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확인

그때 오사카는 신입사원들이 시작하는 시기였다. 여자 신입사원들이 한결 같이 입고 있었던 그 베이지색 바바리처럼, 점잖고 튀지 않는 건물 디자인과 외벽 색깔이 한결 같아 보였던 오사카 시내. 우리 내외는 그중 하나에 들어가 일층에 있는 아케이드 상점들을 둘러 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수십명 신입사원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마도 첫날 소개식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문득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그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아내의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일본인 여자 두세명이 아마도 짧은 농담을 던지며 웃으며 갔던 기억이 난다. 잠시후 아내가 랄랄라라 하면서 나오는데, 동시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 혹은 보안회사에서 나온 듯한 남자가 급히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쳤다.

나는 이게 무슨일일까 왜 남자가 갑자기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를 지르는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 보았다. 아내도 의아한 듯. 그때 아주 적으나마 이것이 혹시 아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느낌이 뇌리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밖으로 점잖게 걸어 나오면서 물었다. ‘별 일 없었지?’ ‘응. 그런데 물내리는 손잡이를 찾는데 좀 어려웠네.’ 공용화장실은 포함한 일본의 거의 모든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때로는 복잡해 보이는 버턴이 여러개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내는 그 중에서 물내리는 버턴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찾았는데?’ ‘이곳은 새 건물이라서 그런지 더 복잡해 보이더만. 여기 저기 찾아 보다가 한쪽 구석 밑에 빨간색 버턴이 있길래 누르고 나왔지.’

그것은 비상벨이었다. 일본에 있는 다른 많은 시스템들처럼, 그 시스템도 완벽히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목격하였던 것이다 🙂

돈 잘 쓰는 법

하버드대학교 좋나? ‘하버드’하면 껌뻑 죽나?

지난 수 천년 혹은 수 만년간 인류가 총체적으로 더 폭력적이 되었을까 아니면 덜 폭력적이 되었을까? 이런 것 궁금하지 않나? 이런 것들을 연구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학자들이 더 많이 모여 있고 또 그런 연구에 돈을 더 투자할 여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대학들이 세계 최고의 대학이 되었다는 것을 그대도 이미 알고 있겠지 🙂 이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엄청난 자료를 분석하여 출판한 이 책을 통하여 그 대답을 하고 있다.

그러면, 돈 잘 쓰는 방법이나 기술은 학자들이 연구를 안했을까? 물론 했었고 그 분야에 알려진 교수들도 있고 또 출판한 책들도 있다. 아래 타이틀이 그런 논문 중의 하나다. 하버드대학교 교수 한 사람도 저자에 끼어 있네. 이 사람 꽤 유명한 사람이고 우리가 궁금해 하는 유용한 연구들을 많이 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돈 벌기 바쁜 당신을 위해, 내가 요점만 의역해서 서비스 한다. 여덟 가지의 원칙을 이 교수들이 연구와 실험을 통하여 밝혀 냈다. 그런데 왜 아홉개가 적혀 있냐고? 내가 슬쩍 한 개 더 끼워 넣었다. 그것 굳이 찾아서 빼내고 싶거든 원본을 찾아 직접 읽어 보세요~~


If Money Doesn’t Make You Happy Then You Probably Aren’t Spending It Right.

Elizabeth W. Dunn.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Daniel T. Gilbert. Harvard University
Timothy D. Wilson. University of Virginia

1. 물건을 사는 대신에 경험을 사는데 (얻는데) 돈을 쓰고 또 투자하라.
2. 자신을 위해서만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돈을 써라.
3. 당신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작은 구매를 더 자주하라. 크고 비싼 물건을 어쩌다 구입하는 것이 엄청난 기쁨과 즐거움을 오래 주는 것이 아니다.
4. 품질보증 연장이나 보험등에 지나친 돈을 쓰지 마라.
5. 구매한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소비(사용)하라.
6. 원하는 것들을 얻게 해 줄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에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돈을 쓰고 투자하라 (맹모삼천).
7. 지나친 옵션 혹은 부가기능을 피하라. 그 물건 자체를 매일 사용하는데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옵션이나 부가기능에 돈을 쓰지 마라.
8.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시샘 때문에 하는 구매를 경계하라.
9.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돈을 써서 행복을 찾는지 주의 깊게 보고 배우라.

인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넓이뛰기 예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장차 남게 될 선수가 발판을 잘못 밟아 이미 두차례 실격을 당하고 마지막 시도를 남겨둔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흑인선수는 당시 넓이뛰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리안의 우월성을 떠벌리던 히틀러 면전이라 긴장했었나…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라 몹시 당황한다.

이때 한 독일선수가 다가온다. 그는 당시 나찌독일을 대표하는 올림픽 육상선수이며 최근 벌어진 유럽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넓이뛰기 3위를 차지 했었다. 출발선부터 발판까지를 이 미국인의 보폭으로 재보고서는 발판 훨씬 이전의 한 지점을 가르키며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평소 기록이라면 발판 훨씬 이전에서 뛰어 올라도 지금 예선 통과기록을 충분히 넘을 수가 있으니 위험을 감수한 무리한 시도를 하지말고 이 지점에서 점프하라…

예선을 통과했다. 둘이 결승에서 다시 만나 겨루었다. 그리고 시상대에 오른다. 나란히. 약간 낮은 곳에 선 그 독일선수가 이 흑인선수를 올려다 보며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함께 시상대에서 내려와 팔짱을 끼고 스타디움을 돌아 퇴장한다. 그 넘이 보고 있는데도.

이 흑인선수는 그때 그 독일인이 보여주었던 스포츠맨쉽, 그 용기와 우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으로 되돌아 가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자식을 둘 남겨두고 이 독일선수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사한다. 죽기전에 부탁하였다. 장차 자기 아들에게, 세상이 전쟁으로 이렇게 쪼게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던지를 꼭 좀 알려주라고.

종전 후에 이 미국인은 독일을 몇차례 방문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훌륭한 아버지와 함께 겨루었었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아들을 만나 그 약속을 지킨다. 또한 그 아들의 결혼식을 bestman이 되어 축하해 준다. 이들의 우정은 대대로 이어진다.

70년이 지났다. 그때 베를린 올림픽이 열였던 바로 그곳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고, 넓이뛰기 시상식에 그 독일선수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맨 오른쪽에 그 미국선수의 손녀가 함께 섰다. 중간에 흰 담뇨 뒤집어 쓴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되고.

인간이 이렇게 숭고하고 멋질 수 있다. 인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M은 중견 변호사였다.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를 원하였다. 그녀와 나는, 변호사와 지원부서 말단직원으로 만났다. 불과 석달 남짓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내 발로 기어 나왔던, 나에게는 악몽과 같았던 로펌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아무것도 아니었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었을 서로에게서 보았던지 우리는 그 인연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고 우리는 서로 오고 갔다. 그녀와 남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스카치 위스키도… 첫 아이를 임신한 그녀에게 배가 터지도록 LA갈비를 구워 먹였다. 알아 듣기 어려운 서로의(?) 영어발음을 넘어 존경과 우정을 아마도 서로에게서 느꼈던가 보다.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다.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변호사 그리고 또한 세 아들을 둔 특별한 엄마가 되었다. 십수년 동안 주고 받은 손편지가 한 박스다 – 가리늦게 왠 펜팔… 매년 잊지 않고 주고 받는 달력도 늘 내 서재에 걸려 있다.

1형 당뇨병으로 평생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산다. 일과 세 아이들 엄마 노릇 하는 그 빠쁜 와중에 틈틈히 운동을 계속 하였다. 얼마 전에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 뉴욕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내가 그녀의 처지였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인간승리다.

아내와 함께 에딘버러공항에 내릴 날이 올 것이다. 그 특별한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아들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넘들의 대가리를 만져줄 때가 올 것이다.

그 로펌에, 10년이 훨씬 지나 우리 가족 모두가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 로펌의 장학생이 되어 수여식에 온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다. 이제 아이는 그 옛날 M이 일했었던 그 회사에서 그녀의 옛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인연.

그때 그 사람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이자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또 한때 큰 회사에서 돈을 주무르는 일도 한적이 있어서, 한 큰 종교단체에 사무장 비스무래한 자리를 꽤차게 되었다. 매우 훌륭한 분을 근처에서 자주보며 그 큰 그릇의 언행과 삶을 보면서, ‘혹시 나도 격이 비슷한 것이 아닐까? 나 정도면 어쩌면 이런데 좀 끼일 수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자가, 자기와 유사한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면, 그들이 어떤 이유건 방식으로건 이자의 발상에 재동을 걸어 일종의 경고를 해주었을 테지만, 이자의 주위에는 그런 유용한(?) 자들이 없었다. 일단 이것 저것 주어 모아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비영리출판단체가 아니고서는 출판하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으로, 인쇄된 책 대부분은 아마 자기 서재에 꽃혀있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집을 방문하여 목격한 적은 없다 – 실재로 책은 대략 읽어 보았다. 역시 쓰레받기… 읽는 모든 사람들은 아는데 정작 쓴 본인만 모르는 경우. 장차 큰 비 내릴 징조…

어쩌다 이자와 한번 엮일 기회가 있었다. 이자가 무언가 강연을 하는 중에 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잠시 졸았다. 뒤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아마 이때 이넘이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라고… 사람이 좀 졸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 아니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니, 중요한 사람이 말씀하시는데 발칙하게 졸은 넘을 용서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이외에는 이넘과 엮인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10년에 한번씩, 어떤 종교단체들은 ‘Synod’ 라는 매우 큰 행사를 주최한다. 관련성직자들, 관련단체들 그리고 신도대표들이 참가하여 2박3일간 큰 회의를 한다. 나도 그때 우연히 참가 하게 되었다. 행사중 많은 소모임 토론등이 있는데, 한 토론장에서 이넘과 정통으로 마주 앉게 되었다. 난 아는 것도 없지만 그보다 꿀을 먹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글세 이넘이 주변에 앉은 참가자분들에게 ‘저 자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여기서 뭐하나’ 투의 조롱하는 말을 하는것을 듣게 되었다.

큰 행사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큰 행사장에서 오고가며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게 되며, 그 중에는 안면이 있거나 아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다. 한참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떤 사람이 내려오기에 문득 얼굴을 들어보니 그넘이었다. 그래도 때와 장소가 나를 경건하게 하는지라,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아마 이름도 불렀겠지. 이넘이 면전에서 완전히 무시하며 그대로 지나가는거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2박3일이 지나서 행사를 마치는 총회가 열렸다.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행사 마무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수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큰 강당에 여러명의 ‘젊고 잘 뛰는’ 지원자들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 준비가 되었고, 모두들 숨죽여 누군가가 첫 스타트를 끊기를 눈치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뒤에 내가 손을 들었고 이내 한 발빠른 젊은이가 내손에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나를 보낸 단체의 견해를,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용기있게 피력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그 넘의 놀랐을 상판이 문득 떠올랐다. 그넘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넘에게 받았던 것을 면전에서 되돌려 주었다. 그넘과 나 (그리고 그때 함께 계셨던 고맙고 유머러스 하셨던 그분) 이외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그넘은 잊기를 바랬고 또 편리하게 잊었을 것이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자는 이번에는 다른 줄에 서서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이자가 속한 정당은, 늘 대표 1인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는 1인당이었는데, 투표전후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바람에 당선확률이 0%었던 이넘이 졸지에 비례투표로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넘이, 당대표 즉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사람과 다툼을 벌이다가 탈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탈당하면 더 이상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 안된다. 처음부터 제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었고, 그 당수에게 기회를 되돌려 주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건데 이넘은 남은 한두해를 꼬박꼬박 봉급받으며 국회의원 노릇 잘 해먹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당수가 된 듣보잡 당을 하나 새로 만든다.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그저 수백표를 획득하며 우연히 올라왔었던 그 무대에서 영영 사라진다. 옛날 이자가 출판했던 그 책 수준이다. 그리고는 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자기 말을 듣으려고 하지 않는지 아마도 오늘날 까지 몹시 의아해 하는, 늙고 꼬장꼬장한 은퇴한 영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그릇이 달라지는가? 그릇의 크기가 있는가? 무었이 그것을 결정 짓는가?

오래전 한 월간지에서, 교도관으로 수십년 근무했던 분의 긴 인터뷰를 읽었다. 많은 질문 중에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선천적인 악인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 교도소에 오는 사람 10명중 1명 정도는 아마도 선천적인 악인이거나 보통 사람과 확연히 달라서, 비록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자가 되었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자의 이름이 ‘고든’이었고, 그때 이자가 악인이었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릇이 작은자였고 그러한 자신을 잘 보지도 또 알지도 못했던 자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그릇은 처음부터 너무 작았던지 아니면 결코 그 크기나 모양이 바뀌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 명 중의 한 명처럼…

내 자신도 내가 어떤 그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엮임’이 벌어지면, 쌍방 그릇의 크기와 내용물이(?)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Thomas the Tank Engine’ 만화에 나오는 노래중의 하나로, 나도 아이와 함께 자주 불렀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