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골프 레슨을 동시에 시작하다

나이가 들면 골프나 탁구가 오래 즐기기 좋다고 해서 최근에 레슨을 시작했다. 무었이든 독학 / 독고다이 스타일로 해온 내게는 (직업은 물론이려니와 하다못해 집 외벽 페이트 칠까지도) 뒤늦게 해보는 이 레슨이라는 것이 좀 충격이 아닐 수가 없다. 그래서 충격을 좀 완화하면서 오래 좀 배워볼 요량으로 보다 적합한(?) 코치들을 선별 하였다 🙂

일단 탁구는 동네에 하나 있는 동호회에 먼저 나가 보았는데, 수십년 구력의(?) 내가 이렇게 많은 노땅 사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탁구를 치는 것을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그것도 복식만 치는거라. 매주 한번씩 밤에 만나서 치는데, 시에서 관리하는 좋은 건물에 위치한 탁구 시설은 아주 좋았고 또 사람들도 나쁘지 않았지만, 서너번 가보고선 그만 두고 말았다. 해본적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 복식을 계속 치면서 완전 바보가 된 기분에, 미친듯이 좌우로 뛰다가 발톱이 하나 빠지고 또 마지막 방문때 억지로 단식을 해볼 기회를 만들어서 붙은 어떤 중국인에게 10 게임 연패를 당하면서 그만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웃기는 것이, 이 중국인이 그 중에서 잘치는 축에 속하는데, 내가 단식에서 붙으면, 이사람은 물론 동호회 멥머 그 누구에게도 질 것이라는 것을 ‘나는 단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10게임 연패. 아! 현실을 강제로 자각 당하는 그 시간에 나는 ‘내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탁구도 망하고 있는데, 판단력도 흐려지고 있구나)

우연히 내가 일하는 대학 신입생 중에서, 탁구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 대학 탁구 동호회를 최근에 창립하여 활발한 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친구에게 연락하여 사정을 설명하고 일대일 레슨을 제안하였다. 지금까지 매주 만나서 한시간씩 레슨을 대여섯번 했는데, 서로가 쿵짝이 잘맞아서 게임도 하고 야비하게 치면서 웃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어린 코치가 가르쳐 주는 것을, 집에 있는 탁구대와 탁구로봇으로 연습하는데, 크게 발전은 없어도 조금씩이나마 정석에 가까운 탁구에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내 목표는 ‘탁구의 현대화’로 정했다. 많은 일본펜홀더들이 그렇듯이, 나도 그저 3구에 스매시로 끝내려는 구식 탁구라, 렐리 위주인 현대 탁구와는 거리가 멀며, 또 동호회 가더라도 좀 어울려 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대학 신입생 어린 코치는 나름대로 초등생 코치 경험이 풍부하여, 나에게도 유사한 방법으로 지도를 하는데, 처음에는 ‘이건 뭐지?’ 자괴감도 들었으나, 이 아이가 성격도 좋고 매너도 좋아서 차차 받아들이게 되면서 나름대로 (내게도) 유용한 코칭 방식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하수가 배우는데 딱히 별 다른 방법이 있는게 아니구나 .

게임을 하면서 이 아이 코치가 시범삼아서 어쩌다가 제대로 내게 공격을 가할때가 있는데, 내가 좀 공포에 질려서(?) 그런 느낌이 더 드는지는 몰라도, 운이 좋게 내 라켓에 닿으면 (대부분 라켓이 닿지도 못한다) 그 가볍고 작은 플라스틱 공이 내 라켓을 ‘우드득’ 흔들며 갑자기 무게가 몇배가 된 무언가가 맞고 지나가는 듯 변하는 마술을 경험하기도 한다. 모르긴 몰라도, 큰 힘과 회전이 탁구공에 걸리면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게임중에 기회가 오면 사정없이 보복성 스매시를 선사한다. 그런데 스매시를 시원하게 퍼붓고 나서 내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것이, 이 아이 코치가 작심하고 나와 게임을 붙으면 내 스매시가 안통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내 스매시를 전부 받아낼 것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스매시할 기회를 애초에 없애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기술처럼, 이것이 탁구의 고급 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국으로 치면 아마 오픈 1부 정도의 수준이 아닌가 짐작한다.

골프장에 왔다리갔다리 한지도 십여년이 되었지만, 중간에 몇년씩 때려치우고 잊을만하면 다시 가보고 하는 바람에 언제나 보기플레이어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것에 만족해서 치는 사람들도 많아 보이는데, 내 문제는 도대체 만족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즉 주제 파악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독학 / 독고다이로 안되는 것들도 많은데, 내 경험에 따르면, 골프도 그중 대표적인 하나라는 것이다. 내게는 답이 없구나.

옛날에 골프장에서 우연히 스쳐지나가며 보게된 어떤 여학생이 있었는데, 내가 한국사탕도 주고하면서 귀여워 해주었다. 학교때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는데, 고등학생때 이 나라 여성 골프 챔피언을 2회 차지하면서, 골프에 인생을 걸어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미국의 한 명문 대학에 체육(골프)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그 대학교가 미국 전체 대학 대항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는데 주장 노릇을 하면서 US Open 에도 한번 참가 했다고 하였다. 졸업후 프로골퍼로 전향하여 미국 LPGA 2부 리그를 몇년 뛰었다. 하지만 200-300명 중에서 10% 정도만 정규 LPGA 시드를 받는 그 경쟁에서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아마도 2부 투어를, 부모의 도움없이 수년간 뛰면서 좋은 성적을 내는데 (큰 돈을 들여서 레슨을 계속해야 하는 듯)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나 짐작한다.

우연히 귀국한 사실을 알게 되어 연락을 했더니, 반가워하면서 기꺼이 내 골프를 책임져 주겠다고(?) 말하였다. 정확한 표현은 ‘I would be happy to be part of your golf journey’ 🙂 미국 명문대학에서 정상적인 경제학사 학위를 받았으므로 이곳에서 취직을 하여 사무실을 오가는 새로운 삶을 산지가 한해 정도 되었다고 하면서, 그 동안 골프와는 좀 멀어졌지만 ‘그 아름다운 스포츠에 나쁜 감정은 없다’고 하였다. (비록 엉터리 골퍼에 엘보우나 걸리는 한심한 수준이지만) 나도 너처럼 ‘이 아름다운 스포츠를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어릴때의 좋은 기억이 힘이 좀 된 듯, 일대일 실전레슨을 (on course playing lesson) 합의하여 얼마전 첫 레슨을 하였다. 그 어린 소녀가 십여년 세월을 거치며 얼마나 성숙하고 프로페셔널하게 변했는지 좀 많이 놀랐다. 역시 큰 골프의 세계에서 각종 전투를 경험하며 성장한 백전노장(?) 인지라, 그녀의 태도와 골프를 대하는 자세, 그리고 골프를 보는 시각이, 내가 여태껏 경험한 아마추어 최고수들과도 (공식 핸디캡 1-5 사이, 클럽 챔피언 출신들) 조금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비록 한심한 골퍼지만, 그래도 클럽 챔피언 수준의 아마 최고수들과 수백 라운드를 해본 경험이 있다. 물론 내 골프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었음이 명백하지만 🙂 프로골퍼들이 핸디캡이 있나? 없다. 굳이 알아보고 싶다면? 내 코치가 된 이 친구가 프로가 되기 전에 -4였다. 즉 4 언더파가 옛날 아마추어 시절의 핸디캡이었다.

내가 탁구와 골프 레슨을 동시에 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을 앞으로 내 블로그에 올려볼까 생각중이다. 기대하시라.

와인 wine

처음 듣는 이야기겠지만 ‘와인은 음식의 일부다. 그리고 식사는 시간의 일부다.’ 내가 만든 말인데, 오늘 이 글의 주제다.

일이천개 와인병을 열어 본 사람으로서 (‘열어서 보기만’ 했다) 30-50달러대의 와인들이 가격대비 맛이 가장 좋다는 ‘정직한 전문가’들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한국에 수입되고 나서 형성되는 가격대는 모른다). 그 정도 가격대라면 80점을 웃도는 상당히 좋은 와인일 가능성이 높다. 레드와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장기보관의 가능성이 있다. 아무 와인이나 사다가 지하실에 오래 놓아 둔다고 맛이 숙성되거나 나아지지는 않는다. 와인은 만들어질 때부터 족보가 좀 있다.

그런데 이 좋은 80점대의 와인에 만족하지 못하고 90점이 넘는 와인을 찾기 시작하면 가격이 그 10점 차이 만큼에 비례해서 오르는 것이 아니라 몇백퍼센트는 쉽게 오른다 (몇배의 가격). 그리고 95점을 넘는 와인을 마셔야 되겠다는 발상을 하기 시작하면, 그 데미지는 (당신 지갑에) 열배 스무배 혹은 그 이상으로 커지게 된다.

한국에서도 그런 듯 한데, 일부 영어권 소믈리에들도 (와인감정가) 와인을 평가할때 흔히 무슨 열매맛, 무슨 과일맛, 무슨 나무향, 무슨 후추맛 하다못해 가죽향등등의 표현들을 하는데, 나는 딱 질색이다. 그런 표현을 주로 하는 자들은 그대로 패스다.

최근 K푸드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으며, 서구의 음식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는데, 이런 상황에 관한 뛰어난 분석을 근래에 본 적이 있다. 해외에서 오래 살며 비슷한 경험을 해 본 나로서도 100% 동의했던 딱 한 줄의 통찰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K푸드) 먹고 어떤 객관적 평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유행을 따라서 적절한 말을 할 뿐’ 이라는 것이다. 즉 서구인들은 K푸드를 먹는다기 보다는 ‘유행을 먹는다’는 의미였다. 삼십여년 전에는 이곳에서도 예외없이, 한국산 가전제품은 한쪽 구석에서 싸구려 취급, 한국음식은 ‘그런 괴이한 것들을 먹다니, 이상한 종족들인가?’ 그런 대접을 받았었다. 내 첫 직장 매니져도, 내가, 아내가 아이를 낳고나서 ‘미역국을 끓여 주었다’고 했을때 갑자기 입을 막으며 구역질을 참는 모습을 보였었는데 (미역은, 이곳에서는 마치 잔디나 잡초처럼 그 누구도 먹으려는 상상도 하지 않기 때문) 그땐 크게 상처 받았지만 (이곳에 살면서 상황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젠 지난 일이고 그도 이미 죽었다. 명복을 빈다. 담배 대신에 미역을 좀 먹었었더라면 🙂

부대찌게나 해물탕이 세계적인 반열에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수십년간 다양한 계층의 서양인들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해 본 경험에 의하면, 실제 그리되긴 어렵지 싶다). 그것을 서양 음식평론가들이 호평을 하면서 ‘아! 이 부대찌게에 사용한 햄은 2024년산 무슨무슨 제품 같고요, 면은 굵기나 쫀득함을 볼때 아마 무슨무슨 브랜드가 아닌가 싶고요’ 하고, 또 해물탕은 ‘아! 여기에 사용한 쭈꾸미는 아무래도 맛과 씹히는 감촉을 볼때 전라도쪽 보다는 동해안 쪽에서 온 것 같고요, 고추가루는 4-5년 숙성된 무슨무슨 지역의 것이 아닌가 해요.’ 이런 말들을 한다면, 그대와 나는 처음에는 좀 신기해 하다가 차차 ‘이 자가 좀 미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리라. 우리는 (너무나 당연히) 부대찌게나 해물탕을 먹고 평가하지, 그 속에 든 햄이나, 면 혹은 조개나 고추가루를 개별적으로 감상 혹은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에게는, 훌륭한 와인을 마시는 것과 맛있는 부대찌게나 해물탕을 먹는 것이 별반 다름이 없다. 그러므로 와인을 감정하면서 무슨무슨 과일향이니 무슨무슨 나무 열매맛이니 떠드는 것은, 앞서 말한 (가상의 예로 들어 본) 부대찌게나 해물탕을 먹으면서 이상한 평가를 하는 서양의 음식평론가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앞에서 내가 뭐랬더라? 똑 같은 K푸드를 가지고, 그때는 구역질 지금은 판타스틱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한다고? ‘유행을 먹고 유행을 말할 뿐’이라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다.

수많은 와인 전문가들이 이러니저러니 말들과 의견들이 끝이 없는 줄 알지만 (아무도 모를 미래에 대한 ‘점쟁이들의 말’ 그리고 누구나 일가견이 있는 ‘골프 이야기’등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와인에도 있는 듯) 그중에서 한 사람, 내가 ‘이 양반 정말 와인을 아는 분이네’ 했던 사람이 있었다. 프랑스에서 수십년 산 사람인데 (유학 및 대학강의. 와인과는 관련은 없는 분야로 기억) 개인적으로 와인에 아주 조예가 깊은 분으로 소개되었다. 이 양반이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무슨무슨 과일향 그런 헛소리 대신에 한마디 먼저 던지더라 ‘(프랑스에서) 와인은 음식의 일부, 즉 식사의 일부로 취급된다’ (따라서 와인만을 즐겨 마시지도 않으며, 와인 자체만을 그리 왈가왈부 하지도 않는다). 내가 여태껏 느끼고 생각해 온 바를 딱 한마디로 표현하는 분을 그때 내가 처음으로 만났다.

내 경험에 따르면 그리고 그 경험에서 생겨난 내 의견에 따르면, (서두에서 밝혔듯) 와인은 음식의 일부이기에 그리고 식사는 시간의 일부이기에,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사랑과 기술로 만들어낸 음식과 더불어 마시는, 내가 고른 80점대 와인들은 (사랑하는 이들이 없는 시간에 기술로만 만들어진 음식과 같이 마시는) 어떤 95점대 아니 99점대의 와인들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호화보트 위에서 선남선녀들에 둘러싸여 일급요리사가 만든 음식과 수백만원 하는 와인을 마신들, 우리들 모두가,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똑같은 인간의 조건을 (생로병사, 오감의 한계, 정신적, 심리적, 영적 갈구등) 공유하는 존재들임에, 비싼 와인 그 자체가 더 큰 만족과 행복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지와 어리석음일 뿐이다. 인간의 참된 JOY 그리고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은, 결코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들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또한 금전적인 우열에만 좌우되지도 않는다. 나아가 인생이라는 긴 시간 안에서, 참된 가치들은, 남들의 평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 의해서, 저절로 드러나고 매겨지게 되어 있다.

오늘 한 수 배웠나? 하지만 날뛰지 마라. 잘 난 사람들이 모여서, 90점 혹은 95점 되는 고가의 와인을, 거룩한 표정으로 마시면서, 이 빈티지는 무슨무슨 과일향이 어쩌구저쩌구 하고 있는데서, 해물탕 혹은 K푸드 이야기를 꺼냈다가는 그대는 미친X 취급을 당할 것이다. 애꾸눈들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두 눈을 가진 사람이 조심해야 한다 🙂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