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마라톤

아를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정오가 좀 지났다. 시간을 10시간 뒤로 돌릴 만큼 길고 힘든 여행이었다. 아내도 일단 안심할 것이다. 참으로 오고 싶어 했던 곳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마음속에서 간직하며 그리워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늘 흥미로워 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그 멋진 SAAB 자동차도 그 대학도시들도 또 영화들도. 어린시절 나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 예뻣던 스웨덴 소녀는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만나지 않는 것이 낫겠지만 이곳은 늘 생각하면 즐거운 내 마음의 작은 사치라 할 수 있다.

나는 작은 백팩을 매고 흡사 늘 그랬었던 것처럼 시내로 들어 가는 기차를 탄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와 일상이 마치 내가 전에 일부였었기라도 한 듯 익숙하다. 고색창연한 중앙역 건물을 빠져 나와 호텔 방향의 출구를 따라 거리로 나온다. 21세기 인터넷 기술의 도움으로 수만리 밖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걸어 보았던 익숙한 거리다. 곧바로 호텔을 찾아 들어 간다. 4명의 아가씨들이 리셉션 데스크에서 반겨 주는데 ‘이것이 스웨덴에서 방문객을 환영하는 방식인가요?’ 농담을 하니 모두들 활짝 웃는다. 나를 도와주는 스웨덴 아가씨는, 내가 좋아하는 ‘잉리드 베리만’ 이라는 이름의 장미꽃처럼 참으로 아름답다.

이제 이 도시의 거리들을 내 발로 뛰어 보게 되었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며 오래전 읽었던 최인호작가의 ‘깊고 푸른밤’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남자는 차를 몰고 미국을 횡단하며 작은 도시들을 지나며 생각한다. 지금 이 거리를 지나는 저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같은 모습으로 주차를 하고 햄버거를 사며 맥주를 마시고 아이를 낳고 웃고 울다가 죽게 되겠지. 내가 자기들의 삶을 지금 차창밖으로 바라 보는 줄 상상도 하지 못하며 말이다.

어제는 내가 어떤 거리 어떤 일상의 일부였는데 오늘은 어떤 거리 어떤 일상을 바라보는 이방인이 되어 여기에 있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이만명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대와 희망으로 함께 섰다. 말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온 곳도 다르고 갈 곳도 다르다. 이 넓은 우주 그리고 그 끝없는 시간속에서 그야말로 우연히도 잠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속에 서 있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무슨 기록도 다짐도 목표도 이제 더 이상 없다. 내가 사랑하게 되었던 그 가파른 산길도 끝없이 발랐던 선크림도 또 *을 쌋던 그 길가의 숲도. 난 이 시간을 위해 그것들을 잠시 빌렸을 뿐이었다. 출발전 가슴 두근거리는 작은 흥분…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달리고 달려 이제 백년 전 올림픽이 열렸었던 그 스타디움으로 뛰어 들어 온다. 그때 그 올림픽의 함성은 어디로 갔고 또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백년이 지난 오늘 어떤 우연과 또 의지로 내가 이 곳에 오게 되었다. 또 다른 백년이 지난 후에도 또 다른 사람들과 함성들이 이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때 그 함성의 주인들은, 백년 전 오늘 이 순간의 나를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삶과 인연이 이렇게 지나가고 또 오가는지… 나의 마라톤은 끝이 났고 나는 절룩거리며 그 공원 옆 호텔로 되돌아 왔다. 파란색 기념 티셔츠를 입고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서.

유람선을 탄다. 이 바다 그리고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도시와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내가 아직도 가끔 부르는 동요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리고 Carola가 부르는 이 아름다운 노래 ‘Song to the North’. 그때 그 펜팔 친구도 지금은 이 가수와 비슷한 중년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대는 잊은지 오래겠지만 난 그 인연으로 이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여기에 와 있다네.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행복하시오.

수십 년 전 한때 유학을 꿈꾸었던 그 대학. 일요일의 고요한 캠퍼스를 찾아와 조용히 걸어 본다. 그 단과대학 건물 앞에 섰다. 내가 공부했었었을지도 몰랐던… 지난 수십 년 간 나는 지금 내눈에 보이는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내가 그때 만약 이곳에 왔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나의 인연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인간의 삶은 일부의 숙명과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부의 작위가 어울려 서서히 무르익으며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되돌아 오는 길에 공원벤치에 앉아 이 이야기를 전부 아는 아내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어쩐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나의 삶 나의 인연에 대한 큰 고마움과 더불어,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을 뒤늦게 보게 되면서 생기는 감상적인 아쉬움 때문이리라.

하지만 삶의 본질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달라질 수가 없으며,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단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물어 보았지만 부자건 성직자건 늙은이건 그 누구도 ‘되돌아 가고 싶다’ 라고 대답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어떤 조건속에 던져져 시작 된 우리의 삶. 다만 그 조건속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이나마 인간의 길을 찾고 걷다가 떠나기를 나는 희망할 뿐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며 그저께 내가 실로 온 몸으로 그 인연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를 뒤로 한다. 이 사람들은 내일 또 출근을 하고 가구를 만들며 여름휴가를 계획할 것이다. 이곳에는 여름이 깊어가고 또 내가 사는 곳에는 겨울이 깊어가고… 내가 다시 이 여름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공원 그 벤치에 다시 앉을 수 있을까? 인연이 허락 하면…

일상의 제자리로 되돌아 오고 나니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던 것 같고 또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육개월 전의 내가 아니다. 며칠전 그 이벤트 때문이 아니다. 인연을 따라 내가 그 목표를 ‘선택’ 했었고 또 그것을 내 삶의 중요한 의미로 삼아 노력했었던 그 시간이 나를 변하게 했고 내 삶을 조금은 바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바뀌어진 삶은 장차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선택,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을 허락 할 것이다. 추수 뒤에는 새 봄이 오고 그때 농부는 또 다시 씨를 뿌린다. 세상은 추수에 맞추어 돌아가지만 내 삶은 씨뿌리는 봄 그리고 땀흘리는 여름이 하이라이트. 추수는 선택의 시간이 아니고 지나간 선택의 결과일 뿐. 나는 봄 그리고 여름에 이미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내가 씨뿌리고 땀흘리는 한, 내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더닝 크루거 효과

‘더닝-크루거 효과’ 라고 들어 보았나? 이곳에 간략한 설명이 있다.

누군가가 좀 과장해서 그린 그래프지만 적나라하다. 경험과 실력이 거의 전무한 사람들이 최고 수준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고, 계속 경험과 실력을 쌓아가면서도 자신감은 점점 낮아지면서 거의 바닥을 치다가, 아주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아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될때 비로소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그 자신감도 초보자들의 자신감에 비해서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실제 논문에 사용된 그래프다. 검사결과 최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검사전 자신의 능력이 60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했었고 (100명 중에서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이 40명 정도 있을 것으로 예측), 상위 25%에 실제로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70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그리고 실제로 최상위에 속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 75번째 정도 백분위수에 해당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들 인생도 어쩌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대는 어떤 그룹에 속할것으로 생각하는가?

인연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넓이뛰기 예선이 벌어지고 있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장차 남게 될 선수가 발판을 잘못 밟아 이미 두차례 실격을 당하고 마지막 시도를 남겨둔 긴장된 순간이었다. 이 흑인선수는 당시 넓이뛰기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리안의 우월성을 떠벌리던 히틀러 면전이라 긴장했었나… 이전에는 결코 일어난 적이 없었던 일이라 몹시 당황한다.

이때 한 독일선수가 다가온다. 그는 당시 나찌독일을 대표하는 올림픽 육상선수이며 최근 벌어진 유럽육상선수권 대회에서 넓이뛰기 3위를 차지 했었다. 출발선부터 발판까지를 이 미국인의 보폭으로 재보고서는 발판 훨씬 이전의 한 지점을 가르키며 조용히 말한다. 당신의 평소 기록이라면 발판 훨씬 이전에서 뛰어 올라도 지금 예선 통과기록을 충분히 넘을 수가 있으니 위험을 감수한 무리한 시도를 하지말고 이 지점에서 점프하라…

예선을 통과했다. 둘이 결승에서 다시 만나 겨루었다. 그리고 시상대에 오른다. 나란히. 약간 낮은 곳에 선 그 독일선수가 이 흑인선수를 올려다 보며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함께 시상대에서 내려와 팔짱을 끼고 스타디움을 돌아 퇴장한다. 그 넘이 보고 있는데도.

이 흑인선수는 그때 그 독일인이 보여주었던 스포츠맨쉽, 그 용기와 우정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으로 되돌아 가서 편지를 주고 받는다. 자식을 둘 남겨두고 이 독일선수는 이탈리아 전선에서 전사한다. 죽기전에 부탁하였다. 장차 자기 아들에게, 세상이 전쟁으로 이렇게 쪼게지기 전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었던지를 꼭 좀 알려주라고.

종전 후에 이 미국인은 독일을 몇차례 방문한다. 그리고 그때 그의 훌륭한 아버지와 함께 겨루었었던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아들을 만나 그 약속을 지킨다. 또한 그 아들의 결혼식을 bestman이 되어 축하해 준다. 이들의 우정은 대대로 이어진다.

70년이 지났다. 그때 베를린 올림픽이 열였던 바로 그곳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렸고, 넓이뛰기 시상식에 그 독일선수의 아들과 손녀 그리고 맨 오른쪽에 그 미국선수의 손녀가 함께 섰다. 중간에 흰 담뇨 뒤집어 쓴 사람은 누군지 몰라도 되고.

인간이 이렇게 숭고하고 멋질 수 있다. 인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M은 중견 변호사였다. 남편과 함께 스코틀랜드에서 왔다.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기를 원하였다. 그녀와 나는, 변호사와 지원부서 말단직원으로 만났다. 불과 석달 남짓 다니다가 때려치우고 내 발로 기어 나왔던, 나에게는 악몽과 같았던 로펌이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던 아무것도 아니었던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무었을 서로에게서 보았던지 우리는 그 인연을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고 우리는 서로 오고 갔다. 그녀와 남편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고 서로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좋은 스카치 위스키도… 첫 아이를 임신한 그녀에게 배가 터지도록 LA갈비를 구워 먹였다. 알아 듣기 어려운 서로의(?) 영어발음을 넘어 존경과 우정을 아마도 서로에게서 느꼈던가 보다.

자기 나라로 되돌아 갔다. 열심히 일하는 능력있는 변호사 그리고 또한 세 아들을 둔 특별한 엄마가 되었다. 십수년 동안 주고 받은 손편지가 한 박스다 – 가리늦게 왠 펜팔… 매년 잊지 않고 주고 받는 달력도 늘 내 서재에 걸려 있다.

1형 당뇨병으로 평생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산다. 일과 세 아이들 엄마 노릇 하는 그 빠쁜 와중에 틈틈히 운동을 계속 하였다. 얼마 전에 사진과 편지를 받았다. 뉴욕마라톤을 완주하였다. 내가 그녀의 처지였었다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인간승리다.

아내와 함께 에딘버러공항에 내릴 날이 올 것이다. 그 특별한 엄마, 아빠 그리고 그 아들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그넘들의 대가리를 만져줄 때가 올 것이다.

그 로펌에, 10년이 훨씬 지나 우리 가족 모두가 방문하게 되었다. 아이가 그 로펌의 장학생이 되어 수여식에 온가족이 초대를 받았다. 그리고 몇 년이 더 지났다. 이제 아이는 그 옛날 M이 일했었던 그 회사에서 그녀의 옛 동료들과 함께 일한다.

인연.

구두를 닦는다.

아내의 구두를 닦는다. 매일 밤 닦는다.

내일 출근 하면서 신을 신발. 돈도 벌어와서 좋지만, 또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때 신고 있을 그 신발을. 광내는 기준은 그 옛날 군대서 배운대로, 예쁜 여자를 면회소로 안내하면서 군화를 슬쩍 치마 밑에 넣었을때 그것 색깔 구분이 가능해야…

지금 누워 있다는 그자는 사업의 세계에서는 무하마드알리나 황영조였다. 링위에서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존경 드리고 또 드려도 부족할 분이었다. 그리고 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두를 사다가 배우자에게 선물할 능력도 있었고. 하지만 이자는 배우자의 구두를 닦으며 느끼는 그런 행복을 아마 느껴 본적도 또 결코 느껴 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행복이라고 했다. 구두를 액면 그대로 닦으라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자의 지금 상태를 비웃는 것도 아니다.

돈으로 모든 것들을 살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오직 스스로만 할 수 있는, 자기자신을 갈고 닦는 것을 우습게 여기고 사노라면, 삶의 가장 중요한 것들을 점점 잃게 되고 죽기 훨씬 이전에 이미 0점을 기록하게 된다. 보다시피.

그자는 그 천문학적인 돈을 선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들을 불러들여 돈버는 틈틈히 참된 행복의 비밀을 알아내기 보다는, 여러명의 창녀들을 돈으로 사고 불러들여 배우자 몰래 노욕을 채우는 삶을 선택 했었다. 그런 선택을 하면서 살면, 어떤 돈으로 무슨 짓을 해도 그런 사랑과 존경을 경험할 수가 없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그 돈으로 속이고 꾸미고 겁박할 수는 있어도 딱 한사람에게는 절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죽었다가 깨어나도 아내의 구두를 닦아 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이러한 가치들과는 정반대 쪽에 설 수 밖에 없게 된다. 그것도 무지 강경한 태도로.

이자보다도 돈이 많은 사람이 세상에 극히 드물지만 있기는 있다. 그들 중 두세명이 말했다. ‘행복과 성공의 가장 중요한 비결은 금슬이라고.’

오늘부터 구두 한번 닦아 보시지. 구두코로 빤스 색깔 구별 못해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

그때 그 사람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이자는 허우대도 멀쩡하고 또 한때 큰 회사에서 돈을 주무르는 일도 한적이 있어서, 한 큰 종교단체에 사무장 비스무래한 자리를 꽤차게 되었다. 매우 훌륭한 분을 근처에서 자주보며 그 큰 그릇의 언행과 삶을 보면서, ‘혹시 나도 격이 비슷한 것이 아닐까? 나 정도면 어쩌면 이런데 좀 끼일 수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자가, 자기와 유사한 종류의 인간들과 함께 일을 했었다면, 그들이 어떤 이유건 방식으로건 이자의 발상에 재동을 걸어 일종의 경고를 해주었을 테지만, 이자의 주위에는 그런 유용한(?) 자들이 없었다. 일단 이것 저것 주어 모아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비영리출판단체가 아니고서는 출판하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으로, 인쇄된 책 대부분은 아마 자기 서재에 꽃혀있었을 것이다. 내가 직접 집을 방문하여 목격한 적은 없다 – 실재로 책은 대략 읽어 보았다. 역시 쓰레받기… 읽는 모든 사람들은 아는데 정작 쓴 본인만 모르는 경우. 장차 큰 비 내릴 징조…

어쩌다 이자와 한번 엮일 기회가 있었다. 이자가 무언가 강연을 하는 중에 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잠시 졸았다. 뒤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아마 이때 이넘이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뭐 중요한 사람이라고… 사람이 좀 졸 수도 있고 그렇지… 아니 아니다.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니, 중요한 사람이 말씀하시는데 발칙하게 졸은 넘을 용서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이외에는 이넘과 엮인적이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10년에 한번씩, 어떤 종교단체들은 ‘Synod’ 라는 매우 큰 행사를 주최한다. 관련성직자들, 관련단체들 그리고 신도대표들이 참가하여 2박3일간 큰 회의를 한다. 나도 그때 우연히 참가 하게 되었다. 행사중 많은 소모임 토론등이 있는데, 한 토론장에서 이넘과 정통으로 마주 앉게 되었다. 난 아는 것도 없지만 그보다 꿀을 먹느라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글세 이넘이 주변에 앉은 참가자분들에게 ‘저 자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여기서 뭐하나’ 투의 조롱하는 말을 하는것을 듣게 되었다.

큰 행사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큰 행사장에서 오고가며 복도나 계단에서 마주치게 되며, 그 중에는 안면이 있거나 아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다. 한참 좁은 계단을 올라가는데 어떤 사람이 내려오기에 문득 얼굴을 들어보니 그넘이었다. 그래도 때와 장소가 나를 경건하게 하는지라, 좋은 얼굴로 인사를 하였다, 아마 이름도 불렀겠지. 이넘이 면전에서 완전히 무시하며 그대로 지나가는거라. 주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2박3일이 지나서 행사를 마치는 총회가 열렸다. 수백명의 참가자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서 행사 마무리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수렴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큰 강당에 여러명의 ‘젊고 잘 뛰는’ 지원자들이 무선 마이크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 다닐 준비가 되었고, 모두들 숨죽여 누군가가 첫 스타트를 끊기를 눈치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뒤에 내가 손을 들었고 이내 한 발빠른 젊은이가 내손에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나를 보낸 단체의 견해를,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용기있게 피력하고는 자리에 앉으며, 그 넘의 놀랐을 상판이 문득 떠올랐다. 그넘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넘에게 받았던 것을 면전에서 되돌려 주었다. 그넘과 나 (그리고 그때 함께 계셨던 고맙고 유머러스 하셨던 그분) 이외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마 그넘은 잊기를 바랬고 또 편리하게 잊었을 것이다. 나도 일상으로 돌아왔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자는 이번에는 다른 줄에 서서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이자가 속한 정당은, 늘 대표 1인만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는 1인당이었는데, 투표전후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바람에 당선확률이 0%었던 이넘이 졸지에 비례투표로 국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넘이, 당대표 즉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어 준 바로 그사람과 다툼을 벌이다가 탈당했다는 소식이 들려 왔다. 탈당하면 더 이상 국회의원직을 유지하면 안된다. 처음부터 제 능력으로 얻은 자리가 아니었었고, 그 당수에게 기회를 되돌려 주는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건데 이넘은 남은 한두해를 꼬박꼬박 봉급받으며 국회의원 노릇 잘 해먹다가, 이번에는 자신이 당수가 된 듣보잡 당을 하나 새로 만든다. 더 하고 싶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그저 수백표를 획득하며 우연히 올라왔었던 그 무대에서 영영 사라진다. 옛날 이자가 출판했던 그 책 수준이다. 그리고는 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거나 자기 말을 듣으려고 하지 않는지 아마도 오늘날 까지 몹시 의아해 하는, 늙고 꼬장꼬장한 은퇴한 영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의 그릇이 달라지는가? 그릇의 크기가 있는가? 무었이 그것을 결정 짓는가?

오래전 한 월간지에서, 교도관으로 수십년 근무했던 분의 긴 인터뷰를 읽었다. 많은 질문 중에 지금도 가끔 기억나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선천적인 악인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 교도소에 오는 사람 10명중 1명 정도는 아마도 선천적인 악인이거나 보통 사람과 확연히 달라서, 비록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범죄자가 되었을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자의 이름이 ‘고든’이었고, 그때 이자가 악인이었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릇이 작은자였고 그러한 자신을 잘 보지도 또 알지도 못했던 자였을 것이다. 어쩌면 어떤 그릇은 처음부터 너무 작았던지 아니면 결코 그 크기나 모양이 바뀌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 열 명 중의 한 명처럼…

내 자신도 내가 어떤 그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떤 ‘엮임’이 벌어지면, 쌍방 그릇의 크기와 내용물이(?) 동시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Silly old Gordon fell in a ditch…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Thomas the Tank Engine’ 만화에 나오는 노래중의 하나로, 나도 아이와 함께 자주 불렀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