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진화 했던 것이 대략 6만년전 쯤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으로 살게 된 기간을 넉넉 잡아 100년이라고 치면, 1/600 그리고 이것을 24시간 스케일로 환산하면 채 3분이 되지 않는다. 200년 이라고 쳐도 5분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살지 않았던 기간이 23시간 55분이고, 현재와 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 온 기간은 고작 5분 내외이다.

모택동이 집권하던 시절, 참새를 중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온 중국인들이 일제히 참새와의 전쟁을 치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참새를 잡았냐고? 물론 약도 놓고 공기총도 쏘았었겠지 하지만 엄청난 수의 참새는 그냥 날다가 지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쫒아 내서 아무대도 앉지를 못하게 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치이타처럼 빠르지도 못했고 사자같은 무서운 이빨과 앞발도 없었고 다른 동물들처럼 후각이나 청각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중 대부분은 인간들 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없다. 흡사 중국인들이 참새를 맨손으로 땅에 떨어트렸던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수 만년간, 사냥감이 지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뒤쫒아 가서 잡아다가 가족들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 아버지만 대표로 뛰었겠나? 그 참새 잡던 시절의 중국인들처럼, 아내도 아이들도 ‘모든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들고 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같이 걷고 또 뛰었었겠지. 자주 어쩌면 매일.

당연히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사는 것에 유전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 안에, 조상들의 삶이 대대로 녹아 있고, 역사가 들어 있고 또한 인류가 수 만년 혹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쌓아온 본능이 들어 있다. 이것 잊고 살고 무시하며 지내다가 언젠가는 큰 댓가를 치른다.

걷고 뛰고 운동하면 우리 뇌가 행복해지고 우리 몸이 건강해진다. 그 시간에 앉아서 딴짓을 계속하면 뇌가 불행해지고 몸이 아프게 될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다. 내 경험에 따라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내가 믿는데, 운동 특히 자연속에서 걷고 뛰고 땀흘리는 것을 좋아하며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치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사람치고 그런 운동 좋아하고 즐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는 줄 조차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안 걷고 안 달릴텐가? 머리 맑고 몸 건강하게 잘 산다는데도 🙂

일년 전 오늘

이곳은 어제부터 공식적인 겨울이다. 월요일 휴일을 낀 긴주말, 아니나 다를까 차가운 비가 주말 내내 쏟아지고 있다. 문득 일년 전 오늘이 생각났다.

일년 전 오늘, 나는 낯선 스톡홀름의 거리를 절룩거리며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눈에 뜨이는 전봇대란 전봇대는 모두 끌어 안고 스트레칭을 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다리 근육경련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당시 스칸디나비아를 강타했던 이상난동 기후는 (heat wave) 6월 초순 스톡홀름의 한낮 기온을 평년보다 10-15도 높은 섭시 30도 이상으로 끌어 올려, 혹시 너무 추울까 하여 정오에 시작하는 이 스톡홀름 마라톤을 무더위와의 싸움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풀코스 마라톤은 어쩌면 인간의 기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야 하는 좀 잔인한 면도 있는 것 같다. 30시간 이상이 걸렸던 여행과 더불어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시차로 인해 마라톤 전 사흘 동안 총 5시간 정도 밖에는 못잤던 상황, 지난 수차례의 마라톤 여행들처럼 음식을 준비해 주고 보살펴 주는 가족이 없이 홀로 하는 여행, 그리고 시내를 계속 달리는 코스에 스톡홀름 시민들이 곳곳에서 엄청나게 응원을 한다는 이야기에 혹시라도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봐 출발전에 거의 마시지 않았던 물… 이런 조건들이 모여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풀코스 마라톤 준비는, 매 주말에 하는 하프마라톤 혹은 30킬로 내외의 장거리 훈련을 5-10회 정도 보통 포함한다. 나 역시 최대 35킬로 거리의 장거리 훈련을 수차례 하고 떠났었다. 하지만 그날, 약 10킬로를 지나는 순간부터 불쾌하고 이상한 느낌으로 찾아온 근육경련.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난리를 쳐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장딴지에서 시작된 근육경련은 허벅지를 타고 거의 사타구니까지 올라와 한발짝을 한발짝을 떼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반쯤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물이란 물은 모두 퍼마시고 눈에 뜨이는 샤워란 샤워에는 모조리 뛰어 들어가 물을 뒤집어 쓴 몰골로 그 아름다운 도시의 거리를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스톡홀름 올림픽이 열렸던 그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올 무렵 겨우 정신이 되돌아 왔었던 것 같다. 중간 중간에 서있던 구급차들 (조용히 걸어 들어가면 조용히 마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병원 천막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타디움 트랙에서 사진 찍히는 줄 알며 폼 잡았던 사진들 말고, 마라톤 중간 중간에 찍혔던 사진들을 나중에 가족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무척 놀라워 했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은 생소 하였다 🙂 하지만 나는 5시간의 사투끝에 결승선을 내발로 뛰어 통과했고, 완주 기념 티셔츠를 입고 매달을 목에 걸었다.

어제 있었던 41회 스톡홀름 마라톤 영상을 보면서 눈에 익은 거리들과 건물들 그리고 그 분위기를 기억하며 그날이 몹시 그리웠다. 아! 가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스톡홀름의 거리를 마음껏 신나게 달려 보았으면… 그날, 가슴에 적힌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내 손에 물을 쥐어 주던 그 이름 모를 스웨덴 사람, 잘 살고 있으려나…

그 당시에 썼던 블로그 글에, 나는 땀 흘리는 봄 여름과 추수하는 가을을 이야기 했었다. 한가지 더 배웠던 것이 있다. 땀 흘리는 봄 여름이 반드시 추수하는 가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어떤 추수의 결과도 내가 땀 흘리며 행복했던 지난 봄 여름을 퇴색 시키거나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도.

일년 전 그때 나는 행복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 참 행복하다.

레지나 보따리장사, 매리 레인보우

기차 혹은 기차여행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근래에 ‘인도 국경을 지나는 기차들’ 이라는 3부작 BBC 도큐멘터리를 보다가, ‘레지나’라는 네팔 여자의 삶을 잠시 옅볼 기회가 있었다.

레지나는 네팔과 인도 국경간 몇 십킬로 구간을 오가는 그 완전 고물 기차의 단골 고객이다. 그녀는 네팔 상점들에서 (고객들이) 원하는 물건들을, 인도에서 사다가 기차로 밀반입 해주고 얻는 적은 수수료로 아들 둘과 함께 사는 여자다. 십대 중반에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고서는 열아홉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 받고 그때부터 두 아이들을 기르며 홀로 살아 왔다. 최빈국에서도 하층 삶을 산다.

비록 국경은 없으나, 때때로 네팔 군경들이 기차가 도착할 때를 기다렸다가 출입구를 막고 밀수를 단속하여 물건들을 압수한다. 관세를 내야만 되찾을 수 있는데, 하루벌어 하루먹는데 무슨 관세를 어떻게 내나… 도큐멘터리 속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레지나는 죽을 힘을 다해 보따리를 지키려고 하고 다만 하나라도 빼돌려 담장 밖으로 아들과 함께 가지고 나가려고 사력을 다한다. 하지만 실패하고 좌절하며 슬퍼한다.

레지나는 ‘unshakable spirit’의 소유자다. 달리 좋은 표현을 잘 모르겠다. ‘불굴의 영혼’? 그녀는 보따리장사지만, 가수요 신앙인이며 또한 달변의 철학자이기도 하다. 하버드 옥스포드 박사들이 쓴 그 어떤 책들 보다도 더 많은 훌륭한 가르침을 나는 레지나에게서 받는다.

밀수품 보따리를 잔뜩 실고 가는 고물 기차에서 노래하던 레지나. 무슬렘이면서도 힌두교 큰 축제때 염소 한 마리를 다른 사람들처럼 자기도 바치던 레지나. 그녀가 말한다 ‘그들의 신과 나의 신이 다르지 않다. 오직 인간의 마음이 분별할 뿐이다’. 다음날 떠날 기차를 기다리며 허름한 곳에서 고단한 몸을 누이면서 ‘비록 거적때기지만 (어떤 사람들처럼 몸을 팔지 않고) 내 손으로 벌어서 산 내 것 위에 눕는다’고 말하던 레지나. 자라나는 아들들이 엄마를 위해주고 또 밖에서 허드렛일이라도 하여 작은 돈이라도 벌어 오는데 감동해서 기뻐하던 엄마 레지나. 그때 레지나가 말하더라. ‘내 삶이 하도 힘이 들어서,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꺼졌다는 생각에 죽고 싶었던 적도 많았었다’고. ‘그런데 이제 아이들이 이리 잘 해주니 내 영혼이 충만하고 기쁘다’고 (Now my soul is content). 죽기 살기로 보따리 장사를 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하루벌어 하루먹으니. 그 고물 기차가 자기에게는 삶의 터전이요 기쁨이요 신 (god)이라고 하던 레지나.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려나… 이 훌륭한 인간을, 그 불굴의 의지를, 그 아름다운 영혼을 만나고 싶다.

이제 그 고물 기차는 영원히 멈추었고, 협괘는 부서졌으며, 낡은 역건물은 허물어졌다. 중국과 인도의 자본을 들여와, 세 나라를 연결하는 최신식 기차를 네팔 정부가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아! 레지나. 잘 살고 있기를…


아내가 만든 새로운 음식을 ‘레인보우 매리’라고 명명하였다. 여러가지의 채소를 오븐에 구운 다음에, 한 두가지 소스를 위에 뿌린 것이다. 맛있겠나 🙂 ‘매리 베리’라는 우리 내외가 좋아하는 요리사로부터 티비를 보며 배운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내가 음식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매리의 무지개’.

매리는 84살 할머니 요리사인데, 지금도 현역으로 티비에서 요리를 가르치고 또 책도 쓰고 한다. 영어권에서 가장 알려진 요리사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왼손이, 아마도 류머티스 때문에, 손가락들이 기형이 되어 제 구실을 못한다. 얼굴은 화장을 하지만 목 아래로는 쪼글쪼글한 상할머니다. 그 연세에 그 손으로, 보통 사람들이 만들기 쉽고 또 좋아할 음식들을 소개하고 또 쉽게 배우도록 도와 준다. 은근한 진짜 유머도 있고 또 멋도 잘 부린다. 우리 내외가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존경한다. 이 분은 끝까지 자신을 ‘쓸모 있는 사람’으로 지켜내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태워 촛불을 밝혀 자신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빛을 그리고 기쁨을 주는 삶을 산다. ‘래인보우 매리’를 함께 먹으면서 아내에게 ‘당신도 아마 저 분처럼 살게 될 것이오’ 덕담을 건넨다. 어떤 사람들은 흡사 그런 천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도 똑같이 힘들고 아무것도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레지나 보다 어쩌면 수 백배 더 부유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매리 베리 할머니 보다 월등히 젊고 좋은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환경이 인간을 좌우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또 인간의 행복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결국에는 스스로 노력해서 홀로 성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계단,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고 스스로 알아내어 스스로 올라야 하는, 그 계단이 인간의 품격을 결정짓고, 행과 불행을 좌우하며 또한 해탈 열반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전에 나는, 기차에 사람들이 매달리고 지붕에 잔뜩 앉고 또 동물들과 사람들이 섞여 있는 그런 사진을 보면, ‘아! 어떻게 저렇게 사나’ 생각했었다. 마치 그 사람들이, 함께 있는 그 동물들과 비슷한 수준인 것처럼. 레지나를 알게 된 나는 이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와 똑 같은 삶이 그곳에도 있다는, 어쩌면 어처구니 없도록 명백한,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인간의 품격은, 그가 무었을 먹고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집에 사는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되기에.

레지나 그리고 매리 베리. 두 아름답고 훌륭한 인간을 본다.

나의 도마

기계체조 종목중에 ‘도마’라는 (뜀틀) 종목이 있다. 도마의 기술중에 ‘양1’ 이라는, 국제 체조 연맹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기술이 있는데, 처음에는 최고 단이도 기술 (유일무이) 이었다가 지금은 최고 단이도 기술중의 하나가 (3개 중의 하나) 되었다고 한다.

양학선이라는 한국 체조 선수의 이름을 본땄으니 말하지 않아도 이 분이 ‘창조한’ 기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분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이 지구상에서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이 기술을 구사하여 금매달을 땄다. 그 당시 ‘양1’은 유일한 최고 난이도의 기술이었으니, 자신이 연습하고 개발한 이 기술을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하기만 하면, 다른 참가자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이미 알려진 다른 기술들을 구사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는 그렇게 금매달을 땄다. 한국 체조 역사상 최초의 금매달이었다. 이렇게 금매달 따는 분도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막연한 소리 같지만, 연구하고 노력하면 점점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시도하면서, 실패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기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읽는다고 알게 되며, 또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양1’을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어도 그대의 몸으로 구현할 수 없다. 그 비슷한 동작, 아니 도마를 어떻게 한 번 뛰어 넘을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실패나 괴로움 갈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서, 당신도 마치 무슨 전문가가 된 것처럼 어떤 도마의 이론을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과 주변을 불행에 빠트리는 길이다.

당신의 몸매가 어떻든지 또 어떤 운동 능력을 가졌든지 간에, 당신 자신의 도마를 시도하라. 이것이 사는 길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시도 하는 삶이 그 촛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있을때, 시도 하지 않는 삶은 그 촛점을 남들에게 맞추고 눈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단지 보고 듣고 읽고 또 떠들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고 또 늙어가는 것이다.

나는 왜 27살 먹은 양학선씨를 ‘이 분’이라는 존칭으로 부르고 있는가? 금매달 때문에? 그보다는, 이 분이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날’을 만든 분이기 때문이다. 위대하지 않은가?

오늘, 남들과 말고, 당신 자신과 갈등하며 괴로워 했던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혹은 세상살이가 너무 자연스럽고 수월 했던가?

양학선 선수의 도마 한 번 보고 싶나? 그래도 🙂

열아홉 후안마이의 마지막 편지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인이 기뻐 보이지 않으면 남편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은 왜 오히려 아내에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아세요?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 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저는 당신의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려 주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진실된 남편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되요. 물론 부부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처가 너무 많아 결국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 사람의 감정을 존경하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는 상황들과 원망하게 하는 상황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되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존심이 있고 자신을 ‘정답’에 서게 하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아세요? 제가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는 호치민 시에서 일을 했어요. 당신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저는 가정을 위해서 일을 나가야 했고,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봉급은 얼마 못 받았지요. 저는 노동이 필요한 일도 했었어요.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그것이 가축을 기르는 일이든, 농작을 하는 일이든. 가족들은 노동일로 벼를 심고 베는 일을 했어요.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입을 것과 먹을 것만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랬을 뿐이에요. 저도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하고 또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당신이 저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저는 베트남에 돌아가 저를 잘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하여 다시 처음처럼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희망은 이제 이것뿐이에요. 당신과 전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그 경위에 어찌 되었던 간에 피고인과 결혼하여 피고인만을 의지하여 말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온 19세의 피해자를 무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그 결과가 지극히 무거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가 남긴 편지 내용을 보자. 피해자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피고인과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애틋한 부부관계를 이루고, 한국어를 빨리 배워 한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한국에 와 피고인과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의 부족, 어려운 경제적 형편 및 언어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의 무관심과 통제로 인하여 피고인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끝에 피고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와 같은 반응을 보고 피해자가 처음부터 피고인과 결혼할 생각 없이 사기결혼을 하였다고 오해한 것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른 주된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피고인의 피해망상적 사고경향과 음주 중 폭력습벽이 더 해져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사건 범행은 결국 계획적이거나 미리 의도된 범행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피고인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 피해망상적 사고경향 및 음주 중 폭력습벽에 기인한 것으로서 피고인의 이러한 그릇된 성행을 교정하기 위하여서도 상당한 기간동안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의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시각을 바꾸어 이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돌아보고 싶다. 특히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남성과 제3세계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국제결혼의 명암을 재조명해 보도록 하고 있다. 배우자감을 국내에서 찾을 처지가 되지 못했던 피고인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여 베트남 현지에 임하여 졸속으로 피해자를 만나게 된 전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그저 피해자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단 몇 분만에 피해자를 배우자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누구 집 자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 준 바 없었고, 그래서 이를 전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또한 스스로 알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뒷감당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지탄을 피고인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혼인은 사랑의 결실로 소중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아온 피해자 후안마이. 그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19세 후안마이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아니되리라는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적 이유 때문이다.

이 법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사람과 결혼하여 이역만리 땅에 온 후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되어 19세의 짧은 인생을 마친 피해자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었다. 그 전제로 피고인이나 결혼을 알선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하여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리려고 하였다.

결혼정보업체는 피해자의 성장배경, 생활환경 및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에 대한 이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관계당국이나 피고인을 통하여서도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릴 길을 찾지 못한 채 이 사건 판결에 이른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피고인으로서도 피해자의 가족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기회를 갖지도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전과관계, 범행의 동기, 경위, 결과 및 범행 이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12년을 선고한 제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전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