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1)

앞으로 6번에 걸쳐서 골프 드라이버 장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첫번째 ‘장타의 기준’이다.

1. 장타의 기준
2. 장타본능에 대한 고찰
3. 지나간 삽질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5. 지금의 장타
6. 훗날의 장타

영미 아마추어 드라이버 통계, 한국 아마추어 드라이버 통계, LPGA 프로선수 드라이버 통계 그리고 내가 직접 목격한 드라이버등을 종합하여 아마추어 골퍼 드라이버 장타의 기준을 알아 보고자 한다.

먼저 Carry distance와 Total distance를 구분해 보자. 캐리는 티에서 쳐서 날아간 공이 지면에 최초로 닿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토탈은 이 지점에서 공이 더 굴러 나아간 거리를 합친, 공이 정지한 장소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비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비’는 비행기라는 단어에도 사용하는 ‘飛’ 한자로써 ‘나른다’는 의미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거리 = 날아간 거리’ 즉 캐리거리에 해당하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탈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드라이버 거리를 말할때 캐리와 토탈을 구분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그리고 또한 캐리거리를 골프장에서 측정하는 것이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니므로, 거의 100% 토탈거리를 의미한다고 본다. 스크린골프의 경우 캐리와 토탈을 별도로 보여주는것 같더라. 토탈거리에 포함되는 런 (run) 혹은 굴러간 거리는, 티샷지점과 페어웨이간의 표고차이, 페어웨이의 상태 (굳기), 공의 회전 (드로와 페이드) 그리고 공의 상승높이 등의 영향을 받겠지만, 일반적으로 캐리거리의 10% 정도의 런이 나는 것으로 (지면에 떨어진 후에 굴러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들어 드라이브샷의 캐리가 200미터라면 토탈은 220미터 내외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할 내용은 티샷 장소와 페어웨이간의 높낮이 (표고) 차이다. 링크스 코스가 많은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바닷가 모래밭을 골프장으로 만들었으니 평지인 경우가 대부분), 골프가 일찌기 발달한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들은 골프장이 평지에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지천에 널린 들판에 잔디를 길러 다듬어 주면 골프장이 되는데 왜 굳이 산을 깍고 흙을 매우면서 난리를 치겠나. 이곳은 열에 아홉은 거의 완전한 평지에 골프장이 있고, 어쩌다 있는 산악지형 골프장들도 몇개의 홀이 표고차이가 좀 있지 골프장 전체가 산악지형으로 대부분의 홀에서 표고 차이가 심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한국은 골프장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사를 지을수 없는 경사지 혹은 인위적으로 산을 깍아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홀에서, 위에 있는 티박스에서 아래에 있는 페어웨이로 공을 날려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1미터 표고 차이에 약 1미터의 거리 차이가 생기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7번 아이언으로 130미터 보내는 골퍼의 경우, 티박스와 그린의 표고차이가 10미터라면 (그린이 10미터 아래에 있는 경우) 그 공은 대략 140미터를 가서 정지하게 된다. 만약에 반대로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10-20미터 위에 있다면? 한국에서는 그런 골프장을 아마도 절대 설계하지 않을 것이다. 손님이 끊어지고 그 골프장은 망할 것이다. 고객들이 딱꼬집어서 (?) 말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이상한 골프장 혹은 서비스가 나쁜 골프장이라고 말하면서 피하지 않을까 싶다. 일전에 내가 직장동료와 쳤던, 이곳에서는 드문 산악지형의 골프코스에서는 두 세개의 홀에서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10-20미터 위에 위치해 있더라. 파4 파5에서 그린을 공략할때 깃대 끝이 보일랑말랑 하더라. 그것도 참 난감하긴 하더라. 이제 드라이버 거리에 관한 실제 통계들을 보자.

트랙맨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골프레이더 (골프스윙 측정기) 제조업체가 있다. 해마다 자사의 레이더로 측정한 미국 PGA와 LPGA 드라이버 거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회사의 데이타는 미국 GOLF.COM처럼 유수의 기관과 웹사이트 등지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으니 신뢰할만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천 혹은 수만회의 드라이버 샷을 분석한 결과일 것이다. 이곳에서 보다시피 LPGA선수들의 평균 캐리거리는 (비거리 = 날아간 거리) 218야드, 딱 200미터다. 이들의 평균 토탈거리는 (공이 구르고 나서 정지한 곳까지의 거리) 240-250야드 즉 220미터 전후이다. 현재 LPGA투어에는 전세계에서 시드를 받은 530명의 여성프로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알려진 한국선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530명중에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양계 선수들이 많을까 아니면 덩치 큰 미국이나 유럽선수들이 많을까? 당연히 유러피언들이 많을 것이다. 유러피언들의 (우리가 소위말하는 ‘서양사람들’) 덩치에 대해서 알고 있나? 미셀위 선수와 강호동씨의 스크린골프샷 이야기를 하면서 더 언급하겠지만 평균적으로 한국인과 서양인은, 권투등 체급 경기로 따지자면 2-3체급 정도 차이가 있다. 2-3 체급이면, 체중으로는 10킬로 내외의 차이 그리고 키로는 10센티 내외의 차이라고 볼수 있는데 어쩌면 이게 실감이 잘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킥복싱을 한지가 몇년이 되었다. 곧 트레이너 노릇을 하게 된다더만. 같은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에타이의 본고장 태국에서 온 작고 새까만 진짜 킥복싱선수들도 있지만 (아주 어릴때부터 훈련하여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덩치는 작지만 맞으면 사망이라고 함) 대부분은 이나라 청년들 즉 유러피언 청년들이라고 한다. 내가 말한데로 평균적으로 2-3 체급 정도 위라고 하는데 함께 스파링을 해보면 맞을때의 충격과 강도가 동일체급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내장에 지진이 나고 해골과 내용물이 분리된다고 🙂 LPGA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40-250야드라면 KLPGA 한국여자 프로선수들의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어떨까? 남자 선수들끼리 비교해도 결과는 아마 비슷할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전인지 선수. 세계적인 골프 실력은 물론이려니와 체격이 왠만한 남자 못지 않다. 175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70킬로라고 프로필에 나와 있는데 LPGA 드라이버 장타 리스트에 따르면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30야드 내외로 나와 있다. 혹시 브리타니 린시컴이라는 미국여자 프로선수 들어 봤나? 우승도 몇번하고 성격도 좋아서 티비에 골프 해설도 가끔하는, 우리내외도 좋아하는 선수인데 이사람은 알려진 드라이버 장타 여왕이다. 전인지선수보다 40야드 더 멀리 친다고 한다. 키? 체중? 180센티 안팎의 키에 90킬로 육박하는 체중이다. 감이 오나? 여자 프로선수들이 보통 남자 아마추어들이 치는 화이트티에서 경기를 하니 비교 대상으로 적절할 것이다. 평균 한국남자들 특히 그대와 나 같은 중년남자들이, 유러피언 아마추어 남자골퍼들 보다 더 멀리 드라이버를 (평지에서) 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전인지선수와 브리타니 린시컴선수의 비교처럼.

이 한국 신문에서 언급한 R&A라는 곳은 골프통계로 유명한 영국회사인데 미국골프협회와 협력으로 4만회 이상의 티샷을 분석하여 PGA, LPGA는 물론 PGA 2부투어 (web.com), 일본프로투어, 유러피언프로투어 그리고 아마추어남녀를 망라하는 드라이브 통계를 매년 발표한다. 전체 리포트를 읽어본 결과 발표하는 자료의 신뢰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2019년 초에 발표된 최근 프로골퍼들의 통계를 보자. 최하단 왼쪽에서 4번째가 2018년 LPGA 평균 드리이버 토탈거리이다. 250야드. 바로위에 있는 LET는 Ladies European Tour 선수들의 통계인데 그들의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는 245야드 내외로 나와 있다.

아마추어 남자들의 기록은? R&A통계에 따르면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15야드로 200미터에 약간 모자라는 거리다. 싱글들, 특히 핸디 6이하의 로우싱글들의 평균 드라이브 토탈거리는 240야드 즉 220미터로 나와 있다. 백돌이라면?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170미터가 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란다.

아마추어 여자들은? 백돌이 걸들의 티샷은 100미터 조금 넘는다고 나와 있다. 골프를 아주 잘치는 로우싱글이 되어도 토탈 드라이버 거리가 180미터 내외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보다 2-3 체급이 높은 서양여자들의 통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나이가 좀 들고 하니 요새는 길을 가다가 덩치 큰 서양 여자나 원주민 여자들을 보면서 ‘만약 저 여자하고 맞짱 뜬다면 상대가 안되겠다’ 상상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아내도 듣고서 공감하더라. 그런 여자들과 붙으면 당신 죽는다더만. 나도 한때는 자존심 있는 숫컷이었건만 🙂 그런 여자들도 포함한 사람들이 치는 드라이버가 아무리 때굴때굴 굴러도 140미터를 못간다는 말이다, 평균이.

이제 미셀위선수와 강호동씨 스크린골프 드라이버 쳤던 이야기. 미셀위 알지? 재미교포 위성미선수. 곧 첫 아기 낳는다더만. 이 멋있는 LPGA 프로골퍼는 키가 183센티에 체중은 70킬로란다. 그 큰 키와 긴 팔로 장타를 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 전직 씨름선수인 강호동씨는, 키는 미셀위와 같은데 체중이 110킬로 정도라고 한다. 미셀이 먼저 270미터 드라이버를 쳤는데 (여성으로 얼마나 멀리치는 것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리라) 강호동씨가 280미터를 쳤다고 한다. 이 양반이 그 당시에 무슨 골프 실력이 있었겠나. 그냥 휘두른 것이지. 재차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엄청난 근력과 체중의 차이는 때로는 최고의 기술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셀위가 남자 PGA투어에 참여했다가 컷오프 (예선탈락) 당하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스크린과 실제 코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스크린골프에서 장타왕이라는 사람을 골프장에 초대해서 라운드를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코스에서는 스크린의 60-70% 정도의 (힘과 스피드로) 드라이버 밖에는 치치 못하더라. 실내에서 완벽하고 스트레스 없는 조건에서 죽을 힘으로 때리는 드라이버가 진짜 드라이버 거리는 아니라는 말씀. 권투선수 박종팔씨가 옛날에 미국 가서 세계 챔피언 도전했다가 실패했는데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무슨 링바닥이 그렇게 푹신푹신 한지 균형을 못잡겠고 주변 분위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고. 스크린골프 장타치던 사람이 골프장의 바람부는 티박스에 서서 푹신푹신 그리고 때로 슬며시 기울어진 지면을 밟고서 오비말뚝을 힐끔거리며 드라이버를 치려고 하는 기분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드라이버 토탈거리 측정사례. 한국최고의 골프코치중 한 분일 것으로 여겨지는 김헌선생의 강좌중에 나온 이야기다. 김헌선생은 5천명 이상의 아마추어에게 골프를 지도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코칭기록과 경험을 가진분으로 나도 이분의 좋은 책들과 인간적인 글들 그리고 유익한 동영상의 큰 팬이다. 이분 말씀이, 영종도 골프장 (내가 쳐보지는 못했지만 평지일 것으로 짐작) 특정 홀에 카매라를 설치하여 페어웨이에 안착한 드라이버샷의 토탈거리를 4천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측정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개인이 10번 중에 8번 장타치고 2번 오비내면서 (거리가 0으로 계산되니) 평균 거리 왕창 까먹는 그런 계산 방식이 아니고, 오직 페어웨이에 떨어져서 정지한 드라이버 샷의 토탈거리들 만을 측정하여 평균낸 것이라고 한다. 결과는? 평균 205야드 즉 190미터가 조금 못미치는 거리였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던, 우리보다 2-3체급 더 나갈 것이라는 영미 아마추어들의 평균 드라이브 토탈거리인 215야드보다 10야드 정도 덜 나간 거리이니 얼추 앞뒤가 맞지 않은가 싶다.

내가 본 드라이버샷들 이야기. 옛날에 나와 100라운드 이상을 주말마다 함께 쳤던 부자가 (아버지와 아들)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70내외로 서양사람으로는 평균보다 약간 큰 정도 그리고 아들은 40전후의 나이였는데 180센티의 키에 체중은 딱 100킬로인 균형잡힌 체구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핸디를 합쳐서 5가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평생 골프를 쳐온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당연히 무척 정확하였다. 거리는 토탈로 200미터 전후. 이런 드라이브로도 함께 했던 100라운드 중에서 80대를 치는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들은 평균 250미터는 보통 보내는데 뒷바람이 불때 친 잘맞은 드라이브의 경우 300미터에 근접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우리가 함께 쳤던 골프장은 완전 평지였다. 아들은 골프세트를 등에 매고 다녔는데 아빠가 자기가 17살이 되던 생일에 선물한 것이라고 하였다. 20년 이상된 채로 250-300미터 날린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1번 아이언은 아놀드파머와 골프의 신만 칠수 있다는 말을 혹시 들어 보았나? 이 아들이 1번 아이언 치는 것을 나는 여러차례 목격하였다. 한번 잡아 보았는데 길이도 무척 길지만 클럽 페이스가 거의 수직으로 서있었다. 이것으로 쳐서 공을 띄우고 또 그린에서 멈추게 하려면 스윙기술도 좋아야 하지만 스윙스피드가 상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더라. 나는 이 세상에 1번 아이언을 치는 자가 최소한 3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사모아 알지? 사모아 사람들 크다. 여자도 내 체중 2배 되는 사람들 많다. 직장 동료중에 사모아 사람이 있는데 골프를 좋아해서 함께 여러차례 라운드를 했었다. 이사람은 키는 대략 나와 비슷한데 체중은 아마 100킬로 이상 쉽게 나가는 빵빵이 아저씨였다. 팔로만 골프채를 휘두르는데 강호동처럼 드라이버 장타가 자주 나왔었다. 물론 오비나 터무니 없는 샷도 많았고. 폼? 그런것 없고. 체중이동? 그것도 없고. 피니쉬? 물론 없다. 팔힘으로 줘패서 250미터 날린다.

이전에 있던 골프클럽에, 한쪽 다리를 젊은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잃어 의족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몇차례 라운드를 하였다. 세계장애인골프대회에 이 나라를 대표하여 나갔었다고 하였다. 나보다 훨씬 더 멀리 드라이버를 날리는데 이사람이 치는 것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서 사정없이 때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핸디가 7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스윙도 좋고 기술도 좋아 보였다. 드라이브를 있는 힘을 다해서 때리고는 (다리가 불편해서) 피니쉬에서 균형을 좀 잃곤 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대도 나도 이 사람처럼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드라이버를 쳐야한다. 그 심오한(?) 이유는 차차 밝히겠다.

결론이 뭐냐? 이런 여러가지 통계와 사실과 조건들을 분석한 결과로 나온, 내가 생각하는 한국 (중년) 남자 골퍼의 드라이버 장타란 과연 무었인가? 캐리 200미터 토탈 220미터, 즉 240야드 토탈거리의 드라이버를 나는 장타라고 말하겠다. 어쩌다 한 두번 내리막에서 뒷바람에 치는 것 말고, 평지에서 세 번 치면 두 번은 이런 거리의 드라이버가 페어웨이 부근에 안착할때 나는 그를 드라이버 장타를 치는 골퍼라고 부르겠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 전통가요인 Fado 가수였다 (작고한지 오래되었다). 그 나라에서는 아마도 조수미씨와 이선희씨를 합친 정도였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그 옛날 병석에 누운 형님을 위해서 숙부께서 전축을 선물하셨을때 그녀의 음반도 함께 왔었다. 이미 돌아가신지 오래된 숙부께서는 사업으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셨지만 가족을 포함한 주변사람들과는 그리 잘 지내지 못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보건데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음반이 우연히 선물에 포함되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삼촌께서는 심성이 부드럽고 감수성을 지닌 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표현이 서툴렀거나 표현을 두려워 하셨거나 혹은 어떤 사소한 습관들이 그 좋은 면들을 가렸던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서 삼촌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베풀어 주신 은혜와 가르침에 감사드린다.

FOI DEUS

Não sei, não sabe ninguém
Porque canto fado, neste tom magoado
De dor e de pranto
E neste momento, todo sofrimento
Eu sinto que a alma cá dentro se acalma
Nos versos que canto

Foi Deus, que deu luz aos olhos
Perfumou as rosas, deu ouro ao sol e prata ao luar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E pôs as estrelas no céu
E fez o espaço sem fim
Deu luto as andorinhas
Ai deu-me esta voz a mim

Se canto, não sei porque canto
Misto de ternura, saudade, ventura e talvez de amor
Mas sei que cantando
Sinto o mesmo quando, se tem um desgosto
E o pranto no rosto nos deixa melhor

Foi Deus, que deu voz ao vento
Luz ao firmamento
E deu o azul nas ondas do mar
Ai foi Deus, que me pôs no peito
Um rosário de penas que vou desfiando e choro a cantar
Fez o poeta o rouxinol
Pôs no campo o alecr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Deu flores à primavera
Ai e deu-me esta voz a mim


그것은 신이었어요.

나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몰라요. 왜 내가 고통과 슬픔에 상처받은 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지 말이예요. 하지만 그 괴로움과 고통속에서, 나는 내 노래의 구절들이 나의 영혼을 위로하는 느낌을 받아요.

신은, 바람에게는 소리를 하늘에게는 빛을 그리고 바다에게는 파도를 주었고,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신은 새를 시인으로 만들었고, 로즈마리를 들판에 피웠으며, 봄에게는 꽃을 주었지요. 오! 그리고 신은 이 목소리를 내게 주었답니다.

내가 만약 노래한다고 해도, 나는 내가 무었을 부를지 모를꺼예요. 갈망 애정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 섞인 그 느낌을, 나는 노래를 부를때면 느낀다는 것을 알아요. 누군가 우리 면전에서 찢어진 가슴으로 슬픔을 표현할때 우리는 위로 받을꺼예요.

신은 우리에게 광명을 주었고, 태양에는 황금빛 찬란함을 그리고 달에게는 은빛 아름다움을 주었어요. 그리고 신은, 내가 울고 노래하면서 매만지는 이 묵주를 내 가슴에 놓아 주었지요.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

시간에 대한 단상

이곳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얻었던 직장의 상사가, 권고사직후 이삼년 지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작은 도시니 그 사람이 생전에 몰고 다니던 차가 (가족들이 계속 몰았으니)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쇼핑센터나 시내길에 주차된 것을 몇차례 내가 보면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었다. 보통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차나 물건들이 왔다가 가는데, 그 경우에는 반대였던 좀 특이한 경우라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 사람 생전에 그 차 몰고 다닐때, 자기가 죽고나서 그가 몰던 차는 여전히 거리를 오가는 상상을 해보았을까…

미국에는 플린스톤스라는 우리에게도 알려졌던 만화때문에 인간과 공룡이 공존했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도 물어보면 긴가민가 할것이다. 공룡은 실존했었기에 당연히 화석은 물론 잘 보존된 뼈도 발굴이 되어 왔다. 현재까지 발굴된 공룡의 뼈로서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춘 것은 1990년 미국에서 발굴된 ‘수(Sue)’라고 이름지어진 공룡이라고 한다. 90% 정도 완전한 골격이 그대로 발굴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에 의해서, 이 공룡이 생존했던 시기를 포함한 많은 자료들이 연구발표 되었다. 일단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보고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자 – 위 링크에 가서 우측상단의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 볼수 있다.

방금 그대와 내가 인터넷으로 본, 실제로 지구상에 6,700만년 전에 돌아다녔던 이 공룡 수(Sue)의 유골은, 우리 인간들이 이 지구상에 전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6,000만년 이상의 시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세상밖으로 나왔으며, 현대문명을 이룬 인간에 의해서 그 실체가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인간이 현대 문명을 이루고 산 기간을 200년이라고 가정하여 이것을 24시간 시계로 비유하자면, 이 공룡이 죽어서 묻혀있던 시간은 23시간59분59초 이상이고, 그 실체를 밝혀낸 현대문명은 약 0.3초 정도의 시간이라 할수 있다. 예수의 탄생부터를 현대문명으로 쳐준다고 해도 약3초 정도의 시간이 되겠다.

이글을 시작할때 죽은 매니져가 몰던 차가 돌아다니더라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실존했던 공룡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할 꿈도 꾸지 못했던 까마득한 먼 옛날에 살아서 돌아다니다가 이제사 인간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관련된 시간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 – 20만년 전에 현인류가 (지금인류의 직계조상) 지구상에 탄생했는데,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100번 반복한 시간이 되겠다.
  • – 500만년 전에 인류가 침팬지등으로 부터 분리되었다고 하는데 (인류와 유사한 조상의 시초), 이 시간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2,500번 반복한 시간이다.
  • – 6,700만년 전에 이 공룡 ‘수(Sue)’가 살았었는데, 이 공룡이 죽은 이후,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30,000번 이상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위에서 언급한) 침팬지와 인류가 분리되고 인류와 유사한 조상이 지구상에 등장했었던 것이다.
  • – 그리고 현재 인류의 조상이 지구에 등장한 것은, 예수탄생후 현재까지의 기간을, 이때로부터 또 다시 3,000번 이상을 더 반복한 시간이 지나서였다.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나? 인간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나? 나도 그런 기분이 좀 든다. 또 어떤 생각이 드나? 인간의 역사도 또 한 인간의 삶도 참으로 어처구니 없이 짧고 허무하다는 기분도 들지 않나? 어떤 과학서적에서 이런 글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천체우주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평생을 보내고 나서 깨달은 (인간과 과학의 한계에 대한) 내생각을 비유로 표현하자면, 100층짜리 마천루 빌딩의 지하층에 우연히 들어간 바퀴벌레가 지하실 천정을 보면서 벌레의 능력으로 마천루의 구조를 이해하려고 시도하려는것 같다는 것이다.”

건방떨며 정신없이 살기보다는, 겸손히 한계를 받아들여 조용히 살아야 할 이유들이 내 생각에는 훨씬 더 많지 싶다. 종교니 과학이니 이념이니 투쟁이니 역사니 발전이니 하는, 우리 인간 삶의 실체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방금 위에서 말했던 그 바퀴벌레 운운하던 과학자, 내 생각에 인간이 위대한 것은 바로 그런 사실을 직시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바퀴벌레이면서도 또한 결코 바퀴벌레로 남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학자도 자신의 글을 아마 그런 말로 끝맺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무심코 베켜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대 그리고 나. 정신 차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