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링컨대통령의 부치지 않은 편지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미국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지휘를 맡았던 최고사령관이, 남군을 요절내고 노예를 해방시키며 전쟁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수긍할만한 이유없이 미루고 또 이해할수 없는 이유로 회피하다가 그만 놓치고 난 이후에, 극도로 화가났던 링컨대통령께서 (자신의 지휘를 받던) 그 장군에게 쓴 편지인데요, 대통령께서 사망한 이후에 서재에서 부치지 않은채로 발견되었다고 하네요.

나도 읽어 보았어요. 영미문화권에서는 비록 상하관계가 명백한 경우라 하더라도 심한말로 나무래는 경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거의 보지 못했는데요, 상대방의 위치나 권위등을 존중해 주려는 배려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아마도 욕이나 심한말의 인플레이션이 적은 곳에서는 조금만 억양이나 톤을 바꾸어 말해도 그 의미가 잘 전달되기 때문에 굳이 쌍욕이나 상대방을 모욕하는 나쁜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링컨대통령께서 쓰신 그 편지는 이런 문화적차이를 이해하고 읽기에도, 비록 자제하며 말하고는 있지만 극도의 실망감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드러내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을 해요. 대통령께서는 이 편지를 쓰기 전에도 쓸 때에도 그리고 쓰고 나서도 몹시 괴로워했을것임을 저는 짐작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서랍에 넣어 두고 일부러 부치치 않으신것 같다고 해요. 물론 역사속에서 그 장군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당시 북군은 이미 무능한 사령관들을 수도 없이 교체하며 어려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고 하니, 어쩌면 이 사람도 이전 사령관들이 갔던 길을 따라 갔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북군이 승리했고 노예는 해방되었으며 링컨대통령은 미국역사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남을 훌륭한 위인으로 남게 되신것이지요.

그대도 쓰고 부치지 않은 편지들이 있나요? 나는 있어요. 링컨대통령처럼 종이에 잉크를 묻힌 펜으로 쓴 편지는 아니고, 비록 컴퓨터에 저장된 워드파일로된 편지들이지만 본질은 같다고 생각이 되는군요. 대통령께 배운 면도 있겠지만, 제 자신이 가끔씩 글로 저의 폭발하는 감정을 쓰는 것이 버릇이 되었는지 제가 쓴 부치치 않은 편지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부칠 의사가 거의 없던 편지들로서 그 취지가 약간은 변색된 면이 있겠네요.

어쨋던 저는 그 편지들을 시간이 지난후에 다시 읽어봐요. 짧게는 몇주 길게는 몇달 혹은 몇년이 지나서 읽어보는 저의 부치지 않은 편지들은 제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을까요?

부끄러움입니다. 놀라셨나요? 제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을 가장 많이 느꼈어요. 내가 그 당시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수준의 편지를 썼던가? 무었이 나로 하여금 지금 보기에는 내가 쓴 것이라고 차마 믿기 어려운 내용과 수준, 그리고 나아가 그 편지의 발단이 되었을 사건이나 상황을 극히 유치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러한 글들을 쓰게 만들었던가 자문하게 됩니다. 부치지 않았길래 망정이지, 만약 부쳤더라면 내쪽에서 문제를 훨씬 크게 확대하고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았을것이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내가 격정에 사로잡혀 있을때 얼마나 더 어리석게 되고 눈이 더 멀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의 횟수가 거듭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부치지 않은 편지를 통한 저의 깨달음은 어쩌면 제 자신에게, 설령 제가 이런 상황속에 빠져 있을때라고 할지라도 바로 이런 기억을 불러와, 저로 하여금 이전에는 확신을 가지고 상대방에게 했었을 그런 언행들에 커다란 의문을 던지며, 저의 잘못된 확신을 무너트리고 제 입을 다물게 하며 저의 사나운 마음을 누그러뜨리지 싶습니다.

훌륭한 사람은 다른사람들을 통해서 배우고, 보통사람은 자기자신을 통해서 배우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것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래도 보통사람들 끝에라도,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좀 끼이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이 괴로운 그대, 오늘밤 부치지 않을 편지를 한번 써보시지 않으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