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를 위해서 달리기를 한다

인간이, 지금의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진화 했던 것이 대략 6만년전 쯤이라고 한다. 현대인의 생활 방식으로 살게 된 기간을 넉넉 잡아 100년이라고 치면, 1/600 그리고 이것을 24시간 스케일로 환산하면 채 3분이 되지 않는다. 200년 이라고 쳐도 5분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생활방식으로 (주로 앉아서 생활하는) 살지 않았던 기간이 23시간 55분이고, 현재와 같은 생활 방식으로 살아 온 기간은 고작 5분 내외이다.

모택동이 집권하던 시절, 참새를 중국의 적으로 규정하여 온 중국인들이 일제히 참새와의 전쟁을 치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어떻게 참새를 잡았냐고? 물론 약도 놓고 공기총도 쏘았었겠지 하지만 엄청난 수의 참새는 그냥 날다가 지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어떻게? 모든 사람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쫒아 내서 아무대도 앉지를 못하게 하니까. 우리 조상들은 치이타처럼 빠르지도 못했고 사자같은 무서운 이빨과 앞발도 없었고 다른 동물들처럼 후각이나 청각이 그리 발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을까? 사냥감이 되는 동물들중 대부분은 인간들 보다 더 오래 더 멀리 달릴 수 없다. 흡사 중국인들이 참새를 맨손으로 땅에 떨어트렸던 것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수 만년간, 사냥감이 지쳐 쓰러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뒤쫒아 가서 잡아다가 가족들과 나눠 먹었던 것이다 🙂 아버지만 대표로 뛰었겠나? 그 참새 잡던 시절의 중국인들처럼, 아내도 아이들도 ‘모든 사람들이’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들고 뛸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같이 걷고 또 뛰었었겠지. 자주 어쩌면 매일.

당연히 인간의 뇌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사는 것에 유전적으로 각인이 되어 있다. 지금 당신이라는 존재 안에, 조상들의 삶이 대대로 녹아 있고, 역사가 들어 있고 또한 인류가 수 만년 혹은 훨씬 더 오랜 기간 쌓아온 본능이 들어 있다. 이것 잊고 살고 무시하며 지내다가 언젠가는 큰 댓가를 치른다.

걷고 뛰고 운동하면 우리 뇌가 행복해지고 우리 몸이 건강해진다. 그 시간에 앉아서 딴짓을 계속하면 뇌가 불행해지고 몸이 아프게 될 가능성이 확실히 높아진다. 내 경험에 따라 상당한 근거가 있다고 내가 믿는데, 운동 특히 자연속에서 걷고 뛰고 땀흘리는 것을 좋아하며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치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않은 경우가 드물고, 심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사람치고 그런 운동 좋아하고 즐겨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균형 잡히지 못한 상태로 살고 있는 줄 조차 전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안 걷고 안 달릴텐가? 머리 맑고 몸 건강하게 잘 산다는데도 🙂

나의 도마

기계체조 종목중에 ‘도마’라는 (뜀틀) 종목이 있다. 도마의 기술중에 ‘양1’ 이라는, 국제 체조 연맹에 공식적으로 등재된 기술이 있는데, 처음에는 최고 단이도 기술 (유일무이) 이었다가 지금은 최고 단이도 기술중의 하나가 (3개 중의 하나) 되었다고 한다.

양학선이라는 한국 체조 선수의 이름을 본땄으니 말하지 않아도 이 분이 ‘창조한’ 기술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겠다. 이 분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이 지구상에서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던 이 기술을 구사하여 금매달을 땄다. 그 당시 ‘양1’은 유일한 최고 난이도의 기술이었으니, 자신이 연습하고 개발한 이 기술을 실전에서 제대로 발휘하기만 하면, 다른 참가자들이 아무리 완벽하게 이미 알려진 다른 기술들을 구사하더라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는 그렇게 금매달을 땄다. 한국 체조 역사상 최초의 금매달이었다. 이렇게 금매달 따는 분도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막연한 소리 같지만, 연구하고 노력하면 점점 그렇게 살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의 하나는,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익숙하지 않는 것들을 의식적으로 시도하면서, 실패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자기자신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더 많이 보고 듣고 읽는다고 알게 되며, 또 나아가 자신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양1’을 아무리 많이 보고 듣고 읽어도 그대의 몸으로 구현할 수 없다. 그 비슷한 동작, 아니 도마를 어떻게 한 번 뛰어 넘을 수 조차 없을 것이다.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실패나 괴로움 갈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 과정에서, 당신도 마치 무슨 전문가가 된 것처럼 어떤 도마의 이론을 말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과 주변을 불행에 빠트리는 길이다.

당신의 몸매가 어떻든지 또 어떤 운동 능력을 가졌든지 간에, 당신 자신의 도마를 시도하라. 이것이 사는 길이요 행복으로 가는 길이다.

시도 하는 삶이 그 촛점을 자신에게 맞추고 있을때, 시도 하지 않는 삶은 그 촛점을 남들에게 맞추고 눈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단지 보고 듣고 읽고 또 떠들기 때문에. 그렇게 흘러가고 또 늙어가는 것이다.

나는 왜 27살 먹은 양학선씨를 ‘이 분’이라는 존칭으로 부르고 있는가? 금매달 때문에? 그보다는, 이 분이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오리지날’을 만든 분이기 때문이다. 위대하지 않은가?

오늘, 남들과 말고, 당신 자신과 갈등하며 괴로워 했던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거나 혹은 세상살이가 너무 자연스럽고 수월 했던가?

양학선 선수의 도마 한 번 보고 싶나? 그래도 🙂