖으며 찬송가를 부를때 같이 손뼉을 치며 그 교회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나도 놀랐다. 미쳤나봐 🙂

이은상 시인이 오래 전에 남긴 ‘가고파’라는 시, 내가 좋아하는 시를 덧붙인다.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4절을 가장 먼저 지으셨다는 설도 있다.

 

가고파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이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제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웃고 지내고저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어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보고 저기 가 알아보나
내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처자들 어미되고 동자들 아비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일하여 시름없고 단잠들어 죄 없는 몸이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젓는 배에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니아 깨끗이도 깨끗이

그래도

처음엔 그저 마음이 그리로 흘러 갔었다
마음을 쏟아 우정을 사랑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을 쫒았다

다음엔 그저 마음이 그렇게 멀어 졌었다
마음을 쏟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없었다

나중엔 다시 마음이 어쩌면 돌아 오리라
마음을 비워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어쩌면

지금은 그저 조용히 내버려 두자 바란다
나중에 찾을 우정도 사랑도 그리고 변치않을 그 무었들도 그대로

그대로 남겨 두고파 혹시나 알아 언젠가
사람의 마음 어디로 어떻게 그리고 무었으로 홱 변할런지 뉘아나

하지만 지금 멀어진 내맘을 난들 어쩌리
세상이 모두 그런줄 이꼴이 우리들 수준인줄 왜 모를까만 그래도

석별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신의 손길 따뜻이
그대위에 머물리
아름다운님 그대 위에
신의 손길 머물리
내 노래 나래달고 그대 곁 날으리라
내 마음 등불 밝혀 그대 앞길 비추오리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발자욱 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잘 가오 그대 행복하시오
축복의 노래로 그대 보내오리다
우리님 가시는 길
꽃비단비 내리소서
아름다운님 발자욱마다
행복 넘쳐흐르소서
웃으며 함께 머문 기쁨의 이시간이
영원히 영원히 잊혀지지 않으오리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설운님 가시오니 내 마음은 울고파라.

(작사 유승자수녀 작곡 이종철신부)

라텍스 장갑 같은…

세월이 흐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더 다양한 상황에서 직간접적으로 만나고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내 자신을 멀찌감치에서 떨어져 바라보는 기회도 더 많아진다.

인간들이 스스로 여기기에, 배웠다고 있다고 그리고 안다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힘도 주고 거드럼도 피우며 사는 것이 보통이겠지만, 나도 점점 닳아 빠지면서 덜 속게 되니 보이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그 배움이, 있음이 그리고 안다는 것이 마치 라텍스 장갑처럼, 끼고 있을때는 안팍 구분이 되긴 하지만, 그 장갑 자체는 너무나 얇고 연약하여 하찮은 변화나 충격에도 쉽께 찢어져 속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안팎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남녀가 만나서 자식 낳고 몇십년을 살다가도, 마치 영원할 듯한 그 사랑이 얇은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져 남남이 되는 경우도 흔해 빠졌고, 아무리 부유하고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욕망에 사로잡히고 오감에 휘둘리는 인간의 본질 앞에서 단 한치도 더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마치 찢어져 속이 훤히 보이는 라텍스 장갑처럼 보게 된다.

그리고 가장 안스럽고 또 내심 걱정되기도 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는다고 이런 상황이 나아지거나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마치, 젊은뇬은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보기 좋은데 늙은넘은 아무리 발광을 해도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이를 먹으며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진다. 인간들이, 지성이니 사랑이니 철학이니 문화니 종교니 ‘이름붙여 드러내 감동받고 지랄떠는 것들’ 중에서 라텍스 장갑처럼 찢어지지 않고 허무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가지 위안이라면 모든 인간들이 점점 ‘level playing field’에 다가 가다가 (강제 평준화 이후에) 종을 치게 된다는 것이랄까.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어 가는 이야기를 하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도 있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며 살면 현실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를 이야기 하는 ‘The Age of Adaline’ 라는 영화도 있다. 두 영화의 결론은 ‘둘 다 아니다’ 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이 나이가 되어 비로소 깨닫게 되는 ‘라텍스 장갑같은 인간’ 이라는 것을 내가 수십년 전에 깨달았었다면 좋았을까? 혹은 죽는날까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 좋을까? 지금 생각에는 ‘역시 둘 다 아니다’ 🙂

다마네기

사실은 ‘양파처럼 진실이 겹겹인 세상’이라는 글 제목 대신에 그냥 양파만 좀 ‘선정적인’ 언어로 써 보았어요.

이곳에서 꽤 오래 살면서, 나도 이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하거나 당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이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하고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들어, 슈퍼에 과자나 사탕을 사러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데요, 역사가 오십년 백년 이렇게 된 회사들이 그냥 할아버지대에서 잡숫던 과자와 사탕을 손주대에도 그대로 만들어서 같은 상품을 아직도 파는 것을 흔히 볼수 있어요. 파는 사탕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마 1/10 혹은 1/100도 안될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잠시 입에 달콤하자고 먹는 사탕이 뭐 그렇게 다를 수가 있고 또 지난 백년간 뭐 그렇게 달라졌거나 향상이 되었을까요. 얼핏보면 ‘좀 모자라나’ ‘바보들인가’ 싶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좋은 것 알고 고급 다 알아요 🙂

요샌 세상이 좋아서, 유튜브로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한국 티비 선전들을 최근에 보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과 이나라의 경제 수준이 거의 동등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이나라와 한국의 경제 수준은 현재 한국과 말레이지아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래된 한국의 티비 선전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이나라와 비교해도 너무 종류가 많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이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후지다’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때 그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이 전부냐? 뭐가 빠졌거나 혹시 속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단순함에 길이 들어서 (다른 세상에서의) 복잡한 절차나 과정이 더더욱 복잡해 보이는 쪽으로 나도 변했어요. 돈을 주면 물건을 주고, 댓가를 지불하면 약속한 것을 이행함에 별로 복잡함도 없고 또 사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으며 아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살까요? 아니지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많이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마음과 에너지를 쏟을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국에는 ‘사기’ ‘횡령’ ‘가짜 고소 고발 (그리고 가짜 역고소)’ 같은 ‘거짓’을 동기로 하는 범죄 발생율이 인구비례로 따지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수십배 수백배에 달한다는 많은 증거들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있는데요, 이런말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겠지만, 구한말 어떤 선교사가 남긴 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상속에서 밥먹는듯이 하는데, 자신의 거짓말을 (사기나 속임수) 어떤 특별한 능력처럼 자부심을 가진듯이 말하더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충격적이지요 쏘리 🙂

자살한 전 서울 시장에 대한 진실이, 마치 다마네기처럼 까면 깔수록 다른 색깔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남을 보면서, 섣불리 함부로 단정짓고 입을 놀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잡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며, 세상을 이렇게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며 제 이익 챙기는 뇬넘들은 (그 바쁜 와중에) 제 정신이 잠시 들때 거울에 비친 제 상판때기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미운 마음과, 또 그들처럼 날래고 잘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뇬넘들이 만든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난번 ‘엄마’글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사는 복잡하며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존재들이라고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까지고 또 까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가짜 진실들’에도 (?) ‘진짜 진실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 농도와 빈도를 가지고서 장난을 치면서 세상을 속이고 또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혼란과 혼돈속에서 똑똑한 뇬넘들은 제 몫보다 훨씬 많이 챙기며 웃고 사는 세상이 혹시 내가 떠나온 나라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아닌가 싶어요. 나와 그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헷갈리고 망설일때 멀찌감치 챙겨 달아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소달구지를 몰던 할아버지 세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대로 발전했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옛노래처럼 보리밥 김치를 쌀밥과 삼겹살로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곳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감자처럼 한겹만 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 사는 단순한 넘이, 다마네기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는 한탄이에요.

아까 위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운 인간의 진면목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데 ‘피부 관리’ 같은 생각이외에는 ‘어떤 철학적이거나 삶에 본질에 관련된 사색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작년에 ‘설탕의 역사와 그것에 관련된 비극적인 인간의 이야기’에 관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간략히 말해 설탕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요 식민지의 역사며 노예의 역사입니다. 주제를 벗어난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한가지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프리카 몇곳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자마이카나 그런 멀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만들었던 전초기치 / 항구시설’ 들이 있어요. 그중에 규모가 컷던 항구에는 한꺼번에 수백 혹은 수천명의 잡아온 원주민들을 (실어나를 배가 들어올 때까지 감금해 두었던) 지하 토굴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지금 기르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지옥에서 그들을 임시로 보관 (?) 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요 이 이야기의 압권은 그 토굴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백인 선원들, 가족들 그리고 노예관련 무역을 하던 백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던 곳이지요. 지금도 있는데요 멀쩡히 지어진 좋은 교회입니다. 그 백인들이 자신들의 무사 항해를 (노예장사) 그들의 신에게 빌며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새로 장만할 가족들의 ‘사랑의 보금자리’ 새 집에 대한 상상등을 그곳에서 할때,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강제로 잡아온) 수백 수천명의 원주민들이 바로 교회 아래 토굴에서 짐승보다도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대소변과 뒤섞여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뭐가 빠졌을까요? 그 백인들의 머리에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100%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사기꾼은 자신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속이는 뇬넘들이며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인간 말종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 보아도 (걱정스러운 기미나 주름 이상의) 어떤 가책이나 마음의 동요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불과 200년 전에 거룩하신 백인들께서 얼마나 머리를 써서 흑인 노예들을 배로 잘 운반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한 1/3이 죽어도 크게 남는 장사였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습하고 더운 배 밑창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로잡힌 흑인 원주민들은 한달 두달을 꼼짝 달싹 못하게 묶인채 누워서 대소변을 아래로 줄줄 싸면서 그리고 죽어가면서 운반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또 있는데요, 현재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들이 바로 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라고 해요. 과도한 설탕 소비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노예로 붙들려 가서 재배한 사탕수수가 되돌아와 손주를 죽이는 그야말로 ‘설탕의 저주’입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무지한채 오래 살아왔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백인들이 건설한 선진국 그리고 그들이 이룬 멋있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인정하고 또 동경하며 살았었어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능력이 생겼기를 바래요. (개인의) 아름다움에 섞여 있고 공존하는 추함과, (집단의) 축척된 부와 세련된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된 이면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대들이 사는 그 세상, 오늘 내가 좀 화가 나서 퍼부었던 고국에 대한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싶네요. 애증의 마음…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