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젊었을때 이민 가야한다. 군대도 다녀오고 사회생활도 좀 해보고 또 가능하면 마음이 맞는 짝도 찾고 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이 제일 좋고 30대 후반이 커트라인이다. 40넘으면 특출한 경험이나 (예를들어, 이민 대상국에서 과거 수년간 거주하여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등, 하지만 1-2년 워킹홀리데이나 혹은 유학경험 등은 별 소용 없음) 어느나라에서나 즉시 확실히 통하는 기술등이 (예를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미용기술등, 하지만 학원에서 배워 자격증만 딴 수준으로는 안되고, 실무에서 기른 실력과 확실한 실전경험이 필요) 있지 않는한 무리다.
둘째로, 즉시 사용 가능한 어떤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체력이 아주 좋아서 한 몇년 힘든 노동도 끄떡없다든가, 이민 대상국에서도 필요하고 널리 쓰이는 기술을 한국 현업에서 실제로 사용한 실력과 경험이라던가, 아주 사회성과 세일즈 기술이 뛰어나서 말이 안통하는 에스키모에게도 손짓발짓으로 냉장고를 팔아먹을 능력이 있다던가등. 이것이 먼저고 영어는 두번째다 (영어권으로 이민 온다면). 현지에서는 거지들도 아기들로 모두 다 하는 것이 영어니, 단지 영어만 잘 한다고 그것만으로는 소용 없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 다른 한국사람들 상대로 구질구질한 짓이나 하며 돈벌이 하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셋째로, 먼저 이민 온 한국인들을 피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접근을 바라거나 당신에게 접근하는 해외거주 한국인들은 (혹은 한국인 단체들은) 그들의 목적이 있다. 당신의 돈을 원하거나, 당신이 그들의 단체에 속하기를 원하는거나 혹은 둘 다를 원하는 것이다. 이민 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 상식적으로 볼때, 이민와서 잘 정착해서 정상적으로 사는 한국사람들은 당신을 위해 신경 쓸 시간도 또 이유도 없다. 그리고 이민오니 왠지 이상하게 경건한 마음이 들며 정말 종교를 필요로하거든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 가라. 신은 그곳에도 당연히 계시고 또 신심깊은 현지인들로부터 이모저모로 도움을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굳이 한국인들과 종교를 통한 교류를 원하거던, 일단 몇 년을 잘 정착하고나서 후에 만나도 전혀 늦지 않다. 그때는 당신도 현지 사정을 알만큼 알고, 상대도 당신이 초보 이민이 아니라는 것을 아니 문제 없을 것이다. 이민 온 나라에서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말이 잘 통하지 않더라도 현지인들에게 받는 것이 좋다. 말이 안통하니 (어떤 현지인들은) 위험하거나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말이 너무 잘 통하는 (어떤) 한국인들도 위험하고 또 도움이 안되긴 마찬가지다. 쌀독에서 인심난다고, 가능하면 무난하게 잘 사는 현지인들과 엮이는 것이, 도토리키재기 수준인 다른 한국인 이민들과 엮이는 것보다 낫다.
넷째로, 무었이건 ‘최초’는 위험하지만 ‘선두그룹’에는 속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경우가 많다. 다시말해, 이미 한국인들이 잔뜩 이민와 있는 도시는 피하는 것이 좋지만 동시에 한국인들이 거의 아무도 정착한 적이 없는 곳도 피하는 것이 좋다. 당신이 정착하려는 도시가 평판이 나쁘지 않으며 어느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 완전 깡촌이나, 극한의 추위등의 이유로 현지인은 물론 타국에서 이민온 사람들도 거의 오지 않는 그런 괴이한 곳들은 피하라. 기후를 우습게 여기지 마라. 기후에 혼나서 정착 못하거나 한국으로 귀국하는 사람들 꽤 있다. 괴이한 선택을 하는 ‘용기있는’ 사람들 가끔 봤지만 결국은 포기하더라. 아무도 안할때는 이유가 있는 법이고, 그렇다고 한국인들이 이미 너무 많은 곳이면 당신 자신에게 불리하다. 이민이 전혀 없는 도시나 지역에서는 현지인들이 도대체 이방인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당신이 괴상한 대접을 받거나 불리할 가능성도 있으나, 한국인을 포함한 이민자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있는 곳에서는, 당신도 소수라고 다수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가능성이 (반대로 고약한 대접을 받을 가능성보다) 더 높다. 겁나고 두렵다고 다른 한국인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면 그 당시에는 안심도 되고 편할지 모르지만 현지인들이 좋은 눈으로 안봐주고 (그런 맨탈리티의) 당신도 좋은 대접 못받는다. 반대로, 혼자서 스스로 이것저것 해보려고 노력하다보면 현지인들이 좋은 마음으로 대해주고 예외적으로 (소수라고 좋은 쪽으로) 대접도 해주고 또 도움을 주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로, 배우자 혹은 짝을 잘 골라서 와야한다. 물론 운이 많이 따르는 일이지만. 배우자가 저질체력으로 몇년이 지나도 현지 기후에 적응을 못하고 골골거리면 두 사람 모두 심신이 점점 탈나고 지쳐서 결국은 정착에 실패한다. 또 배우자의 정신상태가 좀 모자라는 경우(?) 예를들어 해바라기처럼 당신만 바라보며 당신이 다 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라면 당신 어깨가 너무 무거워 뛰거나 날기는 커녕 결국 둘 다 주저 앉게 된다. 아주 싸가지가 없는 짝인데 무슨 최첨단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구사 능력이 있다면 저질체력이거나 정신상태가 좀 이상해도, 혹은 둘 다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시작은 해 볼 가능성이 있기는 한데, 장기전으로 가면 좋은 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부부와 가족 오래 못가더라. 뭐니뭐니해도 ‘성숙한 인간’이 (어느 정도라도) 잘 살고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동서고금의 변함없는 진리다. 단기적으로 보면 예외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또 겉보기에는 성공한 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사는 진짜 내막은 밖에서는 잘 모르는 법이다. 인생의 승부는 길고 정확하다. 마라톤 처럼.
여섯째, 젊음이 주는 용기, 마음이 맞고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짝 그리고 어느 수준의 머리와 능력이 있다면, 돈을 얼마나 가지고 이민을 오는가, 지금 영어를 얼마나 잘하는가 하는 것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가지고 있는 돈과 영어실력이 주는 부작용을 피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이민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가진 사람들이 쑥쑥 줄어드는 정착자금 헤아리며 스트레스 받고, 알량한 영어로 다른 한국인들 상대로 돈벌이 하려고 잔머리 굴릴때, 가진 것도 잃을 것 없는 당신은 저절로 배수진을 치게 되니 죽지 않으면 당연히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다.
일곱째, 좀 세계화된 혹은 탈한국화된 발상과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생각하고 사는 방식 그리고 일상의 습관들이 너무나 토종 한국인이면 (다시말해 토종 한국인이 무었인가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자신을 제3자의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바라볼 줄 모르는 사람이면) 이민와서 편히 살기가 좀 힘들고 또 이런저런 문제와 제약에 부딪히게 되니, 정착해서 오래 잘 살 가능성은 좀 낮다. 김치 짜장면도 잘 먹긴 하지만 그것들 없이도 한두달쯤은 끄떡 없으면 좋고, 비록 한국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았지만, 좀 열린 마음으로 다른 나라 다른 세상에서 사는 방식에 관심도 가지고 또 새롭고 좋은 것들을 배우려는 자세도 있고 그런 사람이 이민에 훨씬 유리하다. 도둑질을 해도, 새벽잠이 너무 많은데다가 담도 잘 못넘고 무거운 것도 잘 못들고 (체력등 물리적 조건 나쁨) 마음은 약해서 죄책감은 많고 (정신상태나 태도 부적절) 또 도둑질한 물건 나누는데 파트너와 맨날 싸우고 (사회성부족, 타인들로부터 존중 / 존경 받을 줄 아는 기술 부족) 그러면 도둑질 오래 못하고 잘 하지도 못한다. 천성이 도둑질에 특화된 넘처럼 언행하는 자연스러운 넘이 도둑질 오래하고 잘 하듯이 이민도 좀 그런면이 있다.
여덟째, earn respect 할 줄 하는 사람이면 참 좋다. 말이 좀 안통해도, 먹는 것이 좀 냄새를 풍겨도, 입고 사는 모습이 좀 특이해도, 사고방식이 좀 현지인들과 달라도, 자기가 속한 곳에서 자기가 하는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나 상사로부터 ‘존중 / 존경을 얻어낼 줄 알아야 한다’ 다시말해 ‘earn respect’ 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이 가진 근본적인 가치나 판단은 한국이나 당신이 이민을 가고자하는 (영어권) 선진국들이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선진국이 된데는 공통적인 비슷한 이유가 있다. 현지 동료나 상사들은, 당신의 언어를 넘어서, 당신이 온 몸으로 오래 보여주는 당신의 가치와 판단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려지고 속일 수 없다. 여기서 그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할 지가 결정된다. 물론 당신이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동료나 상사들이 뭐라건 어떤 생각을 하건 당분간 회사를 다닐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니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울리는 방법이나 수준은 비록 한국과 다를지라도. 또 영어권 문화에서는 ‘사람들의 운동능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그렇다고 당신이 육체미를 하라든가 보디 프로파일 찍어서 보여주는 그런 괴이한 짓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며 스스로를 보살피는가를, 사람들이 당신의 운동능력을 통해서 엿본다는 말이다. 신체가 보통이고 또 운동을 아주 뛰어나게 잘하지는 못해도 이벤트등에 참여하고 규칙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을 사람들이 보면 존중하고 좋게 본다. 이것은 한국에서는 잘 모르는 영어권 정서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이글 읽어보고 어떤 사람들은 없던 용기를 내게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기분도 나쁘고 낙심도 되었을지 모르겠다. 무었인가의 이유로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을,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난 다음에 잘 되씹어보면, 안된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때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지금 내 삶에 훨씬 큰 이익이 되었다 그런 경우도 꽤 있지 않은가? 어쨋든 이 글이 이민을 꿈꾸거나 상상하는 당신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기를 바란다.
진짜 실력 가짜 실력
오래전 중국출신 컴퓨터 넷트웤 기술자와 잠시 일했던 적이 있었어요. 시드니 본사에서 어쩌다 출장을 이곳으로 오면 함께 짱께 식당에도 가서 밥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곤 했었어요. 동료들 대부분이 유러피언인 상황에서 아마도 서로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좀 편안한 마음이 생겼던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람이 했던 말 중에서 지금도 어떤 상황이나 컨텍스트에서 기억나는 말이 있는데요 ‘이 사람들은 (유러피언 백인들을 지칭) 유드리가 없어. 새로운 무슨 일이나 평소에는 안생기던 일이 벌어지면, 내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단순한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회의를 하고 난리를 치는데 그 시간이면 난 다 끝냈겠다’ 이런 의미였다고 기억해요. 그 당시에는 나도 아마 동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수십년 중국은 (그리고 한국도 어쩌면 아직) 격동과 발전의 시기를 겪고 있어요. ‘이전에 이렇게 했었다’는 선례가 거의 없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니 그저 일상이 새로운 것 천지요 소위 ad-hoc 상황이 보편적이지 않겠어요? 땜빵질이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개인의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해서 즉시 고안해 내는 해결책들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어쩌면 ‘기대된 보통’ 상황인 나라에서 이 사람과 나는 성장했었고 또 이민을 왔었던 것이에요.
입장을 바꾸어 말하면, 이나라 사람들에게는 정말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며 원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 중국인 기술자는 전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아가 그런 상황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역량에 (보다 촛점을 맞추면서)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세상이 참 다르지요?
옛날 나와 늘 함께 라운드를 했었던 친구 노(老)골퍼가 한번은 이븐파를 칠때 내가 좀 라운드 내용을 기록해 둔 것이 있어요. 요즘도 가끔 꺼내서 읽어 보는데요 그 기록에 따르면 그날 브루스는 아무런 기적의 샷이나 마술 묘기 샷을 치지 않았어요. 거의 모든 드라이버 샷이 페어웨이에 길지는 않아도 무난히 떨어졌었고 2온 2펏을 대부분 성공시켰던 것으로 적혀 있어요. 그야말로 시시한 골프, 이전 홀과 다음 홀의 내용이 별반 다를바가 없는 boring한 골프를 쳤던 결과가 이븐파였어요.
기대하지 않거나 원치 않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던 것이, 다시 말해 직전의 샷이 훌륭했던 결과로 현재의 샷이 쉽고 또 다음의 샷도 또한 훌륭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그런 샷들을 연속적으로 쳤던 것이, 그 최고 라운드의 이유였던 것이지요. 수많은 괜찮은 아마추어 골퍼들과 라운드를 하면서 (내게는) 마치 기적과 같은 샷들을 치던 사람들도 가끔씩 보았어요. 입을 다물수 없이 멀리가던 드라이버 샷, 마술과 같은 트러블 샷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좋은 스코어 카드를 내는 것은 드물게 보았어요. 또 좋은 골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도 별로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네요. 기적의 샷은 아주 잘못된 직전 샷이 원인입니다. 설령 성공시켜도 엄청난 심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또한 마음도 알게 모르게 흐트러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좀 이야기가 새는대요, 한번은 친구 노골퍼가 클럽 챔피언쉽 결승에 나갔어요. 내가 캐디를 9홀 했어요 (나머지 9홀은 아들이) 그때 10대 후반의 젊은이가 결국은 우승을 했었는데요, 이 젊은이는 이후 프로골퍼가 되어 이 나라에서는 유명한 선수랍니다. 이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는 지금 내가 속한 클럽의 명예회원이기도 한데요, 일전에 라운드 기록을 우연히 보니 블랙티에서 6언더파를 쳤네요. 블랙티는 나 같은 보통골퍼들이 치는 화이트티와 50-100미터 더 뒤로 물러나 있어서 한번 서보면 페어웨이가 까맣게 멀어보이며 마치 다른 골프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코스를 잘 알기에 이런 곳에서 거의 모든 홀을 파 하면서 수없는 버디나 이글을 잡아내는 이 젊은이는 (내겐) 마치 외계인 같아요. 그런데 세상이 참 다르기도 하지만 또 넓기도 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골프를 치는 이 젊은이도 PGA문턱은 커녕 명함도 한번 내밀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이야기가 좀 더 새는대요, 년전에 우리 클럽에 십여명의 중국인 골퍼들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 한꺼번에 회원이 되었어요. 다른 클럽에서 집단 이주한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회원들과 전혀 어울려 라운드를 하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한국사람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지요?) 위에서 말한 블랙티나 블루티에서 라운드를 한답니다. 하도 많은 클럽회원들이 늑장플레이를 한다고 불평을 하고 진정을 해서, 클럽에서도 그러지 말고 실력에 맞는 보통 화이트티에서 치라고 강하게 말했다고 해요. 그래도 ‘내돈 내고 내가 치는데 네가 왜?’ 하면서 말짱 무시하고 여전히 블랙티에서 칩니다. 중국인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또 어디서 무슨짓을 해도 중국인 임을 드러냅니다. 부끄러움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당함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이 중국인들에게만 있는 어떤 민족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 혹은 사회발전의 어떤 단계에서 흔히 보여지는 보편적인 것일까요 🙂
다시 되돌아 옵니다. 진짜 실력은 잘 보이지 않아요. 화려함도 없고 우리가 상상하는 마법과 같은 드러난 묘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 뵹신으로 평가절하 취급 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뵹신들에게서요. 가짜 실력은 화려합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간 앞에 장사 없으니’ 오랜 시간이라는 자를 딱 대고서 보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본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함을 쫓기도 하지만 또 기억력이 별로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잘 기억을 못하거나 무언가 잘못된 것을 보아도 예외인가? 실수인가? 이렇게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 보여요. 난 머리는 나빠도 기억력은 아주 좋은 편에 속해요. 그래서 내 눈엔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전모와 실체가. 그러니 어찌 내가 가짜 실력을 쫓을 수가 있겠어요 🙂
난 유튜브나 매스컴에 나와서 ‘이래라 저래라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듣지도 또 믿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붓다께서도 그러셨듯이, 정말 알고 나면 정말 실력을 쌓고 나면 정말 위로 올라가고 나면, 자신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다 저렇다 이래라 저래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지 싶어요. 참된 실력은 고요하니 잘 드러나지 않으며, 정말 잘 사는 사람들 또한 고요하니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글 따위는 쓰지 않아요 🙂
나는 예선 탈락인데요. 그대는 고요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나서고 내세우며 시끄러운 것을 일종의 성공이며 우월함이라고 생각하는 ‘당당한’ 사람인가요?
성공했던 넘들의 실패, 실패했던 뇬들의 성공
중년이 되면 수많은 것들이 평준화 된다.
물론 아직도 지갑, 계급장, 가방끈 (그리고 간혹 어디서 줏은 얼빠진 젊은뇬) 같은 것들을 손에서 놓지 않고 꿰차고 있긴 하겠지만, 머리가 있고 그나마 정신이 비교적 온전한 넘들은 내심 안다. 남들 보라고 꿰차고 있는 것이지 제 자신의 삶에는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고 사실상 별 볼일도 더이상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그런데 지난 수십년, 청춘을 바쳐 이런 것들을 주변보다 더 쫒고 더 모으고 더 자랑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넘들에게서 ‘알고 보니 별것 아니더라’는 말이 입밖에 나온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삶 전부를 부정하라는 것처럼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그러니 주변의 비슷한 연배의 좀 부족한 넘들에게나 또 아직도 철이 안들어 정신없이 따라하는 어린넘들에게, 제가 마치 무언가 대단한 것이나 가지고 있는듯 꾸미는 맛이라도 보면서 살려고 하지 않겠어?
일본이 얼마나 엄청난 나라인줄 모르는 한국사람들이 많지 싶다. 빌 게이츠가 얼마나 훌륭하고 노력하는 인간인줄 모르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지 않을까 싶다. 일본어나 영어를 통해서 그 소스를 직접 접하고 스스로 해석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한국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 지나치게 영향을 주고받는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무었인지, 그 속에서 나고 살다 죽는 그대는 깨달을 도리가 없다. 좀 잘난척 했다. 미안하다.
빌 게이츠가 이혼을 발표했을때, 어떤 미국 신문에 났던 기사처럼, 나도 똑같이 ‘그 마저 실패하면 우리는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런 생각이 먼저 들며 놀라고 또 실망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깨닫게 된다. 이 훌륭한 인간이 부인과 백년해로 했다면, 나도 또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크게 배우고 깨닫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람의 이혼을 통해서 나도 또 다른 수없이 많은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게 크게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빌 게이츠도 젊었던 시절, 년전에 죽은 한국 S그룹 회장처럼, 여자문제도 있었을 것이고 또 사업상 법과 도덕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나쁜짓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철들어서는 자기자신과 타인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 훌륭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신이 사업상 나쁜짓을 해서 끼친 해악을 몇배 갚고도 남을 자선과 봉사를 (돈다발을 툭 던져주는 수준이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을 바쳐 수많은 인류에게 배풀었다.
그 죽은 S그룹 회장이 훌륭히 꾸며진 비싼 집에, 머리 좋고 기민한 비서들을 통해 창녀들을 불러들일때, 이 사람은 빌 게이츠 독서 목록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참조하는) 유명한 책 리스트들을 발표했었다. 이 사람이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또 좋은 책들을 통해서 배우고 (자신의) 인간적인 성장과 성숙을 노력했었던지 나는 안다. 그래서 (이런 내막을 아는 미국사람들이) ‘빌 게이츠가 실패하면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탄식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돈이 많은데 (아무 걱정이 없을텐데) 왜 이혼해요?’ 이런 수준이 아니다. 만약 당신 뇌에 이런 생각이 먼저 스쳐지나갔다면 당신은 다만 일본이 얼마나 엄청난 나라인지만 모르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건 또 가지게 되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긴 어렵지 싶다. (일정 수준을 지나면) 부유함이란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금전적인 측면을 포함한 삶의 전반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와 큰 관련이 있으며 나아가 그 자유로움을 바탕으로 무슨 생각으로 무었을 하면서 사는가와 훨씬 더 큰 관련이 있다.
그 죽은 S그룹의 회장 부인은 남편이 나으라고 어떤 절을 찾아서 불사를 (종교행사) 돈을 많이 들여서 했다고 신문에 났었다. 예술적이고 세련된 티 내는 그 여자가 병들어 누워있는 그 부자 남편을 인간 대 인간으로 존경했었을까? 보이와 걸로 (boy and girl) 사랑했었을까? 홀로 병실에 앉아 사랑의 손길로 그의 머리칼을 매만져주며 측은한 마음으로 똥싼 기저귀를 한번이라도 제 손으로 갈아 주었을까? 나는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짐작할 수가 있다. 인간들이 오랜 세월 살아온 족적은 마치 그 인간의 체취처럼 꾸밀수도 감출수도 또 피할수도 없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은, 내가 보기에, 스스로에게선 인간적인 성숙을, 서로에게선 인간 대 인간의 존경과 (boy and girl 사이의) 친밀감을 끝없이 추구했었을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돈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이고, 빌 게이츠가 인류 역사상 가장 확실히 증명했듯이, 어떤 돈이나 권력 가방끈 기타 무었으로도 절대 구입하거나 강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오직 인간의 성숙함, 자각, 오래된 좋은 관계, 무르익은 사랑, 쌓아 올린 존경과 존중, 진심을 통한 깊이 있는 이해… 이런것들만 관련이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삶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마치 시간이나 중력처럼, 돈으로 살수 없고 권력으로 강제할수 없고 학벌 미모 그 무었으로도 억지로 얻을수 없다. 철이 든다는 것은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가치들이 무었인지 깨달아 가는 과정이며, 그 깨달은 바를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를 겪으며 하루하루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빌 게이츠와 그의 부인도, 나도 또 나의 아내도 이런면에서는 완전히 동일하며, 여기에서 예외인 인간은 결코 없다.
내가 회사 점심시간에 근처 산을 달리고 온 뒤에 체육관 탈의실에서, 나보다 덩치도 좌쥐도 2배는 큰 넘들 사이에서 작은 방울을 딸랑거리며 나체로 꺼리낌없이 돌아다니는 것은, 지나친 운동으로 순간적으로 과잉 발생된 호르몬의 영향이겠지만, 세상에서 성공한 그 어떤 인간을 내가 대면할 때도, 인간 대 인간으로 기죽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인간 내면을 보며 인간 삶의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대다수 성공한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극소수의 정말 똑똑한 사람들은 (?) 나를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
삶의 진리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혹시 들어봤어요? 나는 펜인데요, 오랜 세월 하도 즉문즉설을 많이 보고 또 그분의 책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질문만 딱봐도 해답이 저절로 줄줄 나와요. 그리고 모범답안을 들어보면 내가 미리 낸 해답이 대부분 맞아요 🙂 그래서 그런지 요샌 좀 재미가 (?) 덜해서 별로 안보게 되네요.
우연히 보니 오늘 질문 제목이 ‘아이가 고집이 센대요 사랑으로 대해야 하나요 아니면 엄하게 대해서 고쳐줘야 하나요’ 이런 것이었어요. 아! 해답을 모르는 문제가 오랫만에 등장했네요. 아주 짧은 동영상인데요 모범답안이 궁금하기도 하고 혹시 이 양반이 무슨 황당무계한 (내가 느끼기에 그런적도 있었어요)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마음에 봤어요.
사랑으로 대해줘야 하나 엄하게 고쳐줘야 하나 그런 생각일랑 하지말고, 사랑스러운 내자식이 고집을 피울때 ‘아! 이 아이의 고집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로구나. 어른인 내가 이런 언행을 했을때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딱하고 가관이었겠나’ 스스로 돌이켜 깨달으며, 아이에게 빙그레 미소 지을수 있으면 된다 이런 맥락의 대답을 했어요. 그리고 덧붙여 ‘엄마가 그렇게 미소 지을만한 수준이 되면 아이도 엄마를 따라서 저절로 변화하게 된다’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여태껏 보고 듣고 배운, 그 어떤 박사 도사 노벨상 무슨상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훌륭한, 삶의 진리를 단 몇마디로 함축한, 참으로 대단한 가르침이라는 생각에 고개숙이며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또 그것을 지속하고 반복하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나는 조금은 이해가 되요. 하지만 동시에, 그렇게 빙그레 미소 지으면서 ‘내 수준의 해탈 열반’에 이른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 인생에 더 이상 뭐가 있겠어요 🙂
늙지 않는 비결?
‘설렘’ 혹은 ‘설레임’이 이어지는 삶은 늙지 않는다. 그 설레임의 대상이 무었일지는 그대가 여태껏 살아온 삶이 결정하긴 하겠지만… 어쨌던 그대에게 설렘 있으라!
‘성장하고 있는 것들은 늙지 않는다.’ 성장이 멈추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것이 뭐랬더라? 역시 그 성장의 대상은 한순간 정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하튼 우리에게 성장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