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산, 잃어버린 지갑

비오네… ‘잃어버린 우산’ 생각나네. 일단 우순실님 노래 한번 듣고 나서… 그때 대학가요제에서 불렀던 그 노래를, 30년도 더 지나서 부르는데 멋있게 부르네.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나? ‘잃어버린 지갑’ 되돌려 받았었나? 그런 실험을 좀 대규모로 해봤는데 결과 도표는 아래에 있고 왕서방들이 좀 광분했다고 하네 🙂

도표를 보는 법은, 각 나라별로 노란색 점과 빨간색 점으로 표시된 것이, 각각 돈이 들어 있지 않았던 지갑과 돈이 들어 있었던 지갑이 회수된 비율일세. 예를 들자면, 맨 위에 보이는 스위스에서는, 돈이 들어 있지 않았던 지갑은 약 75% 그리고 돈이 들었던 지갑은 약 80% 회수 되었다는 것이네. 이 대규모의 실험은 (40개국 355개 도시에서 17,303개의 지갑으로 실험) 단순히 지갑을 길에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었고, 은행, 극장, 박물관, 우체국, 호텔 그리고 경찰서의 리셉션 데스크에 가서, 미리 준비한 ‘진짜로 잃어버린 듯이 정교하게 준비한 지갑을 (연락처가 이매일로 적혀 있는)’ 주면서 ‘방금 모통이에서 주웠는데, 난 지금 바쁘니 대신 좀 주인 찾아 주세요’ 하고는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방법으로 진행했다고 하네. 그리고 아래의 도표는 100일 이후에 이매일 연락이 오는가 하는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고.

이 실험은, 미국의 권위있는 잡지 ‘사이언스’에 게제된, 대학교수 3인이 (미시간대학교, 유타대학교, 쥐리히대학교) 발표한 논문일세. 그냥 재미 삼아 누가 해 본 것이 아니라.

내가 아래 도표를 보고 느낀 바는, 일단 쌀독에서 인심나고 (매우 부유하면 상당히 정직한 경향이 있고 또 반대로도 그런 것 같고), 적당한 부유함과 종교가 잘 공존하는 나라들도 정직하고, 가난한데 종교만으로는 정직하기 어렵고, 가난한데 종교조차도 없으면… 🙂 그리고 어떤 벼락부자들은 (Dawlat al-ʾImārāt al-ʿArabīyyah al-Muttaḥidah) 제 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어도 정직이 무었인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또 다른 가난한데 종교조차 없는 나라에서는 안 돌려주었다가는 혹시 КГБ에 끌려가서 작살날까봐… 🙂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일전에 내가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으면 할것이라던 그 잡담을 할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오늘 회사에서 미팅을 얼마나 열나고 심하게 오래 했던지 취하고 정신이 없는 기분이다.

어제 붓다께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신 이야기를 했었다. 누구에게 주셨을까? 처음에는 옛 스승을 찾아서 주려고 했었는데 (붓다에게도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럼 있었지. 단지 붓다만큼 안 유명할 뿐이지) 그분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기 때문에, 멀고 먼 길을 걸어서 옛날에 함께 고행하던 옛 동료 다섯명을 찾아가서 첫 가르침을 주셨다.

그 사람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언젠가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붓다께서는 그당시 유행했고 또 본인도 수년을 더불어 시도했던 고행 혹은 만행을 (안먹고 안자며 몸의 욕구를 묵살하여 어떤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고자 시도함) 중지한 이후에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중도’의 길로 수행하여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깨달은분, 성불한분, 최고의 진실을 깨우친분) 되셨다. 이런 소문을 그 옛 동료들도 들었는데,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잘 알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그 구도의 길을 저버리고 제 갈길을 마음대로 가서 잘먹고 잘살았다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 성불하여 자기들을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시큰둥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럴리가 없다. 미쳤던지 사기꾼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오면 아는체도 하지 말자. 자리를 마련해 주지도 말고 옷도 받아 주지 말자’ 다른 사람들도 동의 했다. 좀 지나서 붓다가 더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옷은 안 받아 주더라도 자리는 마련해 줄까보다’. 그리고 붓다가 그들을 만났을때 그들은 일어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옷을 받아 주었다 🙂 나는 이런 구절을 읽을때 그야말로 이 글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확신이 든다. 쪼잔하고 인간적인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뒤에서는 큰소리 쳤는데 앞에서는 쫄았어요~~~

(이제 옆길로 세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한국불교에서 소위 최대 최고의 경전으로 높이 받들어지는 그 유명한 경전의 시작을 듣는 순간, ‘갠지스강가의 모래 숫자 보다 더 많은 공덕을 쌓고…’ 하는 이 황당무계하고 무리한 표현을 딱 듣는 그 순간에, 이것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말씀하실 분이 아니다. 이것 인디라군이나 왕서방이 붓다를 사칭해서 제멋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라는 직감이 순간적으로 왔었다 (현대 학자들이 문헌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이 경전이 붓다의 저술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는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기록한 불교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 직감 틀린적도 많고 또 그것 가지고 내 억장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아요’ 🙂 하지만 예를들어, 당신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능력이 있는 아빠인지 말해준다고 가정하면, 내가 돈이 하늘의 은하수 만큼 많고 또 어제 촛대뼈 깐 졸개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 만큼 많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나? 당신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 사랑고백을 하는데, 하늘의 별, 온 세상의 모래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의 머릿칼을 곱한 숫자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겠나? (전두환을 포함한 대머리들 때문에 결과는 0이다) 물론 그런 넘들도 있겠지. 하지만 제대로 철들고 성숙한 아빠들이나 lover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지 싶다.

영어 표현에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라는 것이 있다. 그자들이 붓다를 사칭하며 그런 책을 쓰면서 몰랏던 것은 그리고 결코 알 길이 없었고 또 도달할 수도 없었던 것은, 붓다의 크기와 깊이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흉내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던 것이지 (=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정말 사기꾼은 아홉의 진실에 하나의 사기를 결정적인 장소와 시간에 슬쩍 집어 넣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많이 또 자주 보였던 그 아홉만을 기억하고 또 철썩같이 믿고 (특히 자기의 이익과 관련이 되는 경우에는) 그 결정적인 나머지 하나를 보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눈 앞에 가져다가 보여 주어도 믿지 않고 또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꾼보다 더 고수가 내려다 보면, 속는 사람도 또 속이는 사기꾼도 훤히 보이겠지. 양쪽 모두 하수들 아닌가. 그 사기꾼이 진정 최고수였다면, 사기를 치는 대신에 다른 정당하고 존경받는 다른 일을 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좋아서 사기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겠나. 주제넘게 크고 좋은 것을 쉽게 가지려 하다보니 미쳐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아니, 그 경전이 좋은 말씀이고 또 90% 붓다의 말씀과 의미가 통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 이렇게 말하고 싶나? 나도 하나 물어보자. ‘당신 진품 에르메스 가방은 그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고 싶어 하면서, 그 모양과 품질도 거의 똑 같은 모조품은 왜 100분의 1의 돈을 주고도 사려고 하지 않는가?’ 그 멋진 가방이 만약 ‘진달래 가방’ 같은 진짜 상표를 달고 독자 개발한 디자인으로 정당하게 100분의 1값으로 팔린다면 나도 사겠다 (상표때고 속여서 아내에게 줄 계획). 10%의 가짜건 어떻든 간에 가짜를 섞는 행위는 사기라니까. 그리고 사기 치는데는 숨겨진 저의가 있다니까. 당신의 이익이 아닌 그넘의 이익…

이야기 왕창 옆길로 샛네. 다시 그 다섯명의 옛 동료들과 붓다의 재회 장면으로 되돌아와서, 붓다가 앉아서 이야기를 좀 시작하려고 할때 그들은 한결같이 반발하였다. 그들도 한자락하는 당대 최고수들이었을 것이다. 사정해도 안통하니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들을 설득하고 붓다의 깨달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Dukkha의 설법을 그들에게 최초로 베푸셨다고 한다. 어떻게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입을 다물고 반발을 중지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까?

‘이보게 자네들의 기분을 잘 알겠고 또 나를 의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도 이해가 되네. 그런데 한가지만 부탁하세. 내 얼굴을 보아주게. 어떤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사실이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더욱 ‘내면의 진실이 실재한다면 얼굴과 언행을 통해서 반드시 표출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 다섯분의 옛 동료들은 붓다의 얼굴을 새삼 자세히 바라보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이분 얼굴에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들을만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니 입을 다물고 들어 보자’. 아! 이분들도 참으로 고수들이셨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선입견을 일순간 과감히 접고 붓다의 말씀을 들어 주었지 않았는가? 이것 쉬워 보여도 ‘나도 일가견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 싶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잔치상 어떻게 더 잘 차리는가 의논하다가, 상 뒤엎고 칼부림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이 다섯분들 나중에 어떻게 되셨냐고? 붓다의 가르침을 받들고 수행에 정진하여 모두 아라한이 (소위 ‘성불’)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훌륭하시다. 인간적으로도. 언젠가 말했듯이 붓다의 부인과 아들도, 남편 아빠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조르다가 (요 부분만 내가 지어냄, 찾아 와서 만났던 것은 사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내 직감과 육감이 틀린 적도 많았고 또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었다. 내친 김에 한가지만 더 하자. 한 십년 혹은 이십년 전에 소위 서울대생 몇명이, 부산인가 어디 지방에서 수행을 많이 했다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영향으로 집단으로(?) 출가했다고 매스컴에서 오르내리며 인간극장 이런데도 나오고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그 당시 방영 되었던 무슨 인간극장 같은 것을 건너 뛰며 보기도 했었는데, 그 지방에 산다는 수행자가 화면에 막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 그자의 얼굴에서 ‘싸움닭’ 상판을 직감적으로 보았던 거라. 아! 수행 챔피언쉽 타이틀 쟁탈전 하는 자로구나… 그 젊은 서울대생들, ‘나는 득도 성불하리라’는 건방과,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줄줄 흘러 넘치던 이십대 넘들이 얼마나 impressed 됬고 또 감격했었겠나 상상이 된다. 이넘들이 대부분 실제로 승려가 되었고 한둘은 아직도 매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그 중 한넘은 내가 보기에 스승을 뛰어 넘은 것 같다. 훗날 취해서 옆길로 새는 이야기에 다시 등장 할 것이니 기대하시라.

그리고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 혹시 내 글 몇개 읽어 보고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면, 다음번에 나를 만나서 한잔 할때까지 보류하시라. 이 글 읽고 내 상판이 어떨지 궁금해지지 않았나? 좀 어리버리한 이류 싸움닭 같은 모습이 아직 많긴 한데, 내 과거의 얼굴을 기억하는 그대들이 ‘아!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네’ 이렇게 느끼게 되길 희망한다 🙂

직장생활의 어려움

그저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곳에서는 한번 ‘정해진대로 늘 하듯이’ 해보고 안되면 ‘안되는가보다’ 하며 지나가거나, 내버려 두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나중에 찾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젠가 듣고서 나도 상당히 공감했는데, 영국과 일본에서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혹은 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 또 일전에 한국군 공병으로 미군 공병들과 작전을 많이 해본 분의 이야기에서, 미군 공병들은 정해진 교본에 따라서, 못 하나 나무 한쪽도 곧이 곧대로 따라서 하기 때문에, 같은 시설을 완공하는데 한국군 공병보다 시간도 더 걸리지만 정말 큰 차이는, 교본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더라는 것이 (따라서 문제 해결을 자기 윗선으로 돌린다) 기억이 난다. ‘전혀 모른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이곳에서 예전에, 많이 배우고 성공한 중국인들과 가끔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위에서 묘사한 영국 일본의 회의 문화 (머리를 함께 모아서 새로운 것에 대처하자) 혹은 미국의 교본 따라하기 (자기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것을 따라서 하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절차에 따른다)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어떤 중국인 매니져가 이런 말을 내게 직접 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어. 자기가 좀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꾸물거리며 의논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니 머리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

그때는 나도 공감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던 일도 많았고 또 지금도 경험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다양한 면들을, 흡사 양파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그리고 여러 수준의 진실들을 차차 보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그렇게 개인적으로 똑똑한 중국인들 그리고 인도인들의 역량을, 적재적소에서 잘 발휘하게 해서 결국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그 영국 일본 미국인들이고,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내고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개인 차원에서 동일한 시간에 벽돌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데는 이 사람들이 아마 그 중국인 매니져 같은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 벽돌의 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벽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오랜 기간에 걸쳐서 큰 건물들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짓는데는 이 사람들이 더 뛰어 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머리를 모아서 함께 계획을 하고 합의를 하고, 그 합의된 절차와 방법을 시스템을 만들어서 적용시키고 또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는 그런 능력에는, 개인의 뛰어남 보다는, 개미처럼 조직의 일부로 개인이 따르는 그런 능력이 좀 더 필요하지 싶고, 내가 만났던 그 중국인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와 방법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이것이 모이고 쌓이고 지속되면 한 나라의 국민성 그리고 어떤 집단의 특성이 되는 것이리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또 직장생활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아내와 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느꼈고 또 지금도 느끼고 있다. 이것 자각하기도 어렵고 또 자각하더라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신 아상과 (我相 ‘스스로가 가지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실체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중요한 가르침이다)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 알고 나서도 자기 생각의 습관 그리고 마음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요새도 헬조선이니 하면서 이민이니 무슨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하던데, 이렇게 잘 살게 된 한국 사람들이 옛날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서 혹은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렇게 떠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자아실현’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꿈꾸는데로 그곳에 가서 살게 되더라도 바로 위에서 말한 이런 차이 때문에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곳에서 직장도 다니며 상당한 정착을 이룬 후의 이야기다. 다시말해 세탁소나 구멍가게 하며 사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퍼런 눈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다투고 따지고 조정하면서 매니지를 하기도 하고 매니지를 받기도 하며 사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오늘날의 당신을 만들어 준, 그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언행들이, 그곳에서는 특이하거나 혹은 괴이한, 다시 말해 문제성 언행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이것 깨닫기도 어렵고 또 깨닫고 나서도 바꾸기는 더 어렵다. 우리의 DNA에 ingrained 되어 있다. 세포에 각인되어 있고 또 그것이 대를 잇는다. 그래서 머리 좋은 이민 2세 3세 중에서 의사나 공학박사는 많지만 성공한 변호사는 찾기가 좀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좀 사는 곳에서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충돌’이고 (혹은 인간들이 만든 집단끼리의 충돌) 그 해결책이 미분적분이나 화학구성의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도둑을 잡으려면 경찰이 더 세야 하듯이, 그런 충돌을 해결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려면, 그들보다 그 방면에서 한 두 수 더 높아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거라. 돈을 많이 벌게 되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이민와서 어려워 하는 그 게임을, 부모를 대신해서 종결 짓고 한을 풀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물론 아이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을 상상해 본적조차 없겠지. 어제 밤에 이 이야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무슨 클라이언트 대하듯이, 예의바른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키더라 🙂 지금 생각하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이런 것인가 상상하며 쓴웃음이 지어진다. 해탈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해탈에 대한 생각조차 아예 없는, 그래서 얻을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또 그 주체도 없고 헐…

생일선물

휴식기의 평균심박수가 어떻게 되나? 나는 1분에 60회 내외인데 내 연령대에서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하더라. 최대심박수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장소까지 뛰어 올라 간 직후에 재면 175-180정도. 혹시 의사인 그대가 걱정할까봐 말하는데, 이렇게 한지 이십년 넘었다. 이 두가지의 수치가 우리의 건강 그리고 수명과 관련이 적지 않다는 연구들이 있다. 한 번 관심을 가져 보시라. 이런 것들 아는체 떠들다가 달리기 중에 심장마비로 죽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만 뚝!

그곳에 오늘도 다녀 왔다. 보기만큼 엄청나게 높지는 않고 400미터 정도,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기 시작했는데 아마 350번 정도 갔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1,000번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한때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자갈을 갈때마다 하나씩 줏어다가 모았었는데 이제는 안한다.

아래의 사진은, 그곳에서 오늘 내려다 본 도시 그리고 올려다 본 풍력발전기. 상당히 험한 코스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오래된 전화를 늘 가지고 다닌다. 위치가 시내 부근이라서, 발전기는 그곳에 하나만 시범으로 옛날에 설치했고 실제 풍력발전기들은 (wind turbine) 조금 더 떨어진, 바닷가 높은 산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다.

오늘 자연이 아름다운 겨울 오후를 내게 선물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포장한 다음에 내 자신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 그곳까지 뛰어갔다 오는 한시간을. 물론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경치, 바람, 소리, 향기 모두 너무 좋아서 오늘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 그대가, 결혼한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를 혹은 그녀를 보면 늘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다. 이제 이해가 되나 🙂 10년 후 오늘, 다시 이자리에 오늘과 마찬가지로 뛰어와서 서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되돌아 오는 방향에, 우리 내외가 이 나라에 와서 첫 석달을 살았던 대학교 기혼자 기숙사 건물이 (독립가옥들) 있는 가파른 거리를 가끔 지나기도 하는데,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때 내가 앉아서 맥주를 마셨던 그 방 그 창문 모든 것이 그대로다. 물론 수많은 학생들이 그 집 그 방에서 울고 웃으며 왔다 갔겠지. 언젠가 그길을 뛰어 올라오면서, 장차 다시 사반세기가 지났을때, 이길을 아내와 손잡고 걸어 오르겠노라 희망하였다. 그때 이길을 뛰기는 좀 무리지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겠고. 내가 이 두가지 희망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10년 그리고 25년은, 나에게 땀흘리는 좋은 여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계획이 있고, 또 좀 나이든 사람들은 소위 bucket list 라고 죽기전에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일찌기, 비싼 온동화와 비싼 골프채가,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또 골프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는데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상당한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따라서 나의 목록에는 ‘구입’ 가능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

내가 최근들어 점점 깨닫는 것은, 오늘 내가 누린 이 소박한 즐거움조차도 나의 손으로 이룬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일부 노력을 기울였던 면은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그 좋은 한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들이 필요했고 또 많은 조건들이 맞았어야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내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개입할 능력도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 해볼 대상도 아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거나 혹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껏 누리되 내것이 아님을,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의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음을 나는 늘 기억하리라.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선물 – 그 찬란한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옛날에 심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누군가가 관리하는 트랙, 자유를 허락한 직장 그리고 동료들, 편안하고 따뜻한 신발과 옷을 만든이들, 스트레칭과 샤워를 했던 체육관을 돌보는 사람들, 안전을 도운 전화기등등 – 이 모든 것들이 적재적소에서 어울려 만들어 낸 실로 최대 최고의 생일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기쁘고 감사하다 🙂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비록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공직에서, 이런 하층민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