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라는 스페이스

우리가 스페이스를 (space) 이야기 할때, 대부분은 공간을 의미하지요. 오늘 아침에는 문득,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볼때는, 어쩌면 시간도, 한 사람이 잠시 차지했다가 지나가는 스페이스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일생을 통해서 차지하는 스페이스는 참 다양하기도 하고 또 그 다양한 스페이스들이 우리 각자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새삼스레 오늘 느끼게 되네요.

아침에는 오랜만에 보다닉 가든을 (큰 시영 식물원) 통해서 출근을 했는데요, 이 익숙한 스페이스도 이런저런 변화가 있네요. 추운 겨울에 그곳을 방문하면 자주 들렸던 온실도 새로 크게 짓는 것 같고, 식물원의 자랑꺼리인 장미의 정원도 겨울 가지치기를 해서 좀 황량한 모습으로 돌아 올 새봄을 기다리고 있네요. 큰 식물원이지만, 몇몇 아름다운 장소들은 아마 수백번은 방문을 했지 싶네요. 직장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누리는 호사입니다. 그 아름다운 스페이스를 (장소를) 나의 스페이스로 (시간) 만들며 그 속에서 참 좋았던 기억이 내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고 있어요.

점심 시간에는, 직장에서 좀 떨어진 400미터 정도되는 산을 뛰어 갔다가 왔는데요, 이 왕복 9킬로미터 정도 되는 산길도 거의 천번 가까이 뛰었던 곳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그 스페이스를 (산길과 산정상) 내 영혼이 가장 맑은 순간에 (땀흘리며 산길을 뛰어 오르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한 시간에) 내 스페이스 삼아 잠시 그의 일부가 되었다가 세상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경험을 나는 언제나 사랑합니다. 운이 좋으면 수백번은 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신은 어떤 스페이스에 자주 존재하나요? 어떤 스페이스를 사랑하며 어떤 스페이스를 가슴에 간직하며 살고 있나요?

탁구 골프 레슨을 동시에 시작하다

나이가 들면 골프나 탁구가 오래 즐기기 좋다고 해서 최근에 레슨을 시작했다. 무었이든 독학 / 독고다이 스타일로 해온 내게는 (직업은 물론이려니와 하다못해 집 외벽 페이트 칠까지도) 뒤늦게 해보는 이 레슨이라는 것이 좀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충격을 좀 완화하면서 오래 좀 배워볼 요량으로 보다 적합한(?) 코치들을 선별 하였다 🙂

일단 탁구는 동네에 하나 있는 동호회에 먼저 나가 보았는데, 수십년 구력의(?) 내가 이렇게 많은 노땅 사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탁구를 치는 것을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그것도 복식만 치는거라. 매주 한번씩 밤에 만나서 치는데, 시에서 관리하는 좋은 건물에 위치한 탁구 시설은 아주 좋았고 또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서너번 가보고선 그만 두고 말았다. 해본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 복식을 계속 치면서 완전 바보가 된 기분에, 미친듯이 좌우로 뛰다가 발톱이 하나 빠지고 또 마지막 방문때 억지로 단식을 해볼 기회를 만들어서 붙은 어떤 중국인에게 10 게임 연패를 당하면서 그만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웃기는 것이, 이 중국인이 그 중에서 잘치는 축에 속하는데, 내가 단식에서 붙으면, 이사람은 물론 동호회 멥머 그 누구에게도 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10게임 연패. 아! 현실을 강제로 자각 당하는 그 시간에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탁구도 망하고 있는데,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구나)

우연히 내가 일하는 대학 신입생 중에서, 탁구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 대학 탁구 동호회를 최근에 창립하여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일대일 레슨을 제안하였다. 지금까지 매주 만나서 한시간씩 레슨을 대여섯번 했는데, 서로가 쿵짝이 잘맞아서 게임도 하고 야비하게 치면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어린 코치가 가르쳐 주는 것을, 집에 있는 탁구대와 탁구로봇으로 연습하는데, 크게 발전은 없어도 조금씩이나마 정석에 가까운 탁구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내 목표는 ‘탁구의 현대화’로 정했다. 많은 일본펜홀더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저 3구에 스매시로 끝내려는 구식 탁구라, 렐리 위주인 현대 탁구와는 거리가 멀며, 또 동호회 가더라도 좀 어울려 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대학 신입생 어린 코치는 나름대로 초등생 코치 경험이 풍부하여, 나에게도 유사한 방법으로 지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이건 뭐지?’ 자괴감도 들었으나, 이 아이가 성격도 좋고 매너도 좋아서 차차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름대로 (내게도) 유용한 코칭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수가 배우는데 딱히 별 다른 방법이 있는게 아니구나 .

게임을 하면서 이 아이 코치가 시범삼아서 어쩌다가 제대로 내게 공격을 가할때가 있는데, 내가 좀 공포에 질려서(?) 그런 느낌이 더 드는지는 몰라도, 운이 좋게 내 라켓에 닿으면 (대부분 라켓이 닿지도 못한다) 그 가볍고 작은 플라스틱 공이 내 라켓을 ‘우드득’ 흔들며 갑자기 무게가 몇배가 된 무언가가 맞고 지나가는 듯 변하는 마술을 경험하기도 한다. 모르긴 몰라도, 큰 힘과 회전이 탁구공에 걸리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게임중에 기회가 오면 사정없이 보복성 스매시를 선사한다. 그런데 스매시를 시원하게 퍼붓고 나서 내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이, 이 아이 코치가 작심하고 나와 게임을 붙으면 내 스매시가 안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스매시를 전부 받아낼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스매시할 기회를 애초에 없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기술처럼, 이것이 탁구의 고급 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국으로 치면 아마 오픈 1부 정도의 수준이 아닌가 짐작한다.

골프장에 왔다리갔다리 한지도 십여년이 되었지만, 중간에 몇년씩 때려치우고 잊을만하면 다시 가보고 하는 바람에 언제나 보기플레이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것에 만족해서 치는 사람들도 많아 보이는데, 내 문제는 도대체 만족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즉 주제 파악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독학 / 독고다이로 안되는 것들도 많은데, 내 경험에 따르면, 골프도 그중 대표적인 하나라는 것이다. 내게는 답이 없구나.

옛날에 골프장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며 보게된 어떤 여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사탕도 주고하면서 귀여워 해주었다. 학교때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생때 이 나라 여성 골프 챔피언을 2회 차지하면서, 골프에 인생을 걸어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미국의 한 명문 대학에 체육(골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대학교가 미국 전체 대학 대항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는데 주장 노릇을 하면서 US Open 에도 한번 참가 했다고 하였다. 졸업후 프로골퍼로 전향하여 미국 LPGA 2부 리그를 몇년 뛰었다. 하지만 200-300명 중에서 10% 정도만 정규 LPGA 시드를 받는 그 경쟁에서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아마도 2부 투어를, 부모의 도움없이 수년간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 (큰 돈을 들여서 레슨을 계속해야 하는 듯)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우연히 귀국한 사실을 알게 되어 연락을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기꺼이 내 골프를 책임져 주겠다고(?) 말하였다. 정확한 표현은 ‘I would be happy to be part of your golf journey’ 🙂 미국 명문대학에서 정상적인 경제학사 학위를 받았으므로 이곳에서 취직을 하여 사무실을 오가는 새로운 삶을 산지가 한해 정도 되었다고 하면서, 그 동안 골프와는 좀 멀어졌지만 ‘그 아름다운 스포츠에 나쁜 감정은 없다’고 하였다. (비록 엉터리 골퍼에 엘보우나 걸리는 한심한 수준이지만) 나도 너처럼 ‘이 아름다운 스포츠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어릴때의 좋은 기억이 힘이 좀 된 듯, 일대일 실전레슨을 (on course playing lesson) 합의하여 얼마전 첫 레슨을 하였다. 그 어린 소녀가 십여년 세월을 거치며 얼마나 성숙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변했는지 좀 많이 놀랐다. 역시 큰 골프의 세계에서 각종 전투를 경험하며 성장한 백전노장(?) 인지라, 그녀의 태도와 골프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골프를 보는 시각이, 내가 여태껏 경험한 아마추어 최고수들과도 (공식 핸디캡 1-5 사이, 클럽 챔피언 출신들)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비록 한심한 골퍼지만, 그래도 클럽 챔피언 수준의 아마 최고수들과 수백 라운드를 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내 골프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었음이 명백하지만 🙂 프로골퍼들이 핸디캡이 있나? 없다. 굳이 알아보고 싶다면? 내 코치가 된 이 친구가 프로가 되기 전에 -4였다. 즉 4 언더파가 옛날 아마추어 시절의 핸디캡이었다.

내가 탁구와 골프 레슨을 동시에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앞으로 내 블로그에 올려볼까 생각중이다. 기대하시라.

마라톤 그리고 에드휘트록과 칼릴지브란

달리기를 주제로 한 건강 도큐멘터리를 근래에 본 적이 있다. 나도 오래 장거리달리기를 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보았다. 그간 강산이 몇번이나 바뀌었으니, 한국에서는 이런 스포츠, 저런 운동이 유행따라 많이도 바뀌었을 것이다. 코비드 전후로는 골프가 대유행이라더니 이젠 달리기로 유행이 바뀐 듯 하다. 그것도 러닝크루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서. 한국에는 달리기 잘하는 사람, 많이 하는 사람, 마라톤 매달을 한자루 모은 사람등등 온갖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도큐멘터리에서, 한 중년 여자가 장거리달리기를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면서, 현재 준비중인 어떤 마라톤 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마라톤에 참여한 베테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지금은 무슨 클럽에 소속되어 무슨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는데, 무릎에 탈이 나서 매일 병원을 다니면서도 훈련을 계속한지가 몇달째라고 자랑스레(?) 말하였다. 순간 내 머리속에는 ‘이 여자 좀 미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곳에서는, 이 여자가 설령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로 올림픽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정도의 (치료를 요하는) 부상이면 올림픽이고 뭐고 일단 훈련을 중지하고 재활치료를 할 것이다. 설령 나라를 빛낸들 자기 몸이 망가지면 무슨 소용이냐 그런 생각이고 또 당연히 그렇게 받아들인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물결에 휩쓸려서 (유행을 따라, 남들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앞서 말한 장거리달리기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이런 의식과 풍조가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물결 자체를 ‘먼저 스스로’ 판단하기 보다는, 다만 그 물결속에서 주변보다 앞서가기만 하면 ‘으쓱으쓱 만사오케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과 풍조가, 당연히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의심할 바 없는 것인양 받아들이는것 같다.

에드 휘트록이라는, 장거리달리기를 극히 잘하는 캐나다인 늙은이가 있다. 이사람은 연령별 마라톤 세계기록을 여러개 가지고 있다. 70-74세 그룹에서 세계 최초로 2시간대 마라톤 기록을 세웠다 2:54:48. 이 기록은, 최근에 달리기 많이하고 잘하는 한국사람이 갱신하였다 (역시 대단). 75-79세 그룹 세계기록 3:04:54, 80-84세 그룹 세계기록 3:15:54 그리고 근래에 85-89세 그룹 세계기록을 3:56:38 달성하였다. 그가 팔순에 세운 이 기록은, 내가 30-40대에 마라톤을 힘들게 완주했던 수준이니, 에드 휘트록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양반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그는 그저 혼자서 (무슨 요란한 러닝크루니 전문 트레이너 없이) 집에서 가까운 동네 묘지를 하루에 수백바퀴씩 돌면서 훈련을(?) 했었기 때문이고, 십년 넘은 고물 운동화를 신고도 그런 세계기록들은 냈기 때문이고, ‘러너스하이 (runner’s high)’니 뭐니 장거리달리기 자체가 무슨 대단한 쾌감이나 주는 것처럼 일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나는 한번도 그런 것 느낀 적이 없다’고 솔찍히 말했기 때문이고, 달리는 기분이 어떠냐 질문에 ‘그저 좀 힘이 들고, 크게 즐거움은 없다’고 더욱 솔찍히 말했기 때문이며,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하고 싶은 말도 이사람이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프면 무조건 쉬고 다 나아질 때까지 전혀 달리기를 하지 않는다’ 🙂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그런데 (선무당에게) 잡힌 사람들은 수두록 해도 정작 (사람들을) 잡은 선무당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세상이다. 왜냐하면 선무당이 되는 선결필수 요건이 자신이 선무당인줄 꿈에도 몰라야 하기 때문이다. 선무당 시절에도 모르고 또 나중에 꿈에서 깨고 나서도 잘 모른다. 그리고 선무당은 남들만 잡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 자신을 먼저 잡는다. 대략 5년 혹은 10년 미만 구간에서 선무당들이 가장 많아 보인다. 나도 뒤돌아 보면, 내가 선무당질 했었던 기억에 모골이 송연하며 심히 쪽팔린다.

에드 휘트록이 그렇게 많은 연령대별 마라톤 세계기록들을 수립할 수 있었던 당연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몇십년을 (40-50년) 꾸준히 장거리달리기를 해왔기 때문이다. 당신이 세계기록은 커녕 동네기록 조차도 수립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만약에 장거리달리기를 최소한 20년, 나아가 30년 이상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당신을 에드 휘트록의 반열에 끼워 주겠다.

장거리달리기건 무슨 스포츠건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내가 ‘실질적인 의미에서 최고최대의 수혜자가 되고, 그러한 상태를, 내가 기술과 역량을 발휘해서 오래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에드 휘트록이 장거리달리기를 해온 이유일 것이며, 내가 장거리달리기를 30여년 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기록 세우면 좋겠지만, 사실은(?) 별 의미 없다. 내가 그때 들판과 산에서 조이를 (joy) 맛보았고, 나와 또 사랑하는 가족들의 삶이 실질적이고 유의미하게 나아졌으며, 어쩌면 내 팔자였었을지도 모를 어떤 질병이나 불행을 피했거나 늦추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100점’ 아닐까?

나는 우연히 근무여건이 좋은 곳에서 일하는 바람에, 점심시간에 근처 산을 재미삼아 뛴지가 15년 정도 되었다. 아름다운 산, 가파른 산,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 정상에선 사바세계가 360도 펼쳐지는 산, 내 땀방울이 떨어지지 않은 곳이 드문 익숙한 트랙이 있는 산, 그리고 내려올때 항상 잠시 멈추는 곳이 있는 산. 나는 그곳에 멈추어 양팔을 높이 올려 하늘을 보며, 죽죽 뻗은 소나무들, 오늘 대지의 향기, 지금 바람의 소리, 이 순간의 태양을 오감으로 음미하며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읊는다. 그리고 그의 시와 그를 생각한다.

What is it to die but to stand naked in the wind and to melt into the sun?
And what is it to cease breathing, but to free the breath from its restless tides, that it may rise and expand and seek God unencumbered?
Only when you drink from the river of silence shall you indeed sing.
And when you have reached the mountain top, then you shall begin to climb.
And when the earth shall claim your limbs, then shall you truly dance.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람 속에 알몸으로 서서 태양 속으로 녹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숨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 쉼 없는 물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하여 높이 솟아올라 아무 방해받지 않고 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오직 침묵의 강물을 마셨을 때, 그때만이 그대는 진정으로 노래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그때 그대는 비로소 오르기 시작하리라.
그리하여 대지가 그대의 팔다리를 도로 가져갈 때, 그때 그대는 진정으로 춤추게 되리라.

덧붙임 – 내가 ‘그의 시와 그를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칼릴 지브란은, 이런 훌륭한 시를 남겨 많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었지만 (이 시가 포함된 그의 책 ‘예언자’는 성경 다음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은 40대 후반에, 과음 과로로 말미암은 지병으로 사망했다. 나는 이 시를 읊으며, ‘인간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가감없는 실체’를 동시에 기억하며, 나와 내 삶을 한번 더 되돌아 본다.

그가 할 수 있었고 가졌던 것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없고 가지지 못한 것이 많지만, 또한 내가 할 수 있고 가진 것들 중에서, 그가 할 수 없었고 가지지 못했던 것도 많다. 인생의 이런 측면을 볼 수 있다면, 인생은 한편으로는 공평하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판단은 스스로의 몫 🙂

청바지 사놨다 집으로 돌아와라

그 시절에는, 전봇대에 ‘아무개야 원하던 청바지 사놨다 집으로 돌아와라’ (그넘 자식이 청바지 안사준다고 가출했다는 말) 이런 손글씨 벽보가 가끔씩 붙고는 했었다. 나도 고교시절 ‘작심 가출’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릇도 안되고 용기도 없어서 비록 하루만에 집으로 되돌아 왔긴 했었지만. 웃기는 것이, 가출 직후 밥벌이 하려고 찾아간 중국집에서 (배달부 구한다고 붙어 있었음) 마침 그 집 아들이 가출중이라, 주인장께서 나를 주방 뒷방에 데려다 앉혀 놓으시고는, 아무 일도 안시킴은 물론이려니와 점심까지 거나하게 짜장면 곱배기로 먹여주신 다음 (주방구경 시켜주고 설명을 해주셨던지 지금도 큰 테이블 아래에 있던 양은용기에 가득한 짜장소스가 기억남), 해질무렵에 나를 타일러 ‘집으로 되돌아가서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빌어라’고 하시는 바람에, 시킨대로 했었다는 것 아니냐 🙂 하도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부모님께 전화도 대신 해주셨지 싶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그 분은 어쩌면 고인이 되셨겠지만 감사드리고 (나와 우연히 동반 가출했었던 그 분의 아들도 나중에는 효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좋은 아빠를 두었으니), 속썩여 드렸던 부모님께는 죄송 헤헤헤.

그 시절에는, 아들딸들이 십대후반 혹은 이십대가 되고 나면 (지금보다 먹는 것도 훨씬 시원찮았는데도) 넘치는 호르몬으로 말미암아, 머리가 좀 획가닥 돌아서 이성을 찾아 밤늦게까지 몰래 돌아다니다가, 아빠에게 붙잡혀 집으로 끌려와 머리를 바리깡으로 빡빡 밀리고 (딸이 아빠에게 이런 꼴 당한 경우가 드물지 않았음. 갑자기 보자기를 머리에 쓰고 조용히 나타남) 혹은 임신을 시키고 와서 얻어 터지고, 부모가 죽니사니 생쑈를 하는 것이, ‘아무개야 청바지 사놨다 집으로 돌아와라’ 하고 비슷한 자연스러운 일들이 아니었나 싶다. 내가 살았던 곳이 너무 후졌나 🙂

요샌 지나치게 세련(?) 되져서 그런지 아니면 중성화가 심해져서 그런지, 아무도 이런 짓을 하거나 또 이런 것들을 보지는 못하지 싶다. 대신 요새는 나이가 들어도 집에서 부모와 ‘매우’ 가까이 지내면서 ‘주욱 같이 ‘생활 (‘주옥 같은’ 생활과 혼돈 주의) 하는 것이 더 흔해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십대 이십대 시절, 바리깡으로 머리도 밀리고, 가출도 하고, 죽니사니 부모님 속썩이던 그 자식들이 지금은 더 잘 사는 경우도 많지 싶은데, 아닌가? 학교에서는 정석이 있었고 모범이 있었지만, 인생에 어디 정석과 모범이 있는가? 그걸 누가 어떻게 알고 또 무었으로 평가해? 차 배기량? 아파트 평수?

문제가 안생기는 삶이, 문제를 해결하는 삶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사랑의 반대는 다툼이 아니지 않나? 다툼이 없는 자리를 사랑과 평화가 채우는 것이 아니라, 포기와 무관심이 차지 하고 있는 경우도 있던데? 사랑과 평화는 (한 배를 탄 부부가)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함께 겪으며 노력으로 벌어야 (earn) 하는 것’이지 돈으로 사거나 머리로 해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거든.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 더 있는데? 엄마가 아기를 업고서, 힘든 장사 같은 일을 하면서 어렵게 키우면, 그 젖먹이도 엄마가 힘들고 고생하는 것을 알고 또 장차 기억 한다더만. 우여곡절과 어려움이 있었어도, 사랑과 애정이 있던 가정에서 자라난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데로, 장차 사랑과 애정이 있는 가정을 이룬다. 큰 선물, 훌륭한 유산 아닌가? 뭐? 다 필요없고 돈을 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