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산부의과 의사의 말이, 아기가 세상에 태어난 직후에 의사들이 아기 입을 벌려 이물질을 제거하는 절차가 있는데 이때 어떤 아기는 입을 좀 눌러서 벌려도 그냥 아~ 쉽게 벌려주면서 멀뚱멀뚱한(?) 아기도 있고 또 어떤 아기는 자지러질듯이 울고불고 하는 아기도 있다고 해요. 아무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어떤 외부적인 영향도 없는데 이렇듯 반응이 다른 것을 보고서 그 의사는, 아마도 이것은 아기들이 부모들로부터 유전적으로 받아서 가지고 태어나는 어떤 기질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했어요.
몇달 전에 유치원을 시작한 한국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내가 했어요. 오랜 세월 유치원에 재직하면서 수천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아 왔지만 한국아이는 이 아이가 처음이라고 해요. 서로 말이 통한다는 잇점을 지혜롭게 이용하여 아내가 어떻게 이 아이의 유치원 생활과 적응 과정을 표내지 않고 잘 도와주는지 나는 전부터 들어와 알고 있어요. 그 부모는 어쩌면 ‘아! 한국인 원장이라 다행이다’ 그 이상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처음 겪어보는 일이잖아요. 이 아이는 공부를 많이하고 능력이 있는 부모가 이곳 회사에 파견을 오는 바람에 함께 와서 몇년을 지내게 되었다고 해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당연하겠지요) 3살이 조금 넘은 이 사내 아이는 처음에는 아침에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곤 했었지만, 지난 몇달간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이제는 울지도 않고 점점 유치원의 다른 아이들과도 더 어울리며 잘 놀게 되었다고 해요. 하지만 영어는 아직도 한마디도 못해요. 아니 ‘결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다’고 해요. 그 유치원에는 일본에서 태어난 일본인 아이도 한명이 있다는데요, 이 두아이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영어를 알아 듣긴 해도 ‘결코 말하지 않는다’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고 해요. 왜 그럴까요? 아내의 말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둘 다 매우 영특한 편이라고 해요. 그리고 뚜렷한 개성 혹은 자아가 있어 보인다고 하네요 (유치원 다른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 이 아이들은 ‘잘 하지 못할까봐’ 혹은 어쩌면 ‘잘 하지 못하면 안된다’는 의식 때문에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생각한다고 해요. 타고난 기질일까요 아니면 후천적으로 이런 특이한 상황에서 얻게 된 어떤 습관일까요? 아니면 타고난 기질이 이런 상황에서 그런 습관으로 드러난 것일까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아이들도… 언젠가 아내가 말해 주었던 그 수줍은 이나라 아이. 그렇게 좋아하는 소방차가 유치원에 왔는데도 너무 부끄럽고 무서워서 친구들처럼 차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울먹였다던 그 아이. 아내가 제안을 하면서 약속을 했다고 해요. ‘네가 스스로 올라가면 나는 네 뒤에 꼭 서 있겠다’. 아이는 자신의 결정으로 올라갔고 참 기쁘고 좋아했다고 해요. 그 기뻐하는 아이의 얼굴을 상상할 수 있나요? 나는 이렇게 아이들의 습관을 바꾸어 운명을 좋은 방향으로 돌려주는 아내의 직업이 참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때 유치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또 이런 프로페셔널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믿어요)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자랐어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저를 길러주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은 전혀 없지만,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는 성인이 되고 나서 깨달은 자신의 기질 그리고 습관과의 힘겨루기가 만만치 않은 경우도 있어요.
다시 ‘결코 말하지 않는 그 아이들’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아내와 다른 훌륭한 선생님들과 또 이곳의 좋은 교육 시스템의 도움으로 입을 열게 될꺼예요. 그리고 신나게 떠들고 싸우고 울고 불다가 만 5살이 되면, 바람에 흩어지는 민들레 씨앗처럼 자기의 인연을 따라서 멀리 떠나갈 꺼예요. 좀 웃기는 이야기는, 이렇게 떠나간 아이들이 장차 부모가 되어 자기의 아이를 데리고 이 유치원에 되돌아 오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해요. 자기를 돌보아 주셨던, 자기의 모든 것을 보았던 그 선생님들이 아직 있어요 하하하 🙂
때대로 나는 아내에게 ‘당신은 제자없는 스승이다’ 이렇게 놀리는 말을 할때가 있는데요, 진심으로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자들이 감사해 하고 또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도 물론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지만, 아내의 손을 거쳐 지나간 아이들이 아내와 다른 선생님들의 지혜와 사랑으로, 어쩌면 성인이 된 자신의 인생을 어둡게 하고 또 망칠지도 모를 습관들을 조금이라도 바꾸어 세상에 나간다면, 이것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참으로 큰 적선이 아닌가 나는 생각해요. 이런 종류의 괴로움을 직면하여 발버둥을 쳐본 사람들이라면 아마 공감하지 싶네요.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은 가격을 매기거나 사고 팔수가 없지 싶어요. 참으로 큰 적선은 준 사람도 모르고 받은 사람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크고 작다’는 것도 없고 ‘주고 받았다’는 것도 없지만 그 실체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나는 봅니다. 어쩌면 이미 성인이 된 인간들의 구원은(?) 바로 이런 것들을 깨닫고 의식하는 바탕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마치 어른이 되어 배우는 골프는, 어릴때 아무 생각없이 아빠 따라가서 놀면서 저절로 익힌 골프와는 그 과정도 차원도 다를수 밖에 없듯이 말이예요.
세살 아기들도 이렇게 뚜렷하게 보여주는 자아 (ego). 평생을 짊어지고 살아야할 무거운 등짐 혹은 두꺼운 외투처럼, 나의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고 또 내게 이익이 되라고 자연의 섭리로 주어졌지만, 마치 양날의 칼처럼, 이토록 어린 아이들의 마음에조차도 짐과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 ‘나’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마음이 무겁지 않습니까? 붓다께서 해탈 열반을 만드셨나요? 아닙니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좀 더 체계적으로, 마치 나이든 배뿔뚝이 중년에게 골프를 가르치듯이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바로 이 자아가 아무런 실체가 없음을, 단지 기질과 습관의 덩어리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자아를 만들고 또 강화하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줄이고 또 지우면서 열반을 (니르바나) 향해 노력하며 살다가 가면 좋다 말씀하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소방차 위를 스스로의 결정으로 올랐던 그 아기는 장차 어른이 되면, 소방차를 아직도 좋아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고, 자신이 어릴때부터 존중 받았듯이 타인을 자연스레 존중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또 자기보다 나이가 많거나 힘이 센 사람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지 않는 스스로의 행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요? 우리는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요? 아니면 주변 사람들 모두 맹목적으로 쫓는 것들 중에서 더 비싸고 더 크고 더 멋져 보이는 것들을 획득하여, 이차대전에 참전했던 러시아 노병들의 군복에 주렁주렁 매달린 훈장들처럼 ‘여기 봐요. 나 좀 봐요’ 하다가 나중에는 플라스틱 줄이나 주렁주렁 매달고선 졸지에 허무하게 떠나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어떤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나요? 어떤 어린 시절을 통해 어떤 몸과 마음의 습관을 길러 오늘을 살고 있나요?
길에 떨어진 사금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
알려진 골프코치들 중에서 김헌이라는 분이 있다. PGA니 KPGA 선수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미국 티칭프로 자격을 내세우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이분만큼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지도한 실전 경험을 가진분은 (5,000명 이상)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것이다.
이분이 왜 그렇게 유명하신가, 그런데 왜 돈은 엄청 못버셨는가 하면 🙂 소위 말해서 도가 튼 분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 진심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분이라는 것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분의 그런 점들이 (가식없이 꾸미고 포장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것이라고 움켜쥐고서 돈 내놓아라 하지 않는 것등) 이분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존경과 또 스스로 느끼는 진정한 만족감과 재미를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돈과 권력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게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 침뱃는 그런 가짜를 사고 팔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보물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판에 그런 가짜를 왕창 모아 가지고서 뭘 하려나?
내가 지금껏 골프에 버벅거리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과 글과 책을 보았지만, 김헌선생의 가르침 만한 것을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공짜로 나누어주신, 자신의 골프경험 30년을 농축한 이 2시간짜리 강의만큼의 가치를 지닌 가르침을 나는 아마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보지 못하지 싶다. 이분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기에 이렇게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으면 보기를 권한다. 그 훌륭한 강연은 여기를 클릭.
이분이 어떤 강좌에서 하신 말씀중에서 내가 늘 기억하며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천명의 아마추어를 가르쳐 보았지만 골프의 즐거움 아니 인생의 행복이, 땀을 흘리며 지루하게 길을 가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으면서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에서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이나 금광을 찾으면서 사는것 같다. 세상에 그런 금맥이나 금광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을 찾았다손 치더라도 금맥이나 금광이 참된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분의 가르침, 공짜 좋아하는 ‘가난한’ 내게 무료로 주시는 이 훌륭한 가르침들을 가지고서 나는 ‘반드시’ 싱글이 되고 또 득도하리라 🙂
그대는 길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우며 오늘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금맥을 찾아 헤매며 내일의 행복을 쫓는 사는 사람인가? 혹은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이번 홀에서 돈만 따면 되는 사람인가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어제 오랫만에 찾아온 아이와 주말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가 첫 차를 살때 얼마나 너의 선택을 확신했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인하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아이는 차를 (물론 고물 중고차들) 열번은 더 바꾸고 또 학생때는 아르바이트로 큰 중고차 딜러 회사에서 몇년 일하기도 했었다.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중고차 도매상들과도 상대하고 또 직접 옥션을 현장에서 하기도 하면서. 혹시 들어봤나 옥션하는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이렇게 이제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가,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당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 ‘아빠는 그때 왜 나를 막지 않았어요?’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너의 설익은 확신과 그에 따르는 서두름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 했었지만, 내가 너의 나이일때 원하던 것들을 그렇게 가져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 선물인 셈 치고 잠자코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이가 첫 교통 벌과금을 끊겼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전혀없는 한적한 주택가 막힌 골목에서 엄마 아빠의 차를 차고에서 잠시 빼서 친구를 태우고 그 골목을 몇 미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찰차가 하필이면 마침 그때 나타나서 면허를 요구했고 아이는 초보면허 조건을 위반하면서 친구를 태우고 또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죄로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벌이가 없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우리가 대신 벌금을 내 주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물론 먼저 ‘아이고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살살 빌었었겠지. 우리는 그 이벤트가 아이에게 돈으로 환산 할수 없는 중요한 인생의 레슨을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십년 세월이 흐른후에, 물론 그 중간에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서, 그 고마운(?) 경찰관과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 경찰관은 숨었다가 벌금을 걷는 이상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지만, 아침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나왔었거나 혹은 업무 첫날이었던 생초보 경찰관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뿐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그런 괴로웠던 에피소드가 (손해, 후회, 두려움등) 없이도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결코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익이나 얻음에는 반드시 이전에 지불했던 댓가가 있다. 어제 지불한 댓가없이 오늘의 얻음은 (경험 혹은 깨달음)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배움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생길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깊이 엮이지 않은 (deeply involved) 그런 순간적인 간접 경험은 쉽게 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더 발전시키면 장차 괴로운 과정을 거쳐 망상에서 깨게 된다. 1960년대 극빈국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했던 대학 식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학생식당 구석에 있던 ‘누구나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기계’를 보면서 마치 천국을 본듯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란이(?) 왔었다는 것이고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던 집에 사과가 익도록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던 몹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새가 먹은 것이 아니다), 둘째는 식당에서 거룩한 양식을 드시는 미녀 여학생들 중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사람들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서 혼자서 쑈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눈이 마주쳐도 거의 아무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이곳처럼 몇몇 팔자 좋은(?) 나라들에서는 눈이 딱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거나 혹은 째려보면서 지나가면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안부를 ‘오늘 어때요?’ 가볍게 묻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미녀 여학생은 그냥 그렇게 미소지었던 것 뿐이었는데 🙂
지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1960년대 미국 유학간 그 한국 청년의 상사병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아이가 첫차를 사면서 보여주었던 그 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었인가 🙂
서론이 길었다.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라는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면, 작년에 한 육개월 탁구를 규칙적으로 연습했었다.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몇차례 치면서 오래 꺼져 있던 불이 재점화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내가 처음 몇주 혼자서 광란하는 것을 보더니 ‘레슨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참고로 내 수준은 동네탁구 중상위 정도였다. 어렵게 레슨을 주선해서 몇차례 먼거리를 운전하여 배워 보았다. 이곳에는 거의 100% 세이크핸드이므로 팬홀더를 사용하는 내게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등 한두가지 내가 꼭 원하던 기술을 시도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만. 멀리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무리하게 레슨을 받다가 허리도 아파서 결국은 대여섯번 하고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중고 탁구로봇을 레슨비 내는 대신에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고에서 여름내내 내가 드라이브를 집중적으로 연습하여 마스트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학교때도 안되던 드라이브를 이 나이가 되어서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드라이브 공격으로 아마 지역5부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이 된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탁구치던 대부분의 동료들을 격파하였다, 그 드라이브 공격으로. 차차 탁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몇달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했던 루프 드라이브 연습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았던 복근이 생겨난 것을 나중에 골프를 재개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골프 스윙의 동력과 (힘의 원천) 축은 어디인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복근(코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탁구가 인연이 되어 우연히 생겨난 복근과 그를 이용하여 좌우로 스윙했던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골프 스윙에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드라이버 스윙에 큰 도움이 됨을 차차 깨닫고 있다. 마치 우리 아이가 댓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대로는 꽤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몸으로 증득한 깨달음’이다.
턱걸이는 팔힘으로 하는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특히 손을 안쪽으로 돌려잡고 하는 친업의 경우) ‘몸 전체의 근육으로 하는데 복근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마도 팔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지 싶다’고 대답하지 싶다. 턱걸이도 복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골프는 맨탈’이라고 하도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긴 하는데, 골프를 못치는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좀 향상 시키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무었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것도 체력이 고갈되면 무너진다’ 이 정도가 내게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골프 맨탈 이야기였다. 혹시 그대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내가 근래에 깨달은, 골프 맨탈은 무었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골프를 치면서 그리고 샷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걱정되거나 혼란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생기는 것을 잘 막아내고 조절하여, 자기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몸이 구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이다. 물론 중년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맨탈이 강해진다고 갑자기 공이 바로 가거나 멀리 가지는 않고 또 스코어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흡사 맨탈이 강하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대 위에서 뒤로 넘기가 갑자기 가능해지지 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범위안에서 우리의 현재 신체가 허락하는 한계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 능력의 샷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의 효과이자 결과다. 어떻게 하면 골프 맨탈이 강해지나? 스윙연습? 체력단련?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치려는 샷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혹은 몸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적어지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냐고? 중년 주말골프에게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런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을 접는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오비 말뚝이 보이는 홀에서 드라이버를 치려는 순간에, 혹은 2펏으로 끝내고 싶은 어려운 롱펏을 할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오비가 나거나 3펏을 해도 괜찮다고 ‘진정’으로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은 긴장을 의욕으로 바꾸어 ‘지금 내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샷’을 허락한다. 진정성 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니 오해 말고. 그 결과가 오비거나 3펏이면 그것이 나의 지금 골프 능력인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억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사라진 비싼 새공들이 아까우면 중고공을 사용하고 내말 안듣는 비싼 장비에 마음이 괴로우면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에 만족하는 것도 골프 맨탈에 관련이 있지 싶다. 생초보와 세계적 수준의 프로가 동일한 장비를 ‘흔히’ 사용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하지 싶은데, 이 괴이한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면 골프 맨탈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차차 선택을 하게 되지 싶다. 이렇게 골프 맨탈이 차차 나아지면, 이제 골프 맨탈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서, 그저 스윙도 연습하고 또 체력도 기르면서, 좋은 코치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숏게임 연습도 좀 하노라면 ‘몸으로 하는 골프 능력’이 향상 되겠지. 그러면 점수도 좋아지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나?
말은 쉽지, 하지만 유튜브 보거나 남의 이야기 듣고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교통 벌과금을 물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 뼈에 사무치는 시간이 무르익어야, 섣부른 확신이 불러온 손해를 깨닫게 되는 과정과 후회하는 마음을 되씹는 괴로움이 있고 난 후에야,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으로 심신이 좀 변한 다음에야, 그 인연을 따라서 더 나은 무었이 저절로 그리고 참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해탈 열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는
이길녀선생. 선각자요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며 교육사업가(?) 그리고 90세가 되도록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대단한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분을 ‘여자 정주영’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얼마전에 로타리클럽에서 주는 봉사상을 받으셨는데, 구순의 나이에 마치 오육십대의 중년여자분처럼 꼳꼳하고 바른 몸매로 단상에 걸어올라 감사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길녀선생이 도대체 어떤 비결로 그런 ‘건강한 장수’를 누리고 계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네요. 최근 어떤 인터뷰에서 ‘아마도 젊은 학생들과 늘 함께 지내며 공감하고 일을 하면서 그들의 좋은 기를 많이 받아서 그렇지 않겠나’ 하시더만요. 오늘 이분을 언급하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전 블로그에서 언습했던 ‘인생이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길녀선생의 인터뷰나 기사를 접하면서 여러번 놀라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최근에 나를 깜짝놀라게 만들었던 말이 어떤 인터뷰에서 나왔어요. ‘지난 9일 연휴동안에 나는 매일 골프를 쳤다. 젊은 시절 쳐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서’ 바로 이 말입니다. 참고로 이분은 일찌기 일본 미국 유학을 하셨던 선각자세요. 골프를 몰랐겠어요 아니면 칠 돈이 없었겠어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문화나 사고방식대로 해석하고 실천하기 시작하였는데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승과 대승’으로 불교를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며 자신의 방법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다투어온 것이라 할수 있어요. 붓다의 가르침에는 소승도 대승도 그런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이런 허망된 판단, 나눔 그리고 다툼이 덧없으니 하지 말라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인데, 참 우리 인간이 이런 수준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하지만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에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사람들 각자가 속한 환경과 가치 그리고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 이러한 일이 어쩔수없이 발생한 것이겠지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화 시키다보니 어떤 세력 혹은 이익 집단을 형성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러면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서로 다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어떤 종교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만 그분의 가르침을 훌륭한 분들을 통해 배울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은 일단 먼저 자신을 돌보고 그 이후에 여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기에, 아마 소승불교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네요. 같은 맥락에서, 비록 그 결과나 효과는 세상에 도움이 될지라도,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함께 모여 조직적으로 타인들을 돕고 가르치고 또 그들의 삶을 향상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하는 그런 시도를 저는 선듯 동의하기도 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은 예외없이 얕고 이기적이며 오감의 지배를 받는, 때로는 어처구니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저는 제 자신을 통해서 늘 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자주 상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이 있고 내 뱃속이 편안할때 주변에 굶주린 사람에게 내가 가진 일부를 내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어쩌면 일부 동물들조차도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것이 그냥 저절로 되거나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모습이나 상상하는 이상을, 타인들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도움으로써 획득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행동은, 비록 그 상대방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상당한 부작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지고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전에 적선에 관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여러가지 증거로 볼때 이러한 부작용을 잘 피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적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되었어요. 그래서 크게 존경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런 정말 똑똑한 부자들의 공통점은 배우자와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몰라도 거대한 성공을 극도의 노력으로 성취하고 나면 아마도 인간의 한계와 행복의 진정한 비결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모습이 엄청난 문화와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붓다의 가르침과 별반 다를바가 없음을 보면서 저는 정말 놀라게 됩니다.
붓다께서도, 그 위대한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이전에 무척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일단 사람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살다가 가실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나 고민을 오래 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을것 같네요. 붓다께서 결국 사람들을 가르치시기로 결심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 일단 자신이 먼저 가졌기에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베품으로써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도나 발상은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주고 받고 의도하는 그런 차원 위에 존재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박원순 전서울시장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업적이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의 어처구니 없도록 앞뒤가 맞지 않는 삶 그리고 인간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어리석고 교만하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물론 지켜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지킬 명예가 과연 있었던가 싶기도 해요, 상황이 이꼴이 되고 나니) 부인과 자식 친구들을 모조리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해버린 것이지요. 그들은 어쩌라고요? 그 성추행 대상이었던 여자분은 어쩌고요? 자살도 일종의 살인 아닌가요?
다시 이길녀선생의 9일 연휴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갑니다. 일전에 블로그에 적었듯이, 일어날만한 조건이 되면 세상일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나 몇몇 사람때문에 길게 보아 인간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며 감사드렸던 고 김근태선생도 또 사람들이 존경하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사실상 그분들이 아니었더라고 하더라도 길게보면 오늘날의 한국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에 의해서 우연히 역사의 수래바퀴에 딱 끼였던 인연으로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며 칭송하고 또 이곳에도 언급할 뿐이겠지요. 좀 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일전에 언급했던 ‘적선을 베푸는 것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짐작하듯이), 동물에게 베푸는 적선은 10배로 되돌아 오고, 사람에게 베푸는 적선은 100배, 수행자에게 베푸는 적선은… 사찰을 지어주는 적선은… 이렇게 죽 계속되다가 거의 끝에 가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적선의 은혜에는 0000000배’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고의 가성비를 (return on investment) 자랑하는 적선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한 순간이라도 붓다께서 말씀하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묵상하는 행위’라고 하네요. 어때요 놀랍지 않나요? 붓다께서는 결국에는 인간의 모든 행과 불행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신듯 한데요?
다시 말하자면, 민주화운동도 좋고 나라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무었보다 먼저 자신을 잘 돌보고 배우자와 가족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인간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면 비약인가요? 그것 먼저 하고 나서 민주화운동도 하고 서울시정도 돌보고 또 다른 야망도 가꿔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 같은데요? 그리고 두가지가 충돌할때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쪽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만약 그랬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필요한 지혜를 얻은 사람이었다면, 시장이 되고나서 가장먼저 밀실 침대를 없애고, 사무실과 주변의 벽을 유리로 갈아치우고 비서들을 적절한 사람들로 바꾸는 일을 아무 소리 소문없이 했었겠지요. 이미 말했듯이 자연의 지배를 받는 몸을 가진 우리 인간은 자주 어처구니없이 앞뒤가 맞지 않고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상황에 (오래) 빠지게 되면 특출하게 심신이 반응하는 사람들은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혜롭고 훌륭한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미리 알고서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에게 참으로 유리한 상황들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황진이가 옷 벗고 유혹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큰소리 칠 수 있나요? 만약 그랫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길게 보아 나중에 더 큰 이익을 취하려고 잠시 참았던 수준이겠지요.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황진이가 자신에게 다가올 이유도 원인도 애초에 제공하지 않는 것이, 그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 정도 되고나면, 황진이도 없고 뭐 보호하고 잣이고 할 아무것도 결국은 없는 상황이 되겠지요. 아마 이것을 붓다께서는 ‘불이 모두 꺼져버린 상태’ 즉 ‘니르바나’ 혹은 ‘열반’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열반은 고승들만 죽어야 들어가는 무슨 거룩한 천당 극락이 아니라 그대와 내가 이러한 배움과 실천의 결과로, 살아서 누리는 조화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곳과 비교하면 한국은 참으로 살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밥을 못먹거나 스마트폰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간섭하고 참견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심하게 끼치는 것이 흔하고 일반적인 곳이라, 어떤 도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한 2시간 이상의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해야 살아 남을수 있을까 말까한 곳이라고 하네요. 공감합니다. 어떤이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네요.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추함위에서만 존재하거나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모든 곳에서 그렇게 상대성과 가성비를 따지며 살지는 않아요. 자신 내면의 은밀하지만 진실한 아름다움은, 주변의 추함이나 서로 드러내어 계산하며 비교하는 상대적인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추한 주변과 가짜 아름다움을 멀리해야만 존재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Five Aggregates 이야기로 다음 글부터 되돌아 갑니다.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3)
오늘은 세번째로 ‘지나간 삽질의 기록’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초보골퍼 그리고 더 어리석은 군상이었기에, 나도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어떤 비법을 찾으려 시도 했었다. 내가 무슨 잭 니클라우스라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없는 코스에서 미친듯이 안되는 클럽을 가지고 연습을 하기도 했었고, 또 몇주 기간 동안 무슨 밤샘 시험공부를 하듯 온몸이 골병이 들어서 뻣어 일어날수 없을 때까지 미친듯이 연습을 했던 적도 몇차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시도들은 나의 KO패로 끝이 났었다 당연하게도. 골프가 그런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는 병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잘 깨닫지 못했었다.
차고에 그물망과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매일 저녁 공을 쳤었다. 때때로 잘못 맞아서 튄 드라이버샷이 그물을 벗어나 아찔하게 차고의 벽과 지붕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때 이웃들은 밤마다 옆집에서 들리던 따악~ 따악~ 그 소음을 어떻게 군말없이 참아 주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다. 보기플레이어 수준인 주제에 드라이버를 멀리 보내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양 드로샷을 수개월간 연습하였다. 결과적으로 드로샷을 칠 능력이 생겼고, 그런 나의 드로샷들이 한여름의 굳어진 페어웨이와 죽이 맞으면 250미터씩을, 무슨 전진회전 먹인 당구공처럼, 때굴때굴 굴러서 갈때도 자주 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대다수의 보통수준 골퍼들은 셋업 얼라인먼트의 미숙함으로 목표보다 실제로 훨씬 오른쪽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잘못된 조준이, 공의 5시 지점을 보통 노려서 치는 드로샷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질) 우연히 어울려 그럭저럭 거리와 방향성을 얻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래위에 쌓은 성이었으니 이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훅보다는 슬라이스성 구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프 코스는 많은 경우 슬라이스에 관대하게 설계되어 있다.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향할때 탈이 덜 나도록 오른쪽에 넉넉한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악성 훅 구질이 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그대로 오비가 나거나 이상하게(?) 왼쪽편에만 주로 있는 하천 절벽 혹은 기타 접근불가능 지역으로 드라이버샷이 영영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확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긴장하면 나의 드로샷은 쉽게 악성 훅으로 변질되어 라운드를 망쳐 놓기 시작하였다. 함께 백라운드 이상을 치면서도 ‘굿샷’ 이외에는 결코 어떤 말도 조언도 하지 않았던 그 아들이 딱 한번 안타까운 마음에 ‘드라이버 스윙궤도를 가파르게 만들어서 페이드를 치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탁구로 치자면 우회전 전진샷을 좌회전 컷트샷으로 바꾸는 것이랄까. 연습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원래부터 별 볼일 없던 드라이버샷이었지만 이제 때굴때굴 구르는 것을 거의 안하게 되니, 내가 이런저런 드라이버 클럽으로 온갖 짓을 해보아도 줄어든 거리는 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몸부림은 서서히 막을 내렸고 또 골프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욕심대로 안되니까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몇해가 훌쩍 지났다.
그저께 턱걸이를 14개 하면서 올해초에 세웠던 내 기록을 하나 늘였다. 집 마당에 설치된 철봉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혹은 무슨 일로라도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매달려서 한번에 5개 정도씩 턱걸이를 해온지가 오래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오가면서 한번에 10개씩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일회 20개를 이루고서 향후 20년을 유지하는 것이 내 희망이다. 년전에 내가 드로샷이니 뭐니 지랄을 떨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턱걸이고 또 갯수다. 물론 턱걸이와 더불어 산을 뛰는 하체운동도 해온지가 수년이 되었다. 직장 근처 산을 400회 이상 뛰어 올랐는데 1,0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이제 장타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근력이 강화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면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하다면 그깟 골프 장타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 콧대 높고 변심을 밥먹듯이 한다는 골프란 뇬은 어쩌면 똑같이 콧대 높고 건방진(?) 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김헌선생이 말했던 ‘독보다 커야 독이 보인다’는 말씀이 어쩌면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골프고수가 말했던 ‘간절히 원하지만 그 마음을 감추고, 그저 좀 비슷하게라도 되면 감사하겠다’ 정도로만 바라라던 그 말도 또 ‘너무 표적을 뚫어지게 보면서 조준하지 말고 좀 주변을 흐릿하게 보면서 조준하는 것이 좋다’던 말도 이제 조금씩 의미를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또다른 착각인가?
턱걸이에 필요한 반복된 연습과 결과적으로 변화된 신체는 어떤 묘수나 비법으로도 갈음되어질 수가 없다. 20년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다이어트도 신발도 심신이 변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당신을 그 산위로 데려다 줄 수가 없다. 1,000번을 오르고자 하는데. 골프가 턱걸이나 달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차차 체득하고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시간이 걸리며 그 접근방식을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여자탈의실과 골프이론은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훌륭한 말도 최근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
내가 턱걸이를 20개 한들 그리고 그 산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뛰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클럽에는 소위 말하는 싱글핸디가 회원의 15%다. 발에 채이는 것이 싱글이다. 내가 220미터 드라이버를 치건말건 싱글핸디가 되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누구도, 하다못해 클럽멤버들조차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턱걸이를 하고 산을 뛰며 드라이버 장타를 추구한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