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어제 오랫만에 찾아온 아이와 주말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가 첫 차를 살때 얼마나 너의 선택을 확신했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인하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아이는 차를 (물론 고물 중고차들) 열번은 더 바꾸고 또 학생때는 아르바이트로 큰 중고차 딜러 회사에서 몇년 일하기도 했었다.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중고차 도매상들과도 상대하고 또 직접 옥션을 현장에서 하기도 하면서. 혹시 들어봤나 옥션하는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이렇게 이제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가,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당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 ‘아빠는 그때 왜 나를 막지 않았어요?’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너의 설익은 확신과 그에 따르는 서두름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 했었지만, 내가 너의 나이일때 원하던 것들을 그렇게 가져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 선물인 셈 치고 잠자코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이가 첫 교통 벌과금을 끊겼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전혀없는 한적한 주택가 막힌 골목에서 엄마 아빠의 차를 차고에서 잠시 빼서 친구를 태우고 그 골목을 몇 미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찰차가 하필이면 마침 그때 나타나서 면허를 요구했고 아이는 초보면허 조건을 위반하면서 친구를 태우고 또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죄로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벌이가 없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우리가 대신 벌금을 내 주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물론 먼저 ‘아이고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살살 빌었었겠지. 우리는 그 이벤트가 아이에게 돈으로 환산 할수 없는 중요한 인생의 레슨을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십년 세월이 흐른후에, 물론 그 중간에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서, 그 고마운(?) 경찰관과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 경찰관은 숨었다가 벌금을 걷는 이상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지만, 아침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나왔었거나 혹은 업무 첫날이었던 생초보 경찰관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뿐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그런 괴로웠던 에피소드가 (손해, 후회, 두려움등) 없이도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결코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익이나 얻음에는 반드시 이전에 지불했던 댓가가 있다. 어제 지불한 댓가없이 오늘의 얻음은 (경험 혹은 깨달음)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배움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생길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깊이 엮이지 않은 (deeply involved) 그런 순간적인 간접 경험은 쉽게 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더 발전시키면 장차 괴로운 과정을 거쳐 망상에서 깨게 된다. 1960년대 극빈국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했던 대학 식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학생식당 구석에 있던 ‘누구나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기계’를 보면서 마치 천국을 본듯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란이(?) 왔었다는 것이고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던 집에 사과가 익도록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던 몹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새가 먹은 것이 아니다), 둘째는 식당에서 거룩한 양식을 드시는 미녀 여학생들 중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사람들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서 혼자서 쑈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눈이 마주쳐도 거의 아무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이곳처럼 몇몇 팔자 좋은(?) 나라들에서는 눈이 딱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거나 혹은 째려보면서 지나가면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안부를 ‘오늘 어때요?’ 가볍게 묻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미녀 여학생은 그냥 그렇게 미소지었던 것 뿐이었는데 🙂

지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1960년대 미국 유학간 그 한국 청년의 상사병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아이가 첫차를 사면서 보여주었던 그 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었인가 🙂

서론이 길었다.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라는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면, 작년에 한 육개월 탁구를 규칙적으로 연습했었다.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몇차례 치면서 오래 꺼져 있던 불이 재점화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내가 처음 몇주 혼자서 광란하는 것을 보더니 ‘레슨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참고로 내 수준은 동네탁구 중상위 정도였다. 어렵게 레슨을 주선해서 몇차례 먼거리를 운전하여 배워 보았다. 이곳에는 거의 100% 세이크핸드이므로 팬홀더를 사용하는 내게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등 한두가지 내가 꼭 원하던 기술을 시도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만. 멀리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무리하게 레슨을 받다가 허리도 아파서 결국은 대여섯번 하고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중고 탁구로봇을 레슨비 내는 대신에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고에서 여름내내 내가 드라이브를 집중적으로 연습하여 마스트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학교때도 안되던 드라이브를 이 나이가 되어서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드라이브 공격으로 아마 지역5부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이 된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탁구치던 대부분의 동료들을 격파하였다, 그 드라이브 공격으로. 차차 탁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몇달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했던 루프 드라이브 연습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았던 복근이 생겨난 것을 나중에 골프를 재개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골프 스윙의 동력과 (힘의 원천) 축은 어디인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복근(코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탁구가 인연이 되어 우연히 생겨난 복근과 그를 이용하여 좌우로 스윙했던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골프 스윙에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드라이버 스윙에 큰 도움이 됨을 차차 깨닫고 있다. 마치 우리 아이가 댓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대로는 꽤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몸으로 증득한 깨달음’이다.

턱걸이는 팔힘으로 하는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특히 손을 안쪽으로 돌려잡고 하는 친업의 경우) ‘몸 전체의 근육으로 하는데 복근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마도 팔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지 싶다’고 대답하지 싶다. 턱걸이도 복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골프는 맨탈’이라고 하도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긴 하는데, 골프를 못치는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좀 향상 시키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무었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것도 체력이 고갈되면 무너진다’ 이 정도가 내게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골프 맨탈 이야기였다. 혹시 그대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내가 근래에 깨달은, 골프 맨탈은 무었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골프를 치면서 그리고 샷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걱정되거나 혼란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생기는 것을 잘 막아내고 조절하여, 자기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몸이 구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이다. 물론 중년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맨탈이 강해진다고 갑자기 공이 바로 가거나 멀리 가지는 않고 또 스코어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흡사 맨탈이 강하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대 위에서 뒤로 넘기가 갑자기 가능해지지 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범위안에서 우리의 현재 신체가 허락하는 한계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 능력의 샷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의 효과이자 결과다. 어떻게 하면 골프 맨탈이 강해지나? 스윙연습? 체력단련?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치려는 샷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혹은 몸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적어지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냐고? 중년 주말골프에게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런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을 접는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오비 말뚝이 보이는 홀에서 드라이버를 치려는 순간에, 혹은 2펏으로 끝내고 싶은 어려운 롱펏을 할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오비가 나거나 3펏을 해도 괜찮다고 ‘진정’으로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은 긴장을 의욕으로 바꾸어 ‘지금 내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샷’을 허락한다. 진정성 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니 오해 말고. 그 결과가 오비거나 3펏이면 그것이 나의 지금 골프 능력인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억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사라진 비싼 새공들이 아까우면 중고공을 사용하고  내말 안듣는 비싼 장비에 마음이 괴로우면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에 만족하는 것도 골프 맨탈에 관련이 있지 싶다. 생초보와 세계적 수준의 프로가 동일한 장비를 ‘흔히’ 사용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하지 싶은데, 이 괴이한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면 골프 맨탈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차차 선택을 하게 되지 싶다. 이렇게 골프 맨탈이 차차 나아지면, 이제 골프 맨탈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서, 그저 스윙도 연습하고 또 체력도 기르면서, 좋은 코치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숏게임 연습도 좀 하노라면 ‘몸으로 하는 골프 능력’이 향상 되겠지. 그러면 점수도 좋아지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나?

말은 쉽지, 하지만 유튜브 보거나 남의 이야기 듣고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교통 벌과금을 물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 뼈에 사무치는 시간이 무르익어야, 섣부른 확신이 불러온 손해를 깨닫게 되는 과정과 후회하는 마음을 되씹는 괴로움이 있고 난 후에야,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으로 심신이 좀 변한 다음에야, 그 인연을 따라서 더 나은 무었이 저절로 그리고 참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해탈 열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는

이길녀선생. 선각자요 훌륭한 산부인과 의사며 교육사업가(?) 그리고 90세가 되도록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시는 대단한 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분을 ‘여자 정주영’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하네요. 얼마전에 로타리클럽에서 주는 봉사상을 받으셨는데, 구순의 나이에 마치 오육십대의 중년여자분처럼 꼳꼳하고 바른 몸매로 단상에 걸어올라 감사연설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길녀선생이 도대체 어떤 비결로 그런 ‘건강한 장수’를 누리고 계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것 같네요. 최근 어떤 인터뷰에서 ‘아마도 젊은 학생들과 늘 함께 지내며 공감하고 일을 하면서 그들의 좋은 기를 많이 받아서 그렇지 않겠나’ 하시더만요. 오늘 이분을 언급하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일전 블로그에서 언습했던 ‘인생이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길녀선생의 인터뷰나 기사를 접하면서 여러번 놀라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최근에 나를 깜짝놀라게 만들었던 말이 어떤 인터뷰에서 나왔어요. ‘지난 9일 연휴동안에 나는 매일 골프를 쳤다. 젊은 시절 쳐보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서’ 바로 이 말입니다. 참고로 이분은 일찌기 일본 미국 유학을 하셨던 선각자세요. 골프를 몰랐겠어요 아니면 칠 돈이 없었겠어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그분의 가르침을 자신들의 문화나 사고방식대로 해석하고 실천하기 시작하였는데요,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승과 대승’으로 불교를 나뉘어 서로를 비난하며 자신의 방법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다투어온 것이라 할수 있어요. 붓다의 가르침에는 소승도 대승도 그런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이런 허망된 판단, 나눔 그리고 다툼이 덧없으니 하지 말라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의 핵심인데, 참 우리 인간이 이런 수준밖에 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요? 하지만 그분의 가르침을 세상에 적용시키는 과정에서 사람들 각자가 속한 환경과 가치 그리고 문화가 달랐기 때문이 이러한 일이 어쩔수없이 발생한 것이겠지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화 시키다보니 어떤 세력 혹은 이익 집단을 형성하게 된 것이겠지요. 그러면 밥그릇 싸움을 하면서 서로 다투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종교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한 어떤 종교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으므로, 다만 그분의 가르침을 훌륭한 분들을 통해 배울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사람들은 일단 먼저 자신을 돌보고 그 이후에 여력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하기에, 아마 소승불교에 가깝다고 할수 있겠네요. 같은 맥락에서, 비록 그 결과나 효과는 세상에 도움이 될지라도, 사람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함께 모여 조직적으로 타인들을 돕고 가르치고 또 그들의 삶을 향상시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하는 그런 시도를 저는 선듯 동의하기도 또 적극적으로 공감하기도 어렵습니다. 인간은 예외없이 얕고 이기적이며 오감의 지배를 받는, 때로는 어처구니 없이 앞뒤가 맞지 않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저는 제 자신을 통해서 늘 보며 또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자주 상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먹을 것이 있고 내 뱃속이 편안할때 주변에 굶주린 사람에게 내가 가진 일부를 내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어쩌면 일부 동물들조차도 하는, 행동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것이 그냥 저절로 되거나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모습이나 상상하는 이상을, 타인들을 의식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도움으로써 획득하려고 하는 의도적인 행동은, 비록 그 상대방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상당한 부작용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지고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일전에 적선에 관한 이야기에서 언급한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 빌 게이츠는 여러가지 증거로 볼때 이러한 부작용을 잘 피하며 세상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적선을 하는 것으로 판단되었어요. 그래서 크게 존경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런 정말 똑똑한 부자들의 공통점은 배우자와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아무것도 몰라도 거대한 성공을 극도의 노력으로 성취하고 나면 아마도 인간의 한계와 행복의 진정한 비결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모습이 엄청난 문화와 세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붓다의 가르침과 별반 다를바가 없음을 보면서 저는 정말 놀라게 됩니다.

붓다께서도, 그 위대한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이전에 무척 고민하셨다고 합니다. 일단 사람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적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잘 살다가 가실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려고 하나 고민을 오래 하셨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을것 같네요. 붓다께서 결국 사람들을 가르치시기로 결심한 이유는 위에서 말한대로 일단 자신이 먼저 가졌기에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불쌍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베품으로써 무언가를 얻으려는 의도나 발상은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주고 받고 의도하는 그런 차원 위에 존재하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박원순 전서울시장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푼 업적이 있겠지만, 결국은 자기자신의 어처구니 없도록 앞뒤가 맞지 않는 삶 그리고 인간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어리석고 교만하며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물론 지켜졌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또 지킬 명예가 과연 있었던가 싶기도 해요, 상황이 이꼴이 되고 나니) 부인과 자식 친구들을 모조리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해버린 것이지요. 그들은 어쩌라고요? 그 성추행 대상이었던 여자분은 어쩌고요? 자살도 일종의 살인 아닌가요?

다시 이길녀선생의 9일 연휴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갑니다. 일전에 블로그에 적었듯이, 일어날만한 조건이 되면 세상일은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나 몇몇 사람때문에 길게 보아 인간의 역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며 감사드렸던 고 김근태선생도 또 사람들이 존경하는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사실상 그분들이 아니었더라고 하더라도 길게보면 오늘날의 한국은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조건에 의해서 우연히 역사의 수래바퀴에 딱 끼였던 인연으로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며 칭송하고 또 이곳에도 언급할 뿐이겠지요. 좀 괴상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일전에 언급했던 ‘적선을 베푸는 것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짐작하듯이), 동물에게 베푸는 적선은 10배로 되돌아 오고, 사람에게 베푸는 적선은 100배, 수행자에게 베푸는 적선은… 사찰을 지어주는 적선은… 이렇게 죽 계속되다가 거의 끝에 가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적선의 은혜에는 0000000배’ 그리고 놀랍게도 가장 마지막에 등장하는 최고의 가성비를 (return on investment) 자랑하는 적선은,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한 순간이라도 붓다께서 말씀하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변치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고 묵상하는 행위’라고 하네요. 어때요 놀랍지 않나요? 붓다께서는 결국에는 인간의 모든 행과 불행은 ‘궁극적으로는 자기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계신듯 한데요?

다시 말하자면, 민주화운동도 좋고 나라를 위하는 것도 좋지만, 무었보다 먼저 자신을 잘 돌보고 배우자와 가족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인간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고 말한다면 비약인가요? 그것 먼저 하고 나서 민주화운동도 하고 서울시정도 돌보고 또 다른 야망도 가꿔보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 같은데요? 그리고 두가지가 충돌할때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쪽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붓다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네요. 만약 그랬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필요한 지혜를 얻은 사람이었다면, 시장이 되고나서 가장먼저 밀실 침대를 없애고, 사무실과 주변의 벽을 유리로 갈아치우고 비서들을 적절한 사람들로 바꾸는 일을 아무 소리 소문없이 했었겠지요. 이미 말했듯이 자연의 지배를 받는 몸을 가진 우리 인간은 자주 어처구니없이 앞뒤가 맞지 않고 지극히 나약한 존재입니다. 어떤 상황에 (오래) 빠지게 되면 특출하게 심신이 반응하는 사람들은 전무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혜롭고 훌륭한 인간은 이러한 자신의 한계를 미리 알고서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에게 참으로 유리한 상황들을 계속 만들고 유지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황진이가 옷 벗고 유혹하는데 아무렇지도 않다고 큰소리 칠 수 있나요? 만약 그랫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길게 보아 나중에 더 큰 이익을 취하려고 잠시 참았던 수준이겠지요. 이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능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황진이가 자신에게 다가올 이유도 원인도 애초에 제공하지 않는 것이, 그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이 정도 되고나면, 황진이도 없고 뭐 보호하고 잣이고 할 아무것도 결국은 없는 상황이 되겠지요. 아마 이것을 붓다께서는 ‘불이 모두 꺼져버린 상태’ 즉 ‘니르바나’ 혹은 ‘열반’이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열반은 고승들만 죽어야 들어가는 무슨 거룩한 천당 극락이 아니라 그대와 내가 이러한 배움과 실천의 결과로, 살아서 누리는 조화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이곳과 비교하면 한국은 참으로 살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밥을 못먹거나 스마트폰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가까이에서 서로에게 간섭하고 참견하고 좋지 않은 영향을 심하게 끼치는 것이 흔하고 일반적인 곳이라, 어떤 도인의 말에 따르면 하루에 최소한 2시간 이상의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해야 살아 남을수 있을까 말까한 곳이라고 하네요. 공감합니다. 어떤이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네요. 진흙탕에서 연꽃이 피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도 하지요. 하지만 아름다움이 추함위에서만 존재하거나 그 진가를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 모든 곳에서 그렇게 상대성과 가성비를 따지며 살지는 않아요. 자신 내면의 은밀하지만 진실한 아름다움은, 주변의 추함이나 서로 드러내어 계산하며 비교하는 상대적인 아름다움과는 상관없이 존재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런 추한 주변과 가짜 아름다움을 멀리해야만 존재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Five Aggregates 이야기로 다음 글부터 되돌아 갑니다.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3)

오늘은 세번째로 ‘지나간 삽질의 기록’이다. 그땐 지금보다 더 초보골퍼 그리고 더 어리석은 군상이었기에, 나도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어떤 비법을 찾으려 시도 했었다. 내가 무슨 잭 니클라우스라고,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에서 아무도 없는 코스에서 미친듯이 안되는 클럽을 가지고 연습을 하기도 했었고, 또 몇주 기간 동안 무슨 밤샘 시험공부를 하듯 온몸이 골병이 들어서 뻣어 일어날수 없을 때까지 미친듯이 연습을 했던 적도 몇차례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시도들은 나의 KO패로 끝이 났었다 당연하게도. 골프가 그런 만만한 상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나는 병이 나서 끙끙 앓으면서도 잘 깨닫지 못했었다.

차고에 그물망과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매일 저녁 공을 쳤었다. 때때로 잘못 맞아서 튄 드라이버샷이 그물을 벗어나 아찔하게 차고의 벽과 지붕에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때 이웃들은 밤마다 옆집에서 들리던 따악~ 따악~ 그 소음을 어떻게 군말없이 참아 주었던가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고 고맙다. 보기플레이어 수준인 주제에 드라이버를 멀리 보내기만 하면 마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양 드로샷을 수개월간 연습하였다. 결과적으로 드로샷을 칠 능력이 생겼고, 그런 나의 드로샷들이 한여름의 굳어진 페어웨이와 죽이 맞으면 250미터씩을, 무슨 전진회전 먹인 당구공처럼, 때굴때굴 굴러서 갈때도 자주 있었다. 그대도 알다시피 대다수의 보통수준 골퍼들은 셋업 얼라인먼트의 미숙함으로 목표보다 실제로 훨씬 오른쪽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잘못된 조준이, 공의 5시 지점을 보통 노려서 치는 드로샷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구질) 우연히 어울려 그럭저럭 거리와 방향성을 얻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모래위에 쌓은 성이었으니 이내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의 골퍼들이 훅보다는 슬라이스성 구질을 가지고 있으므로 골프 코스는 많은 경우 슬라이스에 관대하게 설계되어 있다. 공이 페어웨이 오른쪽으로 향할때 탈이 덜 나도록 오른쪽에 넉넉한 공간이 있는 경우가 많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악성 훅 구질이 나기 시작하면 많은 경우 그대로 오비가 나거나 이상하게(?) 왼쪽편에만 주로 있는 하천 절벽 혹은 기타 접근불가능 지역으로 드라이버샷이 영영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확율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조금만 타이밍을 놓치거나 긴장하면 나의 드로샷은 쉽게 악성 훅으로 변질되어 라운드를 망쳐 놓기 시작하였다. 함께 백라운드 이상을 치면서도 ‘굿샷’ 이외에는 결코 어떤 말도 조언도 하지 않았던 그 아들이 딱 한번 안타까운 마음에 ‘드라이버 스윙궤도를 가파르게 만들어서 페이드를 치면 어떨까’ 제안하였다. 탁구로 치자면 우회전 전진샷을 좌회전 컷트샷으로 바꾸는 것이랄까. 연습하여 그렇게 되게 하였다. 원래부터 별 볼일 없던 드라이버샷이었지만 이제 때굴때굴 구르는 것을 거의 안하게 되니, 내가 이런저런 드라이버 클럽으로 온갖 짓을 해보아도 줄어든 거리는 늘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몸부림은 서서히 막을 내렸고 또 골프도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욕심대로 안되니까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몇해가 훌쩍 지났다.

그저께 턱걸이를 14개 하면서 올해초에 세웠던 내 기록을 하나 늘였다. 집 마당에 설치된 철봉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혹은 무슨 일로라도 마당에 나가기만 하면 매달려서 한번에 5개 정도씩 턱걸이를 해온지가 오래 되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오가면서 한번에 10개씩을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일회 20개를 이루고서 향후 20년을 유지하는 것이 내 희망이다. 년전에 내가 드로샷이니 뭐니 지랄을 떨때는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턱걸이고 또 갯수다. 물론 턱걸이와 더불어 산을 뛰는 하체운동도 해온지가 수년이 되었다. 직장 근처 산을 400회 이상 뛰어 올랐는데 1,000회를 채우는 것이 목표다. 이제 장타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달라지는 기분이다. 이렇게 근력이 강화되어 건강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면 그래서 내 삶이 행복하다면 그깟 골프 장타가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하는 건방진(?)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 콧대 높고 변심을 밥먹듯이 한다는 골프란 뇬은 어쩌면 똑같이 콧대 높고 건방진(?) 넘에게는 조금 마음을 열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상상을 해본다. 김헌선생이 말했던 ‘독보다 커야 독이 보인다’는 말씀이 어쩌면 이런 뜻인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또 다른 골프고수가 말했던 ‘간절히 원하지만 그 마음을 감추고, 그저 좀 비슷하게라도 되면 감사하겠다’ 정도로만 바라라던 그 말도 또 ‘너무 표적을 뚫어지게 보면서 조준하지 말고 좀 주변을 흐릿하게 보면서 조준하는 것이 좋다’던 말도 이제 조금씩 의미를 알게 될 것 같기도 하다. 또다른 착각인가?

턱걸이에 필요한 반복된 연습과 결과적으로 변화된 신체는 어떤 묘수나 비법으로도 갈음되어질 수가 없다. 20년을 하고자 하는데. 어떤 다이어트도 신발도 심신이 변화되고 준비되지 않은 당신을 그 산위로 데려다 줄 수가 없다. 1,000번을 오르고자 하는데. 골프가 턱걸이나 달리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차차 체득하고 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시간이 걸리며 그 접근방식을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여자탈의실과 골프이론은 기웃거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훌륭한 말도 최근에 들어서 알게 되었다 🙂

내가 턱걸이를 20개 한들 그리고 그 산을 지금보다 훨씬 빨리 뛰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속한 클럽에는 소위 말하는 싱글핸디가 회원의 15%다. 발에 채이는 것이 싱글이다. 내가 220미터 드라이버를 치건말건 싱글핸디가 되건말건 세상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 누구도, 하다못해 클럽멤버들조차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턱걸이를 하고 산을 뛰며 드라이버 장타를 추구한다. 이렇게 사는 것 아닌가 우리?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2)

‘장타본능에 대한 고찰’이라고 말은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별 내용은 없으니 일단 기대수준을 낮추고 읽으시라 🙂

아내의 베스트프랜드가 아내에게 보냈다던 유튜브 영상을 보았는데, 한국이 세계에서 최고인 것들 중에서 어떤 IT기술과 관련된 영상이었다. 실로 놀랍고 훌륭한 기술임에 틀림이 없어 보이지 않는가? 한국인의 기술력과 창작성을, 어떤 해외동포로 보이는 사람이 자랑스럽게 알리는 그런 유튜브인듯 하였다.

난세가 충신을 이야기하게 만들고, 가난이 질서와 자긍심을 내세우게 한다는 것을 멀고 먼 나라에 와서 이 나이가 되어서야 조금씩 깨닫는다. 참으로 가진 사람은 가졌다는 그것으로부터 이미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 과정이나 결과가 어떤 모습이건 어떤 형태이건 간에. 그리고 참으로 가지고 있다는 하나의 중요한 증거는, 다른 사람들이 가졌던 말던 별로 상관하지 않으면서 제 삶을 사는 모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 마저도 꾸며서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또 다른 종류의 가난 말고.

장타본능에 대한 이야기라며 이게 무슨 상관? 상관 있지. 상관 많지.

왜 장타를 치고 싶어 하는가? 오늘밤에 골프귀신이 나타나서 당신에게, ‘내일부터 250미터 드라이버를 매번 치게 만들어 주겠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내일부터 당신은 오직 혼자서만 골프를 쳐야하고 또 그 누구에게도 당신이 드라이버를 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그것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어쩔래?

‘술 담배 멀리하고 운동해라 운동해라’ 아무리 말을 들어도 와닿지 않듯이, ‘장타 치려면 장비나 기술 이전에 장타가 가능한 몸을 만들어라’ 아무리 들었어도 여태껏 와닿지 않았다. 왜? 몸과 마음에 힘이 드니까. 누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처럼 막연한 미래의 불확실한 결과를 믿고서, 오늘도 내일도 하기 싫은 턱걸이를 하고 복근을 기르며 산길을 달린단 말인가? 최신 고반발 드라이브를 사면 되지 않을까? 그만큼은 아니라도 클럽 피팅을 하면 드라이버 거리가 늘지 않을까? 어떤 묘수가 없을까? 딱 깨닫는 순간에 드라이버 거리가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어떤 비밀이 분명히 있지 않을까? 이렇게 점장이 무당 찾아 다니느라고 돈 쓰고 시간 버리고 결과는 영영 잡히지 않는 무지개?

일전에, 성공적인 중매의 결과로 재혼 20주년을 맞은 친구분들 댁에 저녁 초대 받아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문득, ‘내 생각에는 득도 해탈한 분들이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많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분들 중에서 표내지 않고 조용히 잘 살다가 가신분들도 많지 않겠나’ 이런 말을 했었다. 그런분들이 왜 표내지 않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가셨을까? 오직 짐작할뿐이지만, 그 득도와 해탈의 본질과 결과가 어쩌면 세상사람들의 눈에는 너무나 하찮거나 너무나 덜 극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셨거나, 혹은 득도 해탈한 그분들이 ‘밑에서는 그렇게 갈구 했었는데 정작 위에 올라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 라는 것을 말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씀하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 장타를 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말하는 골퍼를 본적이 있나? 아마 없을 것이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과대학에서 30만명의 골퍼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일반인들 보다 약 5년 더 장수한다고 한다. 특히 골프를 아주 잘치는 소위 싱글핸디캡 골퍼들에게서 더 명백한 관련성을 볼 수 있었다고 🙂

장타만을 추구하면 설령 그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다고 하더라도, 골프에서 행복을 찾거나 골프를 통해서 건강 장수를 얻게 되기는 어렵지 싶다. 차를 더 잘 그리고 더 빨리 몬다고 자신이 잘 모르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행복을 찾고 건강 장수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몸을 만들어 장타를 치게 되면 그 장타는 더 오래 곁에 머물 것이다. 아마 원하던 행복도 건강 장수도 그 과정에서 얻을 가능성이 크겠지.

남들이 좋다는 것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부러워 하는 것들에 너무 목매지 말지.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었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었인지, 내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었인지 더 자주 생각하며 추구하는 삶이 진정 부유한 삶이 아닐까? 장차 더 부유하다 덜 부유하다는 생각조차 없어질 그런 삶 말이다. 그런것이 어디 있냐고? 영어 말에 이런 표현이 있다. ‘You don’t know what you don’t know.’ ‘당신이 모르는 것들은 당신이 모른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가 정말?

좀 건방진 글로 느껴졌다면 미안하다. 나라고 그대와 뭐가 다르겠나? 다 같은 수준이지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1)

앞으로 6번에 걸쳐서 골프 드라이버 장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오늘은 첫번째 ‘장타의 기준’이다.

1. 장타의 기준
2. 장타본능에 대한 고찰
3. 지나간 삽질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5. 지금의 장타
6. 훗날의 장타

영미 아마추어 드라이버 통계, 한국 아마추어 드라이버 통계, LPGA 프로선수 드라이버 통계 그리고 내가 직접 목격한 드라이버등을 종합하여 아마추어 골퍼 드라이버 장타의 기준을 알아 보고자 한다.

먼저 Carry distance와 Total distance를 구분해 보자. 캐리는 티에서 쳐서 날아간 공이 지면에 최초로 닿는 지점까지의 거리를 말하며, 토탈은 이 지점에서 공이 더 굴러 나아간 거리를 합친, 공이 정지한 장소까지의 거리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비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여기서 사용하는 ‘비’는 비행기라는 단어에도 사용하는 ‘飛’ 한자로써 ‘나른다’는 의미이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거리 = 날아간 거리’ 즉 캐리거리에 해당하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토탈거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는 드라이버 거리를 말할때 캐리와 토탈을 구분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그리고 또한 캐리거리를 골프장에서 측정하는 것이 실제로 쉬운 일이 아니므로, 거의 100% 토탈거리를 의미한다고 본다. 스크린골프의 경우 캐리와 토탈을 별도로 보여주는것 같더라. 토탈거리에 포함되는 런 (run) 혹은 굴러간 거리는, 티샷지점과 페어웨이간의 표고차이, 페어웨이의 상태 (굳기), 공의 회전 (드로와 페이드) 그리고 공의 상승높이 등의 영향을 받겠지만, 일반적으로 캐리거리의 10% 정도의 런이 나는 것으로 (지면에 떨어진 후에 굴러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들어 드라이브샷의 캐리가 200미터라면 토탈은 220미터 내외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언급할 내용은 티샷 장소와 페어웨이간의 높낮이 (표고) 차이다. 링크스 코스가 많은 영국은 말할 것도 없고 (흔히 바닷가 모래밭을 골프장으로 만들었으니 평지인 경우가 대부분), 골프가 일찌기 발달한 넓은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들은 골프장이 평지에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지천에 널린 들판에 잔디를 길러 다듬어 주면 골프장이 되는데 왜 굳이 산을 깍고 흙을 매우면서 난리를 치겠나. 이곳은 열에 아홉은 거의 완전한 평지에 골프장이 있고, 어쩌다 있는 산악지형 골프장들도 몇개의 홀이 표고차이가 좀 있지 골프장 전체가 산악지형으로 대부분의 홀에서 표고 차이가 심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한국은 골프장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농사를 지을수 없는 경사지 혹은 인위적으로 산을 깍아 만들어진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따라서 다수의 홀에서, 위에 있는 티박스에서 아래에 있는 페어웨이로 공을 날려보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1미터 표고 차이에 약 1미터의 거리 차이가 생기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7번 아이언으로 130미터 보내는 골퍼의 경우, 티박스와 그린의 표고차이가 10미터라면 (그린이 10미터 아래에 있는 경우) 그 공은 대략 140미터를 가서 정지하게 된다. 만약에 반대로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10-20미터 위에 있다면? 한국에서는 그런 골프장을 아마도 절대 설계하지 않을 것이다. 손님이 끊어지고 그 골프장은 망할 것이다. 고객들이 딱꼬집어서 (?) 말하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이상한 골프장 혹은 서비스가 나쁜 골프장이라고 말하면서 피하지 않을까 싶다. 일전에 내가 직장동료와 쳤던, 이곳에서는 드문 산악지형의 골프코스에서는 두 세개의 홀에서 그린이 페어웨이보다 10-20미터 위에 위치해 있더라. 파4 파5에서 그린을 공략할때 깃대 끝이 보일랑말랑 하더라. 그것도 참 난감하긴 하더라. 이제 드라이버 거리에 관한 실제 통계들을 보자.

트랙맨이라는 미국의 유명한 골프레이더 (골프스윙 측정기) 제조업체가 있다. 해마다 자사의 레이더로 측정한 미국 PGA와 LPGA 드라이버 거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이 회사의 데이타는 미국 GOLF.COM처럼 유수의 기관과 웹사이트 등지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으니 신뢰할만한 정보라고 할 수 있겠다. 수천 혹은 수만회의 드라이버 샷을 분석한 결과일 것이다. 이곳에서 보다시피 LPGA선수들의 평균 캐리거리는 (비거리 = 날아간 거리) 218야드, 딱 200미터다. 이들의 평균 토탈거리는 (공이 구르고 나서 정지한 곳까지의 거리) 240-250야드 즉 220미터 전후이다. 현재 LPGA투어에는 전세계에서 시드를 받은 530명의 여성프로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우리에게 알려진 한국선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 530명중에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양계 선수들이 많을까 아니면 덩치 큰 미국이나 유럽선수들이 많을까? 당연히 유러피언들이 많을 것이다. 유러피언들의 (우리가 소위말하는 ‘서양사람들’) 덩치에 대해서 알고 있나? 미셀위 선수와 강호동씨의 스크린골프샷 이야기를 하면서 더 언급하겠지만 평균적으로 한국인과 서양인은, 권투등 체급 경기로 따지자면 2-3체급 정도 차이가 있다. 2-3 체급이면, 체중으로는 10킬로 내외의 차이 그리고 키로는 10센티 내외의 차이라고 볼수 있는데 어쩌면 이게 실감이 잘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킥복싱을 한지가 몇년이 되었다. 곧 트레이너 노릇을 하게 된다더만. 같은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사람들 중에는 무에타이의 본고장 태국에서 온 작고 새까만 진짜 킥복싱선수들도 있지만 (아주 어릴때부터 훈련하여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 덩치는 작지만 맞으면 사망이라고 함) 대부분은 이나라 청년들 즉 유러피언 청년들이라고 한다. 내가 말한데로 평균적으로 2-3 체급 정도 위라고 하는데 함께 스파링을 해보면 맞을때의 충격과 강도가 동일체급 사람들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한다.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내장에 지진이 나고 해골과 내용물이 분리된다고 🙂 LPGA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40-250야드라면 KLPGA 한국여자 프로선수들의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어떨까? 남자 선수들끼리 비교해도 결과는 아마 비슷할 것이다. 누구나 좋아하는 전인지 선수. 세계적인 골프 실력은 물론이려니와 체격이 왠만한 남자 못지 않다. 175센티의 키에 몸무게가 70킬로라고 프로필에 나와 있는데 LPGA 드라이버 장타 리스트에 따르면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30야드 내외로 나와 있다. 혹시 브리타니 린시컴이라는 미국여자 프로선수 들어 봤나? 우승도 몇번하고 성격도 좋아서 티비에 골프 해설도 가끔하는, 우리내외도 좋아하는 선수인데 이사람은 알려진 드라이버 장타 여왕이다. 전인지선수보다 40야드 더 멀리 친다고 한다. 키? 체중? 180센티 안팎의 키에 90킬로 육박하는 체중이다. 감이 오나? 여자 프로선수들이 보통 남자 아마추어들이 치는 화이트티에서 경기를 하니 비교 대상으로 적절할 것이다. 평균 한국남자들 특히 그대와 나 같은 중년남자들이, 유러피언 아마추어 남자골퍼들 보다 더 멀리 드라이버를 (평지에서) 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이야기일 것이다. 전인지선수와 브리타니 린시컴선수의 비교처럼.

이 한국 신문에서 언급한 R&A라는 곳은 골프통계로 유명한 영국회사인데 미국골프협회와 협력으로 4만회 이상의 티샷을 분석하여 PGA, LPGA는 물론 PGA 2부투어 (web.com), 일본프로투어, 유러피언프로투어 그리고 아마추어남녀를 망라하는 드라이브 통계를 매년 발표한다. 전체 리포트를 읽어본 결과 발표하는 자료의 신뢰도가 매우 높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2019년 초에 발표된 최근 프로골퍼들의 통계를 보자. 최하단 왼쪽에서 4번째가 2018년 LPGA 평균 드리이버 토탈거리이다. 250야드. 바로위에 있는 LET는 Ladies European Tour 선수들의 통계인데 그들의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는 245야드 내외로 나와 있다.

아마추어 남자들의 기록은? R&A통계에 따르면 평균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215야드로 200미터에 약간 모자라는 거리다. 싱글들, 특히 핸디 6이하의 로우싱글들의 평균 드라이브 토탈거리는 240야드 즉 220미터로 나와 있다. 백돌이라면? 드라이버 토탈거리가 170미터가 넘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란다.

아마추어 여자들은? 백돌이 걸들의 티샷은 100미터 조금 넘는다고 나와 있다. 골프를 아주 잘치는 로우싱글이 되어도 토탈 드라이버 거리가 180미터 내외라고 한다. 우리나라 여자들보다 2-3 체급이 높은 서양여자들의 통계가 그렇다는 말이다. 내가 나이가 좀 들고 하니 요새는 길을 가다가 덩치 큰 서양 여자나 원주민 여자들을 보면서 ‘만약 저 여자하고 맞짱 뜬다면 상대가 안되겠다’ 상상하는 경우가 많아지는데, 아내도 듣고서 공감하더라. 그런 여자들과 붙으면 당신 죽는다더만. 나도 한때는 자존심 있는 숫컷이었건만 🙂 그런 여자들도 포함한 사람들이 치는 드라이버가 아무리 때굴때굴 굴러도 140미터를 못간다는 말이다, 평균이.

이제 미셀위선수와 강호동씨 스크린골프 드라이버 쳤던 이야기. 미셀위 알지? 재미교포 위성미선수. 곧 첫 아기 낳는다더만. 이 멋있는 LPGA 프로골퍼는 키가 183센티에 체중은 70킬로란다. 그 큰 키와 긴 팔로 장타를 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 전직 씨름선수인 강호동씨는, 키는 미셀위와 같은데 체중이 110킬로 정도라고 한다. 미셀이 먼저 270미터 드라이버를 쳤는데 (여성으로 얼마나 멀리치는 것인지 이제는 이해가 되리라) 강호동씨가 280미터를 쳤다고 한다. 이 양반이 그 당시에 무슨 골프 실력이 있었겠나. 그냥 휘두른 것이지. 재차 시도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고. 엄청난 근력과 체중의 차이는 때로는 최고의 기술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미셀위가 남자 PGA투어에 참여했다가 컷오프 (예선탈락) 당하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스크린과 실제 코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스크린골프에서 장타왕이라는 사람을 골프장에 초대해서 라운드를 하는 것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코스에서는 스크린의 60-70% 정도의 (힘과 스피드로) 드라이버 밖에는 치치 못하더라. 실내에서 완벽하고 스트레스 없는 조건에서 죽을 힘으로 때리는 드라이버가 진짜 드라이버 거리는 아니라는 말씀. 권투선수 박종팔씨가 옛날에 미국 가서 세계 챔피언 도전했다가 실패했는데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무슨 링바닥이 그렇게 푹신푹신 한지 균형을 못잡겠고 주변 분위기 때문에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고. 스크린골프 장타치던 사람이 골프장의 바람부는 티박스에 서서 푹신푹신 그리고 때로 슬며시 기울어진 지면을 밟고서 오비말뚝을 힐끔거리며 드라이버를 치려고 하는 기분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제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드라이버 토탈거리 측정사례. 한국최고의 골프코치중 한 분일 것으로 여겨지는 김헌선생의 강좌중에 나온 이야기다. 김헌선생은 5천명 이상의 아마추어에게 골프를 지도한, 기네스북에 오를만한 코칭기록과 경험을 가진분으로 나도 이분의 좋은 책들과 인간적인 글들 그리고 유익한 동영상의 큰 팬이다. 이분 말씀이, 영종도 골프장 (내가 쳐보지는 못했지만 평지일 것으로 짐작) 특정 홀에 카매라를 설치하여 페어웨이에 안착한 드라이버샷의 토탈거리를 4천명의 이용자를 대상으로 측정했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개인이 10번 중에 8번 장타치고 2번 오비내면서 (거리가 0으로 계산되니) 평균 거리 왕창 까먹는 그런 계산 방식이 아니고, 오직 페어웨이에 떨어져서 정지한 드라이버 샷의 토탈거리들 만을 측정하여 평균낸 것이라고 한다. 결과는? 평균 205야드 즉 190미터가 조금 못미치는 거리였다고 한다. 위에서 말했던, 우리보다 2-3체급 더 나갈 것이라는 영미 아마추어들의 평균 드라이브 토탈거리인 215야드보다 10야드 정도 덜 나간 거리이니 얼추 앞뒤가 맞지 않은가 싶다.

내가 본 드라이버샷들 이야기. 옛날에 나와 100라운드 이상을 주말마다 함께 쳤던 부자가 (아버지와 아들) 있었다. 아버지는 나이가 70내외로 서양사람으로는 평균보다 약간 큰 정도 그리고 아들은 40전후의 나이였는데 180센티의 키에 체중은 딱 100킬로인 균형잡힌 체구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핸디를 합쳐서 5가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평생 골프를 쳐온 아버지의 드라이브는 당연히 무척 정확하였다. 거리는 토탈로 200미터 전후. 이런 드라이브로도 함께 했던 100라운드 중에서 80대를 치는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들은 평균 250미터는 보통 보내는데 뒷바람이 불때 친 잘맞은 드라이브의 경우 300미터에 근접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우리가 함께 쳤던 골프장은 완전 평지였다. 아들은 골프세트를 등에 매고 다녔는데 아빠가 자기가 17살이 되던 생일에 선물한 것이라고 하였다. 20년 이상된 채로 250-300미터 날린다는 말이다.

세상에서 1번 아이언은 아놀드파머와 골프의 신만 칠수 있다는 말을 혹시 들어 보았나? 이 아들이 1번 아이언 치는 것을 나는 여러차례 목격하였다. 한번 잡아 보았는데 길이도 무척 길지만 클럽 페이스가 거의 수직으로 서있었다. 이것으로 쳐서 공을 띄우고 또 그린에서 멈추게 하려면 스윙기술도 좋아야 하지만 스윙스피드가 상당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더라. 나는 이 세상에 1번 아이언을 치는 자가 최소한 3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사모아 알지? 사모아 사람들 크다. 여자도 내 체중 2배 되는 사람들 많다. 직장 동료중에 사모아 사람이 있는데 골프를 좋아해서 함께 여러차례 라운드를 했었다. 이사람은 키는 대략 나와 비슷한데 체중은 아마 100킬로 이상 쉽게 나가는 빵빵이 아저씨였다. 팔로만 골프채를 휘두르는데 강호동처럼 드라이버 장타가 자주 나왔었다. 물론 오비나 터무니 없는 샷도 많았고. 폼? 그런것 없고. 체중이동? 그것도 없고. 피니쉬? 물론 없다. 팔힘으로 줘패서 250미터 날린다.

이전에 있던 골프클럽에, 한쪽 다리를 젊은 시절 오토바이 사고로 잃어 의족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몇차례 라운드를 하였다. 세계장애인골프대회에 이 나라를 대표하여 나갔었다고 하였다. 나보다 훨씬 더 멀리 드라이버를 날리는데 이사람이 치는 것을 보면, 있는 힘을 다해서 사정없이 때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핸디가 7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물론 스윙도 좋고 기술도 좋아 보였다. 드라이브를 있는 힘을 다해서 때리고는 (다리가 불편해서) 피니쉬에서 균형을 좀 잃곤 하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대도 나도 이 사람처럼 정말 있는 힘을 다해서 드라이버를 쳐야한다. 그 심오한(?) 이유는 차차 밝히겠다.

결론이 뭐냐? 이런 여러가지 통계와 사실과 조건들을 분석한 결과로 나온, 내가 생각하는 한국 (중년) 남자 골퍼의 드라이버 장타란 과연 무었인가? 캐리 200미터 토탈 220미터, 즉 240야드 토탈거리의 드라이버를 나는 장타라고 말하겠다. 어쩌다 한 두번 내리막에서 뒷바람에 치는 것 말고, 평지에서 세 번 치면 두 번은 이런 거리의 드라이버가 페어웨이 부근에 안착할때 나는 그를 드라이버 장타를 치는 골퍼라고 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