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존재, 내가 경험하고 깨닫게 된

나는 한마디로 인간이란 존재를 ‘짬뽕’이라고 정의하겠다.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지성과 무식, 평화와 폭력, 이기심과 희생심 그리고 맵고 짜고 쓴 맛과 단 맛 등이, 마치 물과 기름처럼 유리병 속에 기묘하게 뒤섞여 있다가 때와 장소에 따라 이리저리  분출되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많이 배우고 성공한 사람들 속에서 직장생활을 오래 해왔고, 내 수준을 넘는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으며, 하다못해 골프조차도 가장 성공한 부류들과 어울려 쳐왔다. 도덕적으로 최상위일 것이 기대되고 또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여러 종교의 수행자들과 지도자들도 오랜 세월 알아봤고 만나봤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 중에서 특출하게 뛰어나서 나를 감탄하게 하고 존경심을 불러 일으킨 사람은 드물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소유한 그리고 드러낸 학위, 돈 , 직위와 상관없는 수준의 언행을 보였으며, 일부는 그야말로 못된 철부지 아동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런 사람들도 ‘그들의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관료, 학자, 사업가, 의사들일 것임을 나는 의심치 않는다. ‘어떤 때’ ‘어떤 곳’에서는 병 위에 고여있던 향기로운 올리브 기름이 분출되다가, 다른 ‘어떤 때’ ‘어떤 곳’에서는 병 아래 고여있던 (올리브 기름이 덮고 있던) 악취나는 오물이 분출 되는 꼴이 우리 인간의 진면목이 아닌가 싶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증거들이 하도 많아서, 사람들이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를 대하며 사는 것이 오히려 내게는 신기하고 의아하다. 다른 어떤 동물도 이만큼 (의도적이건 아니건) 속고 속이고, 또 이렇게 이중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인생이 묘미가 있고 또 끝없는 도전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차 깨닫게 된다. 이전에는 이런 인간의 진면목을 단지 혐오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묘미와 도전 그리고 발전에 한가지 조건이 붙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도 나도 ‘짬뽕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조심해야 하겠지 언제 어디서 너와 나의 오물이 어떤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에. 또 기대도 낮추어 살아야 하겠지. 이런 나를 받아들이듯 그런 너를 또한 받아들여야 하니. 짬뽕이 짬뽕과 뒤섞이는 왕짬뽕 세상이로구나 🙂

우물안의 개구리 그리고 해탈

우연히 산악인 허영호에 대한 오래된 기사를 최근에  보게 되었다. 그가 한국산악회와 원수진(?) 이유에 대한 것들인데, 조선일보가 인터뷰한 내용을 먼저 보았다. 등산인으로서의 성취도 성취지만 그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살아온 길들을 읽으면서, 이 사람 도인인가? 정말 놀랍고 대단한 사람이로구나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늘 하듯이 크로스첵크를 (비교확인) 해보려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한국산악회 부회장이 월간 ‘산’ 이라는 잡지에 산악회를 대표하여 올린 글이 있었다. 매우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세상사가 칼로 무우자르듯 단순하고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또 각자의 처지에 따라 동일한 일이 전혀 다르게 보이고 해석되는 경우도 흔한 일이니 진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내 느낌으로는 한국산악회쪽의 말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은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다시 허영호의 인터뷰를 읽어보니 이 사람이 과연 아까 내가 생각했던, 그 도인에 가까운 놀랍고 대단한 사람인지 아니면 현실세계에서 (자신의 부족함으로) 큰 실패를(?) 했던 사람이  화려한 언변으로 내로남불 하면서 일종의 정신승리나(?) 추구하는 것인지 햇갈리게 되었다.

오늘 산을 뛰다가 문득 ‘아! 해탈이란 것이 (득도, 경지등 어떤 표현을 쓰건 상관없다) 정말 어려운 이유가, 반드시 우물안에서 다른 개구리들과 부대끼고 엮이면서 살아야 한다는 조건을 만족시킴과 동시에, 스스로는 우물안의 개구리를 벗어난 상태를 유지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로구나’ 깨닫게 되었다. 이래서 정말 어려운 것이로구나!

내가 글을 잘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글을 잘 쓰는 것과 인생을 잘 사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가로질러 흐른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들을때면 무거운 마음이었는데, 허영호의 인터뷰를 읽고나서 마음이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내가 이 사람처럼 말하거든, 나도 그와 비슷한 태도로 살거든, 그리고 그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감동할(?) 때도 있었고. 내가 그의 인터뷰를 맨 처음 읽으며 감동했었듯이.

괜찮은 여자 하나 팔자 고쳐주려고 내가 이리저리 좀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이십년도 훨씬 전에 중매를 딱 한번 했었는데 아직 해로하고 있으니 성공율이 100%이긴 한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첫 상대로 오래전부터 내가 잘 알던 종교인 한 사람을 설득해보았는데, 한이틀 기도를 한 후에 응답이 왔다. 고맙고 좋기는 한데 자기는 그래도 자기가 믿는 신과만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서 점잖게 거절하였다. 회신을 기다리면서 이 사람의 강연을 유튜브로 몇개 보았는데, 이분이 하는 일의 성격과 퍼스날리티를 알면서도 ‘아직도 이렇게 이분법적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강한 표현들을 하고 있구나’ 느낌이 들었다. 그의 거절을 더 이상 설득없이 조용히 받아들였다.

‘다른 개구리들과 우물안에서 부대끼고 엮이며 살지만, 그들과는 달리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높은 자리에서 앉아서 사람들을 눈 아래로 보면서 떠들어대는 자들을 보면, 자신은 우물안에서 다른 개구리들과 부대끼지도 않고 엮이지조차 않으면서 어쩌자고 다른 개구리들을 보면서 우물밖으로 나가라고 떠들어 대는지 기가 막힌다. 종교의 한계요 인간의 비극이다.

해탈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위험한 신호들을 생각해 봤다. 첫째로 꼽을 것은 ‘강성’이다. 책을 읽고 머리로 공부해 생겨난 이론들이 강하고, 그것을 강하게 표현하며 또 강하게 행동으로 옮긴다. 예외없이 아직 멀었다는 증거다. 어떤 분야에서건 경지에 오른 사람이 ‘강성’인 경우는 없다. 둘째로, ‘분리’다. 사람이건 그 무었이건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나와 남 혹은 우리와 그들처럼 대립구도를 만들어 낸다. 말이나 글이 그런 이분법적 구도를 바탕으로 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에고다 (ego). 나는 다르다는 거지, 내가 속한 이곳은 네가 속한 그곳과는 다르다는 거지. 아주 위험하다. 셋째로, 미려한 글이나 말로 ‘설득’하려는 태도다. 해탈의 가능성은 스스로 뱉아내는 미사려구와 반비례한다.

언젠가부터 믿음이 들기 시작했는데, 해탈하거나 도 트고 나도 유튜브에서 떠들고 책써서 팔고 안 그러지 싶다. 뭐 딱히 할말도 없고 또 뭐 좀 팔아서 돈벌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다 그런 욕망도 없을테니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표가 나지 않게 된다. 우리가 일상속에서 스쳐 지나간 해탈 도인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최근 한국 방문 후에 연락이 재개된 한 친구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위에서 말한 위험한 신호들을 드러내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면서 마음이 무겁다.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강하게 말하고 너와 나를 분리하며 자꾸만 설득하려고 하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아무것도 증명할 것도 없고, 증명할 필요도 없고 또 증명할 대상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지만 이것도 배우는 과정이니 발전의 일부 아닐까 싶다.

이번에 한국에 잠시 머무르며 사람들의 언행이 무식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경우가 몇차례 있었다. 내게 ‘마음의 노안’이 와서 세상이 굴절되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런면들이 늘 있었는데 문제 삼지 않다가 요새들어 내가 문제 삼기 시작하는지 명확히 알기가 어렵다. 이 친구와도 ‘오랜 친구사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시각과 ‘오랜 친구사이니까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라는 시각이 충돌하는 경험이 이번에도 있었다. 귀국해서 아이와 한번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아이가 세대도 사고방식도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 소셜 아이큐가 높다. 자기 생각에는, 전자쪽이 더 맞는 것 같고 (오랜 친구사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느낀 부정적 감정을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건 표현하는 것은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에 주고받은 팩트에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크고, 아이는 그보다는 관계 자체에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인생의 대부분을 독고다이로 살아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한면만 있는 동전이 없고 잘 들면서 손 안베는 칼도 없다. 친구들의 이해와 인내에 감사한다.

블링블링? 엉망진창?

어제 이야기 했던 티비드라마 ‘결혼계약’에서 주인공 혜수씨가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받아들이기 직전에 묻는 말이 있어요. (나의 병으로) 앞으로 나는 ‘엉망진창’이 될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렇게 묻습니다.

엉망의 ‘엉’은 큰 숫자를 의미하는 ‘억’이 변화된 것이에요. 그리고 ‘망’은 그물이라는 뜻인데요, 합치면 ‘엄청나게 많은 그물처럼’ 이런 의미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그물이 엄청나게 많이 얽히고 섥히면 그 겉으로 드러난 (표면의) 모습은 어떨까요? 몹시 우둘투둘하고 보기에 징그럽겠지요. 진창은 천연두나 종기의 자국 혹은 흉터를 의미합니다. 네 글자를 합친 의미는, 천연두나 종기의 흉터가 마치 수없이 많은 그물 모양처럼 피부를 징그럽게 뒤덮은 꼴 이런 정도입니다. 징그럽고 보기싫고 무섭고 괴롭고 가까이 하기싫고 아무도 원치않는 그런 꼴이 바로 ‘엉망진창’입니다.

오래 떠나 살면서 한국어가 변화하고 변천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때로는 전혀 들어본 적도 없고 또 의미도 알수 없는 단어들을 사람들이 (나에게) 자연스럽게 사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드라마를 보면서 새롭게 듣게된 단어는 ‘블링블링’ 입니다. 물론 한국어는 아니지만 아마도 사람들이 종종 사용하는 말인 듯 합니다. 알아보니 자마이카 출신의 어떤 래퍼가 (가수)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계에 퍼져, 한국뿐만 아니라 영어권에서도 슬랭처럼 사용되는 듯 합니다. 한국어 ‘반짝반짝’과 대응하는 자마이카 말인듯 하네요.

그대에게 삶은 ‘블링블링’ 인가요 ‘엉망진창’ 인가요? 아니면 지금은 엉망진창인 느낌이지만 그래도 언젠가 올지도 모르는 블링블링을 꿈꾸며 살고 있나요?

붓다께서는 삶은 ‘두카’라고 하셨어요. 짱께들이 ‘고’ 즉 괴로움이라 번역하였고, 코쟁이들도 ‘suffering’ 역시 ‘괴로움 혹은 고통’이라고 번역하였는데요, 사실은 둘 다 정확한 번역이 아닙니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두카’의 보다 정확한 의미는 ‘결코 만족할 수가 없는’ ‘결코 완전할 수가 없는’ 다시말해 ‘항상 불만족스럽고 늘 불완전한 (마음의) 상태’를 뜻하셨습니다. 목이 정말 마를때 시원한 물을 들이키면 행복해지나요? 갈증이라는 일종의 괴로움이 사라짐은 분명하고 잠시 어떤 기분 좋음이 (행복이라고 굳이 말할 수도 있겠네요)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금새 사라지고 결국 남는 것은 ‘다음번 목마름’ 뿐이 아니겠어요? 마시고 돌아서면 또 마셔야 하고, 잠시 기분이 좋더만 돌아서고 나면 잘 해야 본전 아니면 오히려 기분이 나빠지는, 바로 이러한 우리 인생의 ‘멈추지 않는 갈증과 그것이 끝없이 빙글빙글 도는 윤회’를 표현하신 말이 ‘두카’입니다.

그러면 정말 이런 두카에서 해방된 상태는 어떤 상태일까요? (예를 들자면) 목이 마를때 마신 물이 주는 그 쾌감 혹은 일종의 행복이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아니면 한번 물을 마시고 나면 다시는 목마름이 애초에 생기지 조차 않는 상태? 하지만 이런 상태들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함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혹은 제정신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지 않겠어요? 목마름이라는 예를 떠나서 다른 어떤 것을 그 자리에 대입시켜도 ‘한번 얻어진 어떤 것이 (행복처럼 추상적인 대상이건 돈처럼 구체적인 것이건) 영원히 남아 있는 상태’ 혹은 ‘한번만 얻고 나면 다시는 더 얻을 필요가 없이 만족한 상태가 지속 되는 상황’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실 세계에도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들이 꽤 있습니다. 사람들이 감동도 하고 또 일종의 희망을 (?) 가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예요. 나는 좀 비범한 (?)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런 신데렐라 이야기의 뒷조사를 해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내가 알아본 모든 신데렐라 이야기의 현실속 결말은 ‘두카’입니다. 종종 상황이 정반대로 뒤집어져 처음의 행복을 나중에 모조리 토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길게보면 이 세상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란 없어요.

내가 여태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인생의 참 모습은 ‘블링블링’ 보다는 ‘엉망진창’에 더 가깝지 않은가 싶네요. 물론 괜찮은 곳에서, 어떤 사람들은 부러워 할지도 모를 삶을 살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각자 각자의 처지에서 느끼는 주관적인 목마름은 (비유적으로)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르며, 오로지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두카’가 동전의 뒷면처럼 우리의 삶에 찰싹 들어 붙어있다는 것뿐 아닌가 하는데서, ‘삶은 엉망진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이렇게 우리 인간의 삶이 ‘두카’이며 ‘엉망진창’에 가까울진데, 그것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는 인간의 노력들도 (해탈의 과정도) 엉망진창의 과정일 것이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랬다 저랬다, 됐다가 안됐다가, 저녁에 왔다가 아침이면 가버리는, 그야말로 찌질하고 구질구질한, 불안정함, 불만족함, 불완전함. 이런 고약한 up & down의 반복이 해탈의 과정이 아니겠어요? 붓다께서는 80세가 넘어 돌아가셨어요. 현대의 나이로 환산하자면 아마 120세쯤 장수하셨지 싶네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분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더불어 알려진 이분의 또 다른 위대함은, 돌아가실 때까지도 다른 사람들 그리고 수행자들과 더불어 매일 매주 매달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똑같이 함께 (정해진) 수행에 정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번만 먹고나면 영원히 배부른 밥이 없듯이, 한번만 성취하고나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해탈 열반도 세상에 없다는 진실을, 몸소 웅변으로 똑똑히 가르쳐 주신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그분만은 예외이셨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셨다는 것이 내게는 많은 것을 무언으로 가르쳐 주시고 있어요.

잘 먹고 입고 편해서 얼굴에 기름이 졸졸 흐르는 모양새로 (그렇게 먹고 입고 자도록 땀흘려 제공해 주었던 사람들 고마운 줄은 모르고)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또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입을 놀리는 성직자나 도사같은 가짜들을 내가 그토록 좋아하고 또 따르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

어쩌다 한번씩 청소를 하면서, 예를들면 밀대로 부엌바닥을 닦으면서, 나는 뜬금없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청소란 사실은 (더러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만 희석시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요. ‘줄이는 행위가 청소’ 입니다. 희석시켜 줄이는 것이지 결코 전부 없앨 수도 없고 또 설령 어떻게 한번 거의 없앤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되돌아 오지 않겠어요? 인생도,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해탈이니 사랑도 결국은 이와 같지 않을까요? 더러움을, 어두움을, 어리석음을 좀 닦아내서 줄이고 또 뒤돌아서 다시 좀 닦아내고 줄이면서 세월이 흐르고 장차 종착역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결국은 우리가 바라는 그 무언가 명백하고 확실한 그래서 내 손에 꼭 쥘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데도, 닦아내고 또 닦아내는 땀 흘리는 과정만 존재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삶의 실체이며 또한 인간의 숙명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고선 한동안 망설이셨다고 합니다. 이것 가르쳐서 뭐하나? 누가 알아 듣겠나? 이런 마음이셨다고 하지요. 하지만 붓다께서는 마음을 바꿔 잡수셨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 이 순간 우리도 두카니 해탈이니 배워서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게 된 것이지요. 왜 마음을 바꾸셧을까요? 무었이 그분의 마음을 돌렸을까요? 내가 듣기로는, 그분이 보시기에 ‘인간들이 불쌍해서’ ‘사람들이 사는게 슬퍼서’ 그러셨다고 해요. 측은한 마음.

계절 탓인지, 돌아가신 사랑하던 이들의 삶을 되돌아 보아도, 내가 사는 꼴을 보아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사는 것을 보아도 인생은 참 애잔하다는 마음입니다. 애처롭고 애틋한 마음. 일종의 슬픔.

이 글을 쓰고 난 다음날 아침이면, 나는 다시 전철에서 사람들을 밀치고, 회사에서 사람들과 다투고, 스쳐가는 사람들에게는 알게뭐야 불친절, 그리고 가족과 가까운 이들에게는 야비한 언행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겠지요. 그럼 그때 또 만나요 🙂

다마네기

사실은 ‘양파처럼 진실이 겹겹인 세상’이라는 글 제목 대신에 그냥 양파만 좀 ‘선정적인’ 언어로 써 보았어요.

이곳에서 꽤 오래 살면서, 나도 이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하거나 당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겪어보았는데요, 상대적으로 이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단순하고 덜 복잡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예를들어, 슈퍼에 과자나 사탕을 사러가면 자주 느끼게 되는데요, 역사가 오십년 백년 이렇게 된 회사들이 그냥 할아버지대에서 잡숫던 과자와 사탕을 손주대에도 그대로 만들어서 같은 상품을 아직도 파는 것을 흔히 볼수 있어요. 파는 사탕의 종류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국과 비교하면 아마 1/10 혹은 1/100도 안될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사람이 잠시 입에 달콤하자고 먹는 사탕이 뭐 그렇게 다를 수가 있고 또 지난 백년간 뭐 그렇게 달라졌거나 향상이 되었을까요. 얼핏보면 ‘좀 모자라나’ ‘바보들인가’ 싶지만 이 나라 사람들도 좋은 것 알고 고급 다 알아요 🙂

요샌 세상이 좋아서, 유튜브로 1980년대 혹은 1990년대 한국 티비 선전들을 최근에 보았는데요, 지금이야 한국과 이나라의 경제 수준이 거의 동등하게 되었지만, 그때만 하여도 이나라와 한국의 경제 수준은 현재 한국과 말레이지아 정도로 격차가 크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래된 한국의 티비 선전을 보면서, 지금 현재의 이나라와 비교해도 너무 종류가 많고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물론 한국사람의 시각으로는 ‘이 나라는 그때나 지금이나 좀 후지다’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겠네요.

이곳에서 집을 사거나 차를 구입할때 그 과정이 너무 단순해서 ‘이것이 전부냐? 뭐가 빠졌거나 혹시 속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이 들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단순함에 길이 들어서 (다른 세상에서의) 복잡한 절차나 과정이 더더욱 복잡해 보이는 쪽으로 나도 변했어요. 돈을 주면 물건을 주고, 댓가를 지불하면 약속한 것을 이행함에 별로 복잡함도 없고 또 사기가 개입될 여지도 없으며 아무도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사는 단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살면 나머지 시간에도 그냥 멍하게 살까요? 아니지 싶네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여행을 많이 하고 야외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또한 이나라 사람들이라고 하네요. 마음과 에너지를 쏟을 때와 장소를 아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한국에는 ‘사기’ ‘횡령’ ‘가짜 고소 고발 (그리고 가짜 역고소)’ 같은 ‘거짓’을 동기로 하는 범죄 발생율이 인구비례로 따지면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수십배 수백배에 달한다는 많은 증거들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결과들이 있는데요, 이런말 들으면 더 기분이 나쁘겠지만, 구한말 어떤 선교사가 남긴 말에 따르면 ‘조선 사람들은 거짓말을 일상속에서 밥먹는듯이 하는데, 자신의 거짓말을 (사기나 속임수) 어떤 특별한 능력처럼 자부심을 가진듯이 말하더라’는 기록도 남아 있어요. 충격적이지요 쏘리 🙂

자살한 전 서울 시장에 대한 진실이, 마치 다마네기처럼 까면 깔수록 다른 색깔뿐만 아니라 차원이 다른 이야기들이 드러남을 보면서, 섣불리 함부로 단정짓고 입을 놀린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잡한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며, 세상을 이렇게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며 제 이익 챙기는 뇬넘들은 (그 바쁜 와중에) 제 정신이 잠시 들때 거울에 비친 제 상판때기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미운 마음과, 또 그들처럼 날래고 잘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은 그 뇬넘들이 만든 복잡한 세상에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지난번 ‘엄마’글에서도 밝혔듯이, 세상사는 복잡하며 인간들은 다양한 색깔이 뒤섞인 존재들이라고 나는 깨닫고 있습니다. 까지고 또 까져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그 ‘가짜 진실들’에도 (?) ‘진짜 진실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 농도와 빈도를 가지고서 장난을 치면서 세상을 속이고 또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 혼란과 혼돈속에서 똑똑한 뇬넘들은 제 몫보다 훨씬 많이 챙기며 웃고 사는 세상이 혹시 내가 떠나온 나라에서 면면히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이 아닌가 싶어요. 나와 그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헷갈리고 망설일때 멀찌감치 챙겨 달아나고, 그 뛰어난 능력에 자부심을 (?)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세상. 소달구지를 몰던 할아버지 세대에서 벗어나 세계에서 가장 좋은 차를 타며 세계에서 가장 좋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대로 발전했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옛노래처럼 보리밥 김치를 쌀밥과 삼겹살로 향상시키긴 했지만, 그곳이 사람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는지는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감자처럼 한겹만 까면 되는 단순한 세상에 사는 단순한 넘이, 다마네기처럼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가족 친구들을 생각하며 하는 한탄이에요.

아까 위에서 ‘그런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라고 저주의 말을 퍼부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보고 배운 인간의 진면목을 바탕으로 짐작하건데 ‘피부 관리’ 같은 생각이외에는 ‘어떤 철학적이거나 삶에 본질에 관련된 사색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에요.

작년에 ‘설탕의 역사와 그것에 관련된 비극적인 인간의 이야기’에 관한 도큐멘터리를 보았는데요, 간략히 말해 설탕의 역사는 수탈의 역사요 식민지의 역사며 노예의 역사입니다. 주제를 벗어난 장황한 이야기 대신에 한가지 장면을 묘사하면서 이글을 마무리하려고 해요. 아프리카 몇곳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남아 있는 ‘원주민을 잡아다가 노예로 (자마이카나 그런 멀고 먼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사탕수수를 재배하게 만들었던 전초기치 / 항구시설’ 들이 있어요. 그중에 규모가 컷던 항구에는 한꺼번에 수백 혹은 수천명의 잡아온 원주민들을 (실어나를 배가 들어올 때까지 감금해 두었던) 지하 토굴 감옥 같은 시설이 있는데요, 그야말로 당신이 지금 기르는 개보다도 훨씬 못한 지옥에서 그들을 임시로 보관 (?) 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요.

그런데요 이 이야기의 압권은 그 토굴 바로 위에 교회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백인 선원들, 가족들 그리고 노예관련 무역을 하던 백인들이 자기들의 신에게 기도하던 곳이지요. 지금도 있는데요 멀쩡히 지어진 좋은 교회입니다. 그 백인들이 자신들의 무사 항해를 (노예장사) 그들의 신에게 빌며 그렇게 번 돈으로 이번에 새로 장만할 가족들의 ‘사랑의 보금자리’ 새 집에 대한 상상등을 그곳에서 할때, 그들은 또한 (자기들이 강제로 잡아온) 수백 수천명의 원주민들이 바로 교회 아래 토굴에서 짐승보다도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대소변과 뒤섞여 그저 숨만 쉬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인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뭐가 빠졌을까요? 그 백인들의 머리에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 이라는 생각이 100%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정말 사기꾼은 자신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속이는 뇬넘들이며 내가 위에서 말한 그런 인간 말종들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아무리 뚫어지게 바라 보아도 (걱정스러운 기미나 주름 이상의) 어떤 가책이나 마음의 동요도 없을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질이며 또한 인간의 한계’라는 것이지요.

아래의 사진은 불과 200년 전에 거룩하신 백인들께서 얼마나 머리를 써서 흑인 노예들을 배로 잘 운반했던가를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한 1/3이 죽어도 크게 남는 장사였데요. 상상조차 할 수 없이 습하고 더운 배 밑창에서 아프리카에서 사로잡힌 흑인 원주민들은 한달 두달을 꼼짝 달싹 못하게 묶인채 누워서 대소변을 아래로 줄줄 싸면서 그리고 죽어가면서 운반 되었다고 해요.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이 또 있는데요, 현재 설탕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들이 바로 이 아프리카 나라들이라고 해요. 과도한 설탕 소비로 인한 각종 성인병에,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흑인들이 많이 죽어간다고 해요. 할아버지가 노예로 붙들려 가서 재배한 사탕수수가 되돌아와 손주를 죽이는 그야말로 ‘설탕의 저주’입니다.

아! 나는 이런 것들에 무지한채 오래 살아왔어요. 진실을 알지 못하며 오직 눈에 보이는, 백인들이 건설한 선진국 그리고 그들이 이룬 멋있고 아름다운 외형만을 인정하고 또 동경하며 살았었어요. 지금은 조금이나마 더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볼 능력이 생겼기를 바래요. (개인의) 아름다움에 섞여 있고 공존하는 추함과, (집단의) 축척된 부와 세련된 문화 그리고 선진국이 된 이면에 존재하는 추악함을 동시에 보게 됩니다. 그대들이 사는 그 세상, 오늘 내가 좀 화가 나서 퍼부었던 고국에 대한 마음도 아마 비슷하지 싶네요. 애증의 마음… (나를 포함한) 인간의 한계와 부조리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