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우산, 잃어버린 지갑

비오네… ‘잃어버린 우산’ 생각나네. 일단 우순실님 노래 한번 듣고 나서… 그때 대학가요제에서 불렀던 그 노래를, 30년도 더 지나서 부르는데 멋있게 부르네.

지갑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나? ‘잃어버린 지갑’ 되돌려 받았었나? 그런 실험을 좀 대규모로 해봤는데 결과 도표는 아래에 있고 왕서방들이 좀 광분했다고 하네 🙂

도표를 보는 법은, 각 나라별로 노란색 점과 빨간색 점으로 표시된 것이, 각각 돈이 들어 있지 않았던 지갑과 돈이 들어 있었던 지갑이 회수된 비율일세. 예를 들자면, 맨 위에 보이는 스위스에서는, 돈이 들어 있지 않았던 지갑은 약 75% 그리고 돈이 들었던 지갑은 약 80% 회수 되었다는 것이네. 이 대규모의 실험은 (40개국 355개 도시에서 17,303개의 지갑으로 실험) 단순히 지갑을 길에 떨어트리는 것이 아니었고, 은행, 극장, 박물관, 우체국, 호텔 그리고 경찰서의 리셉션 데스크에 가서, 미리 준비한 ‘진짜로 잃어버린 듯이 정교하게 준비한 지갑을 (연락처가 이매일로 적혀 있는)’ 주면서 ‘방금 모통이에서 주웠는데, 난 지금 바쁘니 대신 좀 주인 찾아 주세요’ 하고는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방법으로 진행했다고 하네. 그리고 아래의 도표는 100일 이후에 이매일 연락이 오는가 하는 결과를 보여 주는 것이고.

이 실험은, 미국의 권위있는 잡지 ‘사이언스’에 게제된, 대학교수 3인이 (미시간대학교, 유타대학교, 쥐리히대학교) 발표한 논문일세. 그냥 재미 삼아 누가 해 본 것이 아니라.

내가 아래 도표를 보고 느낀 바는, 일단 쌀독에서 인심나고 (매우 부유하면 상당히 정직한 경향이 있고 또 반대로도 그런 것 같고), 적당한 부유함과 종교가 잘 공존하는 나라들도 정직하고, 가난한데 종교만으로는 정직하기 어렵고, 가난한데 종교조차도 없으면… 🙂 그리고 어떤 벼락부자들은 (Dawlat al-ʾImārāt al-ʿArabīyyah al-Muttaḥidah) 제 주머니에 잔뜩 들어 있어도 정직이 무었인지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또 다른 가난한데 종교조차 없는 나라에서는 안 돌려주었다가는 혹시 КГБ에 끌려가서 작살날까봐… 🙂

옆길로 새는 이야기 하나

일전에 내가 술이 취해서 정신이 없으면 할것이라던 그 잡담을 할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다. 오늘 회사에서 미팅을 얼마나 열나고 심하게 오래 했던지 취하고 정신이 없는 기분이다.

어제 붓다께서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신 이야기를 했었다. 누구에게 주셨을까? 처음에는 옛 스승을 찾아서 주려고 했었는데 (붓다에게도 스승으로 모시던 사람이 있었다고? 그럼 있었지. 단지 붓다만큼 안 유명할 뿐이지) 그분이 그만 돌아가시고 말았기 때문에, 멀고 먼 길을 걸어서 옛날에 함께 고행하던 옛 동료 다섯명을 찾아가서 첫 가르침을 주셨다.

그 사람들은 과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언젠가 다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붓다께서는 그당시 유행했고 또 본인도 수년을 더불어 시도했던 고행 혹은 만행을 (안먹고 안자며 몸의 욕구를 묵살하여 어떤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고자 시도함) 중지한 이후에 제대로 먹고 마시고 자면서 ‘중도’의 길로 수행하여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깨달은분, 성불한분, 최고의 진실을 깨우친분) 되셨다. 이런 소문을 그 옛 동료들도 들었는데, 처음에 그들은 자신들이 시도하는, 잘 알려지고 모든 사람들이 따르는 그 구도의 길을 저버리고 제 갈길을 마음대로 가서 잘먹고 잘살았다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득도 성불하여 자기들을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시큰둥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럴리가 없다. 미쳤던지 사기꾼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였다. 한 사람이 말했다 ‘그가 오면 아는체도 하지 말자. 자리를 마련해 주지도 말고 옷도 받아 주지 말자’ 다른 사람들도 동의 했다. 좀 지나서 붓다가 더 가까운 곳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는 다른 사람이 말했다 ‘옷은 안 받아 주더라도 자리는 마련해 줄까보다’. 그리고 붓다가 그들을 만났을때 그들은 일어나 자리를 마련해 주고 옷을 받아 주었다 🙂 나는 이런 구절을 읽을때 그야말로 이 글이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확신이 든다. 쪼잔하고 인간적인 당신과 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뒤에서는 큰소리 쳤는데 앞에서는 쫄았어요~~~

(이제 옆길로 세기 시작한다) 반대로, 내가 한국불교에서 소위 최대 최고의 경전으로 높이 받들어지는 그 유명한 경전의 시작을 듣는 순간, ‘갠지스강가의 모래 숫자 보다 더 많은 공덕을 쌓고…’ 하는 이 황당무계하고 무리한 표현을 딱 듣는 그 순간에, 이것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이 아니다. 이런식으로 말씀하실 분이 아니다. 이것 인디라군이나 왕서방이 붓다를 사칭해서 제멋대로 적어 놓은 것이다라는 직감이 순간적으로 왔었다 (현대 학자들이 문헌학적으로 또 과학적으로, 이 경전이 붓다의 저술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는 붓다께서 직접하신 말씀을 기록한 불교경전에 포함되지 않는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 그 직감 틀린적도 많고 또 그것 가지고 내 억장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아요’ 🙂 하지만 예를들어, 당신이 사랑하는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능력이 있는 아빠인지 말해준다고 가정하면, 내가 돈이 하늘의 은하수 만큼 많고 또 어제 촛대뼈 깐 졸개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 만큼 많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나? 당신이 성숙한 어른이 되어 사랑고백을 하는데, 하늘의 별, 온 세상의 모래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의 머릿칼을 곱한 숫자만큼 너를 사랑한다고 이야기 하겠나? (전두환을 포함한 대머리들 때문에 결과는 0이다) 물론 그런 넘들도 있겠지. 하지만 제대로 철들고 성숙한 아빠들이나 lover들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지 싶다.

영어 표현에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라는 것이 있다. 그자들이 붓다를 사칭하며 그런 책을 쓰면서 몰랏던 것은 그리고 결코 알 길이 없었고 또 도달할 수도 없었던 것은, 붓다의 크기와 깊이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 흉내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었던 것이지 (=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정말 사기꾼은 아홉의 진실에 하나의 사기를 결정적인 장소와 시간에 슬쩍 집어 넣는다고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많이 또 자주 보였던 그 아홉만을 기억하고 또 철썩같이 믿고 (특히 자기의 이익과 관련이 되는 경우에는) 그 결정적인 나머지 하나를 보지도 못하고 하다못해 눈 앞에 가져다가 보여 주어도 믿지 않고 또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기꾼보다 더 고수가 내려다 보면, 속는 사람도 또 속이는 사기꾼도 훤히 보이겠지. 양쪽 모두 하수들 아닌가. 그 사기꾼이 진정 최고수였다면, 사기를 치는 대신에 다른 정당하고 존경받는 다른 일을 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좋아서 사기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싶겠나. 주제넘게 크고 좋은 것을 쉽게 가지려 하다보니 미쳐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아니, 그 경전이 좋은 말씀이고 또 90% 붓다의 말씀과 의미가 통하면 되지 않을까요?’ 당신 이렇게 말하고 싶나? 나도 하나 물어보자. ‘당신 진품 에르메스 가방은 그 엄청난 돈을 주고도 사고 싶어 하면서, 그 모양과 품질도 거의 똑 같은 모조품은 왜 100분의 1의 돈을 주고도 사려고 하지 않는가?’ 그 멋진 가방이 만약 ‘진달래 가방’ 같은 진짜 상표를 달고 독자 개발한 디자인으로 정당하게 100분의 1값으로 팔린다면 나도 사겠다 (상표때고 속여서 아내에게 줄 계획). 10%의 가짜건 어떻든 간에 가짜를 섞는 행위는 사기라니까. 그리고 사기 치는데는 숨겨진 저의가 있다니까. 당신의 이익이 아닌 그넘의 이익…

이야기 왕창 옆길로 샛네. 다시 그 다섯명의 옛 동료들과 붓다의 재회 장면으로 되돌아와서, 붓다가 앉아서 이야기를 좀 시작하려고 할때 그들은 한결같이 반발하였다. 그들도 한자락하는 당대 최고수들이었을 것이다. 사정해도 안통하니 붓다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들을 설득하고 붓다의 깨달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Dukkha의 설법을 그들에게 최초로 베푸셨다고 한다. 어떻게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입을 다물고 반발을 중지하고 귀를 기울이게 되었을까?

‘이보게 자네들의 기분을 잘 알겠고 또 나를 의심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도 이해가 되네. 그런데 한가지만 부탁하세. 내 얼굴을 보아주게. 어떤가?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사실이겠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더욱 ‘내면의 진실이 실재한다면 얼굴과 언행을 통해서 반드시 표출된다’는 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 다섯분의 옛 동료들은 붓다의 얼굴을 새삼 자세히 바라보았겠지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이분 얼굴에 무언가가 있다. 우리가 들을만한 진실이 있을지도 모르니 입을 다물고 들어 보자’. 아! 이분들도 참으로 고수들이셨던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선입견을 일순간 과감히 접고 붓다의 말씀을 들어 주었지 않았는가? 이것 쉬워 보여도 ‘나도 일가견이 있다’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확고하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 싶다. 바로 이것 때문에, 잔치상 어떻게 더 잘 차리는가 의논하다가, 상 뒤엎고 칼부림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이 다섯분들 나중에 어떻게 되셨냐고? 붓다의 가르침을 받들고 수행에 정진하여 모두 아라한이 (소위 ‘성불’)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으로 훌륭하시다. 인간적으로도. 언젠가 말했듯이 붓다의 부인과 아들도, 남편 아빠 찾아와서 집에 가자고 조르다가 (요 부분만 내가 지어냄, 찾아 와서 만났던 것은 사실)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수행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모두 실존했던 사람들이다.

내 직감과 육감이 틀린 적도 많았고 또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 억장을 무너지게 했던 적도 많았다고 고백했었다. 내친 김에 한가지만 더 하자. 한 십년 혹은 이십년 전에 소위 서울대생 몇명이, 부산인가 어디 지방에서 수행을 많이 했다는 사람을 만나고 그의 영향으로 집단으로(?) 출가했다고 매스컴에서 오르내리며 인간극장 이런데도 나오고 떠들썩 했던 적이 있었다. 나도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 보았던 적이 있었다. 유튜브를 통해서 그 당시 방영 되었던 무슨 인간극장 같은 것을 건너 뛰며 보기도 했었는데, 그 지방에 산다는 수행자가 화면에 막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 그자의 얼굴에서 ‘싸움닭’ 상판을 직감적으로 보았던 거라. 아! 수행 챔피언쉽 타이틀 쟁탈전 하는 자로구나… 그 젊은 서울대생들, ‘나는 득도 성불하리라’는 건방과,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이 줄줄 흘러 넘치던 이십대 넘들이 얼마나 impressed 됬고 또 감격했었겠나 상상이 된다. 이넘들이 대부분 실제로 승려가 되었고 한둘은 아직도 매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그 중 한넘은 내가 보기에 스승을 뛰어 넘은 것 같다. 훗날 취해서 옆길로 새는 이야기에 다시 등장 할 것이니 기대하시라.

그리고 나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 혹시 내 글 몇개 읽어 보고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면, 다음번에 나를 만나서 한잔 할때까지 보류하시라. 이 글 읽고 내 상판이 어떨지 궁금해지지 않았나? 좀 어리버리한 이류 싸움닭 같은 모습이 아직 많긴 한데, 내 과거의 얼굴을 기억하는 그대들이 ‘아! 그래도 조금씩이라도 나아지고 있네’ 이렇게 느끼게 되길 희망한다 🙂

연봉 왕창 오른 이야기

오래전에 한 정부기관에서 일했던 적이 있었다. 소위 본사에서 일했던지라 비록 먹이사슬의 최하층이었지만 복도에서나마 거룩하고 높으신 분들을 지나칠 기회들이 있었다. 그중에 대머리에 인상이 더럽고 태도가 좋지 않아 보이는 매니져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빵영감 바로 아래 넘버 2 보스였다. 알게 뭐냐. 난 IT인데. 내게 최고의 고객은 안보이고 안부르는 고객 🙂

그 정부기관에 대규모의 구조조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빵영감과 그 휘하의 매니져들이 날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떠돌았다. 나야 뭐 Bottom of the food chain. No worries.

시시각각 구조조정에 대한 새로운 소식들이 들려오는 와중에 바로 그 인상 더럽고 태도 안좋아 보인다던 매니져가 뇌졸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몇 주 지나서 IT매니져를 통하여 업무가 하달 되었다. 그 매니져가 의식을 되찾고 살아 났는데, 회사 구조조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하니,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는 휴대용 컴퓨터를 마련해 주라는 지시였다. 그때는 전화 회선을 이용하는 저속 인터넷 그리고 dial-in 원격접속등의 시대였었다. 퇴근길에 같은 도시에 있는 병원에 들어 컴퓨터를 가져다 주었다. 다 죽었다 살아난 모습 같은데 안되 보였다. 들리기에, 대빵영감 따라서 목이 날아 가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더만…

또 몇 주가 지났는데, 내 매니져가 회의중에 짧게 언급하기를, 그 공립병원의 전화시설이 보통과 달라서 내가 가져다 주었던 장비를 쓸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그 자로부터 들었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는 보통 그게 끝이다. 안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가보다 넘어 갔다. 금요일 오후에 내 사무실에서 코딱지를 후비며 오늘은 무슨 맥주를 사서 집으로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다. 나는 비록 최하층민이었으나 다른 매니져들처럼 내 사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새로 만들어준) 우연히 그자 생각이 났다. ‘그넘 인상은 좀 더럽고 내가 상종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답답하겠다. 매니져로 목이 달랑달랑 하는데 회사 소식을 알길이 없고 또 몸은 죽다가 살아나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인트라넷을 뒤져서 관련 정보를 복사하여 시디에 구웠다. 그리고 퇴근길에 그자가 누워 있는 그 병실을 찾아 갔다. 시디를 주면서, 잘 회복하고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짧게 엉터리 영어로 말하고는 문을 나섰다. 아마 2-3번 정도 시디를 구워서 가져다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는 잊혀졌다.

몇 달이 지났다.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이 났고 정말 대빵영감과 그 수하들의 목이 날아갔다. 그중에는 내가 잘 알았고 또 나를 잘 대해 주었던 고위 매니져 몇명도 안타깝지만 들어 있었다. 어느날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데, 어떤 넘이 목발을 짚고 절룩 거리며 반대 방향에서 걸어 오는 모습이 보였다. 뭐냐? 가까이서 보니 그 매니져였다. 아! 이 넘 안 죽고 안 짤렸나 보다. 그래도 반가이 인사를 했더니, 옛날과는 다르게 웃는 얼굴로 아는 채를 하더라.

다시 몇 달이 지나서 매년 실시하는 근무평가 및 연봉 재조정의 시기가 되었다. 나는 별 문제 없이 그저 고무신에 붙은 껌처럼 붙어 있고 다만 맥주값이라도 몇 푼 더 받았으면 희망하고 있었다. 내 매니져가 결과를 알려 주었는데, 내 연봉이 20% 인상 되었다. 이 나라에서, 이런 공직에서, 이런 하층민에게는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제는 절룩거리기까지 하는, 그 인상 더러운 넘이 2인자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아무말 없이 내 연봉을 그렇게 올려 주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호의를 그런식으로 갚은 것이니 문제가 될 소지도 있었겠지만, 그 호의를 아는 사람은 그와 나 두사람 뿐이지 않은가? 그는 내 보스의 보스의 보스였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불러서 한 마디 했겠지. ‘어이 거기 본사에 IT 지원하는 넘 있지. 그넘 연봉 20% 왕창 올려 줘라. 많은 직원들이 그넘 재주 잘 부린다고 말하더만’.

내가 더 크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그곳을 떠날때, 복도에서 그자와 다시 마주쳤다. ‘꺼진다며?’ ‘그렇다.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는 제 갈 길을 갔다.

그저께 해외 원조를 하는 두 나라를 비교하면서, 같은 행동이지만 근본적인 다름이 존재한다고 했고, 계산된 저의가 카르마를 낳는다고 했다. 그 인상 더러운 매니져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것을, 잊지 않고 또 소흘히 하지 않고, 확실한 행동으로 내게 보여 주었던 것이다. 내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고 또 우연히 생긴 일이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나름 감동이다. 이렇게 연봉을 올리고 또 기록을 세우기도 한다 🙂

욕심과 두려움

아내는, 서너살 먹은 유치원 아이들이 어울려 놀며 갈등하고 부대끼는 것을 오래 보아 오면서, 그 본질은 성인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또한 지금 그들이 보이는 언행에서 그들의 장래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코헨’ 이라는 서너살 된 사내 아이에게 관심이 많고 자주 그 아이의 이야기를 저녁 시간에 하곤 하였다. 이 아이는,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멋진 사내’ 라고 한다. 아! 그런 넘도 있구나. 그 어린 나이에도 그런 것들이 드러나는구나. 하지만 이 아이는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알코올과 약물 중독자였고, 현재도 비록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노력은 하고 있으나 그 상태를 크게 벗어 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 아이의 할아버지, 아내의 말에 따르면 한때 한 주먹 했을 법한 무섭게 생긴 노인이, 손자를 유치원에 데리고 오가며 부모 노릇을 대신 한다고 했다. 원장님께는 깍듯이 한다고 🙂

어떤 좋은 유전자를 받아 멋진 면을 가지고 태어난 이 어린 녀석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특히 유년기에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유치원에서 또래 아이들과 또 교사들에게 크고 작은 많은 문제를 일으킬때, 아내는 화가 나기 보다는 성장 환경의 영향으로 이 아이의 삶이 서서히 ‘험난한 인생’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기에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돕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기 어렵다고 한다. 아내가 말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을 내가 지금 보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내가 묻는다. 당신이 이 아이가 그토록 마음에 걸린다면 유치원을 떠나고 난 이후에도 선생님으로 남아 도와 주면 되지 않겠는가? 아내가 덧붙인다. 그럴 수가 없다. 내게는 오늘, 바로 지금 돌봐야 할 수 많은 아이들이 있고 또한 내가 만약 이 아이 주변에 계속 머무른다면 그 아이와 그 주변 사람들의 부정적인 에너지에 나조차 휩쓸려 떠내려 갈 것이다. 아내와 그 멋진 녀석과의 인연은 곧 끝이 날 것이요, 그 아이는 태어난 환경이 짐지워준 숙명의 길을 오래 그리고 힘들게 걷게 될 것이다. 서론이 길었다.

모국에 머무는 동안, ‘두두두’라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두어차례 재미있게 보았다. 한 지방 채널에서 매주 방영하는, 초등학교 대항 발야구 중계방송(?) 이다. 보통 열댓살 된 초등학교 6학년들이 팀을 이루어 발야구 시합을 하는데, 그 준비 과정, 임하는 자세, 응원 그리고 실전과 경기 후일담까지, 흡사 사회생활의 축소판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듯하다.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 그리고 대화를 통하여,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은 욕심 때문에 그리고 운동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두려움 때문에, 자기가 공을 차는 공격 순서가 왔을때 제대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이 그리고 때로 우습게 아웃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전후해서 보이는 그들의 반응을 통하여 그들이 장차 성인이 되었을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내 나름 상상해 보게 된다. 아직 초등학생들이지만 성격의 많은 부분은 이미 형성이 되었으리라.

내 자신을 되돌아 보자면, 주로 두려움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는 우스꽝스럽게 타석을 내려가는 아이였을 가능성이 크겠다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자신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나니 이미 나의 발야구는 끝난지가 오래 되어버렸다는 씁쓰래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한참 사회 생활을 할 때는, 특히 모국에서는 이런 단체경기에서 주동이 되고 기량을 발휘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 하리라 생각 한다. 하지만 이제 내 나이가 되고 또 개인주의가 발달한 외국에서 오래 살다보니, 그것 이외의 다른 능력들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어떤 지위에 있건 얼마나 부유하건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지배하는 이 욕심과 두려움이라는 큰 영향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경험과 배움을 통해서 나는 차차 깨닫게 된다. 욕심은 노력하면 줄일 수 있고 욕심이 줄면 두려움도 준다는 것을.

골프 샷을 망치는 가장 큰 두가지 이유는 역시 욕심과 두려움이다. 이 둘을 조금이라도 더 컨트롤 하며 라운드를 즐길 수 있기를 나는 바라며 또 노력한다. 골프의 참맛은, 딴 돈의 크기나 카드에 적인 점수보다는 오직 자신만 알 수 있는 바로 이 욕심과 두려움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이싸움에서 자주 이기면 라운드의 결과는 2차적인 문제로 남게 된다. 그래서 썩좋지 않은 스코어카드를 손에 들고서도 몹시 행복해 하는 고수들이 세상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내가 속한 클럽에서는, 로컬룰에 따라 겨울 동안에는 페어웨이에서 공을 집어들어 닦고 한 클럽 거리 안에서 더 나은 자리에 놓고 샷을 할 수 있다 (플레이싱). 몇 주 전 라운드중에 세켠샷을 3우드로 칠 때가 왔다. 몸 왼쪽으로 기울어진 좋지 않은 라이. 3우드샷에 무척 어려운 상황이었다. 문득, 나는 우드샷에 강한데 공을 그대로 두고 내 실력껏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가지고 프리샷 루틴을 따라 욕심과 두려움 없이 최선을 다해 샷을 날렸다. 좋은 샷이었지만, 좀 떨어진 페어웨이 벙크 앞 턱을 맞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한다. 아내에게도 말했었다. 나는 그때 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욕심과 두려움 없이 내 실력대로 한방 날려 보았노라고. 그래서 결과야 어떻게 되었건 내 속이 시원하고 내 자신에게 기분이 좋다고. 욕심과 두려움을, 최소한 그 순간에는 나의 역량과 에너지로 제압 했었다. 나에게는, 삶에서도 골프에서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따고 또 좋은 점수가 적힌 스코어 카드로 다른 사람들에게 우쭐거려도, 그 과정에 욕심에 휩쓸리고 두려움에 시달렸다면 자기 자신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대나 나나 떠날때 돈을 좀 덜 땃던 것 혹은 남들에게 좀 못 우쭐거렸던 것을 후회하면서 눈을 감을 것 같은가? 내가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좀 더 해보았었더라면 하고 후회를 한다고 하던데.

욕심을 줄이면 두려움도 줄게 되어 있다. 그러면 내 능력껏 내 기량을 내 속이 시원하게 발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이것 참 중요하고 또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덧붙이는 이야기 – 어제 라운드 후반에 다시 그자리에 서게 되었다. 200미터 이상 남은 곳에서 3우드로 그린을 공략하는 그곳에. 동반자들에게 종게 양해를 구하고 그린에서 앞팀이 내려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욕심과 두려움이 없는 상태에서 프리샷 루틴에 따라 천천히 샷을 날렸다. 공은 똑 바로 날아가 230미터 떨어진 그린 중앙에 안착하였다. 물론 3펏 하고 내려오는 백돌이 수준이지만, 나는 이런 맛도 때로 즐길 줄 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