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 원장 vs 프로페셔널 원장

주말아침 가족과 함께 동네카페에 왔다. 커피를 주문해 놓고 창밖을 바라본다.
인도인 부부가 어린딸을 데리고 와서 바깥 테이블에 앉는다. 체육복 바지에 슬리퍼 질질.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고 휴지는 널부러지고 설탕하나 제대로 커피잔에 넣지 못하고 상위에 줄줄 흘리고 치울 줄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또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만드는 이 사회는 장차 어떤 모습일까… 나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린다.

그 공립 유치원에도 최근 들어 인도나 중국에서 태어나, 부모를 따라 이민온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거의 오분의 일이나 된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우며, 그 부모는 그들의 부모들과 그들이 이전에 속했던 그 사회의 수준을 벗어나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나는 다양하고 오랜 경험을 통해 보아왔다. 도대체 몇 세대가 지나야 자연스러운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한지 아니 그런 것이 도대체 무었을 의미하는지…

보기 드문 어쩌면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동양인 원장이니, 말도 잘 안통하고 이 새로운 사회의 물정도 잘 모르는 그 부모들이 대부분 의지하고 싶어 한다. 어떤 부모들에게는 이 유치원을 선택했던 이유였기도 하고.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어디 누군들 다르랴. 이런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동양인 원장은 자주 뒷골이 땡긴다고 했다. 대다수의 다른 학부모들 눈에는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쩌면 원치도 않는 이질적인 장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금발의 이전 원장은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능력으로 수십 년간 너무도 잘 알려졌던 사람이었다. 내가 묻는다. 그녀라면 어떻게 했을것 같은가? 프로페셔널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다. 다른 부모들이나 원생들과 똑같이. 하지만 아마도 마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는 못했을 것이고, 당신이 지금 창밖의 인도인 가족을 보며 느끼는 그런 감정을 숨기며 이런 부모들과 아이들을 대하지 않았을까 싶다… 십년 넘도록 같이 일했었으니 맞는 말일 것이다.

이 동양인 원장은 지금 이순간 그리고 오늘을 사는 보살이다. 물론 프로페셔널하다. 충분히 배웠고 모두들 인정하는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음식을 한 그릇 만들어 팔아도 마음이 들어가고 혼이 베어난다고 하는 세상인데, 이 소중한 어린 사람들을 가르쳐 어쩌면 평생을 좌우할 몸과 마음의 습관을 만들어 주는데 단지 프로페셔널 하다고 될까? 모든 관계는 서로의 기를 나누는 행위이며 이 어린 것들도 귀신처럼 알아챈다고 하더만…

이 동양인 원장이 그 어린것들을, 때로 측은한 마음을 숨기면서 스스럼없이 안아주고 또 지나가며 엉클어진 대가리라도 한번 더 만져 주고, 그 버벅거리는 영어하는 부모들에게 한 마디라도 더 조언 해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그 결과로 이 아이들은 내가 오늘 조롱하는 그런 짱께나 카레로만 남지 않을 어떤 기회를 장차 조금이라도 더 가지게 되리라. 보살행은 때로 은밀하며 자주 어려움을 부른다. 다른 길을 선택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며 또한 누구도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보살은 선택하지 않는 듯 선택한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런 사람들을 *처럼 보며 피해 왔고 또 이런 사람들 때문에 뒷골 땡기는 것은 더욱 더 싫다. 이 보살원장은 말이 없고 나는 말이 많다. 중생은 선택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선택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인가…

목련을 좋아 한다는 이 보살원장께, 그 모자라고 힘없고 후진 부모들을 대신하여 올리는 감사의 노래다. 소프라노 김주연님이 그 아가들과 함께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