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선물

휴식기의 평균심박수가 어떻게 되나? 나는 1분에 60회 내외인데 내 연령대에서는,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 바로 아래 수준이라고 하더라. 최대심박수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장소까지 뛰어 올라 간 직후에 재면 175-180정도. 혹시 의사인 그대가 걱정할까봐 말하는데, 이렇게 한지 이십년 넘었다. 이 두가지의 수치가 우리의 건강 그리고 수명과 관련이 적지 않다는 연구들이 있다. 한 번 관심을 가져 보시라. 이런 것들 아는체 떠들다가 달리기 중에 심장마비로 죽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이만 뚝!

그곳에 오늘도 다녀 왔다. 보기만큼 엄청나게 높지는 않고 400미터 정도,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가기 시작했는데 아마 350번 정도 갔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1,000번을 채우는 것이 목표다. 한때는 풍력발전기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자갈을 갈때마다 하나씩 줏어다가 모았었는데 이제는 안한다.

아래의 사진은, 그곳에서 오늘 내려다 본 도시 그리고 올려다 본 풍력발전기. 상당히 험한 코스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비상시를 대비해서 오래된 전화를 늘 가지고 다닌다. 위치가 시내 부근이라서, 발전기는 그곳에 하나만 시범으로 옛날에 설치했고 실제 풍력발전기들은 (wind turbine) 조금 더 떨어진, 바닷가 높은 산에 많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다.

오늘 자연이 아름다운 겨울 오후를 내게 선물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 포장한 다음에 내 자신에게 생일선물로 주었다 – 그곳까지 뛰어갔다 오는 한시간을. 물론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내게는 그 경치, 바람, 소리, 향기 모두 너무 좋아서 오늘도 특별한 시간이었다.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 그대가, 결혼한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를 혹은 그녀를 보면 늘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과 같다. 이제 이해가 되나 🙂 10년 후 오늘, 다시 이자리에 오늘과 마찬가지로 뛰어와서 서겠다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곳에서 되돌아 오는 방향에, 우리 내외가 이 나라에 와서 첫 석달을 살았던 대학교 기혼자 기숙사 건물이 (독립가옥들) 있는 가파른 거리를 가끔 지나기도 하는데, 사반세기가 지났는데도 그때 내가 앉아서 맥주를 마셨던 그 방 그 창문 모든 것이 그대로다. 물론 수많은 학생들이 그 집 그 방에서 울고 웃으며 왔다 갔겠지. 언젠가 그길을 뛰어 올라오면서, 장차 다시 사반세기가 지났을때, 이길을 아내와 손잡고 걸어 오르겠노라 희망하였다. 그때 이길을 뛰기는 좀 무리지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너무 좋겠고. 내가 이 두가지 희망을 이룰 수 있다면, 앞으로 다가오는 10년 그리고 25년은, 나에게 땀흘리는 좋은 여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들 모두는 희망이 있고 꿈이 있고 계획이 있고, 또 좀 나이든 사람들은 소위 bucket list 라고 죽기전에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도 한다. 나는 일찌기, 비싼 온동화와 비싼 골프채가, 달리기를 통해 건강한 삶을 추구하고 또 골프에서 참된 즐거움을 찾는데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상당한 경험으로 체득하였다. 따라서 나의 목록에는 ‘구입’ 가능한 것은 들어 있지 않다.

내가 최근들어 점점 깨닫는 것은, 오늘 내가 누린 이 소박한 즐거움조차도 나의 손으로 이룬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일부 노력을 기울였던 면은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그 좋은 한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실로 많은 것들이 필요했고 또 많은 조건들이 맞았어야 했다. 그것들 대부분은 내것도 아니고 내가 직접 개입할 능력도 없으며 따라서 어떻게 해볼 대상도 아니다. 대부분의 것들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존재하거나 혹은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다. 한껏 누리되 내것이 아님을, 그리고 언제 어떻게 나의 곁을 떠날지 알 수 없음을 나는 늘 기억하리라.

오늘 참 좋은 날이었다. 그리고 내 생일선물 – 그 찬란한 태양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옛날에 심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누군가가 관리하는 트랙, 자유를 허락한 직장 그리고 동료들, 편안하고 따뜻한 신발과 옷을 만든이들, 스트레칭과 샤워를 했던 체육관을 돌보는 사람들, 안전을 도운 전화기등등 – 이 모든 것들이 적재적소에서 어울려 만들어 낸 실로 최대 최고의 생일선물이 아니었나 싶다. 기쁘고 감사하다 🙂

JW

밤새 두꺼운 서리가 내려 흡사 눈처럼 온 세상을 뒤덥은 겨울의 이른 아침. 출근길 기차역으로 향하는 길에 늘 그자리에 서 있는 두 사람을 오늘도 본다. JW (Jehovah’s Witnesses) 팻말 아래로 Watch Tower라고 쓰인 책들이 보인다. 아! 정말 춥겠다. 나도 군대서 보초를 많이 서봐서 아는데 겨울에 해뜨기 직전이 정말 쥐약이다. 추워서 죽음이다. 이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고 또 그 책은, 그 옛날 그 시절 파수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서도 출간되던 책이다.

이십대 초반, 휴학 후 입대를 기다리던 동안 나도 한때 이 사람들과 어울렸던 적이 있었다. 참 좋은 사람들이었지. 아! 그때 내게 교리를 가르친 그 아가씨 선생님,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그넘의 책에 자꾸 등장하던 ‘할례’가 무었인가 재차 뭇는 내게 (오~ 븅신) 차마 대답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아가씨. 지금 돌이켜 보아도 괜찮은 여자였다.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었지. 지금이야 스마트폰으로 금방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땐 인터넷은 커녕 피시도 거의 없었다. 어떻게 처녀가 총각 앞에서 일대일로 그것이 무었인지를 설명하겠나 🙂

그녀와 주변의 좋은 사람들. ‘입영거부’ 아무도 내색조차 하지 않았지만 나를 받아들여주고 또 나에게 그들을 알고 이해할 기회를 주었던 진실했던 사람들. 입대를 위해 떠날때가 왔고 그녀와 마지막 세션 (공부)을 마치던 그날, 우리는 작은 선물을 주고 받으며 악수를 하고 작별하였다. 아마 만년필이었던가를 내가 주었던지 받았던지 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함께 모여서 그렇게 가드를 내리고 서로를 잘 대해주면, 사람들이 그렇게 진실하고 착할 수가 없더라. 비록 그들의 믿음을 나는 함께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났던 한 사람 한 사람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한결같이 괜찮은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 만큼 하기도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면서, ‘지금 뭐하는 짓인가’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 이렇게 힐난할 만큼 대단한 삶을 사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침에 이사람들에게 커피라도 한잔씩 사주고 싶지만, 내 마음에서 종교라는 것이 너무나 멀어졌고 또 그 사람들이 내 호의를 오해할까도 두려워 못 본척 지나쳤다.

입대후 나는 81130 특기를(?) 받고 기지교도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어느날 새로운 죄수들이(?) 들어 왔다. 문서를 보니 총기수령거부. 아! 이 사람은 여호아의 증인이었던 것이다. 기지교도소에서 육군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얼마간을 이 사람과 나는 철창을 사이에 두고 함께 보냈다. 아마 밤에 시간을 내어 위로도 하고 또 아무도 보지 않으면 잘 대해 주었었지 싶다. 차마 내입으로, 나도 한때 당신들의 일부가 되기를 원했었던 적이 있었으나, 당신과 같은 믿음과 용기가 없어서 지금 철창 반대쪽에 서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어느날 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하더라. ‘우리 지역 회중에서 어떤 사람이 공부를 하다가 입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때 그는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군인이 바로 그 사람임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믿기에, 그 처녀 선생님과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그들의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했었을 것이다. 나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 주었을 것이다. 내가 군대에서 ‘그때 그자리에 있었더라면 백발백중 인생 종칠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운좋게 제대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다가 이곳에 와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모두 우연이거나 혹은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기도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준 좋은 인연 카르마의 결과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눈물이 나는지… 아마 그 사람들의 인간적인 노력과 희생을 보았고 (설령 세상이 그것을 비웃는다 할지라도) 또 지금도 그것을 존중하기 때문이리라. 그저 돈따라 이익따라 부초처럼 이리갔다 저리갔다 사는 세상에서, 한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따뜻하고 또 굳게 잡아주고, 다른 한손으로는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진심으로 노력하던 그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깝고 또 존경스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내가 지금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결국은 지푸라기임을 나는 점점 깨닫게 되기에. 우리 모두를 향한 눈물 방울…

종교와 믿음을 떠나서, 내 자식이 진실한 여호와의 증인과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지 싶다. 세상에 그만큼 하기도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깨닫게 되었기에. 다른 믿음을 가지고 서로 다투지 않아도 되고 또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살기에. 그리고 우리가 존경하는 친구 노(老)신부님께서 어머니께 말씀하셨듯이 ‘어떤 종교를 가지던 진실하고 훌륭한 삶을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나도 그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해주고 싶기에. 아름답고 품위있고 착했던 그녀. 지금도 훌륭한 여호와의 증인으로 잘 살고 계시길 그리고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고마웠어요. 그리고 그런 것 물으면서 븅신짓해서 미안했어요. 지금도 종류는 다를지 몰라도 여전히 그 지랄하며 살고 있어요~~~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비록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공직에서, 이런 하층민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

Perspective is everything

‘원근법’이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 ‘견해 혹은 시각이 극히 중요하다’ 라는 말이 되겠다. 어제 소개한 One Strange Rock에 나오는, 명언중의 명언이다.

견해나 시각은, 여러개 있는 중에서 (구두나 자동차처럼) 고르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만들어 지는 것일까? 당신이 만약 골프를 쳐 본적이 없고 골프에 대해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실제로 해본 것이 없다고 치자. 그러면 골프에 대해서 (골프라는 운동 자체) 당신이 견해나 시각이 있을 수 있나? 당연히 없다. 자연훼손이나 농약 그런 이야기들은 골프 ‘관련’이지 골프 ‘자체’가 아니지 않은가? 골프에 관한 견해나 시각은 골프를 치면서 생기고 또 발전하는 것이다.

붓다께서, 인간에게는 6개의 감각이 있다고 가르치셨다고 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오감에 더해서 ‘마음’을 6번째 감각기관 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말하는 이 ‘마음’이 저기서 말하는 ‘perspective’와 아주 관계가 깊다고 나는 생각한다. 오감이 받아들인 것을 뇌가 ‘마음을 통해서’ 해석하듯이, 세상만사 모든 것들과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perspective’에 따라서 내게 이해되고 받아들여 지는 것이다.이 ‘견해’ 혹은  ‘시각’이 인간을 규정하고 그의 삶에 얼마나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지는 상상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왜 perspective를 그렇게 강조해서 이야기 하는가 하면, 내 생각에는, 첫째로 대기권 위에서 오랫동안 수없이 (하루에 열두번도 더 지구 주위를 돌면서 세상을 본다), 지구의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운 거대한 스케일과 디테일로 본다는 것이, 그 우주인들에게 어떤 근본적이고 의미심장한 견해 혹은 시각의 변화를, 단지 지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전체와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가지고 왔는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과학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전에는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너무 거대한 스케일 이거나 혹은 극히 작은 스케일의) 자연 현상들을 밝혀 내어 우리들에게 알려줌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새로운 견해 혹은 시각을,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에, 가지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One Strange Rock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실례로써, 아마 우주에서 보았던, 엄청난 규모의 연어 (salmon) 이동과 산란 그리고 죽음 (산란후 자연사). 그 집단적인 죽음 뒤에 실로 엄청난 규모의 질소 (nitrogen) 이동이 있고, 그렇게 이동된 질소가 다시 거대한 규모의 숲을 만들어 내는, 자연의 어마어마하며 또 정교한 ‘rebirth’의 과정을, NASA와 과학의 힘으로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 무덤 위에 심은 사과나무 이야기 기억하지? 바로 그런 의미의 가르침을 붓다께서 주셨던 것이고 또 수천년 지나서 NASA와 다른 많은 과학자들이 밝혀내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Perspective is everything.

시스템 확인

그때 오사카는 신입사원들이 시작하는 시기였다. 여자 신입사원들이 한결 같이 입고 있었던 그 베이지색 바바리처럼, 점잖고 튀지 않는 건물 디자인과 외벽 색깔이 한결 같아 보였던 오사카 시내. 우리 내외는 그중 하나에 들어가 일층에 있는 아케이드 상점들을 둘러 보고 있었다. 한쪽에는 수십명 신입사원들이 모여 있었는데 아마도 첫날 소개식을 기다리는 듯 하였다. 문득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아내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그 입구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아내의 가방을 들고. 들어가는 일본인 여자 두세명이 아마도 짧은 농담을 던지며 웃으며 갔던 기억이 난다. 잠시후 아내가 랄랄라라 하면서 나오는데, 동시에 제복을 입은 경찰관 혹은 보안회사에서 나온 듯한 남자가 급히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며 큰 소리로 무언가를 외쳤다.

나는 이게 무슨일일까 왜 남자가 갑자기 여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면서 소리를 지르는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내를 바라 보았다. 아내도 의아한 듯. 그때 아주 적으나마 이것이 혹시 아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서늘한 느낌이 뇌리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밖으로 점잖게 걸어 나오면서 물었다. ‘별 일 없었지?’ ‘응. 그런데 물내리는 손잡이를 찾는데 좀 어려웠네.’ 공용화장실은 포함한 일본의 거의 모든 화장실에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고 때로는 복잡해 보이는 버턴이 여러개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아내는 그 중에서 물내리는 버턴을 찾느라 애를 먹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찾았는데?’ ‘이곳은 새 건물이라서 그런지 더 복잡해 보이더만. 여기 저기 찾아 보다가 한쪽 구석 밑에 빨간색 버턴이 있길래 누르고 나왔지.’

그것은 비상벨이었다. 일본에 있는 다른 많은 시스템들처럼, 그 시스템도 완벽히 작동하는 것을 우리는 확실히 목격하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