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중국출신 컴퓨터 넷트웤 기술자와 잠시 일했던 적이 있었어요. 시드니 본사에서 어쩌다 출장을 이곳으로 오면 함께 짱께 식당에도 가서 밥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곤 했었어요. 동료들 대부분이 유러피언인 상황에서 아마도 서로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좀 편안한 마음이 생겼던지도 모르겠네요.
이 사람이 했던 말 중에서 지금도 어떤 상황이나 컨텍스트에서 기억나는 말이 있는데요 ‘이 사람들은 (유러피언 백인들을 지칭) 유드리가 없어. 새로운 무슨 일이나 평소에는 안생기던 일이 벌어지면, 내가 보기에는 별것 아닌 단순한 것들을 가지고 그렇게 회의를 하고 난리를 치는데 그 시간이면 난 다 끝냈겠다’ 이런 의미였다고 기억해요. 그 당시에는 나도 아마 동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수십년 중국은 (그리고 한국도 어쩌면 아직) 격동과 발전의 시기를 겪고 있어요. ‘이전에 이렇게 했었다’는 선례가 거의 없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니 그저 일상이 새로운 것 천지요 소위 ad-hoc 상황이 보편적이지 않겠어요? 땜빵질이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개인의 순발력과 재치를 발휘해서 즉시 고안해 내는 해결책들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어쩌면 ‘기대된 보통’ 상황인 나라에서 이 사람과 나는 성장했었고 또 이민을 왔었던 것이에요.
입장을 바꾸어 말하면, 이나라 사람들에게는 정말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며 원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그 중국인 기술자는 전혀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아가 그런 상황에서 발휘되는 개인의 역량에 (보다 촛점을 맞추면서) 오히려 자랑스러워 했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어요. 세상이 참 다르지요?
옛날 나와 늘 함께 라운드를 했었던 친구 노(老)골퍼가 한번은 이븐파를 칠때 내가 좀 라운드 내용을 기록해 둔 것이 있어요. 요즘도 가끔 꺼내서 읽어 보는데요 그 기록에 따르면 그날 브루스는 아무런 기적의 샷이나 마술 묘기 샷을 치지 않았어요. 거의 모든 드라이버 샷이 페어웨이에 길지는 않아도 무난히 떨어졌었고 2온 2펏을 대부분 성공시켰던 것으로 적혀 있어요. 그야말로 시시한 골프, 이전 홀과 다음 홀의 내용이 별반 다를바가 없는 boring한 골프를 쳤던 결과가 이븐파였어요.
기대하지 않거나 원치 않는 상황을 애초에 만들지 않았던 것이, 다시 말해 직전의 샷이 훌륭했던 결과로 현재의 샷이 쉽고 또 다음의 샷도 또한 훌륭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그런 샷들을 연속적으로 쳤던 것이, 그 최고 라운드의 이유였던 것이지요. 수많은 괜찮은 아마추어 골퍼들과 라운드를 하면서 (내게는) 마치 기적과 같은 샷들을 치던 사람들도 가끔씩 보았어요. 입을 다물수 없이 멀리가던 드라이버 샷, 마술과 같은 트러블 샷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좋은 스코어 카드를 내는 것은 드물게 보았어요. 또 좋은 골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모습도 별로 많이 보지 못했던 것 같네요. 기적의 샷은 아주 잘못된 직전 샷이 원인입니다. 설령 성공시켜도 엄청난 심신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또한 마음도 알게 모르게 흐트러지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좀 이야기가 새는대요, 한번은 친구 노골퍼가 클럽 챔피언쉽 결승에 나갔어요. 내가 캐디를 9홀 했어요 (나머지 9홀은 아들이) 그때 10대 후반의 젊은이가 결국은 우승을 했었는데요, 이 젊은이는 이후 프로골퍼가 되어 이 나라에서는 유명한 선수랍니다. 이 이십대 중반의 젊은이는 지금 내가 속한 클럽의 명예회원이기도 한데요, 일전에 라운드 기록을 우연히 보니 블랙티에서 6언더파를 쳤네요. 블랙티는 나 같은 보통골퍼들이 치는 화이트티와 50-100미터 더 뒤로 물러나 있어서 한번 서보면 페어웨이가 까맣게 멀어보이며 마치 다른 골프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코스를 잘 알기에 이런 곳에서 거의 모든 홀을 파 하면서 수없는 버디나 이글을 잡아내는 이 젊은이는 (내겐) 마치 외계인 같아요. 그런데 세상이 참 다르기도 하지만 또 넓기도 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골프를 치는 이 젊은이도 PGA문턱은 커녕 명함도 한번 내밀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이야기가 좀 더 새는대요, 년전에 우리 클럽에 십여명의 중국인 골퍼들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 한꺼번에 회원이 되었어요. 다른 클럽에서 집단 이주한 경우입니다. 이 사람들은 다른 회원들과 전혀 어울려 라운드를 하지 않음은 물론이려니와 (한국사람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지요?) 위에서 말한 블랙티나 블루티에서 라운드를 한답니다. 하도 많은 클럽회원들이 늑장플레이를 한다고 불평을 하고 진정을 해서, 클럽에서도 그러지 말고 실력에 맞는 보통 화이트티에서 치라고 강하게 말했다고 해요. 그래도 ‘내돈 내고 내가 치는데 네가 왜?’ 하면서 말짱 무시하고 여전히 블랙티에서 칩니다. 중국인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또 어디서 무슨짓을 해도 중국인 임을 드러냅니다. 부끄러움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당함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것이 중국인들에게만 있는 어떤 민족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인간 혹은 사회발전의 어떤 단계에서 흔히 보여지는 보편적인 것일까요 🙂
다시 되돌아 옵니다. 진짜 실력은 잘 보이지 않아요. 화려함도 없고 우리가 상상하는 마법과 같은 드러난 묘기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로 뵹신으로 평가절하 취급 당하기도 합니다. 물론 진짜 뵹신들에게서요. 가짜 실력은 화려합니다.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간 앞에 장사 없으니’ 오랜 시간이라는 자를 딱 대고서 보면 실체가 드러납니다. 본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려함을 쫓기도 하지만 또 기억력이 별로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잘 기억을 못하거나 무언가 잘못된 것을 보아도 예외인가? 실수인가? 이렇게 착각을 하는 경우가 많아 보여요. 난 머리는 나빠도 기억력은 아주 좋은 편에 속해요. 그래서 내 눈엔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그 전모와 실체가. 그러니 어찌 내가 가짜 실력을 쫓을 수가 있겠어요 🙂
난 유튜브나 매스컴에 나와서 ‘이래라 저래라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들의 말을 전혀 듣지도 또 믿지도 않아요. 왜냐하면, 붓다께서도 그러셨듯이, 정말 알고 나면 정말 실력을 쌓고 나면 정말 위로 올라가고 나면, 자신에게도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렇다 저렇다 이래라 저래라 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지 싶어요. 참된 실력은 고요하니 잘 드러나지 않으며, 정말 잘 사는 사람들 또한 고요하니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글 따위는 쓰지 않아요 🙂
나는 예선 탈락인데요. 그대는 고요한 사람인가요? 아니면 나서고 내세우며 시끄러운 것을 일종의 성공이며 우월함이라고 생각하는 ‘당당한’ 사람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