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이곳에서는 한번 ‘정해진대로 늘 하듯이’ 해보고 안되면 ‘안되는가보다’ 하며 지나가거나, 내버려 두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나중에 찾아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언젠가 듣고서 나도 상당히 공감했는데, 영국과 일본에서는 무슨 새로운 일이나 혹은 큰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회의’를 한다고 하더라. 또 일전에 한국군 공병으로 미군 공병들과 작전을 많이 해본 분의 이야기에서, 미군 공병들은 정해진 교본에 따라서, 못 하나 나무 한쪽도 곧이 곧대로 따라서 하기 때문에, 같은 시설을 완공하는데 한국군 공병보다 시간도 더 걸리지만 정말 큰 차이는, 교본에 나오지 않은 상황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더라는 것이 (따라서 문제 해결을 자기 윗선으로 돌린다) 기억이 난다. ‘전혀 모른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지만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이곳에서 예전에, 많이 배우고 성공한 중국인들과 가끔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방식은, 위에서 묘사한 영국 일본의 회의 문화 (머리를 함께 모아서 새로운 것에 대처하자) 혹은 미국의 교본 따라하기 (자기보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만든 것을 따라서 하고 그것을 넘어가는 것을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절차에 따른다)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제기업에서 함께 일했던 어떤 중국인 매니져가 이런 말을 내게 직접 하기도 하였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서구 사람들은) 융통성이 없어. 자기가 좀 적당히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저렇게 꾸물거리며 의논을 하고 절차를 밟아야 하니 머리가 좀 모자라는 것 같아’.
그때는 나도 공감했었고 또 개인적으로도 그런 경우를 경험했던 일도 많았고 또 지금도 경험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세상의 다양한 면들을, 흡사 양파의 껍질처럼 여러 겹의 그리고 여러 수준의 진실들을 차차 보게 되니 생각이 달라지더라.
그렇게 개인적으로 똑똑한 중국인들 그리고 인도인들의 역량을, 적재적소에서 잘 발휘하게 해서 결국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강대국을 건설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그 영국 일본 미국인들이고, 그리고 그 바탕에는 그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만들어내고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절차와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개인 차원에서 동일한 시간에 벽돌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데는 이 사람들이 아마 그 중국인 매니져 같은 사람들보다 뛰어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그 벽돌의 질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 벽돌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쳐 오랜 기간에 걸쳐서 큰 건물들을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짓는데는 이 사람들이 더 뛰어 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머리를 모아서 함께 계획을 하고 합의를 하고, 그 합의된 절차와 방법을 시스템을 만들어서 적용시키고 또 적절한 자원을 분배하는 그런 능력에는, 개인의 뛰어남 보다는, 개미처럼 조직의 일부로 개인이 따르는 그런 능력이 좀 더 필요하지 싶고, 내가 만났던 그 중국인들 그리고 많은 한국 사람들은,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만든 어떤 시스템이나 절차와 방법을 자연스레 받아들여 따르는 것이 어렵지 않은가 싶다. 이것이 모이고 쌓이고 지속되면 한 나라의 국민성 그리고 어떤 집단의 특성이 되는 것이리라.
지금 내가 말하고 있는 이것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또 직장생활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아내와 내가 전혀 다른 분야에서 오랫동안 이곳 사람들과 함께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느꼈고 또 지금도 느끼고 있다. 이것 자각하기도 어렵고 또 자각하더라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붓다께서 가르치신 아상과 (我相 ‘스스로가 가지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 –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실체가 없는 허구라고 한다. 중요한 가르침이다) 관련이 있지 않은가 싶다. 이런 붓다의 가르침을 머리로 알고 나서도 자기 생각의 습관 그리고 마음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요새도 헬조선이니 하면서 이민이니 무슨 스칸디나비아 라이프스타일 이야기를 하던데, 이렇게 잘 살게 된 한국 사람들이 옛날처럼 먹을 것이 부족해서 혹은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렇게 떠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위 ‘자아실현’ 그리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찾아서 가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그들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꿈꾸는데로 그곳에 가서 살게 되더라도 바로 위에서 말한 이런 차이 때문에 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곳에서 직장도 다니며 상당한 정착을 이룬 후의 이야기다. 다시말해 세탁소나 구멍가게 하며 사는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고, 퍼런 눈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며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과, 이해관계 속에서 다투고 따지고 조정하면서 매니지를 하기도 하고 매니지를 받기도 하며 사는 바로 그런 상황에서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당신이 태어나고 성장하여 오늘날의 당신을 만들어 준, 그 한국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언행들이, 그곳에서는 특이하거나 혹은 괴이한, 다시 말해 문제성 언행으로 보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건데, 이것 깨닫기도 어렵고 또 깨닫고 나서도 바꾸기는 더 어렵다. 우리의 DNA에 ingrained 되어 있다. 세포에 각인되어 있고 또 그것이 대를 잇는다. 그래서 머리 좋은 이민 2세 3세 중에서 의사나 공학박사는 많지만 성공한 변호사는 찾기가 좀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좀 사는 곳에서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의 대부분은 ‘인간과 인간의 이해 관계에서 생기는 미묘한 충돌’이고 (혹은 인간들이 만든 집단끼리의 충돌) 그 해결책이 미분적분이나 화학구성의 이해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도둑을 잡으려면 경찰이 더 세야 하듯이, 그런 충돌을 해결하는 것으로 밥벌이를 할려면, 그들보다 그 방면에서 한 두 수 더 높아야 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우리 아이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거라. 돈을 많이 벌게 되서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이민와서 어려워 하는 그 게임을, 부모를 대신해서 종결 짓고 한을 풀어 준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물론 아이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을 상상해 본적조차 없겠지. 어제 밤에 이 이야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 무슨 클라이언트 대하듯이, 예의바른 태도로 미소를 지으며 침묵을 지키더라 🙂 지금 생각하니,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 이런 것인가 상상하며 쓴웃음이 지어진다. 해탈이 무었인지도 모르고 해탈에 대한 생각조차 아예 없는, 그래서 얻을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고 또 그 주체도 없고 헐…
생일선물
휴식기의 평균심박수가 어떻게 되나? 나는 1분에 60회 내외인데 내 연령대에서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하더라. 최대심박수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장소까지 뛰어 올라 간 직후에 재면 175-180정도. 혹시 의사인 그대가 걱정할까봐 말하는데, 이렇게 한지 이십년 넘었다. 이 두가지의 수치가 우리의 건강 그리고 수명과 관련이 적지 않다는 연구들이 있다. 한 번 관심을 가져 보시라. 이런 것들 아는체 떠들다가 달리기 중에 심장마비로 죽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만 뚝!
그곳에 오늘도 다녀 왔다. 보기만큼 엄청나게 높지는 않고 400미터 정도,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기 시작했는데 아마 350번 정도 갔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1,000번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한때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자갈을 갈때마다 하나씩 줏어다가 모았었는데 이제는 안한다.
아래의 사진은, 그곳에서 오늘 내려다 본 도시 그리고 올려다 본 풍력발전기. 상당히 험한 코스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오래된 전화를 늘 가지고 다닌다. 위치가 시내 부근이라서, 발전기는 그곳에 하나만 시범으로 옛날에 설치했고 실제 풍력발전기들은 (wind turbine) 조금 더 떨어진, 바닷가 높은 산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다.
오늘 자연이 아름다운 겨울 오후를 내게 선물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포장한 다음에 내 자신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 그곳까지 뛰어갔다 오는 한시간을. 물론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경치, 바람, 소리, 향기 모두 너무 좋아서 오늘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 그대가, 결혼한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를 혹은 그녀를 보면 늘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다. 이제 이해가 되나 🙂 10년 후 오늘, 다시 이자리에 오늘과 마찬가지로 뛰어와서 서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되돌아 오는 방향에, 우리 내외가 이 나라에 와서 첫 석달을 살았던 대학교 기혼자 기숙사 건물이 (독립가옥들) 있는 가파른 거리를 가끔 지나기도 하는데,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때 내가 앉아서 맥주를 마셨던 그 방 그 창문 모든 것이 그대로다. 물론 수많은 학생들이 그 집 그 방에서 울고 웃으며 왔다 갔겠지. 언젠가 그길을 뛰어 올라오면서, 장차 다시 사반세기가 지났을때, 이길을 아내와 손잡고 걸어 오르겠노라 희망하였다. 그때 이길을 뛰기는 좀 무리지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겠고. 내가 이 두가지 희망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10년 그리고 25년은, 나에게 땀흘리는 좋은 여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계획이 있고, 또 좀 나이든 사람들은 소위 bucket list 라고 죽기전에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일찌기, 비싼 온동화와 비싼 골프채가,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또 골프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는데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상당한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따라서 나의 목록에는 ‘구입’ 가능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
내가 최근들어 점점 깨닫는 것은, 오늘 내가 누린 이 소박한 즐거움조차도 나의 손으로 이룬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일부 노력을 기울였던 면은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그 좋은 한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들이 필요했고 또 많은 조건들이 맞았어야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내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개입할 능력도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 해볼 대상도 아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거나 혹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껏 누리되 내것이 아님을,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의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음을 나는 늘 기억하리라.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선물 – 그 찬란한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옛날에 심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누군가가 관리하는 트랙, 자유를 허락한 직장 그리고 동료들, 편안하고 따뜻한 신발과 옷을 만든이들, 스트레칭과 샤워를 했던 체육관을 돌보는 사람들, 안전을 도운 전화기등등 – 이 모든 것들이 적재적소에서 어울려 만들어 낸 실로 최대 최고의 생일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기쁘고 감사하다 🙂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비록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공직에서, 이런 하층민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
시스템 확인
그때 오사카는 신입사원들이 시작하는 시기였다. 여자 신입사원들이 한결 같이 입고 있었던 그 베이지색 바바리처럼, 점잖고 튀지 않는 건물 디자인과 외벽 색깔이 한결 같아 보였던 오사카 시내. 우리 내외는 그중 하나에 들어가 일층에 있는 아케이드 상점들을 둘러 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수십명 신입사원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마도 첫날 소개식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문득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그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아내의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일본인 여자 두세명이 아마도 짧은 농담을 던지며 웃으며 갔던 기억이 난다. 잠시후 아내가 랄랄라라 하면서 나오는데, 동시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 혹은 보안회사에서 나온 듯한 남자가 급히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쳤다.
나는 이게 무슨일일까 왜 남자가 갑자기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를 지르는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 보았다. 아내도 의아한 듯. 그때 아주 적으나마 이것이 혹시 아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느낌이 뇌리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밖으로 점잖게 걸어 나오면서 물었다. ‘별 일 없었지?’ ‘응. 그런데 물내리는 손잡이를 찾는데 좀 어려웠네.’ 공용화장실은 포함한 일본의 거의 모든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때로는 복잡해 보이는 버턴이 여러개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내는 그 중에서 물내리는 버턴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찾았는데?’ ‘이곳은 새 건물이라서 그런지 더 복잡해 보이더만. 여기 저기 찾아 보다가 한쪽 구석 밑에 빨간색 버턴이 있길래 누르고 나왔지.’
그것은 비상벨이었다. 일본에 있는 다른 많은 시스템들처럼, 그 시스템도 완벽히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목격하였던 것이다 🙂
돈 잘 쓰는 법
하버드대학교 좋나? ‘하버드’하면 껌뻑 죽나?
지난 수 천년 혹은 수 만년간 인류가 총체적으로 더 폭력적이 되었을까 아니면 덜 폭력적이 되었을까? 이런 것 궁금하지 않나? 이런 것들을 연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들이 더 많이 모여 있고 또 그런 연구에 돈을 더 투자할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대학들이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었다는 것을 그대도 이미 알고 있겠지 🙂 이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엄청난 자료를 분석하여 출판한 이 책을 통하여 그 대답을 하고 있다.
그러면, 돈 잘 쓰는 방법이나 기술은 학자들이 연구를 안했을까? 물론 했었고 그 분야에 알려진 교수들도 있고 또 출판한 책들도 있다. 아래 타이틀이 그런 논문 중의 하나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한 사람도 저자에 끼어 있네. 이 사람 꽤 유명한 사람이고 우리가 궁금해 하는 유용한 연구들을 많이 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돈 벌기 바쁜 당신을 위해, 내가 요점만 의역해서 서비스 한다. 여덟 가지의 원칙을 이 교수들이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밝혀 냈다. 그런데 왜 아홉개가 적혀 있냐고? 내가 슬쩍 한 개 더 끼워 넣었다. 그것 굳이 찾아서 빼내고 싶거든 원본을 찾아 직접 읽어 보세요~~
If Money Doesn’t Make You Happy Then You Probably Aren’t Spending It Right.
Elizabeth W. Dunn.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Daniel T. Gilbert. Harvard University
Timothy D. Wilson. University of Virginia1. 물건을 사는 대신에 경험을 사는데 (얻는데) 돈을 쓰고 또 투자하라.
2. 자신을 위해서만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써라.
3. 당신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작은 구매를 더 자주하라. 크고 비싼 물건을 어쩌다 구입하는 것이 엄청난 기쁨과 즐거움을 오래 주는 것이 아니다.
4. 품질보증 연장이나 보험등에 지나친 돈을 쓰지 마라.
5. 구매한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소비(사용)하라.
6. 원하는 것들을 얻게 해 줄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에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돈을 쓰고 투자하라 (맹모삼천).
7. 지나친 옵션 혹은 부가기능을 피하라. 그 물건 자체를 매일 사용하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옵션이나 부가기능에 돈을 쓰지 마라.
8.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시샘 때문에 하는 구매를 경계하라.
9.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써서 행복을 찾는지 주의 깊게 보고 배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