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후안마이의 마지막 편지

당신과 저는 매우 슬픕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한국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에서도 부인이 기뻐 보이지 않으면 남편이 그 이유를 물어보고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남편은 왜 오히려 아내에게 화를 내는지, 당신은 아세요?

남편이 어려운 일 의논해 주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아내를 제일 아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략) 저는 당신의 일이 힘들고 지친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저도 한 여자로서, 아내로서 나중에 더 좋은 가정과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당신은 아세요?

저는 당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당신은 왜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러 못 가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대화하고 싶어요. 당신을 잘 시중들기 위하여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무엇을 마시는지 알고 싶어요.

저는 당신이 일을 나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것을 먹었는지, 건강은 어떤지 또는 잠은 잘 잤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제가 당신을 기뻐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도록, 당신이 저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려 주기를 바랐지만, 당신은 오히려 제가 당신을 고민하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저는 한국에 와서 당신과 저의 따뜻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대화, 삶 속에 어려운 일들을 만났을 때에 서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희망해 왔지만,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를 견딜 수 없어하고, 그럴 때마다 이혼을 말하고, 당신처럼 행동하면 어느 누가 서로 편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은 가정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이고 한 여성의 삶에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어요. 좋으면 결혼하고 안 좋으면 이혼을 말하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그렇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진실된 남편으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이 어리지만, 결혼에 대한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는 이해하고 있어요.

한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누구든지 완벽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되요. 물론 부부가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의 상처가 너무 많아 결국 이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한 사람의 감정을 존경하고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닫아버리게 하는 상황들과 원망하게 하는 상황들이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되요. 모든 사람에게 각자의 자존심이 있고 자신을 ‘정답’에 서게 하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부부가 행복할 수 없고 위험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거에요. (중략) 당신은 저와 결혼했지만, 저는 당신이 좋으면 고르고 싫으면 고르지 않을 많은 여자들 중에 함께 서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당신은 아세요? 제가 당신과 결혼하기 전에는 호치민 시에서 일을 했어요. 당신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우리 집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저는 가정을 위해서 일을 나가야 했고,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하지만 봉급은 얼마 못 받았지요. 저는 노동이 필요한 일도 했었어요. 그 일은 매우 힘들었어요. 그것이 가축을 기르는 일이든, 농작을 하는 일이든. 가족들은 노동일로 벼를 심고 베는 일을 했어요. 베트남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도 입을 것과 먹을 것만 겨우 충당할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에 더이상 바라는 것이 없었고, 단지 당신이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을 바랬을 뿐이에요. 저도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하고 또 그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제가 베트남에 돌아가게 되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을 거에요. 저는 당신이 저말고 당신을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여자를 만날 기회가 오기를 바래요. 당신이 잘 살고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래요.

저는 베트남에 돌아가 저를 잘 길러주신 부모님을 위하여 다시 처음처럼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저의 희망은 이제 이것뿐이에요. 당신과 전 서로 다른 나라 사람이어서 제가 한국에 왔을 때 대화를 할 사람이 당신뿐이었는데… 누가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겠어요. 정말로 하느님이 저에게 장난을 치는 것 같아요. 정말 더 이상 무엇을 적을 것이 있고 말할 것이 있겠어요. 당신은 이 글씨 또한 무엇인지도 모르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인데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그 경위에 어찌 되었던 간에 피고인과 결혼하여 피고인만을 의지하여 말도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에 온 19세의 피해자를 무참하게 살해한 것으로 그 결과가 지극히 무거워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가 남긴 편지 내용을 보자. 피해자는 19살의 어린 나이에 피고인과 서로 이해하고 위해주는 애틋한 부부관계를 이루고, 한국어를 빨리 배워 한국생활에 적응하면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고 한국에 와 피고인과 동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배려의 부족, 어려운 경제적 형편 및 언어문제로 인한 의사소통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원만한 결혼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피고인의 무관심과 통제로 인하여 피고인과 따뜻한 가정을 이루기는커녕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끝에 피고인과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을 것이다. 피고인은 피해자의 이와 같은 반응을 보고 피해자가 처음부터 피고인과 결혼할 생각 없이 사기결혼을 하였다고 오해한 것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에 이른 주된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피고인의 피해망상적 사고경향과 음주 중 폭력습벽이 더 해져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이 사건 범행은 결국 계획적이거나 미리 의도된 범행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피고인의 타인에 대한 배려의 부족, 피해망상적 사고경향 및 음주 중 폭력습벽에 기인한 것으로서 피고인의 이러한 그릇된 성행을 교정하기 위하여서도 상당한 기간동안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의 선고는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시각을 바꾸어 이 사건과 같은 비극이 발생한 근본 원인을 돌아보고 싶다. 특히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한국 남성과 제3세계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이 급격히 늘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국제결혼의 명암을 재조명해 보도록 하고 있다. 배우자감을 국내에서 찾을 처지가 되지 못했던 피고인이 결혼정보회사를 통하여 베트남 현지에 임하여 졸속으로 피해자를 만나게 된 전 과정을 보면서 스스로 깊은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피고인은 그저 피해자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단 몇 분만에 피해자를 배우자감으로 선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누구인지, 누구 집 자식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아무도 알려 준 바 없었고, 그래서 이를 전혀 알 수 없었을 뿐더러, 또한 스스로 알고자 하지도 아니하였다. 목표는 단 한 가지 여자와 결혼을 한다는 것일 뿐, 그 이후의 뒷감당에 관하여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러나 그러한 지탄을 피고인에 대해서만 집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일 뿐이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 혼인은 사랑의 결실로 소중히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가치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이 땅의 아내가 되고자 한국을 찾아온 피해자 후안마이. 그녀의 예쁜 소망을 지켜줄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는 없었던 것일까.

19세 후안마이의 편지는 오히려 더 어른스럽고 그래서 우리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이 사건이 피고인에 대한 징벌만으로 끝나서는 아니되리라는 소망을 해 보는 것도 이러한 자기반성적 이유 때문이다.

이 법원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국을 떠나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사람과 결혼하여 이역만리 땅에 온 후 단란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살해되어 19세의 짧은 인생을 마친 피해자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무하고 싶었다. 그 전제로 피고인이나 결혼을 알선한 결혼정보업체를 통하여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리려고 하였다.

결혼정보업체는 피해자의 성장배경, 생활환경 및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에 대한 이 법원의 사실조회에 대하여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고, 관계당국이나 피고인을 통하여서도 피해자의 가족들의 소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피해자의 죽음을 알릴 길을 찾지 못한 채 이 사건 판결에 이른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로 인하여 피고인으로서도 피해자의 가족들로부터 용서를 받는 기회를 갖지도 못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에 피고인의 연령, 성행, 전과관계, 범행의 동기, 경위, 결과 및 범행 이후의 정황 등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에 대하여 징역 12년을 선고한 제1심의 형량이 너무 무겁거나 가벼워 부당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전고등법원

오역의역에 진전이 없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오역의역에 진전이 없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미지의 팬, 그대에게 미안하다. 마음이 떠난 것도 아니고 변한 것도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배우고 알게 될수록, 쓰고 말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렵게 되는 상황일 뿐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요, 장차 원래 계획했었던 것들을 포함하여, 더 낫고 좋은 원을 가지고 되돌아 올것이라 믿는다.

오늘은 팬서비스 차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나눌까 한다. 그대들에게는 어쩌면 처음 듣는 좀 놀라운 이야기 일수도 있고, 내게는 눈물 나는 이야기니 기대하시라 🙂

‘불교가 종교인가 철학인가?’ 하는 논쟁에 맞물려 자주 등장하는 것이, ‘붓다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던가, 혹은 인간으로 왔었지만 신이 되었던 존재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신이었고 지금도 신으로 남아 있는 존재인가?’하는 질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 짧은 이야기가 어떤 대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가지를 먼저 밝힌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대다수의 관련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고 인정하는,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매우 정확히 기록한 원본 불경들이 현존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약 150년 전에 그리고 일본에서는 약 80년 전에 번역되어 누구나 구입해서 볼 수 있다. 많은 분량의 책들이기도 하고 또 독자가 한정적이니 책값이 좀 비싸다고 하더라. 한국에서는 약 20여년 전부터 훌륭한 분들에 의해서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다. 동일한 문헌이 영어와 일어로 이미 번역이 되었고 한국어로도 번역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우리가 흔히 들어 이름이라도 익숙한, 무슨 x장경이니 y강경 z심경 등은 이 원본 불경들 속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경전들은, 산스크리트어를 쓰던 후대의 지식층 인도인들이 ‘자체 제작’ 했던 것들을, 그 짜장면 원조국에서 천년 세월 자기네 문화와 언어에 녹여 ‘다시 제작’ 하여 우리들에게 전파했던 것들이다. 나는 이런 상황을 처음에는, 강대국과 약소국 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으로 보고 혐오했었다. 하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어쩌면 우리들 자신에게 어떤 사회문화적 혹은 종교인류학적인 이유들이 있어서,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이런 모습의 불교를 우리가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장차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주제가 아닌가 싶다.

아래에 적은 이야기는, 내가 존경하는 두분의 세계적인 불교 학자들의 저서에서 발췌하였다. 한 분은, 스리랑카 출신의 학자이자 스님이신 ‘왈폴라 라훌라’ (Walpola Rahula Thero)라는 분인데, 위에 언급한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매우 정확히 기록한 원본 불경’들과 그에 사용된 고대 언어에 정통했던 학자요 스님으로서,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종교학 교수로 재직하셨던 분이다. 이분 이전에는 승려가 영어권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참고로 ‘라훌라’라는 예쁜 이름은, 붓다께서 출가하시기 이전에 낳은 아들의 이름이다 (그럼 붓다께서 섹스를? 물론이쥐 🙂 부인 이름은? ‘야쇼다라’. 둘다 실존했던 사람들로서, 아빠와 남편의 길을 따라 해탈 열반을 성취 했다고 전해진다 – 훌륭한 전례가 있으니 나도 역경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가정생활에 힘쓰고 있다). 이 분께서 쓰신 ‘What The Buddha Taught’라는 책을 참조하였다. 아름다운 책이니 기회가 되면 읽어 보시라. 한국어 번역도 있을 것이다. 이분은 1997년에 90세를 일기로 돌아 가셨다. 두번째 분은, 마스타니 후미오(增谷文雄)라는 일본의 불교학자시다. 선생의 ‘아함경 이야기 – 지혜와 사랑의 말씀’ 이라는 한국어 번역서를 참조하였다. 매우 아름다운 책이니 이 또한 추천한다. 왜 아름답다는 표현을 되풀이해서 사용하는지,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좀 공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일본 불교는, 1800년대에 이미 학승들을 영국으로 유학 보내, ‘붓다의 삶과 가르침을 매우 정확히 기록한 원본 불경들’을 배우고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그 문헌들을 일본어로 1930년대에 완역함으로써 ‘제2의 불교전래’ 라고도 할만한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마스타니 후미오 선생은, 도쿄대학교 종교학과 교수로서 ‘일본종교학자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저명한 비교종교학자이다. 아빠가 스님. 오잉? 🙂 이분의 저서 ‘아함경 이야기’는 붓다의 일생과 가르침을, 종교학자로서의 견해를 견지하면서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연구하고 분석한 책으로써, 저자 본인께서 ‘지혜와 사랑의 말씀’이라는 부제를 붙였던 바, 이 책을 읽으면 그 부제에 많은 독자들이 동의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1900년대 초에 출생하였으니 아마 돌아가셨을 것으로 추측한다. 내가 일본어를 하지 못하고, 그 당시의 기록들이 영어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붓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붓다께서 80세 고령에 이르러 식중독으로 추정되는 질환으로 돌아가시는 생생한 모습이 경전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내게 와닿은 세 개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첫째, 어떤 열렬 극성팬이, 아파서 돌아가시는 와중인데도 꼭 좀 만나서 말씀을 나누어 보고 싶다고 졸랐다. 하도 조르니 제자들이 어렵게 말씀을 드려 붓다께서 허락하셨고, 너무 아프고 돌아가시기 직전임에도 붓다께서는 이자의 장광설을 모두 들어 주시고, 이은 가르침으로 그를 깨닫게 하여 마지막 제자로 만드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식중독을 일으킨 음식을 제공한 그자를 (의도적이지는 않았다) 제자들이 심히 비난함에도, 붓다께서는, 내게 처음으로 공양을 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그의 복을 빌었듯이, 내게 마지막 공양을 한 이 사람에게도 감사하며 또한 복을 빈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스승의 죽음을 앞에 두고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여러차례 ‘나의 가르침에 관계 되어 확실하지 않거나 혹시 물어 볼 것이 있는가’ 물으셨다. ‘없습니다’ 라는 거듭된 대답에 마지막으로는 이렇게도 말씀하셨다고 전해진다. ‘너희들이 혹시 스승이 아파서 죽어가는 마당에 곤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질문할 것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 혹시 원하거든 너희들 친구 중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대신 물어 보게 하거라’.


‘매일 먹고 싸야 살수 있는 인간의 적나라한 한계와, 매순간 희로애락에 시달리는 인생의 본질’ 바로 이것들 위에 붓다의 가르침이 있고, 그 분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수행과 해탈을 통하여 증득한 ‘그들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우리에게 실천으로 보여 주시면서 큰 가르침을 주시며 돌아가신 것이다.

가식 없고 진실한 가르침을 주신 붓다의 말씀은, 그 돌아가시던 장면을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관련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원본 불경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가, 혹시 미안한 마음에 돈 더 달라고 말 못하겠거든, 옆집 돌쇠한테 부탁해서 좀 더 달라고 대신 말하게 해도 된단다’. 고통속에서 돌아가시는 마당에도 이런 말씀을 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내 마음속에 그려보면, 흡사 남겨 두고 떠나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미 아비의 마음과 같이 한없이 큰 사랑과 자비가 느껴진다. 하물며 가식이나 욕심 권위 혹은 우월감이 어디에 있을손가! 신? 나이키 아디다스 말인가?

비록 몸에서는 대소변이 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 위대한 정신과 자비의 마음은 조금의 흐트짐도 없이 오히려 이런 극도의 고통과 최악의 상황에서 그 빛과 아름다움을 최고로 발휘하고 있다. 그분께서는, 몸은 우리 자신이 아니고 다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왔다가 가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가르치셨으며, 오직 수행 정진으로 매일 매순간 스스로를 닦아 살아서도 그리고 죽을때도 빛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 몸에서 나오는 똥오줌은 인간의 본질이며 이것이 우리를 더럽히고 절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머리와 마음에서 흘러 나오는 오물들이야말로 참으로 더럽고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인 줄을 그대와 내가 깨달아,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닦아 낼 수 있도록 형편이 되는데로 부지런히 걸레를 빨아대며 우물가를 들락날락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분의 위대함은, 무슨 뜬구름 잡는 도술이나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신비함, 혹은 주인 자리 빼앗아 아랫목 차지한 그 난해한 경전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대와 나, 오늘 마음이 아프고 몸이 괴로운, 이것 저것 닥치는데로 잡아 먹고는 쪼글쪼글한 구멍으로 한 두 덩어리 똥을 밀어 내고서는 또 다시 쪼르르 달려가 같은 짓을 반복하며 한 평생을 살다가는, 우리 인간의 한계와 삶의 본질을 참으로 이해 하시고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다가 갈 수 있는 훌륭한 지혜와 방법들을 우리들 같이 눈멀고 귀먼 똥대가리들에게 아무런 댓가 없이 상세히 가르쳐 주시는 데에 그 위대함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다면 그 고마움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뇬과 라오스넘, 깨달음과 습관

직원중에 라오스계 넘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것은 아니고 아마 어렸을때 와서 자란 듯하다. 볼때마다, 내게는, 더럽고 게으르며 어글리한 느낌을 준다. 팀원 중에서 가장 능력이 떨어지지만 최소한의 일 이외는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늘 헤헤헤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큰 소리로 낸다. 그넘 참… 사무실에서 손톱을 깍으며, 신발을 벗고 왔다 갔다 한다 (자기 이외 다른 사람들은 하지 않는 짓들을 하면서 자각하지 못한다는 뜻). 그 부모의 영향이며 또 그 부모를 길러준 그 나라의 영향일 것이다.

직원중에 스위스계 뇬이 하나 있다. 이곳에서 태어났던지 아주 어릴때 와서 자랐던지. 건데 생김새도 언행도 이곳 사람들과는 약간 다른 느낌이 있다. 팔등신 미녀에 똑똑하며 일을 딱 부러지게 한다. 회사 근처 공원에서 가끔 점심시간에 홀로 운동하는 모습을 본다. 그뇬 참… 이뇬은 신발을 벗는데서 한 수 더 떠서 아예 양말까지 벗고 맨발로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물론 이뇬 이외에 그 누구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없다. 이 방면에 본좌다.

그 넘을 볼때는 ‘후진국’이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르고, 이 뇬을 볼때는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생각이 떠오른다. 그 옛날 만화속에서 어쩌면 맨발로 잔디위를 뛰어 다녔을 그 예쁜 하이디가.


내가 일하는 이 대학에는,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을 위한 학사학위 특별 과정이 있다. 교육대학을 마쳤거나 졸업반인 인도네시아 영어교사들이 이곳에서 1년 과정을 마치면서 TESOL 영어교육학사 학위를 받는 협력과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출퇴근때 그 건물을 자주 지나니, 소위 말해서 ‘대가리에 보자기 쓴’ 인도네시아 여학생들을 많이 보게 된다. 25년전 그 건물에서 잠시 영어를 배울때, 같은 코스를 공부하던 터키인인가 그 근처 나라에서 왔던 무슬램 여자, 보자기 쓴 그 여자가 전혀 건방지지 않은 태도로 ‘당신들이 이슬람 종교를 모르며 일생을 산다는 것이 나는 참으로 안타깝다’고 했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좋은 의사로 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가리에는…

‘다문화 고부열전’이라는 EBS방송의 연재 도큐맨터리를 본 적이 있나?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수많은 외국 문화와 그 결과물인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의 문화와 만나서 부딪치고 갈등하는 가운데, 인간 삶의 어떤 진실 혹은 가치를 보여주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였다. 모든 문화는 (개인들은) 상대적이며 그 환경의 소산이고, 한국문화 (한국인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득 우리들 자신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속에서 혹은 알 필요가 없다는 교만속에서 사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무언가 흔들리지 않는 것들, 시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들 그런 것들을 추구하며 나는 살아 왔다. 세상에 그런것들이 정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꽤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있다. 무지와 어리석음이 있는 곳에, 그 바탕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거나 바뀌지 않는 것들이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이 ‘다문화 고부열전’을 통하여 수많은 훌륭한 사람들, 나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고 또 소위 후진국에서 자랐지만, 나의 수준이나 내공을 월등히 능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처했었던 어떤 상황보다 열악하고 힘든 여건속에서, 내가 해낼 능력이 없고 또 깜양이 되지 못하는 그런 것들을 좋은 태도로 힘껏 해내는 그 사람들을 보고 나서, 나는 더 이상 ‘후진국’이니 ‘대가리에 보자기 쓴 뇬들’이니 하는 말들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깨달음을 잠시 맛보았다고 해서, 내가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지거나 혹은 그런 사람들을 며느리로 삼고 싶거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흡사 그 ‘다문화 고부열전’의 모든 결말이 이해와 화해로 끝은 나지만, 그것이 앞으로 갈등없고 행복하기만한 고부관계나 가족생활을 의미하지 않는 것과 같다. 깨달음은 머리로 부터 오는 것이요, 습관은 오랜 삶 속에서 굳어져 몸의 일부가 되어 버린 때문이다. 습관이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자명하듯, 깨닫음이 저절로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것 또한 자명하다.

깨달음은 다만 첫번째 문을 여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첫번째 문조차도 열지 못한채 흘러 간다. 하지만 첫번째 문 뒤에 첩첩히 닫힌 문들이 습관 혹은 카르마라는 빗장을 걸고 존재하는 것이다. 이 빗장들을 풀며 그 첩첩히 닫힌 문들을 열기 위해서는, 그 머리로 깨달은 바가 가슴으로 흘러 내려가 내 몸의 새로운 습관이 되고 새로운 카르마가 되어야만 한다. 이 과정은, 친구의 급사에 크게 충격받은 배불뚝이 중년이, 새다리처럼 가는 팔로 턱걸이 20개를 목표로 철봉에 매달리는 그 손바닥 찢어지는 고통의 과정이며, 마라톤 완주를 목표로 새로 산 신발을 신고 첫 몇 킬로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헉헉 억지로 뛰기 시작하는 그 물리적인 과정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10% 덴트의 법칙’ 이라고 내가 명명한 법칙이 있다. 오래 지속된 습관 카르마를 참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이 과거에 지속되었던 기간의 10분의 1 기간이라도 최소한 시도를 해야 덴트(dent) 즉 ‘이빨이라도 약간 먹힌다’는 법칙이다. 운동 안한지 얼마나 되었나? 보자기 쓴 뇬들이라고 싸잡아 무시하며 산지는? 20년? 그러면 최소한 2년은 노력을 해야 이빨이라도 먹힐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 내 일천한 경험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전에는 잠시 반짝한다고 까불다가 훅간다.

팀 미팅을 하면, 뒤쪽에 서 있는 내 눈에 그넘의 검은 양말이 흘낏 보인다. 그러면 나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앉아 있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맨발을 본다. 그리고 소리없이 웃는다. 내 습관 내 카르마를 생각하면서.

교통사고의 어떤 결말

양로원 앞에서 길을 건너던 할머니를 치여 숨지게 한 트럭 운전자가 5천불의 배상금을 물다.

트럭에 치여 숨진 그 할머니의 유가족들은 그 운전자를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법정을 나서서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알프레드 프라이스’라는 그 트럭 운전자는, 어쨋던, 자기 트럭에 치인 마가렛 스튜어트 할머니가 뉴질랜드 해밀턴시의 한 도로에서 사망하던 순간에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트레일러가 달린 큰 트럭을 운전하여 배달장소에 도착한 후에 입구를 찾는 중에 잠시 한눈을 팔았습니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던 91세의 스튜어트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정신을 차려 횡단보도를 보았을때는 이미 너무 늦었고 할머니는 트럭에 치인 후였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지난 목요일 해밀턴법원에서 과실치사에 대한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케시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에게, 할머니 유족들에게 5천불의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언도 했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의 변호사가 제출한, 운전면허 유지를 위한 청원서를 받아 들여 허가 했습니다. 프라이스씨는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지난 2017년 12월에 일어났던 이 사고는 그 트럭 전방에 설치된 카메라에 녹화되었습니다. 그 영상에 따르면 프라이스씨는 시속 약 30킬로미터로 서행하고 있었으며, 또한 경찰도 밝히기를, 초록색 신호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트럭을 운전했었던 것으로 영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프라이스씨와 그의 부인은, 지난 5월, 법무부가 마련한 만남의 장소에서,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의 가족들과 만났습니다. 그는 유가족들에게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주저없이 돌아가신 분과 나의 자리를 바꾸겠다’고 하며 사죄하였습니다. 프라이스씨가 써 온 편지를 돌아가신 할머니의 조카딸이, 할머니의 오빠, 즉 그녀의 아버지를 위해 읽어 주었습니다.

경찰은 운전면허취소를 하지 않겠다면 징역형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법원에 권고하였지만, 윌슨판사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윌슨판사는, 운전자 프라이스씨의 무과실 운전경력, 사람들이 증언하는 그의 인간됨, 그가 처음부터 유죄를 주저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 그리고 또한 지난 5월에 있었던 스튜어트 할머니 유가족과의 만남의 결과를 모두 고려하였습니다. 윌슨판사는, ‘프라이스씨는 면허정지 처벌을 받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사고로 크게 고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가족은 물론 유가족까지도 당신을 돕고 싶어 합니다. 어쩔수 없는 사고였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고는 그 62세의 트럭운전자에게 처음있는 사고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그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 가족들과 프라이스씨 가족이 서로 알게 되고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두 가족들은 법정에 나란히 앉아서 판사의 선고를 기다렸습니다. 유가족들은 (할머니의 오빠, 시누이 그리고 두 조카) 판사에게 운전자 프라이스씨가 운전면허를 정지 당하거나 감옥에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법정을 빠져 나오니, 프라이스씨가 밖에 주차해 둔 자신의 차에서 가족들 모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유가족들도 기꺼이 동의했다고 합니다.

‘우린 그를 용서했어요’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사고였어요.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한 조카가 말합니다. ‘그가 잘못했던 것이 아니예요. 내가 바로 지금 차를 주차하다가도 이런일이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 또 다른 조카의 말입니다. ‘할머니는 체구가 조그만, 우리에게는 소중한 분이었어요.’

돌아가신 스튜어트 할머니는 미혼에 자식도 없었다고 합니다. 늙은 부친을 돌아가실 때까지 뒷바라지 했었던 딸이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의 죽음을 가지고도, 그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어떤 선택이 가능했었고 또한 그들은, 돌아가신 할머니도 기꺼이 받아 들이실 훌륭한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그런식으로 일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물론 않으셨겠지만, 어쩌면 사랑하는 남은 가족들과 또한 다른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할 그 가해자가, 이미 일어나버린 일을 받아들이고 잘 마무리 하기를 바라셨으리라 짐작해요.

그 할머니의 바램을, 남은 사람들이 (피해자, 가해자, 그 가족들, 법원 그리고 경찰까지도) 훌륭한 방식으로 실행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었더라면 무슨일들이 일어났을까요? 두 가족이 풍비박산이 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까지, 이미 지나버린 그리고 아무도 되돌릴 수 없는 그 과거의 일에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 다니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의 무덤을 찾을때마다 사람들은 원망과 비통의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겠지요. 자주 찾기도 어려워질 것이고요. 그리고 감옥을 나온 그 운전자는 더 이상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어쩌면 흠뻑 뒤집어 썻던 그 차가운 원망과 비난의 소나기 속에서 술이나 마시다가 뒤늦게 이혼 당하고 쓸쓸히 병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할머니가 기뻐했을까요?

그 벌금으로 유가족들은 아마도 할머니의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드렸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자주 찾아가서 꽃을 놓으며 할머니의 예뻣던 과거의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떠올리며 ‘아! 그 운전자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싶어요. 이렇게 왔다가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었고 또 조금만 지나면 까맣게 잊혀질 이 사람들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있지 싶어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또 볼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우리가 익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싶어요. 당신이 지금 이곳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도, 어쩌면 지난 과거에 어떤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있지 않겠어요?

오늘 그대와 나는 어떤 선택의 상황에 놓여질까요?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그 운전자가 그리고 유가족들이, 그 사고 전에, 아무렇게나 트럭을 몰며 또 서로 함부로 다투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었었다면, 그 할머니의 바램을, 듣지도 또 실행할 힘도 능력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해요.

오늘, 새로운 카르마를 만들 선택을 하지 마세요. 그리고 오늘, 이미 쌓여 있는 과거의 카르마를 조금이라도 줄일 선택을 하세요. 그래야 가볍게 왔다가 가볍게 갈 수가 있을꺼예요. 길가에 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처럼…

버디 오선이 그리고 머시쉽

개 좋아하세요? 사진속의 개 두마리가 닮았지요? 레브레도라는 종으로, 개들 중에서 영특하기도 하고 또 성격도 좋아서, 세계적으로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뼈다귀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개가 ‘버디’인데, 우리 아이가 어릴때 와서 오래 함께 지내다가 작년에 뽕~ 지구를 떠났고, 등에 가방을 매고 있는 개가 ‘오선이’인데, 이 신문 기사대로 어떤 미친넘이 납치하여 개소주로 만들어 먹고는, 지금 재판장에 끌려 다니며 곤욕을 치르고 있는 그런 상황이 되겠습니다.

죽은 개들이지만, 난 이 사진들을 보면 슬며시 웃음이 먼저 나와요. 귀엽기도 하고 또 지난 시절 기억이 나서 그렇겠지요. 개를 키워본 사람들은 이해가 될 듯… 오선이 개주인처럼, 개를 가족의 일부로 여기고 흡사 자식처럼 키우는 사람이 한국에는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개를 무슨 아이니 하면서 극성을 떠는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개가 개답게 살도록 사회적인 장치도 있고 또 사람들도 대부분 노력하지요.

‘머시쉽’ (Mercy Ships) 혹시 들어 보셨나요? 이전에도 보았었지만, 근래에 BBC도큐멘터리로 아프리카 머시쉽을 방영한 것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사는 이곳 사람들은, 작고 외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원봉사자로 (임금을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자비로 모든 여행 및 승선경비 지불해야 함. 기간에 따라서 수백에서 수천만원) 이 배를 타고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들어보면 정말 멋지고 또 가슴뭉클한 이야기들이 많아요.

짧은 비데오를 첨부했는데 혹시 영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를 대부분 이해할 수 있을겁니다. 우리가 어릴때는 종기가 흔하더니, 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이렇게 혹이 많이 나네요. 다 가난의 소치겠지요. 그 혹도 가난도 본인들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는…

이렇게 훌륭하고 능력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노력하건만, 스나미처럼 몰려드는 환자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나쁘고 독한 질병들에 비하면, 이 배에서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요 바다물을 양동이로 퍼올리는 모습이라는 것을 굳이 그 긴 줄, 아픈 사람들이 밤잠 자지 않고 먼길을 와서 마지막 희망으로 기다리건만 대부분은 돌아서야 하는, 그 긴 줄을 확인하지 않고서도 알 수가 있겠지요. 한 의사가 말하고 있군요. ‘우리도 새발의 피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최선을 다한다.’ 이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엑스레이 기사들도 선장도 갑판원들도 또 전산지원자들도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인 줄 알지만, 나는 이들이 훌륭한 보살이라고도 표현하고 싶습니다. 보살은, 오늘 자기가 처한 자리에서 의심없이 최선을 다하지만, 덧없는 삶의 본질을 꽤뚫어 보기에, 최종적으로는 그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하지요.

나는 무슨 박애주의자도 아니고, 이 사람들 인생을 바꿀 100불짜리 수술 보다는 내 입에 들어가는 100불짜리 고급 술이 더 중요한 사람이지만, 이런 것들을 보고 또 알고 나니 마음이 전과 같지 않습니다. 나도 버디 개주인으로, 그 넘 눈 밑에 난 무슨 종양 수술을 하는데 상당한 돈을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스스럼 없이 썼었지만, 이렇게 불행한 사람들, 평생을 이런 큰 혹이나 끔찍한 불구 또 여러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별 희망도 없이 온 가족이 힘들고 우울하게 살아야 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그 긴 줄을 보고 나니, 감히 ‘사람들’ 앞에서 ‘개’ 수술 이야기 따위를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 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물론 개 수술도 하고 고급 술도 먹겠지요. 그리고 남의 개 훔쳐다가 개소주 해 먹은 넘을 잡아다 재판도… 하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었인지, 나와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었인지, 내가 가진 것은 무었인지 또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은 무었인지, 여러번 곰곰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