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성공 비결

첫째로, 젊었을때 이민 가야한다.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좀 해보고 또 가능하면 마음이 맞는 짝도 찾고 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제일 좋고 30대 후반이 커트라인이다. 40넘으면 특출한 경험이나 (예를들어, 이민 대상국에서 과거 수년간 거주하여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등, 하지만 1-2년 워킹홀리데이나 혹은 유학경험 등은 별 소용 없음) 어느나라에서나 즉시 확실히 통하는 기술등이 (예를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용기술등, 하지만 학원에서 배워 자격증만 딴 수준으로는 안되고, 실무에서 기른 실력과 확실한 실전경험이 필요) 있지 않는한 무리다.

둘째로, 즉시 사용 가능한 어떤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체력이 아주 좋아서 한 몇년 힘든 노동도 끄떡없다든가, 이민 대상국에서도 필요하고 널리 쓰이는 기술을 한국 현업에서 실제로 사용한 실력과 경험이라던가, 아주 사회성과 세일즈 기술이 뛰어나서 말이 안통하는 에스키모에게도 손짓발짓으로 냉장고를 팔아먹을 능력이 있다던가등. 이것이 먼저고 영어는 두번째다 (영어권으로 이민 온다면). 현지에서는 거지들도 아기들로 모두 다 하는 것이 영어니, 단지 영어만 잘 한다고 그것만으로는 소용 없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다른 한국사람들 상대로 구질구질한 짓이나 하며 돈벌이 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로, 먼저 이민 온 한국인들을 피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접근을 바라거나 당신에게 접근하는 해외거주 한국인들은 (혹은 한국인 단체들은) 그들의 목적이 있다. 당신의 돈을 원하거나, 당신이 그들의 단체에 속하기를 원하는거나 혹은 둘 다를 원하는 것이다. 이민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상식적으로 볼때, 이민와서 잘 정착해서 정상적으로 사는 한국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신경 쓸 시간도 또 이유도 없다. 그리고 이민오니 왠지 이상하게 경건한 마음이 들며 정말 종교를 필요로하거든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 가라. 신은 그곳에도 당연히 계시고 또 신심깊은 현지인들로부터 이모저모로 도움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굳이 한국인들과 종교를 통한 교류를 원하거던, 일단 몇 년을 잘 정착하고나서 후에 만나도 전혀 늦지 않다. 그때는 당신도 현지 사정을 알만큼 알고, 상대도 당신이 초보 이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문제 없을 것이다. 이민 온 나라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현지인들에게 받는 것이 좋다. 말이 안통하니 (어떤 현지인들은) 위험하거나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 너무 잘 통하는 (어떤) 한국인들도 위험하고 또 도움이 안되긴 마찬가지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가능하면 무난하게 잘 사는 현지인들과 엮이는 것이, 도토리키재기 수준인 다른 한국인 이민들과 엮이는 것보다 낫다.

넷째로, 무었이건 ‘최초’는 위험하지만 ‘선두그룹’에는 속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이미 한국인들이 잔뜩 이민와 있는 도시는 피하는 것이 좋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이 거의 아무도 정착한 적이 없는 곳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정착하려는 도시가 평판이 나쁘지 않으며 어느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 완전 깡촌이나, 극한의 추위등의 이유로 현지인은 물론 타국에서 이민온 사람들도 거의 오지 않는 그런 괴이한 곳들은 피하라. 기후를 우습게 여기지 마라. 기후에 혼나서 정착 못하거나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 꽤 있다. 괴이한 선택을 하는 ‘용기있는’ 사람들 가끔 봤지만 결국은 포기하더라. 아무도 안할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이미 너무 많은 곳이면 당신 자신에게 불리하다. 이민이 전혀 없는 도시나 지역에서는 현지인들이 도대체 이방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신이 괴상한 대접을 받거나 불리할 가능성도 있으나, 한국인을 포함한 이민자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있는 곳에서는, 당신도 소수라고 다수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반대로 고약한 대접을 받을 가능성보다) 더 높다. 겁나고 두렵다고 다른 한국인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 그 당시에는 안심도 되고 편할지 모르지만 현지인들이 좋은 눈으로 안봐주고 (그런 맨탈리티의) 당신도 좋은 대접 못받는다. 반대로, 혼자서 스스로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하다보면 현지인들이 좋은 마음으로 대해주고 예외적으로 (소수라고 좋은 쪽으로) 대접도 해주고 또 도움을 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로, 배우자 혹은 짝을 잘 골라서 와야한다. 물론 운이 많이 따르는 일이지만. 배우자가 저질체력으로 몇년이 지나도 현지 기후에 적응을 못하고 골골거리면 두 사람 모두 심신이 점점 탈나고 지쳐서 결국은 정착에 실패한다. 또 배우자의 정신상태가 좀 모자라는 경우(?) 예를들어 해바라기처럼 당신만 바라보며 당신이 다 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라면 당신 어깨가 너무 무거워 뛰거나 날기는 커녕 결국 둘 다 주저 앉게 된다. 아주 싸가지가 없는 짝인데 무슨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구사 능력이 있다면 저질체력이거나 정신상태가 좀 이상해도, 혹은 둘 다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시작은 해 볼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장기전으로 가면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부부와 가족 오래 못가더라. 뭐니뭐니해도 ‘성숙한 인간’이 (어느 정도라도) 잘 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동서고금의 변함없는 진리다. 단기적으로 보면 예외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겉보기에는 성공한 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사는 진짜 내막은 밖에서는 잘 모르는 법이다. 인생의 승부는 길고 정확하다. 마라톤 처럼.

여섯째, 젊음이 주는 용기, 마음이 맞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짝 그리고 어느 수준의 머리와 능력이 있다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이민을 오는가, 지금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가 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 있는 돈과 영어실력이 주는 부작용을 피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이민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가진 사람들이 쑥쑥 줄어드는 정착자금 헤아리며 스트레스 받고, 알량한 영어로 다른 한국인들 상대로 돈벌이 하려고 잔머리 굴릴때, 가진 것도 잃을 것 없는 당신은 저절로 배수진을 치게 되니 죽지 않으면 당연히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다.

일곱째, 좀 세계화된 혹은 탈한국화된 발상과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사는 방식 그리고 일상의 습관들이 너무나 토종 한국인이면 (다시말해 토종 한국인이 무었인가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면) 이민와서 편히 살기가 좀 힘들고 또 이런저런 문제와 제약에 부딪히게 되니, 정착해서 오래 잘 살 가능성은 좀 낮다. 김치 짜장면도 잘 먹긴 하지만 그것들 없이도 한두달쯤은 끄떡 없으면 좋고, 비록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았지만, 좀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서 사는 방식에 관심도 가지고 또 새롭고 좋은 것들을 배우려는 자세도 있고 그런 사람이 이민에 훨씬 유리하다. 도둑질을 해도, 새벽잠이 너무 많은데다가 담도 잘 못넘고 무거운 것도 잘 못들고 (체력등 물리적 조건 나쁨) 마음은 약해서 죄책감은 많고 (정신상태나 태도 부적절) 또 도둑질한 물건 나누는데 파트너와 맨날 싸우고 (사회성부족, 타인들로부터 존중 / 존경 받을 줄 아는 기술 부족) 그러면 도둑질 오래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한다. 천성이 도둑질에 특화된 넘처럼 언행하는 자연스러운 넘이 도둑질 오래하고 잘 하듯이 이민도 좀 그런면이 있다.

여덟째, earn respect 할 줄 하는 사람이면 참 좋다. 말이 좀 안통해도, 먹는 것이 좀 냄새를 풍겨도, 입고 사는 모습이 좀 특이해도, 사고방식이 좀 현지인들과 달라도, 자기가 속한 곳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나 상사로부터 ‘존중 / 존경을 얻어낼 줄 알아야 한다’ 다시말해 ‘earn respect’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인 가치나 판단은 한국이나 당신이 이민을 가고자하는 (영어권) 선진국들이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선진국이 된데는 공통적인 비슷한 이유가 있다. 현지 동료나 상사들은, 당신의 언어를 넘어서, 당신이 온 몸으로 오래 보여주는 당신의 가치와 판단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려지고 속일 수 없다. 여기서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할 지가 결정된다. 물론 당신이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동료나 상사들이 뭐라건 어떤 생각을 하건 당분간 회사를 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울리는 방법이나 수준은 비록 한국과 다를지라도. 또 영어권 문화에서는 ‘사람들의 운동능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당신이 육체미를 하라든가 보디 프로파일 찍어서 보여주는 그런 괴이한 짓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며 스스로를 보살피는가를, 사람들이 당신의 운동능력을 통해서 엿본다는 말이다. 신체가 보통이고 또 운동을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해도 이벤트등에 참여하고 규칙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존중하고 좋게 본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영어권 정서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글 읽어보고 어떤 사람들은 없던 용기를 내게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기분도 나쁘고 낙심도 되었을지 모르겠다. 무었인가의 이유로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을,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다음에 잘 되씹어보면, 안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지금 내 삶에 훨씬 큰 이익이 되었다 그런 경우도 꽤 있지 않은가? 어쨋든 이 글이 이민을 꿈꾸거나 상상하는 당신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란다.

일년 전 오늘

이곳은 어제부터 공식적인 겨울이다. 월요일 휴일을 낀 긴주말, 아니나 다를까 차가운 비가 주말 내내 쏟아지고 있다. 문득 일년 전 오늘이 생각났다.

일년 전 오늘, 나는 낯선 스톡홀름의 거리를 절룩거리며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며, 눈에 뜨이는 전봇대란 전봇대는 모두 끌어 안고 스트레칭을 하며 끝없이 반복되는 다리 근육경련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당시 스칸디나비아를 강타했던 이상난동 기후는 (heat wave) 6월 초순 스톡홀름의 한낮 기온을 평년보다 10-15도 높은 섭시 30도 이상으로 끌어 올려, 혹시 너무 추울까 하여 정오에 시작하는 이 스톡홀름 마라톤을 무더위와의 싸움으로 바꾸어 놓았었다.

풀코스 마라톤은 어쩌면 인간의 기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야 하는 좀 잔인한 면도 있는 것 같다. 30시간 이상이 걸렸던 여행과 더불어 밤낮이 완전히 뒤바뀐 시차로 인해 마라톤 전 사흘 동안 총 5시간 정도 밖에는 못잤던 상황, 지난 수차례의 마라톤 여행들처럼 음식을 준비해 주고 보살펴 주는 가족이 없이 홀로 하는 여행, 그리고 시내를 계속 달리는 코스에 스톡홀름 시민들이 곳곳에서 엄청나게 응원을 한다는 이야기에 혹시라도 난처한 상황이 생길까봐 출발전에 거의 마시지 않았던 물… 이런 조건들이 모여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풀코스 마라톤 준비는, 매 주말에 하는 하프마라톤 혹은 30킬로 내외의 장거리 훈련을 5-10회 정도 보통 포함한다. 나 역시 최대 35킬로 거리의 장거리 훈련을 수차례 하고 떠났었다. 하지만 그날, 약 10킬로를 지나는 순간부터 불쾌하고 이상한 느낌으로 찾아온 근육경련. 물을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난리를 쳐보았지만 이미 늦었다. 장딴지에서 시작된 근육경련은 허벅지를 타고 거의 사타구니까지 올라와 한발짝을 한발짝을 떼기가 힘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반쯤은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눈에 보이는 물이란 물은 모두 퍼마시고 눈에 뜨이는 샤워란 샤워에는 모조리 뛰어 들어가 물을 뒤집어 쓴 몰골로 그 아름다운 도시의 거리를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스톡홀름 올림픽이 열렸던 그 스타디움이 눈에 들어올 무렵 겨우 정신이 되돌아 왔었던 것 같다. 중간 중간에 서있던 구급차들 (조용히 걸어 들어가면 조용히 마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 그리고 병원 천막의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스타디움 트랙에서 사진 찍히는 줄 알며 폼 잡았던 사진들 말고, 마라톤 중간 중간에 찍혔던 사진들을 나중에 가족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무척 놀라워 했다. 나도 그런 내 모습은 생소 하였다 🙂 하지만 나는 5시간의 사투끝에 결승선을 내발로 뛰어 통과했고, 완주 기념 티셔츠를 입고 매달을 목에 걸었다.

어제 있었던 41회 스톡홀름 마라톤 영상을 보면서 눈에 익은 거리들과 건물들 그리고 그 분위기를 기억하며 그날이 몹시 그리웠다. 아! 가고 싶다. 다시 한 번 그 아름다운 스톡홀름의 거리를 마음껏 신나게 달려 보았으면… 그날, 가슴에 적힌 내 이름을 불러주며 내 손에 물을 쥐어 주던 그 이름 모를 스웨덴 사람, 잘 살고 있으려나…

그 당시에 썼던 블로그 글에, 나는 땀 흘리는 봄 여름과 추수하는 가을을 이야기 했었다. 한가지 더 배웠던 것이 있다. 땀 흘리는 봄 여름이 반드시 추수하는 가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또한, 어떤 추수의 결과도 내가 땀 흘리며 행복했던 지난 봄 여름을 퇴색 시키거나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도.

일년 전 그때 나는 행복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 참 행복하다.

나의 도마

기계체조 종목중에 ‘도마’라는 (뜀틀) 종목이 있다. 도마의 기술중에 ‘양1’ 이라는, 국제 체조 연맹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기술이 있는데, 처음에는 최고 단이도 기술 (유일무이) 이었다가 지금은 최고 단이도 기술중의 하나가 (3개 중의 하나) 되었다고 한다.

양학선이라는 한국 체조 선수의 이름을 본땄으니 말하지 않아도 이 분이 ‘창조한’ 기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분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이 지구상에서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이 기술을 구사하여 금매달을 땄다. 그 당시 ‘양1’은 유일한 최고 난이도의 기술이었으니, 자신이 연습하고 개발한 이 기술을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하기만 하면, 다른 참가자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이미 알려진 다른 기술들을 구사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는 그렇게 금매달을 땄다. 한국 체조 역사상 최초의 금매달이었다. 이렇게 금매달 따는 분도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막연한 소리 같지만, 연구하고 노력하면 점점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시도하면서, 실패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기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읽는다고 알게 되며, 또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양1’을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어도 그대의 몸으로 구현할 수 없다. 그 비슷한 동작, 아니 도마를 어떻게 한 번 뛰어 넘을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실패나 괴로움 갈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서, 당신도 마치 무슨 전문가가 된 것처럼 어떤 도마의 이론을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과 주변을 불행에 빠트리는 길이다.

당신의 몸매가 어떻든지 또 어떤 운동 능력을 가졌든지 간에, 당신 자신의 도마를 시도하라. 이것이 사는 길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시도 하는 삶이 그 촛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있을때, 시도 하지 않는 삶은 그 촛점을 남들에게 맞추고 눈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단지 보고 듣고 읽고 또 떠들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고 또 늙어가는 것이다.

나는 왜 27살 먹은 양학선씨를 ‘이 분’이라는 존칭으로 부르고 있는가? 금매달 때문에? 그보다는, 이 분이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날’을 만든 분이기 때문이다. 위대하지 않은가?

오늘, 남들과 말고, 당신 자신과 갈등하며 괴로워 했던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혹은 세상살이가 너무 자연스럽고 수월 했던가?

양학선 선수의 도마 한 번 보고 싶나? 그래도 🙂

스톡홀름 마라톤

아를란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정오가 좀 지났다. 시간을 10시간 뒤로 돌릴 만큼 길고 힘든 여행이었다. 아내도 일단 안심할 것이다. 참으로 오고 싶어 했던 곳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마음속에서 간직하며 그리워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늘 흥미로워 하였다. 지금은 없어진 그 멋진 SAAB 자동차도 그 대학도시들도 또 영화들도. 어린시절 나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그 예뻣던 스웨덴 소녀는 이제 이 나이가 되어 만나지 않는 것이 낫겠지만 이곳은 늘 생각하면 즐거운 내 마음의 작은 사치라 할 수 있다.

나는 작은 백팩을 매고 흡사 늘 그랬었던 것처럼 시내로 들어 가는 기차를 탄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와 일상이 마치 내가 전에 일부였었기라도 한 듯 익숙하다. 고색창연한 중앙역 건물을 빠져 나와 호텔 방향의 출구를 따라 거리로 나온다. 21세기 인터넷 기술의 도움으로 수만리 밖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걸어 보았던 익숙한 거리다. 곧바로 호텔을 찾아 들어 간다. 4명의 아가씨들이 리셉션 데스크에서 반겨 주는데 ‘이것이 스웨덴에서 방문객을 환영하는 방식인가요?’ 농담을 하니 모두들 활짝 웃는다. 나를 도와주는 스웨덴 아가씨는, 내가 좋아하는 ‘잉리드 베리만’ 이라는 이름의 장미꽃처럼 참으로 아름답다.

이제 이 도시의 거리들을 내 발로 뛰어 보게 되었다.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지며 오래전 읽었던 최인호작가의 ‘깊고 푸른밤’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남자는 차를 몰고 미국을 횡단하며 작은 도시들을 지나며 생각한다. 지금 이 거리를 지나는 저 사람들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같은 모습으로 주차를 하고 햄버거를 사며 맥주를 마시고 아이를 낳고 웃고 울다가 죽게 되겠지. 내가 자기들의 삶을 지금 차창밖으로 바라 보는 줄 상상도 하지 못하며 말이다.

어제는 내가 어떤 거리 어떤 일상의 일부였는데 오늘은 어떤 거리 어떤 일상을 바라보는 이방인이 되어 여기에 있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이만명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기대와 희망으로 함께 섰다. 말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온 곳도 다르고 갈 곳도 다르다. 이 넓은 우주 그리고 그 끝없는 시간속에서 그야말로 우연히도 잠시 같은 공간 같은 시간속에 서 있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무슨 기록도 다짐도 목표도 이제 더 이상 없다. 내가 사랑하게 되었던 그 가파른 산길도 끝없이 발랐던 선크림도 또 *을 쌋던 그 길가의 숲도. 난 이 시간을 위해 그것들을 잠시 빌렸을 뿐이었다. 출발전 가슴 두근거리는 작은 흥분…

이 아름다운 도시를 달리고 달려 이제 백년 전 올림픽이 열렸었던 그 스타디움으로 뛰어 들어 온다. 그때 그 올림픽의 함성은 어디로 갔고 또 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백년이 지난 오늘 어떤 우연과 또 의지로 내가 이 곳에 오게 되었다. 또 다른 백년이 지난 후에도 또 다른 사람들과 함성들이 이곳에 있게 될 것이다. 그때 그 함성의 주인들은, 백년 전 오늘 이 순간의 나를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삶과 인연이 이렇게 지나가고 또 오가는지… 나의 마라톤은 끝이 났고 나는 절룩거리며 그 공원 옆 호텔로 되돌아 왔다. 파란색 기념 티셔츠를 입고 기념 메달을 목에 걸고서.

유람선을 탄다. 이 바다 그리고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도시와 함께 잠시 시간을 보낸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 나무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내가 아직도 가끔 부르는 동요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리고 Carola가 부르는 이 아름다운 노래 ‘Song to the North’. 그때 그 펜팔 친구도 지금은 이 가수와 비슷한 중년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대는 잊은지 오래겠지만 난 그 인연으로 이렇게 세월이 흐른 지금 여기에 와 있다네. 그대에게 감사하노라. 행복하시오.

수십 년 전 한때 유학을 꿈꾸었던 그 대학. 일요일의 고요한 캠퍼스를 찾아와 조용히 걸어 본다. 그 단과대학 건물 앞에 섰다. 내가 공부했었었을지도 몰랐던… 지난 수십 년 간 나는 지금 내눈에 보이는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내가 그때 만약 이곳에 왔었더라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매우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나의 인연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인간의 삶은 일부의 숙명과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일부의 작위가 어울려 서서히 무르익으며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연이 차지하는 비중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되돌아 오는 길에 공원벤치에 앉아 이 이야기를 전부 아는 아내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어쩐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금 나의 삶 나의 인연에 대한 큰 고마움과 더불어,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그 길을 뒤늦게 보게 되면서 생기는 감상적인 아쉬움 때문이리라.

하지만 삶의 본질은 내가 어떤 길을 선택했어도 달라질 수가 없으며, 희로애락과 생로병사의 윤회에서 단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었을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물어 보았지만 부자건 성직자건 늙은이건 그 누구도 ‘되돌아 가고 싶다’ 라고 대답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우연히 어떤 조건속에 던져져 시작 된 우리의 삶. 다만 그 조건속에 머무르지 않고 조금이나마 인간의 길을 찾고 걷다가 떠나기를 나는 희망할 뿐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며 그저께 내가 실로 온 몸으로 그 인연을 뼈저리게(?) 경험했던 이 아름다운 도시를 뒤로 한다. 이 사람들은 내일 또 출근을 하고 가구를 만들며 여름휴가를 계획할 것이다. 이곳에는 여름이 깊어가고 또 내가 사는 곳에는 겨울이 깊어가고… 내가 다시 이 여름의 일부가 될 수 있을까? 이 아름다운 공원 그 벤치에 다시 앉을 수 있을까? 인연이 허락 하면…

일상의 제자리로 되돌아 오고 나니 마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던 것 같고 또 내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육개월 전의 내가 아니다. 며칠전 그 이벤트 때문이 아니다. 인연을 따라 내가 그 목표를 ‘선택’ 했었고 또 그것을 내 삶의 중요한 의미로 삼아 노력했었던 그 시간이 나를 변하게 했고 내 삶을 조금은 바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바뀌어진 삶은 장차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선택, 어쩌면 더 나은 선택을 허락 할 것이다. 추수 뒤에는 새 봄이 오고 그때 농부는 또 다시 씨를 뿌린다. 세상은 추수에 맞추어 돌아가지만 내 삶은 씨뿌리는 봄 그리고 땀흘리는 여름이 하이라이트. 추수는 선택의 시간이 아니고 지나간 선택의 결과일 뿐. 나는 봄 그리고 여름에 이미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내가 씨뿌리고 땀흘리는 한, 내 여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