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많은 제약회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미친듯이 개발하고 있어요. 상업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거대 제약회사로서 인류에 대한 책무를 다한다는 측면도 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전 글에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자선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이분도 빨리 효과적인 백신이 만들어져서 싼값에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게도 공급될 수가 있도록, 큰 돈을 기부하여 백신을 몇천원 수준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분이 지난 몇달간 효과적인 백신을 가장 빨리 만들어낼 가능성이 큰 제약회사로 지속적으로 언급해 온 회사는 우리도 들어본 ‘화이자’라는 제약회사 입니다.

오늘 이 화이자 제약회사에서, 90%에 가까운 매우 놀라운 효과를 보이는 백신이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는 발표를 했어요. 여러분이 혹시 아실지도 모르지만 빌 게이츠는 그동안 곧 백악관에서 쫒겨날 ‘노랑머리 인간말종’이 미국 전체에게 큰 화를 초래하는 무책임한 짓들을 하는데에 반대해 왔어요. 특히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매우 잘못된 대응을 여러차례 직접적으로 질타했어요. 한 신문에서 오늘 화이자의 백신발표를 언급하면서 ‘참으로 오묘한 타이밍이 아닐 수가 없다’고 했어요. 백신개발이 며칠안에 되는 것이 아니니 아마 일주일 전에 발표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 상상이 되나요? 정말 우연이었을까요?

존 멕케인은 미국 ‘아리주나’주의 상원의원이었어요. 해군제독의 (아마 4스타) 아들이며 젊은 시절에는 공군에서 유명한 ‘문제아 파일럿’이었다고 해요. 사생활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가 아니예요. 비행기를 사고로 불태워 먹었다던가 항공모함에서 출격하기 전에 ‘우연히’ 미사일을 함상에서 발사한다던가 그런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근래에 암으로 사망한 이분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여 전투기를 몰고 출격했던 용감한 미국의 군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인들이 군인과 경찰의 노고에 얼마나 감사하며, 특히 참전 군인들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여러분들도 알고 있나요? 어디서든 줄을 서 있는 군인들을 가장 앞으로 보내서 편의를 봐주는 것은 미국에서는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광경이라고 합니다.

존 맥케인은 북베트남 상공에서 피격당해 낙하산 탈출을 합니다. 뼈가 심하게 부러진 채로 붙잡혀 북베트남군 병원을 거쳐 감옥에서 수년간 갖혀 있었어요. 이 사람이 누구의 아들인지 아는 북베트남군들이 가만히 두었겠어요? 물론 몽둥이로 패거나 고문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온갖 방법으로 절망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기들이 시키는데로 하도록 만들었겠지요. 지금도 존재하는 비데오를 보면 이 사람이 병원에서 붕대에 칭칭 감긴채로 눈물을 흘리며 아내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약한)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에서 벌이는 전쟁에 대해서도 ‘부끄럽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강제로 당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지요. 전쟁이 끝나고 이 분도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되돌아 왔어요. 미국은 이 사람을 ‘화냥년’ 대접하며 천대하기는 커녕 나라에 봉사한 참전 영웅으로 대접합니다. 그래서 정계에 진출하여 상원의원도 오래하고 대통령 후보도 되었었지요.

이야기가 옆길로 좀 세는데요,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말이되었지만 예전에는 처신이 좋지 않은 여자를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 화냥년이라고도 표현했었어요. 이 표현의 어원은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한 조선이 많은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쳤는데 그들이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고향으로 되돌아 왔을때 (‘환향녀’ 즉 고향으로 되돌아온 여자) 우리 조상님 남자들이 그 여자들을 더러운 여자라고 그렇게 천대를 했다고 해요. 임금까지 나서서 그들이 우물에 목욕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기만 하면 차별하지 말고 대해주라고 했는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지요. 이 표현의 어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역사적인 사실들을 전후로 살펴보건데 실제로 있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그런데 그녀들이 자기 발로 부모형제를 버리고 청나라에 갔나요? 누가 그 처녀들을 짱께들에게 붙들려가게 만들었나요? 아마도 이런 못난 남자들의 전통이 유구하게 이어져 오늘날까지도 ‘자기는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며 지랄을 떠는 넘들이, 바로 헬조선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물론 당신과 나는 예외겠지요 🙂

다시 그 인간말종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이자는 군대를 가지 않았어요. 베트남전쟁때 (무작위 추첨을 통한) 강제징집을 교묘한 방법으로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나라를 위해서 한번도 총을 잡아보지 않은 자가 참전 조종사였던 존 맥케인에게 ‘포로로 잡혔던 군인에게 무슨 명예가 있는가’ 이런식의 극히 모욕적이고 치명적인 악담을 합니다. 당연히 존 맥케인의 장례식에도 초대를 받지 못해요. 두 사람은 같은 정당 소속의 정치인들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존 맥케인의 부인은 여러차례 직간접적으로 (반대 정당의)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표현을 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 존 맥케인이 상원의원을 오래 했던 이 아리조나 주에서, 인간말종이 쉽게 승리할 것으로 예측되던 그곳에서, 근소한 표차이로 바이든이 승리 합니다. ‘죽은 존 맥케인이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고 신문에 났습니다.

존 루이스는 흑인 인권운동을 오래 했던 존경받는 하원의원이었습니다. ‘조지아’라는, 짐작컨데 옛날 흑인 노예들이 목화를 땃던 그런 미국 남부 주의 (state) 하원의원을 수십년 지내다가 근래에 암으로 죽었습니다. 이 사람도 존 맥케인처럼 자기 주에서는 매우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이 사람이 죽었을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그 인간말종에게 언론들이 인터뷰를 했어요. ‘이분의 죽음과 업적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몰라.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뭘 믿겠어?’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언론들이 다시 물었어요 ‘흑인들의 인권신장에 근래에 가장 기여한 분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죽은 존 루이스를 떠올렸겠지요. 그 인간말종이 대답했어요 ‘응… 나. 내가 흑인들의 인권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기고 있지’. 이 언론의 인터뷰는 많은 미국인들의 공분을 샀어요. 특히 죽은 존 루이스의 고향인 조지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지요. 미국 대통령 투표결과가 발표되었는데요, 보수적인 조지아 주에서도 그 인간말종은 근소한 차이로 바이든 후보에게 지고 맙니다. 역시 ‘죽은 존 루이스가 산 트럼프를 작살냈다’는 기사가 뜹니다.

당신과 나도 여태껏 살면서 비록 그 정도나 횟수는 다를지언정 얼마나 이와 비슷한 짓들을 했었을까요? 내가 언제 원수와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었던지 또 내가 어떻게 앙갚음을 당했었던지 나는 잘 알지 못합니다. 보복은 있었으되 어리석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요? 내가 의도를 가지고 저질렀던 언행의 결과는 부매랑처럼 언젠가는 그리고 어떤 형태로건 내 자신에게 되돌아 옵니다. 그것이 남들에게 했던 것이건 자신에게 했던 것이건 혹은 무었이었건 말이예요. 오늘 밧줄을 얽히고설키게 만들면 언젠가 그것에 내가 걸려 크게 넘어지는 순간이 올꺼예요. 그 순간은 내가 예상하지도 또 원하지도 않는 때일 것이며,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너무 늦겠지요. 지금 덜 얽히고설키게 만들며 또 하나라도 더 풀려고 노력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네요.

붓다께서 이미 수천년 전에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은 없어요.

길에 떨어진 사금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

알려진 골프코치들 중에서 김헌이라는 분이 있다. PGA니 KPGA 선수출신도 아니고 하다못해 무슨 미국 티칭프로 자격을 내세우는 분도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말했듯이 이분만큼 많은 아마추어 골퍼들을 지도한 실전 경험을 가진분은 (5,000명 이상)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것이다.

이분이 왜 그렇게 유명하신가, 그런데 왜 돈은 엄청 못버셨는가 하면 🙂 소위 말해서 도가 튼 분이기 때문 아닌가 한다. 이분의 강의를 들으면 진심으로 자신이 가진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김없이 그리고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나누는 분이라는 것을 자주 그리고 분명히 볼 수가 있다.

아마 이분의 그런 점들이 (가식없이 꾸미고 포장하지 않으며 또 자신의 것이라고 움켜쥐고서 돈 내놓아라 하지 않는 것등) 이분에게 엄청난 경제적인 성공을 가져오지는 못한 듯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존경과 또 스스로 느끼는 진정한 만족감과 재미를 자신에게 선물하면서 살고 계신 것이 아닌가 한다. 돈과 권력으로는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것처럼 보이게 강제할 수는 있겠지만, 뒤돌아서 침뱃는 그런 가짜를 사고 팔아서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진짜 보물도 궁극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하는 판에 그런 가짜를 왕창 모아 가지고서 뭘 하려나?

내가 지금껏 골프에 버벅거리며 수도 없이 많은 동영상과 글과 책을 보았지만, 김헌선생의 가르침 만한 것을 동서양 어디서도 아직 보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공짜로 나누어주신, 자신의 골프경험 30년을 농축한 이 2시간짜리 강의만큼의 가치를 지닌 가르침을 나는 아마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보지 못하지 싶다. 이분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기에 이렇게 내 블로그를 통해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혹시 그대도 관심이 있으면 보기를 권한다. 그 훌륭한 강연은 여기를 클릭.

이분이 어떤 강좌에서 하신 말씀중에서 내가 늘 기억하며 골프뿐만 아니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싶은 말씀이 있다. ‘수천명의 아마추어를 가르쳐 보았지만 골프의 즐거움 아니 인생의 행복이, 땀을 흘리며 지루하게 길을 가다가 문득 바닥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으면서 기뻐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프에서 그리고 어쩌면 인생에서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금맥이나 금광을 찾으면서 사는것 같다. 세상에 그런 금맥이나 금광은 없다. 그리고 만에 하나 설령 그것을 찾았다손 치더라도 금맥이나 금광이 참된 행복을 주는 것도 아니다.’

참으로 훌륭한 스승이시다.

이분의 가르침, 공짜 좋아하는 ‘가난한’ 내게 무료로 주시는 이 훌륭한 가르침들을 가지고서 나는 ‘반드시’ 싱글이 되고 또 득도하리라 🙂

그대는 길에 떨어진 사금을 어쩌다 주우며 오늘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금맥을 찾아 헤매며 내일의 행복을 쫓는 사는 사람인가? 혹은 이도저도 아니고 다만 이번 홀에서 돈만 따면 되는 사람인가 🙂

삽질의 기록 – 드라이버 장타 (4)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

어제 오랫만에 찾아온 아이와 주말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네가 첫 차를 살때 얼마나 너의 선택을 확신했었던지, 나는 아직도 우리가 함께 앉아서 사인하던 그 순간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후로 아이는 차를 (물론 고물 중고차들) 열번은 더 바꾸고 또 학생때는 아르바이트로 큰 중고차 딜러 회사에서 몇년 일하기도 했었다. 일반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중고차 도매상들과도 상대하고 또 직접 옥션을 현장에서 하기도 하면서. 혹시 들어봤나 옥션하는 영어를, 얼마나 빠르게 말하는지? 이렇게 이제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아이가, 좀 겸연쩍은 표정으로 그 당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면서 ‘아빠는 그때 왜 나를 막지 않았어요?’라고 궁금한 듯 물었다. ‘너의 설익은 확신과 그에 따르는 서두름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나는 짐작 했었지만, 내가 너의 나이일때 원하던 것들을 그렇게 가져본 경우가 별로 없어서 선물인 셈 치고 잠자코 있었다’고 대답하면서, 이야기가 모든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이가 첫 교통 벌과금을 끊겼던 에피소드로 자연스럽게 발전하였다.

지나가는 차량이 전혀없는 한적한 주택가 막힌 골목에서 엄마 아빠의 차를 차고에서 잠시 빼서 친구를 태우고 그 골목을 몇 미터 왔다갔다 하고 있는데, 십년에 한번 올까말까한 경찰차가 하필이면 마침 그때 나타나서 면허를 요구했고 아이는 초보면허 조건을 위반하면서 친구를 태우고 또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던 죄로 엄청나게 큰 벌금을 물게 되었던 것이다. 벌이가 없는 고등학생이었으니 우리가 대신 벌금을 내 주었지만, 내 기억에 아이를 크게 혼내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이가 물론 먼저 ‘아이고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살살 빌었었겠지. 우리는 그 이벤트가 아이에게 돈으로 환산 할수 없는 중요한 인생의 레슨을 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었다. 십년 세월이 흐른후에, 물론 그 중간에도 몇차례 이야기를 했었지만, 아이와 평생 함께 할 안전운전 습관을 위해서, 그 고마운(?) 경찰관과 부모가 아이에게 해주었던 큰 선물이 아니었던가 지금은 우리 모두가 동의한다. 그 경찰관은 숨었다가 벌금을 걷는 이상한 사람은 물론 아니었지만, 아침에 배우자와 크게 다투고 나왔었거나 혹은 업무 첫날이었던 생초보 경찰관이 아니었을까 짐작만 할뿐 🙂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내가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지나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마치 그런 괴로웠던 에피소드가 (손해, 후회, 두려움등) 없이도 어떤 경험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결코 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익이나 얻음에는 반드시 이전에 지불했던 댓가가 있다. 어제 지불한 댓가없이 오늘의 얻음은 (경험 혹은 깨달음) 결코 가능하지 않다.

배움이, 남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유튜브를 통해서 생길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자신이 깊이 엮이지 않은 (deeply involved) 그런 순간적인 간접 경험은 쉽게 왔다가 쉽게 사라진다.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라고 착각하면서 그것으로부터 생각을 더 발전시키면 장차 괴로운 과정을 거쳐 망상에서 깨게 된다. 1960년대 극빈국 한국에서 미국대학에 유학갔던 사람들이 했던 대학 식당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첫째는 학생식당 구석에 있던 ‘누구나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주스기계’를 보면서 마치 천국을 본듯 가치체계에 거대한 혼란이(?) 왔었다는 것이고 (마당에 사과나무가 있던 집에 사과가 익도록 하나도 남아나지 못했던 몹시 가난한 시절이었다. 새가 먹은 것이 아니다), 둘째는 식당에서 거룩한 양식을 드시는 미녀 여학생들 중에서 우연히 눈이 마주치면 함박웃음을 지어주던 사람들 때문에 상사병에 걸려서 혼자서 쑈를 했던 경우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 눈이 마주쳐도 거의 아무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이나 이곳처럼 몇몇 팔자 좋은(?) 나라들에서는 눈이 딱 마주쳤는데 눈길을 피하거나 혹은 째려보면서 지나가면 무언가 잘못되었나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눈이 마주치면 대부분 미소를 짓거나 인사를 하거나 혹은 서로의 안부를 ‘오늘 어때요?’ 가볍게 묻는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미녀 여학생은 그냥 그렇게 미소지었던 것 뿐이었는데 🙂

지금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또 깨달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1960년대 미국 유학간 그 한국 청년의 상사병 수준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가? 아이가 첫차를 사면서 보여주었던 그 확신과는 다르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렇다면 지금 그 확신의 근거는 무었인가 🙂

서론이 길었다. ‘인연을 따라 오는 기회’라는 골프 이야기로 되돌아 가자면, 작년에 한 육개월 탁구를 규칙적으로 연습했었다. 우연히 회사 동료들과 몇차례 치면서 오래 꺼져 있던 불이 재점화 되었던 것이었는데, 아내가 처음 몇주 혼자서 광란하는 것을 보더니 ‘레슨을 받으라’고 강력히 권하였다. 참고로 내 수준은 동네탁구 중상위 정도였다. 어렵게 레슨을 주선해서 몇차례 먼거리를 운전하여 배워 보았다. 이곳에는 거의 100% 세이크핸드이므로 팬홀더를 사용하는 내게는 좀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드라이브등 한두가지 내가 꼭 원하던 기술을 시도해볼 수가 있었다. 물론 일주일에 1시간 배운다고 뭐가 달라질까만. 멀리 운전하는 것이 힘이 들기도 하고 또 무리하게 레슨을 받다가 허리도 아파서 결국은 대여섯번 하고서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히 중고 탁구로봇을 레슨비 내는 대신에 구입하게 되었고 그것이 차고에서 여름내내 내가 드라이브를 집중적으로 연습하여 마스트하는 또 다른 인연으로 발전하였다. 하나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잉태하였던 것이다. 학교때도 안되던 드라이브를 이 나이가 되어서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드라이브 공격으로 아마 지역5부 정도의 수준으로 향상이 된것으로 생각한다. 함께 탁구치던 대부분의 동료들을 격파하였다, 그 드라이브 공격으로. 차차 탁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데, 몇달에 걸쳐 비지땀을 흘리며 했던 루프 드라이브 연습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았던 복근이 생겨난 것을 나중에 골프를 재개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골프 스윙의 동력과 (힘의 원천) 축은 어디인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복근(코어)’ 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탁구가 인연이 되어 우연히 생겨난 복근과 그를 이용하여 좌우로 스윙했던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이, 골프 스윙에 특히 내가 어려워하는 드라이버 스윙에 큰 도움이 됨을 차차 깨닫고 있다. 마치 우리 아이가 댓가를 지불하고 무언가를 얻었던 것처럼, 나도 나름대로는 꽤 댓가를 지불하고 얻게 된 ‘몸으로 증득한 깨달음’이다.

턱걸이는 팔힘으로 하는가? 누가 ‘지금’ 내게 묻는다면 (특히 손을 안쪽으로 돌려잡고 하는 친업의 경우) ‘몸 전체의 근육으로 하는데 복근의 힘이 차지하는 비중이 아마도 팔 근육이 차지하는 비중과 비슷하지 싶다’고 대답하지 싶다. 턱걸이도 복근의 힘을 필요로 한다.

‘골프는 맨탈’이라고 하도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긴 하는데, 골프를 못치는 나같은 사람이 그것을 좀 향상 시키보려고 아무리 찾아도 무었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저 ‘집중력이 중요한데 그것도 체력이 고갈되면 무너진다’ 이 정도가 내게 가장 그럴싸하게 들린 골프 맨탈 이야기였다. 혹시 그대에게 도움이 될까하여 내가 근래에 깨달은, 골프 맨탈은 무었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말하자면 ‘골프를 치면서 그리고 샷하기 직전에 마음속에 걱정되거나 혼란하거나 두려운 생각이 생기는 것을 잘 막아내고 조절하여, 자기가 연습한 만큼의 실력을 몸이 구사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이다. 물론 중년 주말골퍼를 대상으로 하는 이야기.

맨탈이 강해진다고 갑자기 공이 바로 가거나 멀리 가지는 않고 또 스코어가 나아지지도 않는다. 흡사 맨탈이 강하다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대 위에서 뒤로 넘기가 갑자기 가능해지지 않음과 완전히 동일한 이유다. 하지만 우리가 연습한 범위안에서 우리의 현재 신체가 허락하는 한계안에서 자신이 가진 최고 능력의 샷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골프 맨탈의 효과이자 결과다. 어떻게 하면 골프 맨탈이 강해지나? 스윙연습? 체력단련? 도움이 되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지금 치려는 샷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혹은 몸을 방해하지 않을만큼 적어지면) 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냐고? 중년 주말골프에게 가장 현실적인 처방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런 결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욕심을 접는 것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치라는 말은 아니지만, 오비 말뚝이 보이는 홀에서 드라이버를 치려는 순간에, 혹은 2펏으로 끝내고 싶은 어려운 롱펏을 할때,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오비가 나거나 3펏을 해도 괜찮다고 ‘진정’으로 마음을 먹는 순간 몸은 긴장을 의욕으로 바꾸어 ‘지금 내 능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샷’을 허락한다. 진정성 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자신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나 ‘될대로 되라’ 하는 자포자기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니 오해 말고. 그 결과가 오비거나 3펏이면 그것이 나의 지금 골프 능력인 것이다. 억울할 것도 없고 억울할 이유도 없지 않나? 사라진 비싼 새공들이 아까우면 중고공을 사용하고  내말 안듣는 비싼 장비에 마음이 괴로우면 자기 수준에 맞는 장비에 만족하는 것도 골프 맨탈에 관련이 있지 싶다. 생초보와 세계적 수준의 프로가 동일한 장비를 ‘흔히’ 사용하는 스포츠는 아마도 골프가 유일하지 싶은데, 이 괴이한 상황이 (어처구니 없는 자유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면 골프 맨탈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차차 선택을 하게 되지 싶다. 이렇게 골프 맨탈이 차차 나아지면, 이제 골프 맨탈 이야기는 그만 좀 하고서, 그저 스윙도 연습하고 또 체력도 기르면서, 좋은 코치들이 일관되게 말하는 숏게임 연습도 좀 하노라면 ‘몸으로 하는 골프 능력’이 향상 되겠지. 그러면 점수도 좋아지지 않고 어떻게 베기겠나?

말은 쉽지, 하지만 유튜브 보거나 남의 이야기 듣고 읽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교통 벌과금을 물고 그 빚을 갚으려고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좀 뼈에 사무치는 시간이 무르익어야, 섣부른 확신이 불러온 손해를 깨닫게 되는 과정과 후회하는 마음을 되씹는 괴로움이 있고 난 후에야, 수만번의 루프드라이브 연습으로 심신이 좀 변한 다음에야, 그 인연을 따라서 더 나은 무었이 저절로 그리고 참으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해탈 열반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자유로운 영혼들의 나라. 하지만 단결할줄 알고 책임을 지는 성숙한 구성원들의 나라.’라는 원래 제목이 너무 길어서 좀 줄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나라가 한 달간 가택격리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용한 나라인데 이제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적막강산인 느낌이다.

만화에 나올법한 얼굴의 젊은 여자수상이, 한국으로 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나서, 매일 티비에 나와서 국민들에게 직접 상황을 알리고 부탁을 하고 또 필요할 때에는 강경한 어조의 협박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보낸 이 나라에 대한 새로운 면을 보게 된다.

오늘 전기회사에서 이매일이 왔다. 전기료를 4% 인하한다는 통보다. 비즈니스 제스쳐인줄은 알지만 요즘 세상에 내리는 것이 어디 있나? 신선한 충격이다. 물론 나중에 다시 올리겠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서로를 돌봐주고 위해준다는 기분이 든다.

소수의 절대 필요한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온 나라의 모든 일터가 문을 닫았다. 모든 상점들도 문을 닫았고 오직 대형 슈퍼마켓들만 생필품을 팔도록 허락 되었다. 정부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국민들의 봉급을 대신 주고 있는데, 사업주들이 정부에 신청해서 받아다가 원래주는 봉급처럼 계속 직원들에게 지불하는 형식이다. 어제 이곳 최대 슈퍼마켓 브랜드가 정부가 지불하는 ‘대신 내주는 봉급’을 신청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발표내용에 따르면, 이런 비상시국에 자기들만 문을 열게 허락 되는 바람에 평소보다 3배의 매출이 생기고 있으니, 다른지역 (문닫은) 지점들에서 발생하는 직원인건비와 관련된 손해를 정부의 지원없이 회사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하는 자기 (슈퍼마켓) 직원들의 봉급을 최근 인상해준 회사이기도 하다.

보건부장관이, 전국이 가택연금인 시기에 가족을 데리고 근교 바닷가에 잠시 다녀왔다. 그리고 동네 근처 산에 가서 산악자전거를 탔다.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들이다. 이 사람은 아이언맨 출신에 사이클을 선수처럼 타온 사람이라고 한다. 이 두가지 일들이 사람들에 의해서 언론에 고발되자말자, 수상은 보건부장관의 다른 직위들을 즉시 박탈하고 내각순위 꼴지로 좌천했을뿐 아니라, 이 비상시국이 끝나는 즉시 보건부장관직에서 파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계엄령(?) 내용에 집세를 올리지 못하며 (설령 집세를 못내도) 세입자를 쫒아내지 못한다고 못을 밖았다. 전기나 인터넷등을, 설령 사용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가정에도 이 시기에는 끊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뒤로 몰래 쫒아내고 끊을 수가 없는 나라다. 말하는데로 되고 시킨데로 한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정부의 결정과 방향을 압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한다.

이 나라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다. 그런 사회에서 그런 부모들에 의해서 자라났으니 자신들은 깨닫지 못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리고 떠나온 나라가 나라다 보니, 잘 보인다. 평소에는 그야말로 개판처럼 보인다 내눈에는. 한넘 한뇬 각각의 개성과 인권이 존중되어져야 하니 뭐하나 제대로 ‘빨리’ 되는 것이 없어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나라의 다양한 측면들을 경험하고 나니 차차 깨닫게 된다. 자유로운 영혼이 가능하려면 반드시 성숙함과 책임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말해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단결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 어렵다는 것을.

동네 주변을 뛰거나 아내와 산책을 하면서 (서로 2미터 거리를 두고) 오가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며 격려를 해주고 인사를 나눈다. 나는 안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은 만약 누군가가 부당하게 힘으로 어떤 구성원들을 억압하려 든다면, 그들을 자기들 등뒤로 감춰주며 일어나 항거 할것이다. 이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나를 못본척 그냥 내버려 두고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쓰러진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위기의 시간이 인간의 진면목을 나라의 맨낯을 드러내게 한다.

가야금과 고토 – Win Win

어제 코라 이야기를 했더니, 언젠가 보았던 한국 가야금과 일본 고토, 이 비슷한 두개의 전통악기에 관한 어떤 티비 도큐멘터리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가야금과 거문고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인데요, 그때 내가 보고 감동했던 내용은 두 악기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또한 인간의 이야기기 때문에 오래 기억이 나요.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어떻게 될까 이런 종류의 상상을 하고 또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으니, 가야금과 고토를 비교하면 어떤 악기가 더 우수한가 이런 것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우리가 ‘politically correct’하자고 ‘세상 모든 문화는 다를뿐이지 우열은 없다’ 이렇게 겉으로 말은 하지만, 속으로는 다만 다른 것이 아니라 더 낫고 못한 우열이 있다고 흔히 생각하는 것이 솔찍한 심정이지 싶네요.

예를 들자면 나도 한국의 음식과 다른 아시아권 혹은 서구권 음식을 비교하면서 은근한 자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옛날에 어떤 사람들이 ‘우리는 동남아시아 음식을 좋아한다’ 이런 말을 했을때, 나는 속으로 ‘그들이 음식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들이 (한국음식과 비교하면) 도대체 무었이 있는가’ 이따위로 생각을 했었다니까요 🙂 다른 방면에서도 그렇지만 음식을 통해서 보아도 한국인의 뛰어남이 음식에 그대로 베어 있다고 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동시에 그 음식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혹은 개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음식에는 한국인의 번뜩이는 총명함과 재주가 베어있음과 동시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광범위하게 다량으로 사용하지 않는, 강한 맛을 내는 향신료들을 자주 또 많이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것 우연도 아니고 또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있지 싶네요.

좀 옆길로 셋는데요. 다시 가야금과 고토 그리고 win win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한국 최고 가야금 명인중의 한분이 일본에 갔어요. 그리고 일본 고토 최고 연주자와 함께 연주를 하고 또 대화를 하면서 가야금과 고토에 대해서 서로 배우고 또 좀 비교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두분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또 연세도 좀 있었던 것 같네요. 서로의 연주를 존경하며 예술가의 태도로 감상하고서 거의 마지막에 일본 고토의 명인이 말씀하세요 ‘나는 고토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또 고토를 위해서 일생을 바쳐왔어요. 오늘 한국의 가야금을 알게 되고 또 그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니, 나는 한국의 가야금이 (낼 수 있는 소리와 기교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의 광범위성등을 고려할때) 일본의 고토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악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뜻이었다고 나는 기억합니다. 이렇게 도큐멘터리는 끝이 났어요. 나는 악기 비교 연주도 감동적이었고 또 가야금을 연주했던 한국의 명인도 훌륭하셨지만, 자신의 솔찍한 감동을 밝힌 일본의 고토명인에 대해서 오래 생각하게 되었어요.

세월이 지나서 내가 깨닫게 된 것은, 가야금이 더 나으냐 고토가 더 성능이 좋으냐 이런 이야기도 세상을 살면서 필요는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면서 정말 더 필요한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야금이나 고토를 가지고, 무었을 배워서 어떤 연주를 하며 어떻게 사는가가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궁극적으로는, 어떤 장비 얼마나 좋은 무었을 ‘가지고’ 있는가가 인간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간접적이지만 강력한 교훈을 나는 그 분을 통해서 배웠어요.

그 고토의 명인은, 그의 솔찍하고 훌륭한 태도로 말미암아 결국은 가야금도 훌륭하고 또 고토도 훌륭하구나 이렇게 사람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게 하는, 소위 말하는 win win을 만들어 내신 것이지요. ‘사자가 세냐 호랑이가 세냐’ 혹은 ‘재주 좋은 한국 음식이 무조건 튀기고 보는 짱게 음식보다 더 나으냐’ 하는 그런 수준보다 한두단계 위로 올라가신 것이지요. 그것이 정말 이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는 결코 이기려는 생각으로 그런 말을 일부러 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상대방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위로 올려주고 또 자신도 더불어서 한두단계 위로 자연스럽게 올라간 것이지요. 이것 참 고수들이 만드는 win win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눈치 채셨나요? 일부러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에 바람을 잡았던 것은 아니지만 관련이 있으니 하고 싶네요. 일본을 이기고 싶지요? 일본에게 존경받고 또 최소한 대등한 관계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지요? 그러려면 시장에서 다투는 잡상인들처럼, 우악스럽고 큰소리로 어거지를 써서 상대방의 입을 막고 내가 원하는 것을 힘으로 빼앗아 보려는 시도를 중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를 인정해야 해요. 서로가 상대방을 성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또한 상대가 여태껏 내게 했던 것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순진한 이야기라고요? 교활한 상대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가는 당장 잡아먹힌다고요? 오십년전 백년전보다 세상은 훨씬 더 발전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힘도 엄청나게 세졌어요. 누가 가야금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니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상대방과 발전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지 싶어요. 내가 인정받고 존중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세상 어디에도, 특히 상대가 나보다 힘이 더 센 경우에는, 내가 ‘힘으로’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는 결코 없어요. 언젠가 블로그에서 말했듯이 영어권에서는 ‘you earn respect’입니다. 인정과 존경은 ‘내가 무었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서 상대방에게 자연스럽게 생기는 감정’입니다. 어떤 힘으로도 그리고 아무리 악을 쓰고 발광을 해도 상대가 나를 참으로 인정하고 존중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외교란 ‘잘 치장된 방에서 잘 차려 입은 신사들이 매너있는 말을 나누고 있을때, 옆 방문을 슬그머니 열어서 그곳에 앉아 있는 사나운 불독개를 슬쩍 보여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이렇게 싸워야 합니다. 당장 잘 차려 입은 신사에게 욕을 하고 구정물을 끼얹으면 속은 시원하겠지만, 나중에 정말로 그넘의 불독에게 물려서 크게 다쳐요. 이것 알아채고, 상대방 불독이 지금은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좀 조심해서 상대하면서, 우리도 불독을 기르고 또 살살 달래서 우리 불독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꾸 상대를 해야 결국은 균형이 잡히게 되지 않겠어요?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커다란 불독으로 상대방이 우리에게 나쁜짓을 하지 못하게 막으면서도, 서로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오가며 좀 국민들끼리 평화롭게 사는 것이 모두가 바라는 것 아닌가 싶네요. 그곳에도 좀 미친넘이 있고 그넘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더 미친넘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의 이익을 함께 쫓는 꼴을 보면 우리는 불안하기도 하고 또 불쾌해요. 하지만 누구나 또 어떤 나라나 자기 능력껏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나무랠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길게 보면 이런 미친넘들은 그런 선진국 이런 현대사회에서 오래가는 주된 세력이 될 수는 없어요. 마치 우리나라에서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실제적인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세상은 돌아가는 어떤 방향과 수준이 있고 얼마 이상은 뒤로 혹은 아래로 되돌아 가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해요.

상대방까지 우리 가야금이 더 좋다는데도 우리가 너무 자신감 없이 행동해 온 것은 혹시 아닌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도 우리의 가야금에 대한 참된 자심감과 믿음을 스스로가 가질 수가 있을지 그래서 장차 우리도 일본의 고토가 매우 훌륭하다고 짐심으로 칭찬해 줄 그런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 해야 되지 싶어요.

가야금을 연주하는 우리가 차차 고토를 연주하는 이웃과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로 서로의 음악을 평화롭고 진심으로 즐기게 되길 바래요. 인생은 싸우고 다투다가 가기에는 아깝고 또 한번 뿐이잖아요? 아이에게 늘 말해요 ‘자유롭게 살거라’ 물론 내가 저질렀던 과거사가 찔려서 또 내가 만들었던 카르마가 무서워서 하는 말인 것도 맞아요. 그래도 아이는 ‘응 아빠 알았어’ 합니다. 무심하고 진심인것 같아요. 그러면 되지 않나요? 우리 이렇게 좀 살아요 🙂

멋진 고토연주 그리고 이 아름다운 연주자가 고토에 맞춰서 부르는 우리의 아리랑을 함께 들어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